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는 일반적인 통상협정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미FTA는 무역 조건만이 아니라 법·제도의 직접적인 변경을 요구하는 포괄적 협정이다. 문제는 미국과는 달리 한국의 법·제도만이 일방적으로 수정된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법률이라면 국회 논의 과정에서 내용이 수정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한국 국회는 국내 법·제도의 변경을 수반하는 한·미 FTA의 글자 하나도 바꿀 수 없다. 국회는 오로지 찬·반만을 결정할 수 있다. 현행 법체계상 국회는 체결된 조약에 대한 비준동의권만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미FTA 반대론자들은 이 협정을 ‘낯설고 이상한 괴물’이라 표현한다.
FTA는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느냐, 다음 세대에게 어떤 사회를 물려주느냐를 결정짓는 일이다. 하지만 협상타결 자체가 국익을 위한 성공이라고 말하는 통상관료들의 일방적인 독주, 이명박 대통령의 독재적 결정에 의해 FTA로 피해를 입게 될 일반 국민과의 소통이나 합의는 완전히 무시된 불평등한 조약이었고 한마디로 실패한 협상이었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의 평범한 국민들에게 재앙을 가져다 주는 한·미FTA는 그래서 반대하는 것이 매우 정당하고 반드시 재협상이 진행돼야 하는 것이다.
한·미FTA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협정의 비대칭성과 불평등성이다. 미국은 사회제도에 대한 법령 개정을 거의 하지 않고 관세율 수치를 조정하는 정도에 그친다. 반대로 우리 나라는 사회·경제 관련 법령을 거의 모두 개정해야 한다. 게다가 그 개정이란, 미국이건 한국이건 이미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대기업과 대자본에 대한 정당한 공공적 개입을 위축시키거나 무력화시키는 방향으로의 개정인 것이다. 결국 미국은 제도 변경을 하지 않지만 우리 나라만 바꾸게 되고, 그 변경의 방향도 한국과 미국의 사회경제적 강자들을 위한 제도적 변경이라는 요약을 할 수 있다.
미국 측의 한·미FTA이행법안을 보면 이행법에서 특별히 규정한 경우 이외에는 어떠한 국내법도 개정되지 않으며 한·미FTA가 미국의 국내법과 충돌하는 경우에는 효력이 없고, 주의 법률이나 규정이 한·미FTA에 위반되더라도 그 적용을 무효로 할 수 없다고 나온다. 반면 한국에서 한·미FTA는 헌법 제6조 1항이 규정하는 조약으로서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는데, 새로 만들어진 법률의 효력이 우선하므로 한·미FTA에 위배되는 이전의 법률이나 명령은 개정해야 한다.
한·미FTA 협상 타결로 우리 나라가 얻어낸 부분은 그저 자동차 업종, 자동차 부품 업종, 전자 업종 등에 대한 관세 철폐 정도이다. 그런데 문제는 누가 이득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보느냐의 여부다. 한·미FTA는 우리 사회에서 경쟁력을 이미 갖고 있는 재벌·자본가 계층의 숨통을 더 트이게 하겠지만 반대로 산업화 과정에서 약자였던 사람들, 대한민국 국민의 구성원 가운데 99%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는 햇빛이 들어오는 뚜껑마저 닫힌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한·미FTA가 발효되면 서민·노동자·농민·중산층·저소득층에게 가장 큰 피해가 끼치게 되는 분야는 농업적 생산과 보건의료 시스템이다. 영리병원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협정 부속서에 들어가 있다고 한다. 약값 결정 시스템도 민영화되었다. 지금은 제약사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에 약값에 대한 이의신청을 하면 정부가 재심을 하도록 돼 있는데, 협정에는 독립적인 민간기구가 하도록 되어 있다. 한국의 공무원들은 이 기구에 참여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즉 약값 결정에서 공공성을 배제한 것이다. 현행 협정에서는 이 기관이 검토결과를 심평원에 전달하고 재심은 심평원이 하도록 했다. 그런데 심평원의 재심 결과에 대해 미국 제약사는 한국 정부를 국제중재 절차에 회부할 수 있다. 민간보험에 대한 규제도 굉장히 위축됐다. 앞으로 보건의료 분야가 거대 자본의 돈벌이 수단이 될 것이다.
영리병원 허용은 비록 국민건강보험 체계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사안이지만, 경제자유구역 내에서만 허용된다면 괜찮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경제자유구역이 사회적으로 고립된 지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만 이용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접근성을 따져봐도 가령 서울에서 인천 송도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까지는 먼 거리가 아니다. 게다가 경제자유구역 자체의 규모와 숫자가 확대되고 있기에 경제자유구역 안에서만 허용하니까 괜찮다고 말할 수 없는 일이다.
