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가 함께 만들어 가는 희망골프
‘생각한대로 골프가 먹히면서’ 공식대회에 생애 처음 상금을 따서는 그동안 도움을 준 이들에게 작은 사은의 정성으로 빨간 내의를 돌린 백현범프로를 만나본다. 올해 4월 세미프로를 통과해 2부 스카이72투어 5개 시드를 배정 받게 됐다. 그로서는 이것만으로도 골프인생의 커다란 기폭제가 됐다. 후반기에 펼쳐지는 이 대회에서 1개 대회 만에라도 우승하면 꿈에도 그리던 KPGA 정화원이 될 자격을 부여받으니 자기 앞에 많은 기회가 펼쳐져 있다는 데 전율을 느끼게 됐고 무엇보다도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 잠재된 엄청난 힘을 불러내게 됐다. 그는 이제 골프에 적성을 확인하고 골프만을 위한 생을 점지한 계기가 됐고 흔들림없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주어진 대회에 부딪혀야만 하는 일만 남았다.
이런 배경에는 시발점이 된 여러 보육원과 주변의 후원자 그리고 오랜기간 무료레슨을 해준 표창환프로(부천 송내 일신골프연습장 헤드프로)와의 만남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초창기 할렐루야골프단을 창단한 백성기 단장과 백강기 감독의 눈물겨운 의지가 한데 서려있다. 이제 이들의 이야기를 풀어 가려고 한다. 백현범(대불대 2년, 21) 프로의 성장동력은 자신의 노력이 전제 됐겠지만 성숙된 이 사회가 가진 수준과 덕성이 키워내는 하나의 시스템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는 할렐루야 골프단 소속으로 시작해최초로 프로 정회원 자격을 노리며 이 사회가 베푸는 온갖 성원과 따가움을 한데 움켜진 상태에서 보육원 아이가 어찌 언감생신 일반인들도 하기 어렵고 가진자들의 전유물인 골프에 대시하게 된 그 발칙한(?) 발상의 시험대가 됐기 때문이다. 그런 간극을 해체하기 위해 후원했던 몇몇 선각자들의 깨어있는 의식의 소산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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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골프단 백성기 단장은 골프유망주였던 딸을 교통사고로 잃으면서 딸이 생전에 어려운 아이들을 돕고 싶어했던 뜻을 기리기로 했다. 보육원 아이들에게 골프를 가르치겠다는 결심으로 논산에 있는 계룡학사 보육원생들을 대상으로 아이들을 모아 할렐루야 골프단을 1999년 8월 1일에 창단했다. 논산 계룡학사에서 1기 골프팀이 탄생하면서 백현범(초5)은 입소하게 된다.
큰아버지인 백성기 목사는 할렐루야 골프팀 단장이 됐고 아버지 백강기 씨는 골프감독을 맡아 연예매니지먼트에서 배운 역량을 활용하게 됐다.
백성기 목사는 동생인 민해경(가수)의 매니저를 했고 아버지 백강기 감독도 부활 락그룹 매니저먼트 일을 하다가 1997년 김태원과 이승철이 해체되면서 그 일에서 떠나게 됐다. 당시 음악계는 LP에서 CD로 넘어가고,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 전환하는 과도기였다. 아버지는 연예 매니지먼트를 그만두면서 어려움이 겹쳤고 급기야 이혼까지 하게 된 것이다.
백강기 감독은 당시 어린 아들을 맡길 데도 없었고 경제적으로도 감당할 수 없던 차에 형이 보육원골프단을 만들면서 ‘와서 같이 해볼 생각이 없느냐’는 말에 ‘골프를 하라’는 어떤 계시같아 골프 감독을 맡게 됐고 아들 현범이에게 골프를 가르치게 된 동기가 됐다고 밝혔다. 1기엔 45명이 창단 됐는데 보육원생들에겐 희망자에 한해서 선별했지만 백헌범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큰아버지와 아버지가 공범이 되어 무작정 골프에 입단시켰다.
그 후 고된 골프 훈련을 받으면서 내밀한 고충을 표출하지 않았던 그가 고3에 들어서면서 이유없이 클럽을 팽개쳐 버렸다. 1년 6개월 동안 클럽을 놓고 거의 폐인이 될 정도로 골프와 담을 쌓았고 아버지도 실망감에 그냥 버려두었다. 그 당시의 상황을 올해 4월경 1차 목표인 세미프로가 되고 난 뒤에서야 속내를 밝혔다고 백감독은 전한다.
정회원 1호 만들기
1999년 보육원골프단 제1팀 논산 계룡학사에서 골프를 시작하여 현재 구력 10년이 됐고 지난 4월엔 보육원생 중 7번째로 세미프로테스트 합격했다.
