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초등학교 다닐 때 부터 어느정도 클 때까지 난 한창 연년생인 오빠를 쫓아 해가 질 때까지 온동네를 누비고 다녔다.
언니야~같이가~하면서 날 쫓아다니는 3살 어린 동생을 떼어 놓느라 이리숨고 저리숨고.지금 생각하면 참 재밌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런 우리를 돌봐 주신 분이 할머니시다...
부모님 일하러 가시면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자기 전까지 우리 셋을 챙겨주신 분..
아니 키워주셨다는 말이 더 나을 것 같다.
할머니에겐 오빠란 장남이 낳은 내 귀한 손자이다..
그래서 우린 밥상에선 물론이고 평소에도 차별아닌 차별을 받았다.
오빠야 묵게 그만 묵어라~~가시나들이 머이래 많이 묵노~~
부모님 몰래 주시는 용돈도 항상 오빠가 500원이면 우린 100원...
그래도 그 때는 차별인지도 모르고 할머니가 밉지도 않았고
또 오빠가 항상 데리고 놀아주니까 어린 나이에 마냥 좋았다.
할머니의 사랑을 더 많이 받기 위해서 난 할머니 옆에서 자려고 오빠랑 다투기도 했었고
칭찬을 더 받기 위해서 오빠보다 공부도 더 열심히 했다.
하지만 내가 더 좋은 성적을 받아 왔어도 가시나가 공부 잘해서 뭐할라꼬~하시면서 관심도 두지 않으셨다..
그래도 난 할머니가 좋았다..
엄마보다 할머니 옆에서 자는게 좋았고..할머니가 해 주시는 밥이 더 맛있었고...
뭐라고 야단을 치셔도 그 때 뿐이고 난 다시 할머니 옆자리를 찾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할머니가 나를 보시면서 자주 웃으시고 오빠보다 나를 더 찾으셨다..
목욕도 항상 같이 가고 장보러 따라 다니는 살가운 손녀가 이제는 사춘기 접어들어 무뚝뚝해지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오빠보다 더 좋으셨던 가 보다.
그렇게 같이 사시던 할머니가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혼자 나가서 사시게 되었다...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이사하셨지만 난 외로우시지는 않을까 아프시진 않을까 걱정이 돼어 거의 매일 전화도 드리고, 야간자율학습 주말 독서실에 바쁜 고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시간나는 틈틈히 할머니를 찾아갔다.
대학을 다른 지방으로 가서도 부모님 보다 할머니와 더 자주 통화를 했었고
주말에 집에 가면 난 항상 할머니 집부터 갔다.
방학에도 남자친구, 친구들과 놀기보다 할머니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재밌었고
할머니랑 수다 떨고 시골장터에 따라가서 할머니랑 먹는 짜장면이 최고로 맛있었다..
80 다된 노인이라 냄새 난다고 내가 간다고 하면 목욕탕 부터 다녀오시고 향수도 뿌리시고 내가 사다 준 크림도 바르신다...
다른 식구들 오면 싫어할까봐 잠도 멀찌기 떨어져서 주무시는 할머니..
난 그래도 꼭 할머니 옆에서 붙어서 잔다. 그러면 밤새 내 이불 덮어주시는 할머니 손길이 느껴진다..
이웃 할머니들에게 우리 이쁜 큰 손녀라고 공부도 잘하고 지금은 외국가서 공부하고 있다고 자랑을 하실 땐 좀 민망하긴 하지만 난 할머니한테 그런 자랑스런 손녀인게 넘 기쁘다.
그런 할머니가 이제 자주 아프시다.
골다공증에 허리까지 안좋으셔서 얼마전에는 일주일간 입원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멀리 있어 갈 수는 없지만 항상 통화로는 우리 큰손녀~보고싶다 언제 또 오노? 밥은 잘 묵고 아픈데는 업나? 하실 때마다 마음이 뭉클했는데..
많이 아프시다는 얘기를 들으니까 걱정이 돼서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지난 설에 한국갔을 때 더 굽어지시고 주름이 느신 할머니 모습을 보고 많이 울었다.
보자마자 눈물부터 나왔다.
그렇게 보름을 할머니랑 있다 나 갈 때 대문 앞에 서서 눈이 빨갛도록 우시는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
나의 30년 삶에 가장 소중하고 친한 친구가 있다면 울 할머니다.
할머니, 큰 손녀 공부다 하고 빨리 돌아갈게요.
저 시집가서 낳은 증손자 보시고 싶다고 그러셨죠?
그 때까지 아프지 마시고 건강하게 살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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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신 할머니 생각이 나서 두서없이 적어 봤습니다.
이런 글 처음 써보는데 많이 쑥스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