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의 이야기는
오늘 마신 술 때문에 생긴 취기와, 과거의 추억을 곰씹으며, 더 이상 힘들지 않기 위한 나의 선택이자, 추억을 회상하며 마지막으로 감정을 달래며, 웃으며 살기 위해 적는 것입니다.
꽃이 피고 지고, 무더위가 반도를 감아, 녹음이 떨어져 대지로 돌아가 남아버린 앙상한 가지에 눈꽃이 필 때 같이 흘러버린 시간이, 벌써 2년이나 지난 지금, 사람의 축복이자 죄악인 망각이란 놈 때문에, 소중한 기억이지만 흩뿌려져, 잔잔한 수면위에 천천히 가라앉고도 남을 시간이지요. 이제는 정겹던 추억 모두가 떠오르지는 않지만, 지금으로부터 2년 전 2010년 4월 달로 거슬러 갑니다.
거짓 없는, 나란 남자의 옛 이야기로...
2010년 4월 달에
나는 부산의 한 고등학교의 학생입니다.
지극히 평범한 외모에 남들보다 약간 더 큰 키를 가지고 있는 어디 있는 고등학교를 가 던 볼 수 있는 평범한 남학생 이지요. 남들은 내 이름과 학교보다 단순히 넌지시 묻는 “ 몇 살이니? ” 라는 물음에 답하는 “ 고 3이에요” 라는 대답에 더 큰 의미를 두곤 합니다. 열심히 하라는 소리도 종종 듣고, 여느 아이들처럼 점심시간이 되면 아이들과 어울리며 행복을 만끽하는 평범한 학생이지요.
물론 똑같은 사람이라도 성격이 조금씩 다르듯 나 또한 여타의 대다수의 고등학생들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2008년에도 역시 입시 열이 뜨겁다 못해 활활 타오르는 대한민국에서, 대학이라는 목표 하에 중학교 때부터 사교육에 치중된 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중3말 실업계, 인문계의 갈래에서 선생들에게 인문계를 지향하라는 강력한 압박을 받으며 내신이라는 객관적인 성적을 토대로 약 70%의 학생들이 인문계에 진학하게 됩니다. 하지만 나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집안의 경재적인 사정 때문에, 집 근처에 있는 인문계 학교를 포기하고, 30%의 내신 성적으로 입학만 하면 2년 장학금 혜택이 있는 1시간 거리에 있는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됩니다. 1시간 보단 가까이 집 근처에 비슷한 혜택을 주는 실업계고등학교가 있기는 했지만 막연하게 장학금을 쫒기보다는 그래도 관심 있는 분야로 진학하기 위해, 미술에 관련된 실업계 고등학교를 찾다보니, 통학이 멀어지고야 만 것입니다.
이렇게 나는, 실업계 학생이면서 미술을 전공하는 고등학생이 되었었습니다.
실업계이지만 나름 실업계 명문이라고 자부하는 학교 덕분에 무자비한 7시 20분 등교를 맞추기 위해서, 집에서 늘 5시 30분에 버스 정류장으로 새벽이슬을 맞으면서 터덜터덜 걸어 다니길 2년,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곳에 홀로 내팽개쳐졌지만 곧 친구를 사귀고, 미술을 전공하는 학과 덕분에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아서 그런지 평범한 나 또한 여자 친구들을 사귀고, 나름 인기 있는 녀석이 되었습니다. 공부 또한 중학교 때는 근근이 반에서 반보다 약간 위를 유지하던 내가 학과 내에서 1,2위를 다툴 정도로 인정받게 되어 자신감 또한 붙게 되니 학교생활이 즐겁게 그지없었습니다.
2년, 정말 힘들고, 많은 문제들이 있었지만, 나는 64명중 4명의 자퇴생들을 제한 60명 중 많은 친구들을 거닐고, 공부와 전공인 미술에 모든 열과 성의를 다하는 모범생으로써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한 모범생으로 자리 잡게 되었어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교우관계에서 많은 문제점이 있는 나 이었습니다.
사람은 원체 시샘하고 원망하기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하나요? 나와 비슷한 처지의 몇 명의 여 학우들 또한 장학금을 보고 입학을 했지만 학교는 1학년 1학기 까지만 공통적으로 장학금을 주고 나머지 학기와 학년의 장학금을 유지하기 위해선 학과 내에서 전 학기 성적 2등이상 받아야 한다는 조건을 뒤늦게 알려주었습니다. 당연히 나 때문에 순위가 밀린 몇 명의 학생들이 장학금을 못 받게 되는 일이 벌어졌고, 2년이 지난 지금 나를 제하고 장학금을 받는 사람은 한명도 없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선의의 경쟁이라고 입을 막았지만, 과잉된 경쟁으로 학우들 간의 우정에는 도리어 회복할 수 없는 상처가 생기게 되었고 결국 그것은 서로 반목하는 사태까지 도래케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난 지금 내 자신의 처우가 달랐으면 반목하지는 않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해 보았지만, 아직 마음이 여물지 않던 고등학생이던 나는 그 정도까지 처세가 좋지는 않았나 봅니다)
엎친 데 덮친 격일 까요, 2년간 고백을 몇 번 받아서 여자 친구들을 사귀다 해어지다보니, 더러 몇몇의 여학우들의 무리에서는 나를 곱지 않게 보는 시선들이 더욱이 가중되었습니다. 하지만 학교 내에는 내 친구‘들’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무리들이 있었고 그들의 품속에서 ‘대장’놀이를 하며 나는 하루하루 학교생활을 연명해 나갔습니다.