백현범은 논산 1팀에서 2000년에 제2팀 제주 홍익보육원(원장, 김종철)골프팀으로 옮겨가게 된다. 제주 삼양초등학교로 전학을 가면서 제주도에서의 골프교육에 박차를 가하게 됐다. 아버지는 먼저 내려가서 보육원 제2팀인 아이들을 선별하고 기본적인 육상훈련위주로 이른 새벽부터 러닝부터 시작, 기초체력을 다져나갔다. 새벽에 제주 삼양백사장 검은 모래밭을 뛰고 맨땅에 구멍파고 퍼터 하나로 돌아가며 아주 짧은 거리의 퍼팅 훈련을 했다.
아버지 백감독은 예전 무명그룹 ‘부활’을 데리고 온갖 홍보를 하러 다닌 것처럼 제주 지역을 모조리 다니며 후원할 곳을 찾아다녔다. 왜냐하면 아들 백현범이 골프를 해야하는 곳이란 그 이유 하나로 충분했다고 백감독은 밝힌다. ‘형은 전체보육원생을 위해 일하지만 자신은 그 속에 있는 아들을 위해서’라는 목적의식이 하나 더 있었고 더불어 다른 원생들이 똑같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뛰어다녔던 것이다. 하지만 백감독 역시 백단장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할렐루야 골프단이 제3지대, 인간시장 등 방송을 타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고 후원자도 생겨나면서 후원조직도 결성됐다. 그러면서 백감독의 입장이 묘하게 돌아갔다. 백단장 조카이자 백감독의 아들인 현범이 위주로 훈련이 진행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감과 자괴감이었다.
형이 큰 뜻을 품고 창단한 보육원 골프단의 대의명분에 누가 될 것 같기도 하고 향후 나로 인해 지장이 생길 것 같다는 생각도 동시에 밀려왔다. 지금은 괜찮을지 모르지만 나중엔 분명 말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퍼뜩 뇌리를 스쳤다. 특히 현범이가 초등학생 때라 골프에 착 달라붙지도 못했고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 등 복합적인 감정이 치밀기도 했다. 그래서 제주보육원을 떠나는데 어떤 인연으로 알게 된 안양시장이 이런 사정을 알고 ‘안양에는 보육원이 없습니까’하면서 안양보육원(원장, 사지숙)을 소개해줘 2002년 3번째로 보육원을 옮기게 된다. 여기서부터 형님의 산하를 벗어나 백감독 독자적인 골프팀을 만들게 됐다. ‘형님 따라하기’식이 됐지만 처음엔 보육원생 10명의 여자애들을 모집해 골프단을 만들어 현범이와 함께 가르치기 시작했다.
현재는 독자적인 안양보육원 일인골프팀(감독/백강기, 선수/백현범)으로 골프훈련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다가 에이원 골프연습장에서 연습하던 중 2003년 평생의 스승인 표창환 KPGA프로를 만나게 된다. 아버지에게 야단을 맞으면서 레슨을 받아왔던 현범이를 곁에서 보고 있다가 딱한 사정을 알고 조건없이 받아 주었다. 표창환 프로가 ‘자신에게 한번 맡겨 주면 인되겠느냐’고 조심스레 타진을 해 온 것이 그에게는 커다란 행운이었다. ‘잘하고 있는 애를 너무 다그치다간 잘 안될 수도 있다’며 흔쾌히 받아주었다. 백감독은 안양보육원에서 처음엔 골프팀을 만들어 열심히 했다.
하지만 힘에 부친 모습이 안쓰러웠든지 사지숙 원장이 어느날 불러놓고 “현범이 하나에만 집중해서 확실히 키워내는 게 모두에게 좋지 않겠는가”라고 종용했던 것. 백감독은 아들 현범이 하나만 신경을 쓰라는 말에 짐을 내려놓고 1인 골프팀을 집중적으로 진행시켰다. 연예계에서 한 매니지먼트를 발휘했다. 후원조직을 만들지 않고 다만 백방으로 뛰어 다니면서 지원을 요청하면서 레슨과 연습장을 사용하고 보육원에서 무료 숙직까지 지원받았다. 퍼터나 골프화 등 용품지원과 골프대회를 참가하기 위해 골프저널에 편지를 쓰면서 인연이 닿아 현범이가 중3 때인 2004년 제8회 《골프저널배》에 출전하면서 첫 우승의 영광을 누렸고 드디어 골프에 맛을 들이기 시작한 것이라고 백감독은 밝힌다.
