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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전쟁의 대지존 광개토호태왕』5.혈구도해전 ⑹

개마기사단 |2011.12.08 18:47
조회 36 |추천 0

 

그렇다면 진사왕(辰斯王)이 몽매에도 애타게 기다리던 당성(當城)의 수군주(水軍主) 목힐강부(木詰綱扶)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해상대국 백제의 수군이 본격적으로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은 근초고왕(近肖古王) 재위기에 무역항인 당성에 수군기지가 건설되고 체계적인 군사조직이 도입된 이후였다. 당성에는 백제 수군의 절반에 해당되는 3만의 병력이 항시 주둔하였는데, 백제의 해상무역을 위협하는 세력이 등장할 때마다 출동하여 이를 분쇄했다. 오랜 세월 당성의 수군은 백제 해상군사력의 주력으로서 수많은 해전에서 승리했고 마침내 동북아시아 최강으로 군림했다.

 

그처럼 막강한 당성의 백제 수군을 이끌고 있는 인물이 바로 목힐강부였다. 그는 근구수왕(近仇首王) 재위기부터 당성의 수군을 지휘하며 백제를 위해 많은 군공(軍功)을 세운 영웅이었고, 침류왕(枕流王)의 충실한 심복이자 막역한 벗이기도 했다.

 

목힐강부는 침류왕의 아들인 부여아방(扶餘阿芳)으로부터 왕위계승권을 박탈하여 어라하(於羅瑕)가 된 진사왕을 증오했지만 당장은 손쓸 방법이 없었다. 진사왕 역시 목힐강부가 껄끄럽기는 했으나 수군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그를 몰아낼 수는 없었다.

 

목힐강부는 당성의 수군을 훈련시키면서 태자인 부여아방이 청년으로 성장할 때만 기다렸다. 그러면 수군을 이끌고 도성으로 나아가 진사왕을 몰아내고 부여아방을 보위에 올릴 생각이었다.

 

이런 생각을 품고 있는 가운데 고구려군의 침공 소식이 들려오자 목힐강부는 고민에 빠졌다. 나라를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혈구도로 달려가 고구려군을 격파해야겠지만, 그렇게 해서 고구려군을 무찌르고 나면 진사왕의 기반이 더욱 공고해질 것은 뻔한 이치였다.

 

그러면 부여아방은 앞으로도 불우한 신세로 지내야 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목힐강부는 일단 출진을 미루고 전황을 살피며 앞으로의 계획을 궁리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불에 심하게 그을린 배 한척이 당성으로 입항했다. 배는 백제 수군의 함선이 틀림없었지만 거의 폐선이나 마찬가지였다.

 

보고를 받고 달려간 목힐강부 앞에 쓰러지듯 엎드리며 울음을 터뜨린 사람은 그의 사위인 귀실수곤(鬼實秀困)이었다. 석모도에서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고구려 수군의 화공에 말려들어 대패한 귀실수곤은 바다에 뛰어든 덕분에 간신히 목숨은 건져서 이곳 당성까지 도망쳐 올 수 있었다.

 

“소장의 자만심 때문에 달을참의 수군이 전멸하다시피 했습니다. 죽여주십시오.”

 

목힐강부는 기가 막혔다. 자신의 사위라서가 아니라 통솔력이 뛰어난 양장(良將)이라고 생각했기에 달을참을 맡겼던 것인데 기대를 저버리고 무참한 모습으로 눈앞에 엎드려 있었다.

 

“가만히 달을참을 지키고 있으라고 일렀거늘 어찌 경거망동(輕擧妄動)을 했느냐?”

 

“아군이 공격을 받는데 어떻게 보고만 있습니까? 소장은 도저히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참혹한 패배를 당하고도 의연한 기상을 잃지 않은 사위를 보며 목힐강부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목힐강부가 아무리 진사왕을 미워한다고 해도 수많은 백성들이 적군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수수방관한 것은 변명할 여지가 없는 잘못이었다.

 

목힐강부는 군법에 따라 패장의 목을 베어야했지만 귀실수곤의 패배가 자신의 허물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차마 벌할 수 없었다. 나중에 죄를 묻기로 하고 귀실수곤에게 물러가 근신하라 했다.

 

목힐강부는 성벽 위에 올라 저녁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 소리가 마치 군사들의 비명소리처럼 들렸고 노을에 젖어드는 붉은 물결은 백성들이 흘린 피처럼 보였다. 목힐강부는 백제를 이 지경까지 몰고간 자신의 편협함을 자책했다.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아 백제가 궁지에 몰려서야 목힐강부는 군사를 움직일 마음을 먹었다. 진사왕의 힘이 약화되는 것은 부여아방을 위해서는 좋은 일이나 자칫하면 나라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었다.

 

결심을 굳힌 목힐강부는 함선 2백척을 거느리고 당성을 떠나 혈구도를 향해 북상했다.

 

한편 아단성을 떠난 진무는 수이홀에 정박해 있던 광개토호태왕의 함선에 이르렀다. 태왕의 함선은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이에 3백의 병력쯤은 족히 수용할 만한 규모로서, 웅장하고 화려한 성곽을 연상시켰다. 배 위에 올라 임금이 있는 3층의 선실로 가는 길에는 수많은 호위병이 엄중히 경계를 펼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천병(天兵)과 같은 위엄을 갖추고 있었다. 진무는 이를 보고 새삼스럽게 고구려의 힘을 실감하였다.

