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판에 글을 써봅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저희 언니의 시어머니 이야기입니다.
지금 조카가 악성 뇌종양 판정을 받고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는 중 인데
아이 아버지가 오지도 않고 생활비도 안주고 병원비도 밀려있는 상태입니다.
병원비는 시댁 쪽에서 소아암지원으로 2000만원을 지원받는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현재 병원비를 한 달 째 안내고 있습니다.
언니의 전화는 물론이고, 병원 원무과 전화도 받지 않으십니다.
형부역시 이번주 토요일에 퇴원이고 병원비가 계산 되야 퇴원이라고 말했는데도
전화도 받지 않고 문자에 답문도 없습니다.
돌아오는 토요일에 퇴원인데 막막합니다.
이 사태를 헤쳐 나가기 위한 아이디어가 필요 합니다.
글이 다소 길더라도 읽고 관심 좀 가져주세요.
저희 언니는 3살 된 여자아이와 이제 막 7개월 된 남자아이를 둔 아줌마입니다.
유학 생활 때 형부를 만나서 연애를 하다가
학비 지원과 생활비 지원 해주겠다고
공부를 포기하지 말라는 교수님의 지원을 약속받고 너무나 기뻐하던 도중
첫 아이 임신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그 좋은 기회를 포기하고
아이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결혼 전에 아이가 생긴 터라
양가 부모님은 반대가 극심했었습니다.
솔직히 저희 부모님은
'어차피 일어날 일 일찍 겪는 것' 이라며 오히려 언니를 위로하던 형부가
연락을 끊은 상황에서 아이를 가졌다는걸 알게 되셔서 그런지 반대를 하셨습니다.
아이 아버지와 연락도 안 되는 상황에 아이 때문에
공부도 꿈도 인생도 포기하기에는
들인 시간과 노력이 너무나 아까웠었으니까요.
심지어 저희 어머니는 한번만 죄 짓고 말자고 언니 앞에 울며 무릎까지 꿇기도 했었습니다.
제목에서 본대로
시어머니 되시는 분은 남해 해안도시 지역의 최초 여자장로이시구요.
세계적인 여성 모 단체의 지역 회장을 역임하셨습니다.
그러신 분이 반대를 하는 게 이해가 안 갔습니다.
(역시 이런것과 자기 아들 여자는 다른건가 봅니다.ㅆㅂ)
집안에 형부의 이모님 되시는 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은사를 받으셨다고 들었는데
그분이 하나님이 반대하시기 때문에 라고 얼핏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희 집도 교회를 다니지만 영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후로 형부는 형부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시 언니와 생명을 지키기로 했고, 그렇게 두 사람은 가정을 이뤘습니다.
형부는 사실 정말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언니에게도 다정했고 조카에게도 너무 애틋했었습니다.
그러던 사람이
약 일 년전 시댁과 다시 연락을 시작하고 나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형부는 박사논문 마무리여서 형부의 졸업을 보기위해 시부모님이 미국을 방문하셨고
매일매일이 애 나은지 두달 된 여자가 아침 저녁으로 식사준비하고, 정리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집에 언니와 아이들만 남겨둔 채 그렇게 외출을 나갔었다더라구요
그러다가 급기야
이제 막 동생을 본 2살 아이와 태어난지 2달밖에 안된 조카
그리고 몸 푼지 2달 된 여자를 남겨두고....
그들은 그렇게 시카고로 떠났습니다.
하물며 첫째라도 데려가라고 했는데도
아니면 차 한대 더 렌트해서 모두 같이 가자고 하는걸
돈이 없다는 말을 하며, 울며불며 매달리는 첫째조카를 떼어놓고
그렇게 시카고를 다녀왔답니다.
참 언니 동생으로서 그리고 여자로서 화가 납니다.
참 그리고 한번은 이런 적도 있다더군요.
쓰레기통에 시부모님이 미국 오실 때 사 오신 애기 양말이 버려져 있었다고.
시어머니께서 언니가 버린 거 아니냐고(아주 사람을 쉽게 미친사람 만듭니다.)
이 바보같은 형부는 그걸 그대로 언니한테 물어봅니다.
언니는 참 어이가 없었습니다. 당시 사람이 형부 아니면 시부모님 아니면
조카나 언니인건 맞는데 그걸 보통은 아이가 그랬나보다 하지
어른이 그럴 거라고는 생각 못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그걸로 조금 다투고 나서
이틀 뒤
첫째 조카가 멀쩡한 물건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걸 형부가 보고나서
형부는 아무 말 못했답니다.
아무튼 그렇게 시카고를 다녀오시고 한국으로 돌아가신 시부모님
이번엔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며
당장 한국으로 들어 오라고.
언니의 생각이나 상황 따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 들어오랍니다.
정말 이상합니다.
