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에서 생긴 일
"정말 덥구만... 흐휴~"
형민이가 상규의 낡은 자가용을 타고 가다가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는
곁에 놓인 신문지롤 집어들어 얼굴에 부채질을 하며 중얼거렸다. 상규
는 운전을 하다 말고 형민이 쪽을 '힐끔' 바라보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모처럼 떠나는 여름 피서인데... 차가 말썽이라... 흠..."
"그러게... 정비 좀 잘하라고 했잖아? 이 찜통 더위에 에어컨이 안되면
어떻게 하냐? 하긴... 고물차를 탄 내가 바보지. 애당초 고속버스로 갔으
면... 기름 값이나 차비나 그게 그걸 텐데..."
형민이가 계속해서 궁시렁거리자 상규가 약간 짜증난 목소리로 대꾸했
다.
"거참.. 미안하다고 말하니까 더 하네? 아침까지만 해도 에어컨이 빵방하
게 들어왔단 말이야. 네가 차에 탄 이후로 에어컨이 안 돼는 거지. 그렇
게 생각하면 네탓이기도 하잖아? 네가 워낙~ 재수없는 놈이라..."
"지랄하네. 별... 말도 안돼는 핑계를... 알았다. 알았어. 그만하면 되잖
아?"
형민은 여전히 오른손을 재빠르게 움직이며 부채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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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바다다! 바다. 이게 얼마만에 보는 바다냐?"
서해안의 호젓한 해변가에 차를 멈춘 둘은, 넘실거리는 바다를 향해 뛰
어가며 소리쳤다. 바닷가에 다다르자 형민이 느닷없이 웃통을 벗어제끼고
무작정 물에 뛰어들려고 하자 상규가 말리며 얘기했다.
"임마, 원래 가려고 했던 곳은 여기가 아냐. 여기는 해수욕장도 아니고...
하도 덥길래 잠시 쉬러 들린 곳인데..."
웃통에 이어 바지까지 반쯤 내린 형민이가 상규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
다.
"바보... 바다만 있으면 되지. 이 더운날 굳이 해수욕장을 찾아 갈 필요가
뭐있냐? 그냥 여기서 수영이나 하다가 밤되면 적당한 곳에서 민박이나
하면 되지. 아직 휴가 기간도 5일이나 남았는데..."
"그래도... 여기는 모래사장도 없고... 자갈 뿐인데. 더구나... 아까 입구
에 보니까 '군사지역' 이라고 써있던데... 아마도 그래서 주위에 사람들이
없는 거 아냐?"
"됐어. 너나 하기 싫으면 관둬. 난 수영할 거야."
결국 팬티만 달랑 남은 형민이 상규의 손을 뿌리치고 보기에도 시원한
짙푸른 바다에 뛰어 들었다. 상규는 한동안 주위를 둘러보다가 마침내
포기를 하고 혼자서 신나게 수영을 하고 있는 형민을 물끄러미 바라 볼
뿐이었다.
"짜식, 생긴 것 처럼 성격까지 급해놔서... 30분 정도 저러면 또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할게 뻔하니... 그냥 기다리기나 하자."
상규가 돌투성이 해변에 쭈그리고 앉았다. 형민은 잠수를 했다가 떠올랐
다가 하며 계속 수영을 하고 있었다. 수평선 가까이에는 조그마한 돌섬들
이 몇개 있었고 해변 근처에도 제법 큰 바위와 자그마한 섬들이 줄지어
있었다. 형민은 그 사이를 수영을 해서 왔다갔다 했다.
한참을 처다보던 상규가 무료해진 듯 기지개를 피며 입이 찢어져라 하
품을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며 중얼거렸다.
"저놈... 지치지도 않나? 벌써 어두워 지는데... 어쨌거나 체력하나는
대단하... 어? 어? 쟤, 왜 저래?"
바다 속을 물개처럼 헤비집고 다니던 형민이가 갑자기 손을 하늘로 뻗
어 허우적거리는가 싶더니 공포에 가득찬 눈길로 상규쪽을 바라보며 무
언가 알아 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질러댔다. 그와 동시에 물속으로 가라앉
는가 싶더니 잠시후 파도만 넘실 거릴뿐 형민의 모습은 아무곳에도 보
이지를 않았다.
"이... 이런... 형민이 놈 쥐가 났나? 바다에 빠진 거 아냐?"
상규는 다급함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어쩔 줄을 몰라하다가 형민이가
빠진 곳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형민아! 김형민!!! 어떻게 된거야? 야, 이 새끼야!!!"
처절한 상규의 외침은 그저 공허하게 하늘로 울려퍼질 뿐이었다. 상규는
물속에 뛰어들까 생각을 하다가 저 넓은 바다에서, 수영도 잘 못하는 자
신이 형민을 구해낸다는 것이 다소 무리라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괜히 섣불리 들어갔다가... 나까지...'
