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기 쓰듯이 쓴 글입니다. 존칭은 생략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대입시험에 잇따른 자살이 발생했다. 그들의 개인적 선택에 대해선 사정 모르는 타인으로서 아무 말도 덧붙이고싶지 않고, 죽음이 꼭 나쁜 건 아니라는 종교적 통찰을 어찌어찌 받아들인다 해도,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이 땅의 교육은 별로 건강하지 않다는 점이다.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사실이다. 모르긴해도 우리나라의 제도권교육이 실시된 이래로 교육이 바람직한 모습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을 것이다. 본고사, 학력고사, 내신, 수능, 수시모집, 후기모집, 기여입학제...... 제도는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학생들에게 공부는 항상 적이었고, 입시가 끝나면 꼭 몇몇은 죽었다.
어쩌다보니 근 10년, 교육개혁세력들로부터 흔히 벌레 취급을 받는 사교육에 발가락쯤 담그고 있는 셈이 되었다. ('몸담고'라고는 차마 말할 수 없다.) 나름대로는 학생 개개인과 인간적으로 친했다 생각하고, 그들의 행복을 멀리서나마 소망한다. 내가 알고 있던 학생들이 어디서든 울고있기보다는 웃고있길 바란다.
그러나 나는 학생이 행복한 교육제도를 만드는 데엔 관심이 없다. 물론, 불행한 교육제도를 공들여 연구하고 있는 건 아니다. 나는 다만, 제도가 무엇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점에 대해 회의적일 뿐이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은 99%, 사회에서 무용지물이라는 데에 적극 찬성하는 바이지만, (99%까지는 아니고 계산해보니 62.77%더라고 반박하고싶은 사람은 그래도 된다.) 사회와 교육제도는 거울을 사이에 둔 물체와 상처럼, 어쩔 수 없이 서로가 서로의 반영이 되는 관계이다. 사회가 지옥인 가운데 학교만 유독 낙원일 수는 없다. 줄세우기 교육만 받던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자 갑자기 의식이 성숙해져 다원성을 인정하고 실천하는 주체가 될 수는 없다.
우리 사회의 문화적 특징을 진단할 때 빠지지 않는 말이 '경쟁'과 '타인에 대한 의식'이고, 전체적인 사회가 이런 모습이라면 교육 또한 다른 모습일 수는 없다. 또, 다른 모습이어서도 안된다. 왜냐하면 교육은 구성원을 사회에 적응하도록 준비시키는 기관이지,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보호하는 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사회가 타락했으면, 교육도 같이 타락하는 편이 낫다. 지옥에는 악마가 어울린다. 천사를 보내서 지옥을 정화하겠다는 건 천사에 대한 과신, 혹은 폭력이다. 십대들이 기성세대에 반발을 갖게 되는 건 흔히, 왜 세상은 배운 것과 다른가, 어쩌면 어른들은 그렇게 위선적인가 하는 의문에서 시작된다.
현행제도 하에서 학생들이 행복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학생이 불행한 근본 원인은 '수능'이나 '내신'에 있는 게 아니라 '사회'에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제도는 지극히 표면적인 부분이다. 제도의 변화로 인성교육이 이루어지거나, 학생들의 행복지수가 높아지는 일은 결코 없다. 제도는 항상 비인간적이고, 수험생은 늘 억울하다.
교육의 당사자가 아닌 정책의 입안자들은 뭔가 일을 하는 척은 해야하니까 이리저리 교육에 개입을 한다. 그러한 집적거림의 결과가 이번 수능의 등급분포다. 외국어영역의 경우, 문제 자체의 난이도는 그저 보통이라고 볼 수 있지만 'EBS 70% 반영'이라는 정부의 발표에 따라 공교육과 사교육은 하나로 힘을 모아 EBS 변형문제 연습에 올인했고, 예상 1등급컷 98점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이 탄생했다. 2000년대 초반의 쉬운 수능에서도 이런 사례는 없었다. 작년같으면 97점을 받아서 맘편히 지원전략을 세우고 있을 학생이 올해는 혹시나 하는 변수에 기대를 걸고 발을 구르며 잠을 설쳐야 한다. 물론 당국의 예측처럼 사교육이 감소하지도 않았고, 점수를 비관하여 파멸하는 학생이 사라지지도 않았다.
다시 한 번, 우리는 제도에게 뭔가를 기대할 수 없다. 제도의 변화가 낳을 수 있는 건 혼란 및 불안, 그로 인한 사교육의 증가뿐이다. 만일 게임이 입시전형이 된다면, 게임 역시 저렴한 pc방 대신 비싼 학원에 가서 배우려 들 것이 뻔하다. 그리고 학생들은 여전히 불행할 것이다. 수술이 필요한 건 제도가 아니라, 사회전반에 깔려있는 가치관이다.
투신. 올해에 지금까지 언론에 보도된 게 셋이다. 우울한 사실이지만 이걸로 끝나진 않을 수 있음을 우리는 알고있다. 혹시 지금도 가채점결과 때문에 창밖을 내다보며 높이를 가늠하고, 아플까 망설이는 학생이 있다면, 그가 고심하는 대상의 크기 또한 헤아려보라고 말하고싶다. 나머지 인생이라는 전체, 그 생에서 길게는 평생, 그러나 짧게는 몇 년 정도 몸담고 살아갈 이곳, 대개는 당신이 선택하지 않았고, 그 룰에 따를 것인지 질문 받아본 적 조차 없이 그저 우연히 주어졌을 뿐인 이 사회가 일 년에 하루 쯤 주목하는 시험이다.
그리고 그 시험은 일단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