저도 모태신앙이고 어머니 아버지도 교회 직분 있으시고
저도 나름 신앙생활을 해왔는데......
이런 식으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하나님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언니는 시부모님의 말씀이어서 그저 그냥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했었고
그렇게 언니는 좁은 비행이 안에서 혼자 13시간을 첫째아이와 둘째아이를 안고 업고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잠 한숨 못자고 비행기에서 겨우 20분 앉아있었다며 집에 와서 쓰러지더군요...
당시는 잘 몰랐지만 나중에 비행기 안에서의 상황을 듣고 나서 안쓰러워 눈물이 났습니다.
그렇게 한국에 들어온 언니는 거처할 곳 없이 서울 친정에서 머물었습니다.
뭐 솔직히 저는 좋았습니다.
사랑스런 조카들을 인터넷 전화가 아닌 실제로 매일 볼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현실은 참 그렇지 못하더군요.
밤에 두 시간마다 울며 젖 달라는 젖먹이 둘째 아이와 동시에 울며 깨어나는 첫째조카
낮에는 동생이 생겨서 보채는 첫째 조카와 첫째 조카가 울면서 잠이 깨서 우는 둘째조카.....
한국이야 저와 엄마가 있으니 도와줄 수 있지만,
형부와 시부모님이 시카고 갔을 때 이 상황을 어떻게 견뎠나 싶더라구요..
(저희 어머니는 첫 아이와 둘째 아이 산후조리 와 둘째 임신해서 입덧이 심할때
미국에 가서 살림과 산후조리를 도와 주셨었습니다. 시부모님 오시기 전에 어머니는 한국으로 오셨구요
어머니가 미국 가셨을 때 마다 저는 집안 살림을 도맡아 했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저와 저의 부모님 나날에 아이 둘이 와서 조금은 시끌벅적 하지만
나름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 생겼습니다.
갑자기 뇌종양으로 응급수술을 해야 한답니다.
최근 몇 일간 팔에 힘이 없고 걷는 것이 불안정해 보여
병원 선생님께 여쭤봤더니 앓고 있는 장염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하셨고
몇 일 지켜본 결과 더 심해지는 것 같아 이리저리 대학병원들을 다녀봤습니다.
모두 미국에서 한국으로 생활환경이 바뀐 데다 동생을 일찍 봐서
심리적인 요인으로 퇴행이 온 것이라고 말을 하지만,
혹시 모르니 CT를 찍어보자 해서 발견이 된 것입니다.
상태는 좌 뇌에 뇌 반 종양 반으로 상황은 매우 심각했었고,
첫 번째 종양 제거 수술 후 의사선생님은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셨었습니다.
의사선생님은 아이 아버지가 미국에서 들어와야 한다고 했었지만,
시아버지의 반대로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기적적으로 혈소판 수치가 올라가서 피가 멈추기 시작했지만,
의식저하로 두 번째 혈종제거 수술을 또 했습니다.
그렇게 큰 고비를 넘기고 겨우 조카의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운 좋게 의료진을 잘 만났기도 했고, 조카도 장하게 고비를 넘겨줬습니다.
그렇게 고비를 넘기고 중환자실에 있는 조카 면회를 기다리기 위해
시어머니와 언니는 병원 로비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었답니다.
시어머니는 자신의 힘들었던 결혼 생활에 대해서 눈물 지으며 이야기 할 정도로
그때 당시 상황은 좋았다고 했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시어머니가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대화를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사실 너희들 사이가 안 좋은걸 알고 있다.
하나님이 이런 부분에서 이미 예견을 하셨고, 그래서 내가 너희들 결혼을 반대 했던 거다.
은수가 아픈 것도 그런 부분의 일환이고, 앞으로 안 좋은 일이 더 벌어질거다.
네가 많이 힘들 거다. 네가 더 많이 참아야 한다."
"어머님, 사실 평범하게 한 결혼이 아니라서 저도 결혼생활 내내 상처로 많이 힘들었는데요.
어머님이 신랑에게 쓰신 이메일에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은 생명'이라고 하셨던데
정말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었나요?"
"그래"
"그럼, 뱃속에 있던 은수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라고 하시던가요?"
"지우라고. 지우라고 하셨다."
"어머님, 제가 알기론 하나님 손에서 나지 않은 생명이 없다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된 건가요?"
"아니지. 하나님이 만드신 게 아니라 너희들이 실수로 만든 거지."
"아... 네"
언니는 더 이상 대화가 안 될 것 같아 대화를 중단했답니다.
그 후로 언니는 몇 주간 밥도 못 먹고 잠도 못자고 그렇게 괴로워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아이를 가지고, 낳고, 고생해서 마른 사람이
더더욱 말라갔습니다.
