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이 사망했다."
지난 8일 온라인은 '김정일 사망' 루머로 뒤덮였다. 난데없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신변에 관한 소식에 증권가엔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고, 정부당국 역시 진위 파악에 진땀을 흘렸다.
결론은 '헛소문'이었다. 정부 당국자는 소문이 확산되자 "북한 매체가 어제(7일)도 김 위원장의 공개 활동을 보도했다"며 "사망설에 대해 들은 바 없다. 낭설일 개연성이 크다"고 파장 차단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사망설이 주식시장 등을 크게 흔든 이후였다.
소문의 근원지는 증권업계의 이른바 '찌라시'로 지목됐다. 증권가 메신저를 통해 "김정일 사망, 확인 요망"이라는 소문이 빠르게 번졌다. 전문가들과 증권업계는 '김정일 사망설'을 옵션만기일을 앞두고 지수 하락을 노린 세력들의 의도된 유언비어로 보고 있다. 관련 업계에선 '김정일 사망설'이 연말이면 찾아오는 '단골손님'으로 불릴 정도다.
여기에 소문은 또 다른 소문으로 번졌다. 일부 네티즌들은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을 기습 통과시키기 위해 고의로 김정일 사망설을 흘렸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9일에도 온라인은 헛소문으로 들썩거렸다. 각 포털사이트 인기검색어에 'A 그룹회장 사망'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이 소문은 이 그룹이 최근 검찰 수사를 받는 상황에서 나온 탓에 더욱 빠르게 퍼져 나갔다. 해당 그룹이 공식 부인을 했지만, 소문이 진정되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소문은 '양은냄비로 끓여 뚝배기에 식힌' 형세였다.
뜬 소문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6일 서울 노원구 월계동 주택가에서 방사능검출 소식 이후 퍼지기 시작한 이른바 '방사능 괴담'은 아직도 온라인을 떠돌고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해당 지역 일대에서 시간당 0.0014mSv(밀리시버트)가 검출, 연간 방사선 허용량 1mSv에 한참 못미치는 수치여서 주민의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럼에도 일부 환경운동단체들에선 해당 지역을 '오염지역'으로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온라인에선 방사능 검출량이 기준치인 137베크렐(㏃)을 뛰어넘는 10만㏃이라는 헛소문이 나돌고 있다.
'식품방사능 괴담'은 아예 통설로 뿌리 내리고 있다. LG생활건강의 생리대, 스타벅스의 녹차, SPC그룹의 파리크라상 제품 등이 일본 방사능 괴담에 올랐다. 각 업체가 발 빠르게 해명을 내놨지만, 소문은 걷잡을 수 없었다.
이 같은 생리를 잘 아는 일부 업체는 두 손을 들어 소문에 항복했다. 이들은 일본 생산 및 수입을 전면중단한다고 선언했다. '사실'을 제대로 알리는 것 보다 '소문'을 차단하는 것이 영업손실을 막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괴담 공화국'에서 살아남기 위한 뼈아픈 생존전략이다.
한미FTA 비준의 쟁점인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를 둘러싼 유언비어 역시 온라인에선 '점령군'행세를 하고 있다. 과학적 논쟁은 실종되고 사실과는 전혀 다른 주장들이 확산되면서 음모론까지 난무하고 있다. 오죽하면 트위터 이용자들과 직접 소통에 나선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제발 괴담에 현혹되지 말라"고 호소할 정도다.
◇ SNS를 통해 번져나가는 유언비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트위터 화면 조합.
"루머 생산과 확산, 정치-경제적 사용하려는 실체 있어"
왜 이렇게 뜬소문이 우후죽순으로 자라나는 것일까. 그 '미망의 뿌리'는 얼마나 깊은 것일까.
전문가들은 과거 골방에서 하던 '뒷담화'가 온라인 무대로 옮겨오면서 그 파장과 속도가 엄청나게 증가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헛소문의 생산과 확대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Social Network Service)의 등장으로 커뮤니케이션의 질서가 뒤집히면서 파생된 '그림자'라는 지적이다.
특히 "루머의 생산에는 일부 여론을 세력화하려는 '실체가 있는 무리들'이 있다"고 진단했다. '괴담 공화국'을 바라는 이들이 끊임없이 주제를 바꿔가면서 괴담을 퍼트리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에 대한 불만표출 심리도 작용하지만, 이보다 '경제적 이익', '정치적 목적 달성' 등이 주된 것이라고 한다.
심상민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루머라는 것이 과거엔 실체가 없었는데, 이제는 (커뮤니케이션이) 모세혈관처럼 퍼져있어 이를 가지고 세력화 하려는 부분이 있다"며 "정치-사회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사용하려는) 실체가 있다"고 지적했다.
심 교수는 이어 "그 세력은 굉장히 광범위한 세력"이라며 "지금 기득권에 저항하는 시민단체는 물론, 연예인 중에서 '저항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사람도 있을 정도로 힘을 얻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들이 이야기 할 때 사실이 아닌 부분이 괴담이 되기 때문에 사회에 적신호가 켜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소문은 발신하는 쪽은 언제든 있었지만, 지금은 SNS로 인해 '눈덩이 효과'로 그 파장이 무서운 것"이라며 "사회적인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홍길동은 홍명보 형이다' 사람들은 그 개연성을 의심하게 된다
특히 그는 "이게 일종의 사회질병 수준"이라며 "스스로 정화-컨트롤 할 수 있는 내부 에너지가 없다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것이다. 지금은 (스스로 정화할 에너지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온라인 '괴담-소문의 흐름'에 대해 이같이 진단했다.
"괴담이나 소문은 '리듬'이 있는데,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가 나오면서 리듬이 끊어진 것이다. 이들은 무엇인가 더 말하고 싶은데 '영업'이 끝난 것이다. 조국 교수는 학교로 돌아갔고, 안철수 교수는 다시 조용해지니깐, 리듬이 끊어진 것이다. 이에 집단적으로 극단화된 소문을 내면서 '좋아라'하고, 가게 문 열고 영업시간을 늘이자고 하는 모습이다."
주경복 건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대중 속에서 개인들의 경우,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고 싶고, 자신의 발언이 파급력을 갖기를 원하는 심리가 있다"며 "그래서 이야기를 과장-왜곡하고, 여기에 여러 가지 다른 해석의 과정을 거치면서 루머가 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이어 "지금 SNS 등 새로운 매체들은 한번 메시지를 표출하면 막을 수 없이 확산된다"며 "정보가 표출되면, 대중의 심리는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복잡한 현안들을 접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루머로 인해)기피하거나 선호하는 효과가 설정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홍길동이 홍명보의 형이다'라는 루머가 나오면,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홍길동에 대한 인식이 재설정 된다는 것이다. 이는 또 다시 '홍길동과 홍명보는 홍준표의 아들이다'는 루머로 확대재생산 과정을 거칠 공산이 크다고 한다. '좀 더 강한 메시지'를 찾는 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는 인터넷 루머의 신뢰도와 관련, "SNS메시지의 신뢰도는 평균적으로 떨어진다"며 "한번 표출된 메시지는 회수 불가하기 때문에 이를 검증하는 절차도 없고, 전체적인 신뢰도가 떨어 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발언자가 누구냐에 따라 신뢰도는 또 달라진다"고 분석했다. 또 "사람들은 메시지가 진정한 정보를 알리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그냥 주목을 받기 위한 것인가를 알고 있다"고 했다.
이재진 한양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괴담은 사회적인 현상으로 상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측면들의 시각이 괴담으로 나오는 것"이라며 "미디어가 발전하면서 발생하는 명과 암이 있다면, 이는 암이라고 인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