표창환 프로는 ‘기대도 않고 경험삼아 내보낸 것인데 뜻밖의 우승에 주변이 놀랐고 현범이는 자신감을 갖고 골프를 하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된 계기가 됐을 것이다’고 말하고 ‘작은 대회에서도 우승의 맛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자신감이 넘친다’고 덧붙였다. 백현범 프로는 그 대회가 자신의 골프에 확신을 갖게 됐고 기폭제가 됐다고 말했다. 백감독도 ‘대회 나가는 건 지푸라기도 잡는 절실한 심정이라 우승목적이 아니었지만 현범이는 첫 우승의 계기로 상승세를 탄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하고 골프저널에 고마움을 연신 피력했다.
백현범은 2007년 양명고 3학년 때 마지막 대회인 제주도지사배에 출전하게 됐다. 첫날 73타를 치고 이튿날 이글을 잡으면서 69타를 쳐 2언더파로 4등을 했다. 7등까지는 전국주니어 대회에 참가할 자격을 얻어냈다. 문제는 다음대회를 앞두고 현범이가 자취를 감춰버린 사건으로 표창환 프로는 물론 아버지로선 엄청난 실망감을 안게 됐다.
나중에 골프특기자로 대불대학교에 들어갔지만 1년 6개월 동안 골프가 싫다며 골프의 끈을 놓아버려 아버지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나중에 프로테스트를 합격한 뒤에서야 실토한 사실이지만 당시 현범이는 컴퓨터게임에 빠져있었고 여자친구에게 차여 실연을 당했던 시기여서 남에게 속내를 풀어 놓지 못했고 한마디로 사춘기를 톡톡히 치른 시기였다.
대학 2학년이 되면서 현범이가 프로테스트에 나가겠다고 말했을 때 ‘연습도 않던 애가 무슨 테스트냐?’ 코웃음을 치고 신청비를 대 주었는데 덜컥 통과를 해버린 것이다. 골프를 포기했다고는 하지만 그동안 현범이는 고뇌하고 갈등했었다. 아버지이자 감독이 해준 말 중에 ‘작은 불씨하나가 큰 산을 태울 수 있다. 작은 불씨도 소중히 해야한다. 골프의 불씨는 절대 꺼뜨리지 말라’는 말에 명심했고 어둔 터널을 지날동안 가슴에 남아 뜨겁게 용솟음 쳤다고 백현범 프로는 훗날 밝혔다. 그 말에 클럽을 다시 잡을 수 있었고 현재 골프에 대한 진가를 알고 진정 골프의 길로 가야하는 목적을 설정하게 된 작은 불씨로 작용했던 것이다. 다행인지 2009년 4월 세미프로 테스트 예선전에서 2등으로 통과했다. 백현범 프로는 1차 목표를 달성했고 오는 10월 정회원 Q스쿨 2차전 테스트 합격과 3차전 시드프로가 되기 위해 아침 8, 9시에 표창환 프로가 헤드프로로 있는 부천 중동역에 있는 일신골프연습장에 나가 저녁 10시까지 맹훈련 중이다.
백현범 프로는 지난 5월엔 2부 아카데미 투어에 첫 출전, 본선에 나가 첫 상금 75만원을 타서는 그동안 주변에 도움받은 분들에게 빨간 내의를 사서 돌리기도 했다. 현재 컷 언저리에 걸려 있지만 상당히 안정된 기량을 펼치고 있어 언제든지 우승의 가능성도 엿보고 있다.
백현범 프로는 현재 자신을 받아줄 골프팀을 탐색하고 있다. 왜냐하면 폭넓게 골프를 배우고 경험해야 하는 문제가 있고 아직 부족한 필드연습을 해결해야 한다. 원활한 플레이로 유능한 프로가 될 수 있는 조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버지 백감독은 꿈이 있다. 향후 아들 현범이가 계획대로 투어프로가 되어주고 상금을 탄다면 그게 당장 내년이 될지 아니면 10, 20년이 걸릴지는 모르지만 살아생전 안양·홍익보육원 골프단을 만들어 멋지게 추진하고 싶은 꿈을 귀뜀한다.
그동안의 도움을 갚는다는 차원도 있겠지만 백현범 프로의 수익만으로 뭔가를 도모하고 싶은 마음을 진솔하게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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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힘으로 보육원 어린 동생들 가르치고 싶다 아버지 백감독의 꿈도 그렇지만 백현범 프로의 꿈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보육원에서 먹고 자는 등 숱한 도움을 받은 만큼 보육원 골프팀을 위해서 일하고 싶은 꿈도 내비쳤다.