지금 현재는 너무 말라서 거식증 직전의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렇잖아도 원체 몸이 약해서 걱정이었는데... 불안한 마음에 보험까지 들어놨습니다.
참 자신도 아이를 키워 오셨었을 텐데,
겨우 생명의 고비를 넘기고 중환자실에 있는 아이를 가진 엄마에게
시어머니로써 같은 어머니이자 여자로써 할 소리인지 솔직히 화가 났습니다.
그 후 언니는 시어머니께 거처할 곳에 대해 상의 드렸습니다.
상황은 조카가 방사선 치료 중 이었고 곧 퇴원을 해야 하는데
뇌수술로 오른쪽 편마비가 와서 움직이지 못하는 첫째 조카가
이제 막 기어 다니고 짚고 서면서 움직이는 둘째 조카를 극도로 싫어하는
친정집에는 이제 더 이상 머물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곧 방사선 치료가 끝나면 항암치료를 들어가야 하는데
항암치료는 방사선 치료 때 보다 특히나 더 위생에 신경 쓰고
모든 것을 소독해서 써야 할 정도로 환경이 깨끗해야 합니다.
그래서 언니는 시어머니께 몇 번 상의를 드렸었는데,
그때마다 시어머니는 "쉼터로 가라 나는 모른다." 로 일관하셨습니다.
솔직히 첫 아들 결혼 후(형부는 둘째 입니다.) 집을 1억 5천 전세로 해주셨다는 걸
알고 있는 저로써는 참 너무한다 싶었습니다.
어찌 보면 속된 말로 엿 먹어라 하는것 같기도 하고;;
어차피 형부가 수일 내로 한국 올거고 오게 되면 어차피 거처 할 곳을 정해야 하는 마당에
그렇게 모르쇠로 일관하시는 것이 참 이해가 안 갔습니다.
그렇게 할 수 없이 쉼터라도 알아보던 중 대기 조차도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언니가 마지막으로 어머니께 부탁을 했습니다.
"어머니 2주후면 퇴원을 해야 하는데요.
지난 주에 아이 데리고 친정 가봤는데 아이가 상당히 스트레스 받더라구요.
친정은 둘째 때문에 갈 수가 없어서요.. 어떻게 하죠?"
"글세.. 쉼터를 가는 게 어떻겠니?"
"쉼터는 첫째같이 예민한 애가 가면
공동생활에 더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아서 곤란하구요....."
"그럼 원룸 밖에 없잖니?
"원룸보다도 집다운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오빠도 곧 들어오니까 어차피 지낼 집도 필요 하구요.."
"어머님 사정 어려우시면.. 전세 꼭 아니어도 월세도 있구요..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이면 작아도 깨끗한 집을 얻을 수 있는데요, 오빠 한국 오면 바로 직장 들어가고(이미 취업이 결정 상태였습니다.) 연봉도 적지 않으니 바로 대출해서 갚을게요."
"글쎄..나는 모르겠다. 할 말이 없다" 로만 일관..
"알겠습니다. 그럼 논문 마무리로 바쁜 것 같아 어려워도 어머님께 말씀드린 건데,
오빠랑 이야기 해 볼께요."(여기서 조금 욱 했답니다.)
"너 말투가 그게 뭐냐?"
"어머님 불쾌하셨으면, 죄송합니다.
아픈 애 데리고 갈 데가 없다 생각하니 제가 조금 말투가 그랬어요......
그리고 어머니 아이 중환자실에서 겨우 생명의 고비를 넘겼을 적에
어머님께서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신 생명이다'
'지우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만드신 생명이 아니라 너희가 실수로 만든 거지' 라고 하셨잖아요.
전 어머님 그 말씀 때문에 지난 2~3주 동안 잠도 못자고 밥도 잘 못먹었어요."
"난 그런 말 한 기억이 없다. 니가 듣고 싶은 대로 들은 거겠지."
"아니요. 어머님 분명히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아니. 난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은 생명'이란 말은 했지만 그 뒷 말은 안했다."
"... 어머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전 드릴 말씀이 없어요. 그런데 어머님도 아시겠지만, 어머님과 제가 대화를 나눈 그 자리에 하나님이 다 듣고 계신 건 어머님도 아실꺼예요.
...
그리고 어머님, 전 ㅇㅅ 하나 케어하기에도 몸과 마음이 너무 지치고 힘들어요.. 이젠 그런 말씀은 하지 말아주세요."
이렇게 언니는 시어머님께 말대답을 했었습니다.
스크롤의 압박으로 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
저렇게 대화 이틀 후 형부가 한국에 들어왔고
저 대화가 나중에 희안하게 왜곡됩니다.
원래는 한번에 다 올리려다가 장장 3개월 간의 병맛 상황을 쓰려니
스크롤이 사라지려고 하네요.
내일 아침에 마저 올리겠습니다.
양해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