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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에 대한 오해 - 멕시코의 현상황(장문 -스압)

사학과 |2011.11.02 21:10
조회 1,782 |추천 30

우리들은 일반적으로 멕시코가 NAFTA 이후 붕괴된 것처럼 묘사하며

한미 FTA를 거기에 빗대고 있어. 그러나 과연 멕시코의 현상황이 NAFTA 때문일까?

 

멕시코에는 에히도제도(EJIDO)라는 농업방식이 있었어.

1934년부터 시행되어온 NAFTA 체결 이전 멕시코의 전통적(?) 농업방식이야.

에히도 제도가 뭔지 간단히 살펴보면

토지를 원칙적으로 사회적 재산으로 간주하여 지주로 부터 정부가 땅을 몰수하고

그걸 농촌공동체나 영농조합에 나눠주어 공동으로 경작하게 하는 방식으로

이렇게 불하받은 토지는 해당조합이나 공동체에 영구적으로 상속되어

임대, 담보 등 일체의 상업행위가 금지돼. 

 

근데 이런 공동경작방식이 반세기가 지나자 문제가 발생했어.

멕시코의 농지는 한정되어 있는데 인구는 계속 늘어나. 하지만 에히도 제도에

따르면 농민에게는 무조건 무상으로 토지를 나누어 주어야 한단 말이야.

결국 농민들에게 사막이나 정글같은 현실적으로 경작이 불가능한

불모지를 나눠주기 시작했어. 눈가리고 아웅한거지.

또 토지의 비옥도가 높은 남부지역은 땅을 좁게 분배해줬고

척박한 북부지역 농민들에게는 넓은 토지를 분배해줬는데

때문에 남부지역 농민들은 후손들에게 나누어줄 토지면적이 더욱 줄어들어

전통적인 가족농 형태의 경작방식을 벗어나지 못했어.

 

이렇게 되니까 결국 토지생산성은 악화되어 자급자족 수준의 경작방식을

벗어나지 못했고 멕시코 농민들은 이미 예전부터 절대빈곤에 시달리게 되었어.

특히 1970년 이후에는 비공식적으로는  부자들에게 경작권을 팔고 

농업노동자가 되는 사람들이 늘었는데 이 사람들은 실상 농노로 전락하게 돼. 

왜냐? 거래는 공식적으로 불가능한데 난 이 사람한테 내 토지 경작권을 팔았어.

그럼 계속 거기 있어야했단 말이야. 범법자 안되려면.

 

근데 NAFTA 이후 멕시코는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하게 돼.

너희들도 알다시피 에히도제도는 정상적인 제도가 아니야.

저런 집단농장체제는 공산주의 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체제거든.

근데 NAFTA 이 후 내국인 대우 조항에 따라 멕시코에 투자하는 미국인에게도

토지를 나눠줘야 하는 문제가 발생해.

가뜩이나 문제점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자본주의 시스템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비상식적인 제도의 최후였지...

결국 멕시코 정부는 이런 부조화를 극복하기 위해 에히도 제도를 폐지해

그리고 드디어 거래가 합법화되면서

농촌 주민들은 실질적 농노라는 억압의 사슬에서 풀려나 도시로 이주가 가능해졌어.

현재 인터넷에서 멕시코의 사례를 드는 사람들은

마치 그들이 미국자본의 유입으로 농지에서 쫓겨난 것처럼 말하는데

그들은 오히려 반세기 동안 계속된 절대적인 가난 탈피를 위해 도시로 이주한 거야.

 

사람들은 NAFTA 때문에 멕시코 인구의 90%가 빈곤에 시달린다고 그러지?

그러나 사실이 아니야. 이미 그 전부터 멕시코 인구 대다수는 빈곤층이었어.

멕시코의 현 문제점은 스페인 식민지배 이후부터 내려오는 뿌리깊은 계급갈등,

빈부격차, 비효율적인 교육정책, 정부의 부패와 무능, 마약 카르텔의 준동,

농민반란, 비정상적인 세제, 고급 인력의 부족,

특히 94년 페소화 위기 등이 복합적으로 이뤄낸거지.

NAFTA는 그 모든 혐의를 뒤집어 쓸 이유가 없어.

94년 페소화 위기는 멕시코판 IMF라고 보면 돼. 이게 결정적인 거였지.

 

대표적인 좌파 경제학자인 로버트 하일브로너는

산업혁명에 대해서 그 전보다 빈곤상이 더 심해졌다고 볼 수 없다고 말해.

일례로 멘체스터 지역의 평균 노동시간은 산업혁명 전보다 산업혁명 후에

더 줄어들어. 다만 임노동자들이 도시로 모여들어 빈민가를 이루고

그 집단이 눈에 확연히 보이게 되니까 빈곤상이 심화되어 보였다는 거지.  

NAFTA도 마찬가지야. 

농업지역에서 절대빈곤에서 시달리던 농민들이 해방되어 도시,

특히 멕시코시티로 몰려오니까 빈민가가 형성되고

그래서 멕시코의 문제가 더 부각되어 보이는데 실상 별로 악화된 점은 없어.

오히려 생활이 개선된 측면이 있지. 저번에 다큐였나?

'멕시코의 명과 암'에서 멕시코 시티 외부에 엄청난 노점상을 보여주며

빈곤상을 부각시키더라? 근데 그들은 그 노점상하는 게 

멕시코 남부지역에서 농사짓던 것보다 수입이 더 높다는 사실은 알려주지 않았어. 

 

NAFTA는 당시 멕시코에게는 좀 성급하거나 불리했던 조약인 건 맞아.

FTA 협상 중 페소화 위기를 맞았고 그들로서는 경제적으로 빠른 타개책을

찾았어야 했으니까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었지.

그 때문에 빈부격차의 악화에는 NAFTA가 일조한 면도 없잖아 있어. 이건 인정해.

그러나 말이야 마치 현재 멕시코의 모든 문제가 NAFTA 때문인 것처럼

사람들이 이해하는 건 역사를 전공하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너무 안타까워서

이런 장문의 글을 썼어.

 

멕시코는 말이야.

NAFTA 때문에 부유층 세금징수율이 10%밖에 안되는 게 아니야.

NAFTA 때문에 문맹율이 10%에 달하는게 아니야.

NAFTA 때문에 고등학교 졸업자 비율이 36%밖에 안되는게 아니야.

NAFTA 때문에 페소화 위기를 겪은게 아니야.

NAFTA 때문에 마약이 재배되고 유통되는게 아니야.

NAFTA 때문에 멕시코 부자 12명이 GDP의 5%를 차지하고 있는게 아니야.

NAFTA 때문에 정부관리들이 뇌물을 받고 부패하는게 아니야. 

그 모든 건 멕시코 내부의 수십년 동안 해결되지 않은 고질적인 병폐야.

물론 거기에 NAFTA가 일조할 수는 있었겠지.

그러나 근원을 NAFTA로 돌리는건 멕시코인들 입장에서는 현실도피고

우리나라 사람들 입장에서는 무지의 극치에 불과해.

더군다나 멕시코는 NAFTA 이후 95년 페소화 위기의 영향을 받은 해를 제외하면

꾸준히 성장해 왔어. 빈부격차는 심화되고 있지만 그게 '10년 뒤로 후퇴했다'라고 과장할 수준은 아니야. 국가 내부의 분배의 문제는 이제 멕시코 정부의 책임이지.

 

이상이야. 벌써 2시간이나 지났네.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

추천수30
반대수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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