어찌 보면 치사한 생각일 지는 몰라도 상규의 심정은 그랬다. 최소한 형
민이 빠진 곳까지 가기 위해서는 10분 넘게 수영을 해야하고... 또 막상
그곳까지 갔다하더라도 형민을 찾는다는 건...
얼마전 낚시터에서 사람이 빠졌던 일이 생각났다. 밤낚시를 하던 중이었
는데 옆에서 조용히 낚시질을 하던 어떤 사람 한명이 볼일을 보려는 듯
어둠속으로 사라지더니만 '첨벙'하는 소리와 함께 '살려달라'는, 소름끼치
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근처에서 낚시를 하던 사람들이 뛰어가 옆 저수지에서 허우적거리는 그
사람을 발견했고, 빠진 사람의 친구인 듯한 사람이 무작정 물속으로 뛰
어들었다. 그리고 10분 후... 그 둘은 더이상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나중에 구조반이 와서 3시간에 걸친 작업 끝에 꺼낸 둘의 시신은 수초로
마구 휘감겨 있었고 그 둘의 배는 개구리처럼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더욱이 먼저 빠진 사람은 나중에 뛰어 들어간 자신의 친구의 허리를 꽉
붙잡은 채 두 눈을 부릅뜨고 죽어 있었는데... 친구는 죽는 순간까지 자
신의 허리에 감긴 손을 뿌리치려 안간힘을 썼었는지 손톱들이 반넘어
뜯겨 나가 있었고 먼저 빠진 사람의 팔목과 손등은 가죽이 벗겨진 채
너덜거리고 있었다.
'그... 그렇다고... 친구가 빠져 죽는데... 이... 이러고만 있으면...
어... 어쩌지?'
이런 상황에서 생각외로 침착한 자신의 행동이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상규는 고개를 두어번 흔들고 멍하니 서 있기만 할 뿐이었다.
'그... 그래, 119...'
그제서야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생각났는지 여전히 눈은 형민이가 빠진
바다 쪽을 응시하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귀에 갖다 대었다.
그때 자신의 어깨 위에 척척하고도 싸늘한 느낌이 드는가 싶더니 누군
가가 어깨를 '툭, 툭' 치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뒤로 돌아 보는데...
"엇? 아~ 악!!!"
상규의 뒤에는 까만색 선글라스를 얼굴에 낀 어느 여자 한명이 너무나도
창백한 얼굴을 하고 '씨익' 웃고 있었다. 상규는 들고 있던 핸드폰을 떨
어 뜨리고는 뒤로 두어걸음 물러나며 물었다.
"노... 놀랬잖아요? 다... 당신은 누구예요?"
그 여자는 상규와 바다 쪽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 신, 친구가 물에 빠졌죠?"
"어떻게 그... 걸?"
"훗... 아까부터 저쪽에서 보고 있었죠. 당신... 보기와는 달리... 냉혹한
이네요? 친구가 물에 빠졌는데... 구할 생각은 안 하고..."
여자의 이죽거림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상규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그... 그건... 내가... 수영도 못하고... 또..."
여자는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고는 땅에 떨어진 핸드폰을 주워 주며 말
했다.
"어서 신고나 하세요. 시신이라도 건져야죠."
이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의 명령 아닌 명령에 상규는 떨리는 손으로
119에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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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민의 시신을 찾는 구조 작업은 밤이 늦도록 계속되었다. 근처에 위치
한 군부대에서도 지원을 나와 도와주었지만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 더욱
이 해가 진 후에는 날씨까지 거칠어져서 대부분의 구조반원들은 포기를
하기 시작했다. 다만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시작한 상규와 알 수 없는
여자만이 해변에 쪼그리고 앉아 몇 남지 않은 구조반원들의 작업을 지
켜 볼 뿐이었다.
"젠장... 내가 수영하지 말라고 했더니만..."
이윽고 상규가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옆에 앉은 여자는 여전히 쓴웃
음을 지으며 썬글라스를 낀 얼굴을 살짝 돌려 상규를 바라보았다.
"다, 팔자죠. 죽음은 한순간이니..."
"그런데... 그쪽은 무슨 일로 여기에 오신거죠? 그리고 아직도 여기에
계시는 이유를... 저는 잘 모르겠어요..."
여자는 발 밑에 놓인 자갈들을 손끝으로 '툭, 툭' 건들며 지나가는 말투
로 말했다.
"이 바닷가... 저한테는 사연이 깊은 곳이죠. 작년에... 제 애인도 바로
이 바닷가에서 익사를 했고요..."
"예? 아, 그... 그렇군요."
한동안 둘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다. 잠시후 구조반원들이 상규에게 다가
와 다음날 날이 밝으면 다시 구조작업을 재개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하면
서 아마도 시신은 조류에 멀리 떠내려 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절망적으
로 말했다.
상규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한숨만 쉬었고 그들은 장비를 챙기고 어둠속
으로 사라져 갔다. 바닷가의 밤바람이 점차 거세게 불어오기 시작했다.
여자는 동상처럼 바다를 바라 볼 뿐이었고, 상규의 한숨섞인 푸념이 입
속에서 흘러 나왔다.