 

선실에 들어서자 좌우에 철갑을 차려입은 범같은 장수들이 도열해 있었고, 그 가운데 얼굴에서 빛이 나는 태왕이 앉아 있었다.

 

고구려의 젊은 군주는 친절하게 백제의 장수를 맞이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소.”

 

“태왕께서 이처럼 마음을 써주시는데 고생이랄 게 무엇이 있겠사옵니까?”

 

진무는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중요한 협상에서 미리부터 기선을 제압당하면 안 될 일이었다.

 

“백제왕께서 조파의에서 우리 군대와 싸울 때 부상을 입으셨다고 들었소. 지금 건강은 괜찮으시오?”

 

광개토호태왕은 겉으로는 진사왕의 안위를 걱정하는 듯이 질문했지만 백제군의 치명적인 패배를 들추어냄으로써 진무를 주눅들게 하겠다는 의도도 다분히 깔려 있는 말이었다. 진무는 애써 분노를 누그러뜨리며 침착하게 답변했다.

 

“다행히 심각한 상처를 입지는 않으셨습니다. 어라하께서 소신을 보내신 이유는 고구려 측의 제안에 답변을 드리기 위해서이옵니다.”

 

“백제왕은 우리의 제안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어라하께서는 고구려의 제안을 관대한 배려로 생각하시옵니다. 이번 협정을 계기로 양국이 예전의 원한을 털어버리고 우의를 회복하기 바라고 계시옵니다. 만약 고구려가 먼저 군사를 물리면 관미성을 비롯한 주변의 영토를 넘겨주실 의향이 있다고 말씀하셨사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구려. 지나간 일은 모두 잊어버립시다. 원래 고구려와 백제는 피를 나눈 형제의 나라가 아니겠소? 이제는 나쁜 감정을 털어버리고 서로 협력할 때요.”

 

“형제란 동등한 관계로 서로 도와주고 이끌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라 간에 형제 관계를 맺기 위해서 그에 걸맞는 의례를 치러야 하옵니다. 어라하께서는 전장에서 입은 상처로 어신(御身)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으셔서 소신에게 전권을 위임하셨습니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우리 두 나라가 형제국임을 만방에 알리는 의식을 치르면 어떻겠사옵니까?”

 

진무는 협상을 패전으로 인한 항복이 아닌 동등한 결의로 몰아갔다. 의식을 치르는 데 있어서도 진사왕이 직접 나서는 것을 막고 자신의 선에서 마무리 지으려 했다. 

 

광개토호태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결의(決義) 의식을 준비시키도록 하겠소.”

 

백제 측에서 진무가 나섰기에 고구려 측에서도 격을 맞추기 위해 태왕의 대리로 모두루를 내세웠다. 두 사람은 단도로 손가락을 찔러 피를 내고 이를 술에 섞어 나누어 마신 후 양국이 형제의 나라임을 하늘과 땅에 고했다.

 

진무는 예상 외로 쉽게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강화협상을 마무리 짓게 되자 막연한 불안감을 느꼈다. 고구려가 이런 식으로 백제를 안심시켜 놓고 일거에 쳐들어올지도 몰랐다. 진무는 도성으로 돌아가서도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고구려 군사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로부터 사흘 후 태왕은 각 전선에 나가 있는 장수들을 혈구도로 소집했다. 또한 전령을 보내 북변에서 청목령성을 공격하던 우나굴의 군대에게 철수를 명령하기도 했다. 장수들은 백제에 대한 공세를 더욱 강화하면 도성을 함락시키고 진사왕을 사로잡을 수도 있을 것인데 갑자기 군사를 물리라고 명령하는 태왕의 결정을 대부분 쉽게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태왕은 장수들 앞에서 자신의 뜻을 밝혔다.

 

“이번 전쟁의 목적은 서북방 원정에 나서기에 앞서 백제의 기세를 꺾어 놓음으로써 남변의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었소.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으니 더 이상 이곳에서 지체하는 건 시간 낭비요. 더구나 당성의 수군이 북상하고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소. 백제의 수군은 무시못할 전력을 가지고 있소. 만약 그들과 정면으로 부딪친다면 아군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을 것이오. 실익도 없는 일에 소중한 군사들을 피흘리게 하는 일만큼 어리석은 짓이 어디 있겠소? 그러니 이쯤에서 물러나는 것이 상책이오.”

 

태왕의 판단이 이치에 맞았기에 장수들은 더 이상 불만을 갖지 않았다.

 

태왕은 해진압의 군사들을 관미성에 주둔시켜 백제군을 감시하도록 하고 함선을 이끌어 마자수(馬紫水) 하구를 향해서 떠났다. 함대를 이끌고 무의도에 다다른 목힐강부는 고구려군의 회군 소식을 듣고 군사를 거두어 당성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해서 거칠던 바다가 잠잠해지기는 했지만 관미성을 감도는 바람의 수상한 내음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고구려 군사들이 물러간 뒤 진사왕은 도성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귀족과 군민은 더 이상 국왕을 신뢰하지 않았다. 고구려군과의 전면전에서 참패하고 부상을 입은 것과 바다에서의 패전이 백제인들의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고, 이는 곧바로 국왕의 무능함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다.

 

진사왕은 조카인 태자 부여아방의 왕좌를 빼앗았기에 그에게 반대하는 세력이 많았다. 그들 사이에서 선왕인 침류왕의 석연치 않은 죽음에 대한 의문들이 제기되면서 진사왕을 폐위시키고 부여아방을 왕위에 옹립하려는 움직임이 은밀하게 일어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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