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잠을 청하기 위해 이불을 돌돌 말고 옆으로 돌아 누워 있으면
온갖 지구상의 문제들을 혼자 고민하다 잠들곤 하는데..
문득 십여년전의 그녀가 떠올라... 가슴이 아려올 때면
책상서랍 깊숙히 모아놓은 그녀와의 추억을 되짚어 보며 회상하곤 합니다.
그 얘길 한번 해볼까 합니다.
아직도 생각하면 잠못이루는 첫사랑의 가슴아픈 추억 #1
97년 쌀쌀맞은 날씨가 기승이던 초겨울..
난 겨울방학을 맞아 학교 근처 중국집배달 알바를 하고 있었다.
면허도 없는 중3이었지만.. 그 시절 중국집이 성황리에 장사를 하고 있었기에
그 쯤은... 사정을 봐주는 관행이 있었던터라 경찰도 특별한 상황아니면 굳이
단속을 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아파트 상가 2층에 위치한 중국집.. 배달 오토바이를 세우고 철가방을 무릎으로 튕기며
옆에 찬 허리쌕에선 500원짜리 동전들이 철썩철썩 소리를 내며, 중국집으로 오르려는데
큰 쟁반에 빵을 잔뜩 올리고 내려오는 여인... 아니 누나...
처음 봤기에
알바를 하면서 그런 미모의 여자는 처음이었기에
난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뭐지?"
"누구지?"
"첨보는데.."
한걸음에 뛰어 올라가 같이 배달하는 민수형에게 물어봤다..
"형 혹시.. 방금 내려간 빵집 여자... 봤어요?
"아~ 그 누나? 너도 봤냐? 짜식~"
"나도 오늘 첨 봤는데.. 누군가 해서 물어봤지.. 실습나왔데~"
"아... 실습.."
"근데 실습이 뭐예요?"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나로선 실습이 생소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나중에 20살 넘은 형들에게 들었다..
전문대를 다니면 실습을 나온다고.. 내가 가게될 고등학교도 아마 그럴꺼라고..
그렇다.. 난 인문계가 아닌 실업계 고등학교에 합격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그 누나를 많으면 하루에 너다섯번... 적어도 한두번은 마주치다 보니.. 자연스레
가벼운 인사부터... 점점 친해져 오며가며 말걸고, 농담까지 주고 받는 사이가 되고 있었다..
"어! 누나.. 그거 소보로빵이예요?"
"응~ 맛있겠지?
"나 소보로빵 완전 좋아하는데..."
"난 일하면서 짬뽕냄새에 죽겠더라~ ㅎㅎ"
하며 소보로 빵을 한가득 접시에 올려 내려가는 누나...
빵가게는 1층에 있었지만 빵을 만드는곳은 2층에 있었고.. 우리 중국집 옆에 있었던 터라
그 누나와의 만남은 이상할것도 없었다.. 계단을 내려가려면 우리 중국집을 지나가야 했으므로..
어느날...
갓 구운 식빵들을 한가득 접시에 담아 내려가는 누나에게..
"누나! 짬뽕 먹을래요? 점심시간 됐잖아요~"
"먹고야 싶지... 근데 혼자만 먹을 수 있겠니!"
라며 내게 미소를 띄우고 내려가는 누나...
오늘! 무슨일이 있어도 누나와 공장식구들에게 짬뽕을 주겠노라!
사실 짬뽕 몇그릇 빼는건 일도 아니었다.. 워낙 장사가 잘 되는 상황인지라..
주소가 달라 하루에도 두세번은 빵꾸가 나던터..
학교 끝나고 틈틈히 한두시간씩이라도 알바를 해오던 나는.. 잔머리 굴려 짬뽕 몇그릇
빼내는것 정도는 식은죽 먹기라는걸 알고 있는 짬이었다..
같이 일하는 동생을 시켜 짬뽕 4그릇과 탕수육을 빵꾸내게 하고...
난 당연하단듯이.. 빵 공장으로 철가방을 들고 들어갔다..
"짬뽕왔습니다~!"
!!!!
모두들 빵을 만들다.. 나를 쳐다본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중국음식이 배달됐으니 그럴 수 밖에..
"누구 짬뽕 시켰어?
"아뇨~"
막내던 누나는 대답을 하며 내눈치를 슬쩍 본다..
"아.. 이거 시킨게 아니구요.. 저희 사장님이 빵이랑 바꿔 먹어보자 그래서 가지고 온겁니다~!"
"그냥 드셔도 되는거예요~ 맛있게 드세요~"
무얼 더 물어볼지 몰라 내가 할말만 하고 후다닥 빠져나와버렸다.
참.. 지금 생각해도 저런 순발력은 어떻게 나왔는지..
"수현아~"
누나가 나를 부른다.. 내 이름이 워낙 여자이름이다 보니.. 내 이름이 불리는걸
반가워 하진 않지만 누나가 불러주는 내이름은 참 듣기 좋은거같다..
"네~"
"짬뽕하고 탕수육 맛있게 잘먹었어~"
"여기 그릇~"
"그리고 공장장님이 고맙다구 빵을 주셨어~"
먹고 싶었던 짬뽕을 먹어서 였는지.. 누나는 해맑은 표정으로 말을 하며 빵을 한아름 준다..
"아~ 뭐 이런걸 ㅎㅎ 공장장님한테 잘 먹겠다고 전해주세요~"
빵을 들고 후다닥 뛰어와서는 같이 배달하던 형, 친구들하고 나눠 먹는다..
내가 소보로빵을 좋아한다고 해서인지 소보로빵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무심코 했던말을 기억하는건가?"
이젠 하루하루 그 누나를 보는 재미로 일을 하게 되고
빵공장 식구들에게 일주일에 두어번씩은 중국음식을 주고
우리도 빵을 받아 먹곤했다..
그렇게 1997년의 연말이 찾아왔고..
매일 이쁜 얼굴때문에 빵공장 누나는 중국집에서 일하는 남자들입에 하루도 오르지 않는 날이 없었다.
"야! 수현아~ 형이 쟤.. 꼬셔서 같이 놀게 해줄까?"
배달경력이 많아.. 이제 기술을 배우고 싶다며 주방에 들어가 라면(반죽을하고 면을 뽑고 면을 삶는사람)
을 하고있는 영수형의 번뜩이는 제안이었다..
영수형은 당시 23살...
큰형이었다...
나에게 고등학교 선배들만 해도 어려운 형들이었기에..
영수형은 한없이 높은.... 쳐다도 못볼 그런 형이었지만 유독 나를 이뻐해줬다..
"네!"
영수형과 나는 서로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우고 빵을 가지고 내려가는 누나를 보고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빈 쟁반을 들고 터벅터벅 계단을 오르는 누나가 보이고..
영수형은 앞치마를 푸르며 부리나케 뛰어나온다..
"저기요!"
둘이 뭔가 말이 오고 가는거 같은데..
잘 되는건지, 안되는건지... 도통 알 수가 없는데
누나가 깔깔거리며 웃는다...
아직도 생각하면 잠못이루는 첫사랑의 가슴아픈 추억 #2
에서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