"젠장... 형민이 놈... 정말 착했는데... 그 놈, 일가친척도 없는 불쌍한
놈이였다고요. 시신을 못 건진다해도 아무도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없을
만큼 외로운... 그런데... 하나있다는 친구인 저마저도... 형민이가 물에
빠져 죽어가는 것을 뻔히 쳐다보며... 내 목숨하나 건지겠다고 가만히
있었으니..."
"그렇군요. 죽는 다는 건... 훗... 제 애인도... 비슷했죠. 저 하나만
미친듯이 슬퍼했을 뿐..."
어느새 잔뜩 지푸렸던 하늘에서 한, 두방울씩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
다. 상규는 힐끔 하늘을 쳐다보다가 천천히 일어나며 말했다.
"휴~ 저는... 차 안에라도 들어가 밤을 새야겠네요. 그쪽은 어쩌실 거죠?
계속 여기에 계실 건가요? 아니면..."
여자는 고개를 흔들다가 입을 열었다.
"저는 여기서 그냥 있을래요. 사실 오늘이... 제 애인이 이 바다에 빠진
지 꼭 일년 째 되는 날이거든요?"
"그러시군요. 하지만... 비가 거세질 것 같은데... 괜찮으시다면 제 차에
서 비라도 피하시고..."
"괜찮아요. 오늘밤에 그를 만나야 하니까요."
"예? '그'라니요?"
"훗... 제 애인 말이예요."
갑자기 상규는 등골이 오싹해지며 온몸에 소름이 순식간에 쫘악 돋았다.
"무... 슨 말씀이세요? 애인은 작년에 여기서 익사를 하셨다고...
방금... 말... 하셨잖아요?"
"맞아요. 죽었죠. 그러니 오늘 밤에 만난다고 하는 거 아니예요?"
순간 상규는 이 여자의 정신 상태가 의심스러워졌다.
'제길... 미친 여자구나. 어쩐지... 좀 이상하더라니...'
상규는 여자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뒷걸음질을 치며 애기했다.
"그럼... 그러세요. 애... 애인과... 아름다운 밤을 보내시기를..."
상규의 말에 그 여자는 환한 웃음으로 답하며 여전히 바다쪽을 쳐다보
았다. 뒷걸음질 치던 상규는 여자와의 간격이 조금 벌어지자 근처에 주
차해 놓은 자신의 차를 향해 황급히 달려가 운전석에 앉고는 차문을 잠
그며 중얼거렸다.
"젠장... 오늘, 왜 이런 일들만 생기지? 형민이는 물에 빠져 죽고...
아무도 없는 해변에는 미친 년이 홀로 앉아 죽은 자기 애인을 기다린다고
하지를 않나... 휴~ 어쩌지? 그렇다고 시신도 못 찾았는데... 다른 곳으
로 간다는 건... 죽은 형민에게 미안한 일이고..."
더운 날씨와 긴장으로 얼굴에 흐르는 땀을 손으로 훔쳐내며 상규가 중얼
거렸다. 차 앞창문으로 보이는 그 여자는 여전히 웅크리고 앉아 바닷가
를 응시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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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픗 잠이 들었는지 철썩이는 파도 소리에 상규가 눈을 떴다. 주위는 여
전히 칠흑같은 어둠뿐이었고 하늘에서는 거세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상
규는 머리가 아픈 듯 몇번 흔들더니 자세를 고치고 좌석에 바로 앉아
무심코 바닷가를 쳐다보았다.
"엇? 저게 뭐야? 저... 여자... 뭐하는 거야?"
해변에 앉아 있던 그 여자가 비를 흠뻑 맞은 채 천천히 바다를 향해 걸
어 들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상규는 너무 놀라 차문을 벌컥 열고 뛰듯이
내려 그 여자를 향해 소리쳤다.
"이봐요! 정신 차려요. 지금 뭐하는 짓이예요?"
그 여자는 상규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해서 바다를 향해 걸어 들어가는 것이었다. 상규는 다급히 그 여자쪽으
로 뛰기 시작했다.
"정신차려요! 죽을려고 환장했어요?"
상규가 바닷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 여자 몸의 대부분이 바다물 속
으로 잠겨가고 있었다. 상규가 몇발자국 내디뎌 발목에 올 정도 깊이의
바다물로 들어갔을 때는 검푸른 파도만이 넘실 거릴 뿐 아무것도 보이
지를 않았다.
"젠장... 어떻게 된거야? 어쩌지? 어쩌냔 말이야?"
문득 발아래를 보니 철썩이는 파도를 타고 방금 자살한 그 여자의 까만
색 썬글라스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천천히 허리를 숙여 썬글라스를
집은 상규는 손을 파르르 떨다가 마침내 핸드폰을 꺼내서 형민의 시신을
찾던 구조반에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
"여... 여보세요? 아, 예... 어제 저녁에 바다에 빠져 죽은 김형민이라는
사람의 친구인 최상규인데요... 예... 아시죠? 그런데 지금 또 한명이 그
근처 바다에 빠졌어요. 그... 그러니.. 어서..."
