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이 발표된 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그에 대한 북한 내 애도와 관련해 그것이 진심이냐 아니냐를 놓고 논란이 많았다. 진심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북한 정권의 세뇌 공작과 선전 선동이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 진심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북한 주민 상당수도 김정일의 실정(失政)을 모를 리 없다고 주장한다. 일부가 진심으로 슬퍼할 수는 있으나 북한 주민 대다수가 그의 죽음을 애도할 리는 없다.
17년 전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도 북한 주민은 애도했다. 아마도 이번 김정일 사망 때보다 더 많은 사람이 김 주석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했을 것이다. 김 주석 사후 김정일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부친을 신격화(神格化)하고 그를 애도하도록 만들었다. 김정일은 3년간의 김 주석 애도 기간을 내세워 겉으로 나서지 않으면서 막후에서 권력 장악과 공고화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김정은 승계를 공고화하기 위하여 서둘러 그를 치켜세우고 그에게 갖가지 호칭과 칭송을 부여하고 있다. 3대에 걸친 세습 우상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김정일 사망 후 그를 우상화하고 아들 김정은을 영웅화하는 것은 김정은의 집권을 위해서라기보다 그를 이용하여 권력을 잡고 그것을 유지하려는 개인 내지 집단의 계책일 가능성이 크다. 그것이 개인이건 소집단이건, 권력을 장악하고 행사하기 위하여 김일성 3대를 우상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권력층과 주민은 어째서 이런 신화 세습에 동조·추종하고 있는가? 그 동기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가장 큰 이유는 강제성에 있다고 하겠다. 즉, 동조하지 않으면 처벌받기 때문에 동조하는 것이 이로운 것이다. 권력층은 특권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따르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할 것이다. 대다수 주민은 정부가 믿으라고 역설하는 것들, 정부가 시키는 일들이 자기 신념이나 선호와 다르다 할지라도 그 체제하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따라갈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이미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이 나치 독일과 스탈린 체제의 소련을 경험한 후 1945년에 출간한 '동물농장'에서 잘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나폴레옹'이라는 양돈(洋豚)이 사냥개들을 강제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선동꾼 동물들의 도움을 받아 허구의 적(敵)을 조작하는 한편, 실제로는 공적(功績)이 없는 자신을 영웅화하고 지도자로 내세워 다른 동물들을 지배하고 탄압한다는 이야기다.
전체주의 체제의 정권은 구성원들에게 획일성과 무조건적 복종을 강요하면서 그것을 권력의 징표이자 원천으로 삼는다. 이런 독재 체제는 개인의 주체성이나 자주성, 자존심 등을 억압함으로써만 존속할 수 있다. 그러나 권력이 진실을 독점하고 추종을 강요하는 데 저항하는 사례가 북한 이외의 국가에서는 수없이 많다. 자존심과 자아를 지키려는 사람은 온갖 처벌과 희생을 무릅쓰고 저항하다가 결국 처형당하든지, 투옥되든지, 망명을 떠나든지, 가택 연금을 당하든지, 정신병동에 수감되든지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이런 사례로는 소련에 솔제니친과 사하로프가 있었고, 체코에 하벨이 있었으며, 중국에는 문화대혁명 시기에 희생당한 작가 수칭춘(舒慶春)과 북경대 교수 슝스리(熊十力)가 있었고, 한국에는 시인 김지하와 민권운동가 김근태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 권력이 진실을 독점하고 개인의 사고를 탄압하는 사태를 용납하지 못한 나머지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비판하고 저항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전체주의 체제 중에서도 북한은 지구 상 그 어느 나라보다도 사상과 행동의 자유가 제한되어 있고, 개인의 권리와 독자성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다. 그러나 폐쇄된 북한 사회에서도 강요된 신화(神話)의 세습이 얼마나 오래갈 것이며, 그러한 신화를 둘러싼 권력자들의 정략적 결합이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유지될 것이냐는 문제가 남는다.
민주화 과정을 거쳐 진실과 허위를 자유롭게 논할 수 있는 사회를 갖게 된 한국에서는 북한의 그러한 신화 조작이 불가사의해 보이는 한편 적잖이 우려되는 현상임이 틀림없다. '열린 사회'와 '닫힌 사회'의 전형적인 대조를 보여주는 남·북한의 현실은 실존적 딜레마와 함께 지적 탐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북한이라는 폐쇄된 동족(同族)의 나라를 지척에 둔 우리는 조작된 신화가 기정사실화하는 것을 경계하는 한편 북한의 안정적 전환을 선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와 국민의 그 어느 때보다 냉정하고 차분한 대응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