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제비들에게 국밥을 사줬는데 밥이랑 고기는 안 먹고 국물만 떠먹는 거예요. 그래서 왜 밥이랑 고기를 안 먹니, 이걸 먹어야지 그랬더니 ‘태어나서 고길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어서 소화 못합니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때 머리가 정말 띵하고 화가 났어요.”
“저는 고기를 못 끊어서 큰 일인데 어떻게 고기를 한번도 못 먹을 수가 있죠?”
“그게 북한이예요. 그래서 너무 화가 나서 ‘김정일 이 나쁜 XX’ 이렇게 욕을 했더니 아이들이 숟가락 딱 내려놓고 말하대요. ‘우리 장군님 욕하지 마세요’ 라고. 그때 북한을 바꾸려면 이들에게 정보를 알려야 한다고 결심하게 됐습니다.”
난생 처음 보는 ‘고기’를 보고 ‘소화를 못 시키겠다’며 어린 탈북자들인 안 먹었다는 이야기에 강의실이 더욱 조용해졌다. “한국 대사관에서 나를 받아주지 않아 북한에서 나와 6년이 지나고 독일까지 강제 추방된 뒤에서 한국에 들어왔다”는 탈북자 백화성씨의 이야기에는 “하”라는 짧은 탄식이 나왔다.
31일 서울대 멀티미디어동의 한 강의실. 민간 대북방송인 ‘열린북한방송’의 대표이자 북한 인권 운동가인 하태경씨(44)가 북한의 식량난과 폐쇄성에 대해 이야기하자 레이싱 모델 김나나씨(29)와 학생들의 얼굴에 ‘설마’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북한에 대한 뉴스를 접하고 있다 해도 그만큼 북한의 속살을 알지 못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인권, 레이싱모델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의 특강은 미디어가 북한 내부의 변화, 궁극적으로는 통일을 이끄는데 미치는 영향력을 실제 사례를 통해 알려주기 위해 마련된 특강은 1부 토크콘서트와 2부 탈북자 대담으로 진행됐다.
하 대표와 김씨의 토크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된 1부에서는 “북한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탓에 북한에 대해 알기 위해” 1998년 중국유학을 택했던 하 대표가 유학 당시 탈북자들을 만나던 일들을 들려주며 피부로 느낀 북한 사회를 전했다.
“2년간의 유학생활동안 수백명의 탈북자륻 만났다”는 하 대표가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은 바로 꽃제비들과의 만남.
하 대표는 “김일성대에 들어가 공부할 수 없다면 가장 북한에 근접한 지역에 가서 연구해보자는 마음으로 중국 지린성으로 유학을 갔었다”며 “이마에 탈북자라고 새겨놓지 않는 한 탈북자와 조선족을 구별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그들을 만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꽃제비(굶주림 때문에 떠돌며 구걸하는 아이들)를 만난 적이 있다”고 운을 뗐다.
반찬을 사러 시장에 갔다가 남루한 차림의 10대 후반의 꽃제비 4명을 만났다는 하 대표는 “안쓰러운 마음에 국밥집에 데려가 밥을 먹이는데 밥과 고기는 안 먹고 국물만 떠 먹었다. 그래서 ‘밥이랑 고기를 먹어야지 왜 국물만 먹느냐’고 물었더니 ‘한번도 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어서 소화를 못 시킬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전했다.
하릴없이 국물만 먹는 꽃제비들의 모습을 보며 ‘어떻게 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을 수 있나’라는 생각에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김정일 나쁜 XX’하고 욕을 했더니 아이들인 숟가락을 놓고 싸늘하게 ‘우리 장군님 욕하지 마시라요’라고 했다”고 말한 하 대표는 “배가 고파 북한에서 도망쳤어도 머릿 속에는 여전히 ‘장군님 만세’ ‘배고픈 건 미제 승냥이와 남한 괴뢰정권 때문’이라는 생각이 박혀 있는 거다. 북한을 바꾸려면 다양한 정보를 유입시켜야한다고 깨달았다”고 소회했다.
이 말에 김씨가 “저는 고기를 못 끊어서 큰일인데, 어떻게 고기를 한번도 못 먹어볼 수 있느냐”고 놀라워하자 하 대표는 “그게 북한의 현실이고, 그만큼 어렵고 폐쇄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하 대표는 “귀국 후에 한국 대기업에 취직했는데 마침 대북사업을 맡아서 북한 고위층 인사들과 만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며 “그런데 나도 아는 김정일 가계도를 그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더라. 북한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김정일 가계도를 설명해주고 ‘첫째 아들 아니면 둘째 아들이 후계자가 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내 손을 잡고 ‘평생의 은인이다. 그쪽에 줄을 내 잘 댈 테니 우리 종종 연락하고 지내자’고 중국에 와있는 친동생 전화번호까지 적어줬다”고 회상했다.