[예? 또요? 이번에는 누군데요? 언제 빠졌어요?]
"아까... 제 옆에 있던 여자 아시죠? 그 여자가 조금전 바다로 미친 듯이
걸어 들어 가더니만..."
[무슨... 여자요? 해변에 계실 때 말씀하시는 거예요? 아까는... 혼자 계
셨잖아요?]
"예? 아니 무슨 말씀이세요? 그때 철수를 하시면서 제게 말을 하실 때
까지도 제 옆에 앉아 있었는데... 그 여자 기억 안 나세요?"
[아뇨... 저는 상규씨 밖에 못봤는데요? 아무튼 지금 그쪽으로 출동할테
니 잠시만 기다리세요.]
상규는 핸드폰을 끊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 여자를 보지 못했다니... 아니... 그러면 여지껏 내가 봤던 그 여자는
도대체 뭐란 말이야?'
무심코 자신의 손에 들린 썬글라스가 눈에 띄었다. 상규는 그 썬글라스
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빗물이 흘러 번들거리는 그 썬글라스는 뭔가 묘
한 구석이 있었다. 약간의 야릇한 감정이 느껴져 무심코 써보았는데....
"엇? 아~~ 악..."
방금 그 여자가 걸어 들어가다 사라져 버린 바다 한가운데 그 여자의
머리가 둥둥 떠다니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옆에는 푸른색 군복
을 입은 군인 한명이 목만 물 밖으로 내밀고 서서는 자신을 매섭게 바
라보고 있었다.
여자의 얼굴은 몹시 기쁜 듯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군인은 멀뚱한 표정
에 슬픔이 가득찬 얼굴로 철썩이는 파도에 이리저리 떠밀리고 있었다.
여자는 군인의 머리에 올라갔다가 내려왔다가 하며 재주를 넘고 있었는
데 이상하게도 전혀 물에 젖지 않는 괴상한 모습이었다.
'호.. 혹시... 귀... 귀신???'
너무 놀라 뒤로 돌아서는데 발 밑에 뭔가가 있는 것 같았다. 천천히 아
래를 내려다 보니...
"앗! 세... 세상에..."
상규의 발밑에는 저녁 나절에 물에 빠져 죽은 형민의 시신이 팬티만 입
은 채 엎어져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그의 등은 날카로운 손톱에 긁힌 듯
다섯줄의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있었고 두 손은 상규의 발목을 잡은 채
밀려오는 파도에 이리, 저리 흔들거리고 있었다.
바다 속에 두둥실 떠다니던 여자는 군인의 퉁퉁 불은 얼굴을 한참동안
애무하더니 상규쪽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러자 엎어져 있던 형
민의 고개가 갑자기 들리더니 작은 물고기들이 잔뜩 뜯어 먹은 검붉은
입술이 우물, 주물거리며 쉰 목소리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나... 쁜... 놈... 저 여자가... 바다 속에서 내 발목을 붙잡고 놓지
않아... 물에 빠져 죽어가는 나를... 너는 그저 보기만 했지? 커헉...
너도... 나와 함께... 저 여자에게로 가야해... 바다 속이 얼마나...
춥고 캄캄한지... 너도... 느껴봐... 너도... 느껴보란... 말이야..."
"아... 안돼... 아~ 악!!"
형민의 두손은 바다 물속으로 상규의 발목을 잡아 끌고 있었고 물위의
여자는 신이 난듯 낄낄거리며,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지르는 상규를 그윽한
눈길로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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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두명의 군인이 해변을 걸어가다가 파도에 밀려온 듯한 까만색
썬글라스를 발견했다. 그 중 한명이 그 썬글라스를 주우며 다른 군인에게
말했다.
"이거... 작년에 이 바닷가에서 빠져 죽은 우리 중대장님 것과 똑같이 생
겼네?"
"작년에.. 죽다니요?"
"아, 너는 잘 모르겠구나. 이곳에 배치되기 전의 일이니... 작년 이맘때쯤
에 우리 중대 이대위라는 분이 저기 보이는 바위 근처에서 실족해 바다에
빠져 죽었어. 훗~ 어떤 사람들은 물귀신이 잡아갔다고도 하는데..."
"물... 귀신이라니요?"
"응... 예전에 이 마을에 살던 박수무당의 딸이 한명 있었는데...
이대위님을 짝사랑했었어. 매일 같이 부대 앞에 와서 미친 듯이 애걸을
하곤 했지. 자기와 결혼해 달라고... 이대위님은 애인이 있던 터라 당연
하게도 거절을 했고... 그 여자는 실망한 나머지 저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
을 했거든? 약간 맛이 간 여자 같긴 했는데...
