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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 교회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한승민 |2011.11.10 00:55
조회 100 |추천 2

한국교회가 위기상황에 놓여있다는 사실은 이미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07년도에 있었던 평양대부흥 100주년 기념성회에서 故 옥한흠 목사님의

"주여! 한국교회를 살려주옵소서!" 하였던 외침은 여전히 우리의 기도제목이 되고있다.


세속화, 맘모니즘, 개교회주의로 인해 교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현실을 보며

어떤 목회자들은 한국교회가 이미 자정능력을 상실했다고도 말한다.

교회의 문제에 대해서 이제는 비신앙인들도 날카롭게 지적할만큼 우리의 치부를 이미 드러낼만큼 드래냈고 알만큼 알고 있다.


그러나 더욱 애통한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무너지고 세상사람들로 부터 수치를 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교회의 위기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감도 없고 무감각하며 너무나 냉담하다는 사실이다.

 

 

지금 한국교회의 상황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구한말, 일제치하 때를 생각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구한말에 예수를 믿으면 상감도 모르고 조상도 모르는 서양귀신(그당시엔 양귀라 하였다)이라하여 잡아들이는 족족 참수 하였고, 일제시대 신민통치의 정당화를 위해 신사참배를 강요 할 땐 신사참배를 거부한 수많은 신자들이 일본제국주의의 손에 죽음을 당했다.

 그때만해도 한국은 미신과 우상이 넘처나고 유교사상 봉건제도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던 곳이었다. 

으리으리한 교회는 상상할 수도 없었고 성경도 흔치않아 말씀을 읽기도 힘들었을 뿐더러 성경이 있어도 글을 몰라 못읽는 일이 다반사였다. 더구나 예수믿으면 고난을 당하고 죽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한말, 일제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총,칼앞에서 신앙을 변개치 않았고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정절을 지켰다. 그러한 신앙이 있었기에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마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순교의 피를 뿌리를 것을 영광으로 여겼다. 이것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100년 전 만하더라도 그런 위대한 믿음의 용사들이 한국교회를 이끌어 갔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가 있고 세계에서 2번째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며 신도수 1천만 명을 자랑하는 21세기 한국에서 살고있는 우리는 어떻게 이모양 이꼴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절대 신앙생활을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이땅을 변화시켰다 세상을 뒤집어 엎는 굳세고 힘있는 신앙의 길을 걸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킬 만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도 도리어 세속화의 길을 걷고 있다. 

실로 통탄할 일이 아닌가. 저 천국에가서 우리 믿음의 선배들 앞에 서면 무슨 낯으로 얼굴을 들것이며 부끄러워서 무슨말을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너희가 어찌하여 나의 성전을 도적의 소굴로 만들었느냐 하시지 않으시겠는가?


우리가 바로 세상으로 부터 손가락질 당하는 교회를 만든 장본인이고, 우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싸구려로 만든 장본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잠깐 눈물 흘리고 이벤트 처럼 반짝 했다가 마는 부흥성회, 회복을 위한 집회에 참여해서 마음의 부담감을 덜어내는 정도에 만족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조차 이 정도로는 근본적인 회복이 일어날 수 없을거라는 자각을 하면서도 더 마음을 쏟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가장 큰 비극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이들은 교회를 위해 목숨조차 아끼지 않았다. 우리가 그들만큼 뜨거워지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복음과 예수를 향한 사랑과 열정으로 뜨겁게 불타오른 한사람만 있다면 교회는 회복될 수 있다. 


한 명으로부터 시작된 불길이 주위 사람에게 번지면서 부흥은 그렇게 순식간에 찾아온다.


 나는 우리가 부흥의 주역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하나님은 한국교회를 사랑하시고 회복시키시기를 원하신다. 


그 역사를 위하여 기꺼이 불타오를 한 사람이 필요하다면, 바로 내가 그리고 여러분이 그 주인공이 되기를 소망한다

추천수2
반대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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