하 대표는 “북한에서는 정보가 막혀있다. 심지어 쌀값도 국가기밀인 사회”라며 “요즘에는 많이 변했지만, 그래도 그들에게 김정일 장군은 위대하신 분이라고 생각한다. 이 얼마나 서글픈 일이냐”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해외에서 북한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나면 북한 정권에 대한 충성심이 강할수록 분노는 커진다. 하 대표는 “정보가 막혀있는 탓에 탈북자들이 겪는 문화적 충격도 크다”고 전했다. “후진타오를 욕해도 아무도 잡아가지 않는 걸 보더니 탈북자들이 ‘중국은 민주주의 사회’라며 깜짝 놀란다. 북한에서 김정일 욕하면 정치범수용소에 가기 때문”이라면서 “중국에서 북한이ㅡ 현실을 알게 되면 ‘내가 속았다’는 분노와 원망으로 괴로워하는 탈북자들이 많다. 나이가 많을수록 더욱 그런데 한 탈북자는 ‘나에게 총 좀 구해주시라요, 속은 게 분해서 김정일이 쏘아 죽일거요’라고 말할 정도로 마음 속으로는 김정일 정권에 대한 반발과 투쟁심이 들어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 대표는 통일 이후 김정일에 대한 처벌은 “리비아의 원수 카다피처럼 ”비인도적이어선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김정일 정권은 붕괴돼야 하는 건 맞다. 다만 사회질서가 무너지고 혼란에 빠지는 걸 막기 위해서 김정일과 김정은은 국제형사재판소에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하 대표는 ‘북한 인권 운동은 보편적이며 비정치적 영역’이라는 점에 방점을 찍었다. 그는 ‘북한 인권 운동이 마치 보수세력의 무기처럼 여겨지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정치꾼들의 ‘표장사’와 다른 사람을 비방하기 위한 무기로 북한 인권 문제를 이용하는 측면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야당이나 소위 진보세력도 북한 인권의 심각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의 지지자들이 ‘친북적’인 성향이 남아있어 북한 인권 문제를 입에 올리기 꺼려하는 모순적인 면을 갖고 있다”며 “북한 인권 문제를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무기로 삼는 분들도 있는데, 박원순 시장에게 ‘통영의 딸, 오길남 박사에 대해 왜 얘기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건 공격이다. 북한 인권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하고, 북한 인권 운동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공개할 순 있지만, 지나치게 정치화하는 것은 안 좋다”고 덧붙였다.
뒤이어 2부에서는 탈북자 백화성씨(27, 한국외대 언론정보2)가 탈북과정에서 겪었던 홀대 등을 솔직하게 들려줬다.
2008년 입국한 백씨는 “12살 때 먹고 살기 위해 라디오를 수리하는 일을 하다 우연히 남한방송을 듣게 됐다”며 “대역죄이기 때문에 손발이 떨렸지만, 따뜻하고 상냥한 여자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라디오 방송의 유혹을 떨칠 수 없었다”고 말해 좌중을 웃음을 자아냈다.
하지만 백씨가 “DMZ를 통해 탈출하려고 17살에 군대에 자원했지만, 결국 6년 동안 중국, 베트남, 러시아 등지를 떠돌며 수차례 탈북을 감행해야 했다”고 털어놓자 강의실 안은 조용해졌다.
백씨는 “중국에 있는 한국 영사관에 전화해서 도와달라고 했었지만 ‘우린 모른다’고 끊어버렸다.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관 앞에서 잡힌 뒤에 연락했을 때는 ‘중국말을 잘하면 중국에서 살고 안 그러면 그냥 북한으로 가라. 남조선은 당신 생각처럼 좋은 곳이 아니라’라고만 하고 끊었다”며 “정말 막막했다. 결국 북한을 수차례 탈출하고 러시아까지 갔다가 독일로 강제 추방된 뒤에야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이날 특강을 들은 대학생들은 “북한에 대한 뉴스는 많지만 실제 탈북자의 이야기를 들은 건 처음”이라며 “유익했다”고 말했다.
손성동씨(20, 남, 정치외교학과 2)는 “이렇게 가까운데 넘어오기가 참 힘들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무엇보다 탈북과정에서 겪었던 일들은 충격적이었다”며 “연평도 폭격 도발이나 핵문제처럼 위협적인 상황이 올 때는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하지만,,대체적으로 요즘 대학생들은 북한에 대한 관심 자체가 적은 편이다. 이번 기회에 북한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유익했다”고 말했다.
최창완씨(23, 남, 경제학부4)도 “북한의 현실을 뉴스 등을 통해 접해서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탈북자분과 북한 인권 운동을 하시는 분께 들으니 더 와 닿는다”면서 “생각보다 북한의 상태가 훨씬 심각하구나라고 느꼈다. 이런 관심이 우리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날 특강을 기획한 곽정래 교수는 “통일에 있어서 미디어가 효과적이고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게 증명됐지만, 이에 대한 수업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며 “현장의 소리를 전하고 우리사회에서 북한의 인권이나 현실, 통일 등에 대한 문제가 어떻게 담론화되는지 케이스를 공부, 연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마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곽 교수는 “학생들 반응도 좋아서 강의할 때마다 이같은 내용의 특강을 넣는데 신선하다, 흥미로웠다는 반응이 많다”며 “북한 문제, 특히 인권 문제나 대북방송 같은 것은 정치적인 것과 관계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통일과 그 이후를 생각하면 이같은 담론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이고, 앞으로 더욱 우리 사회 안에서 깊이 고민해야 할 문제인 만큼, 오늘 특강이 학생들에게 그런 것을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하 대표는 11월8일 오후 2시 연세대학교에서 ‘외국인이 보는 한국인의 고정관념’이란 주제로, 11월15일 오후 5시 15분에는 고려대학교에서 ‘국제기구에 어떻게 진출하나요’라는 내용으로 북콘서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북콘서트는 인터넷방송 아프리카TV(http://afreecaTV.com/meetwithha)에서 생방송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