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30세 초반의 아이가 둘있는 가정주부예요. 제 오빠일로 자문을 얻고 싶어서 글을 올립니다. 저희 오빤 98년도에 결혼을 했는데요. 부인은 다름아닌 제 친구였어요, 친한친구는 아니구요 우연히 제 결혼식때 하객으로 왔다가 저의 오빠가 맘에 들었다구 합니다. 친구와 시누 올케사이가 되면 힘들어진다는 말이 정말 실감날정도로 참혹해 지더군요 옛날부터 자라오면서 오빠와 저는 의좋은 남매 였습니다. 트러블도 없었었고 유달리 친분도 좋았습니다. 오빠가 무척 자상한 성격의 소유자거든요 참고로 전97년에 먼저 결혼을 했습니다.
단란했던 저희 가족에겐 95년도에 아빠의 교통사고사망으로 큰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당시 저는 프리랜서로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던 터고, 오빤 호주로 유학도중에 아빠의 사고소식을 듣고 귀국을 한 터라 집안모두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에 적응하느라 가족 구성원들간의 끈끈한 유대가 절실했습니다.
막내 여동생도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제가 사귀는 사람-지금 남편은 어려운 상황에도 가족의 한사람처럼 저의 엄마와 오빠 동생을 살뜰히 챙겨주더군요! 그런데 오빠의 여자는 달랐습니다.
유달리 잉꼬부부라 소문이 났던 부부였기에 엄마의 상실감은 더욱 컷고, 엄마의 외로움은 무엇으로도 채울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도 헤어나오지 못하시고 계십니다.
오빠가 결혼할 당시 엄만 안방에도 들어가지 못하시고 지금까지 안방에 걸려있는 달력은 아빠가 사고날 당시 그 해의 그 달로 멈춰 있습니다만, 오빠에게 많이 의지하시며 오죽하면 신경안정제를 먹고오빠의 손을 잡고 자야 겨우 잠이 들 정도로 정신이 약해지셨을땐데, 다행히 제 결혼식을 치러주시고 제 남편을 맞고서 조금 나아지셨습니다. 그때부터 오빠의 연애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집에도 열흘이 넘게 들어오지 않고 오로지 집안일은 시집간 저와 제 남편이 거의 다 했을 정도예요! 그래서인지 엄마의 신뢰는 제오빠에게서 제 남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제 남편도 기꺼이 장모를 도와 드렸습니다.
오빠의 결혼이 닥치자- 당시 오빤 대학원에 재학중이었는데- 안사돈 될 분이 오빠를 학교에서 불러내서 시집보낼 자기 딸을 위해 비싼 옷을 사주기를 강요했습니다. 물론 경제적인 힘이 없던 오빠에게 카드를 만들게 해서 강제로 사게 했더군요!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장남이었던 오빠가 당연히 엄마를 모셨으면 하는 것도 우리바람이었는데 그 집에선 안방을 내놓으라며 생때를 부렸고, 급기야 못모시겠다고 하더군요! 오빠 앞으로된 아파트를 내놓으라고 하기도 하고, 정말 가관도 아니었습니다. 신혼여행도 호주로가야겠다고 머리를 싸고 누워서 오빠를 압박하기 시작하더군요 당시는 IMF라 어려운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전액을 남자측부담으로 다녀와야 겠다고 우기더군요 엄마는 너무 황당해서 모든 것을 우리남편과 저에게 의논을 했습니다. 저의 엄만 아빠가 안계서 우릴 없신 여겨 그런다고 한숨을 내쉬며 풀이 죽어 하셨고 오빤 그 집에서 하는 말을 그대로 옮기기만 하는 것 같았습니다.
자신이 뭐가 볼것이 있냐며, 보잘것 없는 자신의, 여자가 될 사람을 위해 그 정도는 해 줘야 되지 않겠냐며 시집을 간 저와 비교해서 다 해주고 싶어하더군요!
이런 사실을 전해 들은 집안어른들이 모두 반대를 하게 돼었고, 저와 제 남편도 물론 반대를 했습니다. 엄마도 너무 충격을 받은 터라 오빠의 의지를 꺾으려구 무척 애를 쓰시다가 1년간만 보류하자! 고까지 하셨어요. 여자집의 사돈 어른들을 모두 앉혀놓고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그 바깥사돈 어른이 무릎을 꿇고 엄마에게 간곡히 사죄를 하고나서 예정대로 결혼을 시키자고 하셨습니다. 참고로 전 몇년전부터 루프스 판정을 받고 어렵게 치료를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런중에 임신을 해서 모두 조마조마하게 경과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안그래도 상황을 힘들어하셨던 엄마는 모든일이 힘드셨을 겁니다.
-이편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