한·미FTA의 가장 심각한 단점은 공공정책이 투자자의 이익으로 희생된다는 것이다. 이 문제와 직결된 제도가 ISD(투자자-국가 소송제)이다. FTA가 발효되기 전에는 국가가 영리병원을 해보다가 문제점이 많이 드러날 경우 법령을 통해 없앨 수 있다. 이럴 경우 정부 조치에 이의가 있는 투자자는 한국 법원에 제소를 할 것이다. 영리병원 설립자가 한국에서 돈을 벌어가는 사람이니까 주권자인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 만든 법령의 통제를 받고 한국 법원의 판결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한·미FTA에서는 이게 불가능하다. 여기서는 '투자'에 방점을 찍는다. 투자자가 한국 이외에 다른 나라에도 투자할 수 있는 돈을 한국에 쓴다는 것이다. 그래서 투자자 입장에서 내가 한국에 투자하지만 한국 법령이나 한국 법원의 통제는 안 받겠다는 것이다. 한·미FTA가 발효되면, 가령 영리병원의 부작용으로 한국 정부가 이를 없앨 경우 이 투자자는 한국 법원이 아니라 미국에 있는 투자분쟁해결센터의 중재인들에게 중재를 요청하게 된다. 그래서 FTA 위반이라는 결정이 나오면 한국 정부가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손해배상을 거부할 수는 있지만, 그럴 경우 미국 정부의 관세보복을 당할 것이다.
ISD는 투자자가 상대국의 정책·법률로 손해를 입었다고 ICSID(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에 중재를 신청하는 제도다. ICSID 집행위원장은 미국 정부가 선출한다. 중재인으로 활동하는 법률가들도 대부분 미국인들이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는 이 제도가 포함돼 있다. 호주는 미국과FTA를 체결하면서 농업 부문의 불이익을 감수하는 대신 이 제도를 제외했다. 한·EU FTA에도 이 제도는 없다.
이명박 행정부는 미국의 반덤핑 제도와 관련한 5개항의 요구조건을 내세워 그 중 4개항을 관철시켰다고 했지만, 그 논리의 전제는 이전에는 못했는데 FTA를 통해 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그런데 미국의 FTA 이행법안을 보면 반덤핑 관련 법령은 애초에 바꿀 필요가 없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정부가 얻어냈다고 자랑하는 건 FTA를 하기 이전에도 이미 가능했던 일이었다. 가령 우리가 얻어냈다고 하는 것 중에서 반덤핑 제소 사전통보, 즉 미국 자동차 업계가 반덤핑 제소를 했을 때 미리 한국에 통보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이건 지금이라도 미국 해당 부처에 전화를 하면 알려주는 내용이다. 이걸 얻겠다고 FTA를 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반덤핑 규제와 관련해서 가슴 아픈 일은 대표적인 비관세 장벽인 '제로잉' 조항을 철폐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제로잉'은 수출 가격이 국내 가격보다 낮을 때는 그 차액을 덤핑마진으로 계산하지만, 반대일 때는 마이너스로 계산하지 않고 0으로 간주해 덤핑 관세율을 높이는 방법이다. WTO(세계무역기구) 회원국 가운데 미국만 시행해온 무역보복 관행이다.
이명박 행정부가 FTA를 통해 미국의 제도를 바꿨다고 자랑하는 것들이 대부분 무역규제위원회를 조직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따위 위원회 조직은 미국의 제도를 바꿀 수 없고 바꾸는 기능도 있는 게 아니다. 가령 주택 구매 계약을 한다면 그 계약은 그 집을 갖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지 그 집을 살지 말지 논의할 위원회를 만드는 게 계약의 목적은 아니지 않는가? 없는 것보다는 나은 정도에 불과한 셈이다.
FTA 협상 과정에서 미국 의회와 비교해보면 한국 국회는 아무런 민주적 통제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지금은 국회가 민중의 대표자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민중에게 피해를 주는 한·미FTA에 생명을 불어넣는 수단으로 전락한 상황이다. FTA는 결국 민주주의의 문제다. 영리병원 등 민중의 삶을 위협하는 제도들이 FTA를 통해 한국에 들어오는데 민중의 대표자인 국회가 이를 막기 위해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까지는 한·미FTA가 하나의 종이뭉치였지만 국회가 이를 비준하면 거기에 법적 힘을 불어넣어 종이를 칼로 만들게 된다.
미국이 한국과의 FTA 협상에서 무엇을 요구하는지, 그에 따라 바뀌어야 하는 한국의 제도는 무엇인지, 그 요구가 협정에 어떤 구조로 반영되는지, 관련된 세계무역기구(WTO) 조항은 무엇인지 등 여러가지 정보가 모든 국민에게 공개되어야 한다. 이건 매우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정부는 한·미FTA 협상에 관련된 정보를 언론에게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오늘날 우리 개개인의 삶은 구조적으로 사회적 정치적일수 밖에 없다. 국가 공동체 전체의 성격과 개개인의 삶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그 둘의 분리는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개인의 문제와 사회 문제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 공적 문제는 곧 사적 문제로 바로 우리 민중의 현실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며, 자유와 평등을 포함해 우리 삶의 핵심 가치와 조건을 둘러싼 문제 대부분이 정치적이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공적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또한 참여해야만 하는 이유는 공동체 구성원 개개인의 참여없는 무관심과 불참으로 해결 할수 있는 공적 문제는 없기 때문이며 무관심과 냉소주의는 사회 공동체를 위해서나 자기 삶의 개선을 위해서나 결코 바람직 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패한 권력, 부도덕한 자본, 탐욕스러운 정치…
이러한 소수의 찬탈자들이 국가 기구를 사사로운 탐욕을 위해 도구화하지 못하도록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국가의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그릇된 정책에 대해서 분노하고 저항해야 한다!
부도덕한 자본과 부패한 권력에 의해 더 이상 우리의 삶이 유린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부도덕한 자본에 저항해야 한다. 우리는 부패한 권력에 반대하는 시위와 투쟁에 참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