아무튼 나중에 시신을 찾고 보니 평소 이대위님이 자주 끼고 다니시던
이것과 똑같은 모양의 썬글라스를 손에 '꽉'쥐고 있더라는 거야. 언제
훔쳤는지 모르지만... 그 여자... 자살하면서 오죽 이대위를 원망했겠어?
그런데 며칠 후 밤에 -그날밤 보초를 섰던 최이병한테 들은 얘기인데...-
이대위님이 그 여자가 죽을 때 쥐고 있던 자신의 썬글라스를 어디서 다
시 구했는지... 코에 걸치고는 바닷가 쪽으로 걸어갔다는 거야. 마치 넋
이 나간 사람처럼 무표정한 모습으로 말이지.
그리고 다음날, 이 해변에서 파도에 떠밀려 온 이대위님의 시신이 발견
됐지. 이상한 건... 등에 누군가가 할퀸듯한 시뻘건 손톱 자국이 선명하
게 있었는데... 살점이 뚝뚝 뜯겨 나가 있었고... 발목은 누군가가 세게
쥐었는지 피멍이 들어 있더라는 거야.
얘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여자가 물귀신이 되서 이대위님을 잡아
갔다고 했지. 그 뒤로도 종종 남자들이 이 근처 바다에 빠져 죽었는데...
그때마다 사람들은 그 여자가 남자에 원한이 맺혀서 이 해변을 떠돌며
그런 짓을 한거라고들 말을 하지. 그래서 우리 부대 사람들은 여기서
수영을 안하잖아?"
"흠... 그렇군요. 그런데... 참 이상하네요. 오늘 낮에 이 근처 바닷가에
서 발견된 두구의 익사한 남자들 시신도, 등에 손톱 자국이 있었다는데...
더구나 발목에도 피멍이 들어 있었고..."
"그래? 어제도 빠져 죽었데? 정말 희한한 일이야. 하필이면 같은 곳에
서... 그것도 남자들만 빠져 죽다니... 훗... 정말 그 여자 귀신이 있기는
한 건가? 그나저나... 이 썬글라스... 한번 껴보기나 할까? 음... 어때...
폼나지? 어? 그... 그런데... 네 뒤에 있는 여자는 누구니? 어? 저.. 바다
물 속에 서있는 군인... 은... 엇... 아악~~"
어느 묘지기와 여대생
윤미라는 여대생이 비에 홀딱 젖은 채 숨을 헐떡이며 내 작은 판자집으
로 뛰어 들어 온 것은 정확히 새벽 3시였다. 그녀는 커다란 눈망울을 지
닌 곱상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처음 내 집에 뛰어 들자마자 한 말은
'살려달라'란 울부짖음이었다.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거예요? 말 좀 해봐요."
집에 들어오자마자 불안한 눈길로 이리저리 살펴보던 그녀가 결국 울음
을 터뜨리며 중얼거리기 시작한 것도 내 집에 들어온 지 30분이나 지나
서였다.
"사... 살려주세요. 너무 두려워요. 제발..."
"글쎄 뭘 알아야 살려주고 말고 하죠... 왜, 이 밤중에 사람들이 꺼려하
는 공동묘지를 돌아 다니며 살려 달라고 하는 지... 참나..."
내 비아냥에 약간은 정신을 차린 듯 그녀가 내게 물었다.
"아저씨는... 뭐... 하시는 분이세요?"
"이 아가씨... 웃기네? 그건 내가 물어 볼 말인데... 훗... 공동묘지에
집이 있으면 뭐하는 사람이겠어요? 난 이곳 묘지 관리인... 간단히
묘지기죠."
내말에 다소 안심이 됐는지 그녀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더듬거리는 목
소리로 말했다.
"저... 아래에서... 이상한 걸 봤어요. 너무 끔찍한...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여기로 뛰어 들어 온 거고요..."
"이상한 거라니요? 그리고... 왜 아가씨 혼자서... 이런 곳에.."
그녀는 비에 젖어서인지 두려움에서인지 한없이 갸날픈 몸을 마구 떨어
댔다. 처음에는 그저 이 아랫마을 엠티 촌에 놀러왔다가 비가 오니까 들
어온 줄로만 알았는데 몹시 겁에 질린 그녀를 보니 다소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 방문과 창문을 꼭 잠그고 조용한 목소
리로 다시 물었다.
"진정하고... 얘기 해봐요. 이제 여기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으니...
도대체 뭘 봤다는 거예요?"
한참을 달래고 얼르자 그제서야 진정을 한 듯 처음보다는 많이 침착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 그럼... 제가 왜 이러는지 말씀드릴께요. 사실 저는 이 아래
마을 엠티촌에 피서 온 한국대학 무용학과 3학년의 이윤미라고 하는
데요..."
"그래서요?"
"저와 혜경이, 연경이 이렇게 동아리 친구들 셋이 여름도 됐고 해서 2박
3일 일정으로 피서를 떠났죠. 우리 계획은 아무 시외버스나 타고 가다가
적당한 곳에 내려 실컷 놀고 갈 생각이었거든요? 그런데 한참동안 시골길
을 달리다 보니 이 마을이 눈에 띄더라고요.