월드선수로서 큰 선수가 되고 싶은 그는 어떠한 경우라도 자신의 힘으로 보육원의 어린 동생들을 가르쳐 보고 싶다는 결의다. 10년, 아니 20, 30년 후라도 큰 선수 하나 나왔으면 아버지나 큰아버지를 위해서도 좋고 자신에겐 골프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의 목표가 됐다. 그동안 배운 만큼 초기 보육원 소속 골퍼로서 코치 겸 프로가 되어 가르쳐 보고 싶은 꿈이다. ‘이미 시스템은 되어 있으니 네가 레슨을 직접 하면서 애들을 키우면 뜻있는 일 아닌가’하고 아버지가 물었더니 ‘아 그것 괜찮네’하면서 백현범 프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큰 선수가 되어야 네가 아빠 대신 은혜를 갚을 수 있다’고 골프하는 목표를 설정했다.
키 180cm 몸무게 80kg(O형)으로 골프로선 호조건을 갖추고 있는 백프로의 장기는 드라이버로 좋아하는 선수는 김종덕 프로와 어니엘스를 꼽는다. 그는 보육원골프팀 소속에서 제1호 정회원 되어 1부 리그를 뛰고 싶어하고 향후 미국 유학까지 생각하고 있다. 그에겐 오직 흔들림 없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주어진 기회의 대회에 전념하는 일만 남았다.
표창환 프로
표창환(52) 프로가 안양 에이원골프연습장에 있을 때 현범이가 아버지에게서 혼나면서 골프연습을 하는 게 안쓰러웠다. ‘재주는 있는데 저한테 한번 맡겨 보라’고 말한 게 2003년 백현범 프로와 인연이 된 것이다. 지금은 군에 가 있지만 국가대표 3년을 지내고 프로가 된 아들 표석민 프로도 함께 가르치고 있던 때였다. 참고로 2008 코리안투어 퀄리파잉스쿨 2차전에서 표석민이 수석합격을 차지해 큐스쿨이 낳은 부자골퍼가 됐다.
표창환 프로는 백현범 프로를 데리고 부천 송내에 있는 일신골프염습장, 파3홀 헤드프로 및 표창환 골프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15명의 주니어유망주들을 가르치고 있다.
표창환 프로는 ‘현범이는 계룡학사 시절에 10km씩 뛰는 강훈 속에서 체력도 갖춰지고 남에게 지기싫어하는 근성이 있다. 체계적으로 도와주면 골프계 재목이 될 것 같다’고 말한다.
골프를 좋아하고 스스로 하려고 하는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표창환 프로는 골프기술도 중요하지만 인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편이다. 학생들의 복장을 단속하고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재능 있어도 쫓겨난 애가 더러 있다. 왜냐하면 그런애들은 가르켜도 소용없다는 지론 때문이다. 골프에는 계기가 있어야 너도 좋고 나도 좋고 레밸도 올라간다.
꿈나무들에게 애착이 많다. 골프공간을 충분히 할애해주고 꿈나무들이 즐겁게 골프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줘야한다. 고육지책이라면 신설 골프장을 지을 때 의무적으로 주니어 대회나 프로 대회를 허가 사항에 삽입시키고 학생들 공부하는 평일 땐 학생들을 공부하게 하고 쉬는 토, 일요일에 대회를 치를 수 있도록 조건부 허가안도 생각해 보는 게 좋지 않느냐고 제기했다. 박세리 키즈들을 잘 활용하면 외화 수입은 엄청날 자산인데도 학생들이 골프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학생들에게 많은 혜택을 줘야할 때가 됐다고 한마디 한다.
표창환 프로는 비행기 승무원을 하다가 골프가 좋아 승무원을 때려치우고 골프에 입문했다. LA에서 후배와 호텔 부속 퍼블릭 코스에서 골프연습을 하다가 골프에 맛들여버린 것이다. 31세 늦은 나이에 시작했지만 금방 세미프로를 땄고 4-5년간 경기에 출전했다. 1996년 프로테스트에 통과하면서 본격적인 프로의 길로 나서게 됐다. 하지만 아들을 가르치면서 가르치는 매력에 빠져 티칭프로로 전환하게 됐다. 한때 보육원 출신의 백원경 프로를 자기 집에서 숙식을 같이 하며 교육을 시켰다. 그는 어떤 길이 스포츠맨의 길이고 내가 살아가는 게 올바른지 내가 누구인가를 중점으로 가르치면서 골퍼 이전에 하나의 총채적인 인간의 길을 골프를 통해서 가르치고 있는 골프교육자였다. 기계가 아닌 이상 이 세상 완벽한 스윙이 어디 있나. 단점보다는 장점을 크게 만들면 단점이 보완된다는 지론을 행동으로 펼쳐가고 있다.
취재┃정노천, 사진┃정 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