★ 신팔균의 죽음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소속 의용군 사령관인 신팔균(申八均)은 대한제국 육군 정위(正尉) 출신으로 강계진위대(江界鎭衛隊)에서 복무했던 장교였다. 그는 1907년에 일본 제국주의 세력의 강압으로 대한제국의 군대가 강제로 해산되자 반일운동의 길에 들어섰다.
1924년 7월 2일, 신팔균은 흥경현(興京縣) 왕청문(旺淸門) 이도구(二道溝)의 밀림 속에서 군관학교 생도들과 독립군 병사들에 대한 합동군사훈련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때 일본 통화영사관이 장작림(張作霖)의 군대와 결탁해 독립군을 토벌하기 위해 경찰대를 파견해서 습격하도록 하였다.
일본 경찰대와 중국군 2천여명에게 포위된 5백여명의 독립군 장병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항전하려 하였다. 그러나 신팔균은 부하들에게 교전을 자제하여 후퇴할 것을 명령했다.
“우리가 한 발의 총탄도 아껴야 훗날 조국에 돌아가 왜놈들을 몰아내는 전면전을 벌일 수 있다. 그렇게 한 개 군(郡)이나 한 개 도(道)라도 더 점령해야 한다. 사람은 한 번 죽지 두 번 죽지 않는다. 따라서 마땅히 죽어야 할 때, 그때에 정의롭게 죽자.”
이렇게 그는 부하들의 전투 욕구를 가라앉히고 서쪽 분수령 일대의 깊은 산속으로 부대를 이동시켰다. 그러나 일본 경찰대와 장작림 휘하의 중국군은 기세 사납게 추격해 왔다. 독립군은 어쩔 수 없이 응전해야만 했다.
일진일퇴(一進一退)의 공방전(攻防戰)을 거듭하며 분수령 부근의 고지대로 퇴각한 독립군은 그곳에서 필사적인 저항을 벌였다. 신팔균은 단지 권총(拳銃)과 지휘봉(指揮棒)만을 들고 적군의 총탄이 빗발치는 곳에서 전투를 지휘했다.
이때 신팔균의 왼쪽 팔에 적탄(敵彈)이 관통되었다. 부하들이 달려와 그를 업고 달아나려 하자, 그는 자신을 업은 병사의 등을 밀치며 “나는 괜찮으니 공격해오는 적군에게 응사하면서 빨리 퇴각하라!”고 말했다. 뒤이어 날아온 적탄이 이번에는 신팔균의 가슴에 명중되었다. 신팔균은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며 자신을 부축하려는 병사에게 “나는 본래 압록강을 건너가 왜놈들과 싸우다가 죽으려고 했는데 이렇게 중국 동북 군사들에게 죽는구나. 나는 이미 틀렸으니 너희들은 아직 살아 있는 전우들을 구하라!”고 명령하면서 자신을 업으려는 부하를 한사코 거부했다.
김석하(金錫河) 중대장은 한 대원에게 신팔균 사령관을 업고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라고 명령하였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마침내 포위망을 벗어날 수 있었다.
멀리서 총성(銃聲)을 들은 양세봉은 독립군 병사 하나가 중국군의 추격을 받는 것을 보고는 곧 10여명의 대원을 거느리고 그를 구하기 위해 쫓아갔다. 하지만 적군의 수가 아주 많은 것을 보고는 이따금 총탄을 한두 발 쏘는 방법으로 적군을 다른 곳으로 유인하고는 산속으로 숨었다.
적군이 돌아간 후 양세봉과 대원들은 희생된 동지들 앞으로 다가갔다. 신팔균 장군과 유창렬 대원이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자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 양세봉은 통의부 의용군에서 소대장으로 복무했을 때 신팔균을 여러 차례 본 적이 있으며 훈시도 들은 적 있어 신팔균을 아주 훌륭한 군사 지도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신팔균 장군이 전사한 것을 목격하자, 양세봉은 통곡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김석하와 함께 여러 대원들을 거느리고 홍석립자산(紅石粒子山) 위에 구덩이 두개를 파고 신팔균과 유창렬을 매장한 후 표식을 세웠다. 높은 산꼭대기에서 그들이 조선 땅을 바라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신팔균의 희생을 통해 양세봉은 나라 잃은 쓰라림을 더욱 뼈저리게 느꼈다.
일본 제국주의 세력은 항일독립운동 진영을 제거하기 위해 외교적 술수도 동원했다. 중국 일부 지방 정부의 우매와 무지를 이용하여 일본 정부가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는 데 도움을 주도록 강요하는가 하면, 심지어 중국 동북 군벌과 합동하여 조선 민간인들을 끔찍하게 학살하기도 했다. 또한 일본의 영사관은 남만주 조선인 집단거주지에 보민회(保民會)를 설치했다. 보민회원들은 일본의 영사관과 중국 지방 정부의 비호 아래 유언비어(流言蜚語)를 퍼뜨림으로써 독립군을 중상모략하고 중국인들과 조선인 반일 세력을 이간질했다.
이러한 일들을 보면서 양세봉은 중국에 주둔해서 일본을 상대로 투쟁을 계속하려면 중국의 정의롭고 현명하며 지혜로운 사람들과 협력하고 그들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