이 마을은 전문적으로 엠티 온 학생들을 받는 그런 곳이 아니라 조용한
것 같기도 했고... 또 산이며 강이 참 예뻐 보였거든요? 그런데... 막상
민박집에 짐을 풀고 오후가 되자 느닷없이 폭우가 쏟아지는 거였어요.
저희가 들은 민박집은 애당초 사람들도 별로 없던 터였고... 비까지 내리
니 더 이상 손님들은 들지 않았고... 결국 저희팀과 바로 건너편 남학생
둘이 들은 팀 ... 이렇게만 묵게 되었죠. 사실... 이런 곳에 놀러 오면...
그런 생각이 들잖아요? 왠지 모를 호기심에 이성간의 만남... 같은...
아무튼 비는 갈수록 거세지고 아무 곳도 갈 수 없게 된 우리들은 밤이
되자 자연스럽게 그들과 어울려 놀게 됐죠. 그 남학생들은 저희들이 마
음에 들었는지 연신 싱글거리며 한껏 친절한 태도로 우리를 대해 주었
고요. 저희들도 시간이 갈수록 그들이 마음에 들어 즐거운 시간이 계속
됐죠.
그런데... 혜경이가 느닷없이 제안을 하나 하는 거였어요. 이왕 놀려면
파트너를 정해 놀자고요. 하지만 우리는 셋이었고 그들은 둘이었으니 여
자 한명이 남는 셈이었죠. 그러자 남학생 중 상규라는 남자가 좋은 의견
이 있다면서 말을 했는데...
오싹한 체험도 하고 파트너도 정하자며 방법을 내 놓았는데... 우리들이
각자의 소지품을 이 공동묘지 아무 무덤이나 위에 올려 놓고 가면 자신들
이 그것들 중 하나씩 집어 올테니... 남은 소지품의 주인공은 파트너가
없는 걸로 하자는... 다소 황당한 얘기였죠.
저는 원래 겁이 많은 터라 당연히 반대를 했는데 혜경이와 연경이는 무
릎까지 치며 재미있겠다고 당장 하자는 거였어요. 저는 비도 많이 오고
또 위험하니까... 라고 변명을 하면서 계속 반대를 했는데...
결국 남자들의 비아냥과 친구들의 놀림에 같이 묘지로 향하게 됐죠.
원래... 공동 묘지라는게 낮에와도 을씨년스러운 게 사실이잖아요? 그런
데... 오늘같이 비가 내리는... 밤에는 더욱...
저는 오솔길을 걸어 올라가며 계속 뒤를 돌아 봤어요. 자꾸 누가 따라오
는 느낌이 들어 온 몸에 소름이 돋더라고요. 하지만 혜경이하고 연경이
는 우산 하나를 같이 쓰고 희미한 후레시 불빛에 의지해 걸으면서도 뭐
가 그리 좋은 지 '깔깔' 댔고...
아무래도 저는 다리가 후들거려 더이상 못 올라 가겠더라구요. 풀숲에서
'파드득' 거리는 벌레들의 몸짓도 무서웠고 간간히 들리는 산짐승의 울음
소리도... 모든게 두렵기만 했죠.
하지만 아무리 무섭다 하더라도 그냥 혼자 민박집으로 돌아가자니...
남학생들의 놀림감이 될 것 같아... 저는 혜경이에게 제 소지품을 대신
가져다 놓아 달라고 부탁을 했죠. 저는 마을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 돌아갈 때 같이 가자고 부탁하면서...
친구들은 나를 어린애 취급하며 놀려댔지만 전 도저히 묘지까지 갈 엄
두가 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친구들을 바라보다
가 정신없이 뛰어 가로등만이 희미하게 밝히고 있는 마을 입구에 와서
쪼그리고 앉아 그녀들이 어서 돌아 오기를 기다렸죠.
그러나... 1시간이 지나도록 친구들은 올 생각을 하지 않는 거였어요. 저
는 혹시... 하는 생각에 너무 무섭고 두려워... 남자들이 놀리든 뭐든 무
작정 민박집으로 뛰어갔죠. 그런데... 막상 민박집에 들어서 보니..
한시간 전까지만해도 우리와 떠들고 놀던 그 남자들이 아무데도 없는
거였어요. 너무 소름끼치더라고요. 친구들은 어떻게 된 거며 또 남학생
들은... 어디로 간건지...
저는 정신없이 다른 사람들을 찾아 헤맸죠. 민박집 주인도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를 않았고 또... 몇 안되는 마을의 집들도 쥐죽은 듯 조용해서...
마음을 굳게 다져 먹고 친구들이 올라간 오솔길로 발걸음을 옮겼어요.
조금 전에 같이 따라가지 못한 걸 못내 아쉬워 하며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며 천천히 올라갔죠. 그런데... 한참을 올라가도 떨어지는 빗소리와
군데군데 뭉툭하게 솟아잇는 무덤들만 보일 뿐 친구들의 흔적은 아무곳
에도 없는 거였어요.
그때였어요...
새로 만든 무덤인 듯한 벌거숭이 흙무덤 뒤에서 귀에 낯익은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바로... 민박집에 있어야 할... 저희와 함께
놀던... 그들의 목소리였죠. 갑자기 이상한 예감이 들었어요. 저들이
왜 저기에 있는 것인지..
저는 흙무덤 곁에 있는 나무 뒤에 숨어서 그들의 대화를 들었어요. 간혹
들리는 그들의 소리는... '혜경이가 더 괜찮지?' '아냐... 혜경이는 좀
말라서... 난 연경이가 더 나... 흠... 마저 먹고 갈까?' '너무 비리지
않니? 비가와서 구워 먹을 수도 없고...' '그런데 생각보다는 양이 너무
많다. 남은 건 어쩌지? 누가 보기라도 하면...' '먹는데 까지 먹고...
어차피 무덤들이니 나머지는 묻고 가지 뭐...'
그 소리를 듣자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저들이... 설마... 제 친구들
을... 그런데 잠시후 '스윽, 스윽' 하고 칼질을 하는 소리가 은은히 들
리더니... '오도독, 오도독' 뼈를 씹는 소리까지 들리는 거였어요. 저는
너무 놀라 쓰러질 뻔했죠. 저들이... 일부러 혜경이와 연경이를... 산에
보내 놓고... 식인종같은 것들... 아... 불쌍한... 내 친구들..."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혹시 머리가 이상한 여자가 아닌가 의심을 했
다. 하지만 그녀의 물기어린 두눈은 너무나도 진지했고 행동도 공포에
질린 것뿐 극히 정상이었다. 그녀의 얘기는 계속됐다.
"저... 저는 한동안 웅크리고 그들이 어서 빨리 가버리기를 바랬죠. 그러
나 그들은 무덤에서 떠날 생각을... 안하는 거였어요. 할 수 없이... 큰
마음먹고 조심스럽게... 그 자리를 피해 숲속으로 무작정 뛰기 시작했죠.
정신없이... 뛰다보니 희미한 불빛이 보였고..."
"그곳이 여기였군. 흠..."
그녀는 미심쩍어하는 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답답하다는 듯 다그
쳐 물었다.
"제... 얘기를 믿지 않는 거죠? 저는 사실을 말한 거라구요. 같이 가보시
면 알잖아요?"
"휴~ 사실... 아가씨 얘기를 누가 믿겠어요? 처음 만난 남자들이 여학생
들을 죽여 무덤에서 씹어 먹고 있었다니... 훗, 더구나 아무 이유도 없
이..."
내 비아냥 섞인 목소리에 그녀는 고개를 떨구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
났다.
"어디.. 가실려구요? 이 밤중에..."
"가야죠. 친구들이 불쌍해서라도... 어서 산을 내려가 경찰에 신고를 하고
확인을 해야죠. 아까는 너무 경황이 없어 무작정 여기로 뛰어 들었지만...
가야죠... 정신을 좀 차렸으니..."
그녀의 힘없는 뒷모습에 왠지 불쌍한 감정이 들었다. 그녀가 사실을 잘
못 알고 있든 또 정신이 혼란스러워 저러는 것이든 일단 그녀가 말한
그 장소에 함께가서 확인을 해 주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말없이 일어나는 그녀를 따라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고 함께 집을
나섰다.
"도대체 어디라는 거예요?'
"분명히... 이 근처인데..."
비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었고 간혹 번개까지 쳤다. 새벽의 산 공기가 내
몸에 휘감겨왔다. 여전히 그녀는 무덤사이를 뒤집고 다니고 있었고 나는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아까 윤미씨가 흙무덤이라고 했는데... 제가 알기에는 근래에 새로 묻은
무덤은 저 위쪽 애기 무덤과 저 아래쪽 할아버지 무덤 뿐인데..."
"아, 그래요?"
윤미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나보고 우선 가까운 애기 무덤 쪽으로
안내하기를 원했다. 나는 흙탕물로 뒤섞여 있는 산길을 윤미를 부축하
며 간신히 올라 애기 무덤 가까이 다가갔다. 컴컴하고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리는 빗물이 시야를 가렸지만 언뜻 보기에도 누군가가 다녀간
흔적이 있었고 더구나 새로 묻은 애기 무덤 한쪽이 허물어져 있었다.
"마... 맞아요. 바로 여기였어요..."
"이.. 이런... 이거... 누가 이랬지?"
나는 윤미의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한번 보고는 무덤 가까이 다가가 손으
로 만져 보았다. 분명히 누군가가 새로 흙을 덮은 것이었다.
"서... 설마..."
갑자기 아까 윤미가 하던 '다 못먹으면 묻고 가지...'란 얘기가 문득 머리
에 떠오르며 나 자신도 모르게 소름이 '확' 돋았다.
"아... 아저씨... 죄송하지만 무덤 좀 파보세요... 호... 혹시... 제
친구들이..."
나는 그녀의 말이 아니었더라도 그럴 작정이었다. 만일 여지껏 얘기한
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주위에 있는 제법 굵직한 나무 가지를 주워 새로 덮은 듯한 곳을
파기 시작했다. 물에 젖어 그런지 조금 '툭, 툭' 치자 쉽게 허물어져
나갔고, 제법 큰 구덩이가 나왔는데...
"엇? 아악~~~"
나는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아까 윤미가 얘기한 대로 그곳에
는 얼굴 부위가 예리한 칼로 베어져 나간 긴 머리의 여자 시신 두구의
머리통이 서로 마주 본 채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그리고 죽은 지 얼마 안 돼는 듯 아직도 코와 입에서 피거품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아무리 20년이 넘게 무덤을 지키는 일을 해왔지만...
직접 이렇게 끔찍한 시신을 보니 비명조차 나오지를 않았다.
"세... 상에... 이런...일이..."
문득 뒤를 돌아보니 새하얗게 질린 윤미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 처참
한 두구의 시신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일단은 꺼내야 할 것 같은 생각
에 그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때 갑자기 땅이 '푹'하고 꺼지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여자 시체가 있
는 구덩이 속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비는 여전히 세차게 내리고 있었고
나는 결국 죽어 있는 여자 시신들 속에 나뒹글었다.
"윽... 아악~~"
위에서 내려다 볼 때보다 얼굴을 맞대고 보니 그 여자들의 몰골이 더욱
처참했다. 손에 짚히는 것은 질펀한 핏물이었고 그녀들의 얼굴은 벌건
진흙에 둘러싸여 있었다. 나는 황급히 구덩이 위를 기어 올라가려고 안
간힘을 썼는데...
처음부터 쭉 지켜만 보고 있던 윤미의 뒤로 커다란 삽과 곡갱이를 든
남자 두명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다급히 소리쳤다.
"윤미씨! 피해요! 뒤.. 뒤에..."
윤미가 뒤로 '휙' 도는 순간 내 머리에는 '나와 윤미 모두 여기서 꼼짝없
이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처음부터 윤미의 말을 듣고 조심했더
라면... 나는 그 남자 중 한명이 삽을 높게 드는 순간 눈을 질끈 감고 말
았다. 연이어 내 머리 위에 둔중한 물체의 짜릿한 느낌이 들며 척척한
핏물이 머리 위에서부터 내 볼을 타고 '주르르' 흘러 내렸다.
'맞았구나...'
단지 그 단어 하나만 머리에 떠오르며 내 몸은 나의 의지와는 달리 땅
바닥에 고꾸라졌다. 두 눈을 여전히 감은 채였지만 '물컹'하는 느낌과
'확' 풍겨오는 피비린내에 아까 끔찍하게 죽어있는 두 여자의 시신 위라
는 것을 알았다.
더불어 가련해만 보이던 윤미라는 아가씨도 잠시후 나와 같은 운명이
될 거라는 생각에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는데 그들이 내 몸위로 흙더미
를 퍼붓는 것 같았다. 끝이라는 두려움에 온 몸에 힘이 빠져 여자들의
시신과 흙더미를 허우적거리기만 하는데...
그때 충격으로 아련해 지는 내 귓전을 때리는 소리는...
"오빠들... 지금 오면 어떻게 해요? 이 사람 도망갈까봐 얼마나 조마조마
했는데..."
"하. 하. 하. 미안해. 저 자식... 확실히 자기가 무덤을 판거지?"
"그럼요. 내가 얼마나 애써서 연극을 했는데요? 저 사람이 자기 스스로
무덤을 파게 하려고..."
"다행이군. 자, 이제 흙만 마저 덮어 저 묘지기를 생매장하면 일단은 끝
나는 셈이야."
"그런데... 정말로 그 무당 말이 들어 맞을까요? 사실 저는 그분의 교리
를 믿은지 얼마 안돼서..."
"당연히 들어 맞고 말고... 그분... 얼마나 영험한 무당인데? 그분 말씀
이... 일주일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무덤 자리가 원래는 명당이라잖아?
그런데... 이곳에 누가 애기 무덤을 써서 혈이 막혔다고... 그걸 푸는 방
법은... 이 애기 무덤 옆에다가 이곳에서 오랫동안 묘지기를 한 저 남자
를 자기 스스로 판 구덩이에 처녀 두명과 함께 생매장하면 그 혈이 풀려서
할아버지 무덤은 더욱 명당 자리가 된다잖니?"
"아, 참, 한가지... 더 있잖아요? 처녀들의 얼굴살을 우리 자손들이 먹어
야 한다는..."
"알아. 그래서 아까 조금씩 잘라놨어. 자 이제 씹어보자고... 이미 사람까
지 셋이나 죽였는데... 까짓거... 훗, 그리고 우리가 영생을 하고 자손만대
가 번창한다는데... 이깟 인육 쯤이야 못 먹겠어? 하. 하.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