고3이 된지 1달이 지난 지금 학교운동장에 심어둔 벚꽃나무는 녹음이 맺히더니 벚꽃이 만발해 바람이 불 때마다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습니다. 이젤을 펴두고 정물화를 그리고 있던 나는 잠시 창가에 기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왜인지 오늘따라 이상하게 설레고, 소녀 같은 감수성이 무럭 솟아나 설레는 마음을 주체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열심히 그림에 정진하고 있나 순찰을 도시던 선생님이 우리 실기실의 문을 열자 창가에 멍하니 서있 던 나는 화들짝 놀라며 뒤늦게 정물을 챙기는 척 했지만, 선생님은 내 이름을 호명하시면서 손가락을 오므렸다 폈다 하셨습니다. 나는 쭈뼛쭈뼛 선생님 앞으로 걸어가 배시시 웃어 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머리에 쿵하고 내려찍는 꿀밤 이었습니다. 아픈 정수리를 부여잡고 서있는 나에게 선생님은 서류파일을 건네시며 나에게 학과교무실로 전해드리고 오라고 심부름을 시키셨습니다.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실기실을 나선 나는 학과교무실을 들렸다가 몰래 학교매점에 들릴 생각에 신이나 발걸음이 가볍기 그지없었습니다.
똑똑ㅡ 나무로 된 문을 형식적으로 노크 한 뒤 조심스럽게 열어 안을 살펴보았습니다. 좁은 교무실 내에는 대부분 빈자리로, 선생님들이 거의 다 수업에 나가 신거 같았습니다. 교무실 안에 들어가기 위해 신발을 벗어두고 서류를 전해드려야 할 2학년 담당 선생님의 자리로 가니, 학부형과 우리학교 교복이 아닌 교복을 입고 있는 여학생이 앉아있었습니다. 학부형과 무언가 말을 나누고 있던 선생님은 나를 보자 내 이름을 부르며 반기셨습니다. 건네는 서류를 받으시고 우악스럽게 큰 손으로 내 어깨를 잡아 흔드시며, 여학생을 가리키며 호탕하게 웃으시며 말씀하시길, “ 오늘 새롭게 전학 오게 될 김예진(가명)이야, 너 후배로 들어오니 앞으로 잘해줘야 한다?” 라고 물으시길레, 얼떨결에 “네”라고 답했습니다. 단 몇 분, 그렇게 나와 예진이의 첫 만남이 끝났습니다.
- 나에게 너무나도 많은 것을 가르쳐 준 사람. 이제는 부를 수 없지만 떠나보내야 하는 순간.
만약 내가 실기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나 벚꽃을 안보고 있었더라면?
만약 내가 실기시간에 선생님에게 꿀밤만 맞고 심부름은 다른 아이가 했더라면?
만약 내가 조금만 더 늦거나 빨리 가서 예진 이와 못 만났더라면?
하지만 이미, 나는 그 시간 그때 예진 이를 만나게 되었고,
하지만 이미, 나는 예진 이를 보면서 가슴 한편에 알 듯 하면서도 모호한 감정이 생기는 것을 느꼈을 지도 모릅니다.
실기 시간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점심을 먹고 반으로 돌아 가는 길. 우리 과 1,2,3학년 180명이 옹기종기 모여서 생활하다보니 얼굴들이 모두 낯익은 친구들 밖에 없었고, 친분이 있는 후배들은 형 혹은 선배라고 부르면서 장난치기를 일쑤, 평소와 같이 장난치면서 2학년 교실을 지나 우리 반을 가던 도중, 아이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낯선 교복을 입고 혼자 앉아있는 여학생이 눈에 띄었습니다. 통성명을 하지 못해서 아직 이름을 알지는 못하지만 아까 교무실에서 본 안면이 있으니 무작정 2학년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 안녕?”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없는 행동이지만, 그날 그때는 왜 그랬는지. 돌이켜 회상해보면 아마 가슴 한편에 요동치는 모호한 감정 때문 이였을 것이라고 치부 합니다.)
다짜고짜 옆에서 인사를 하자 예진 이는 화들짝 놀랐지만 곧 교무실에서 봤던 나인걸 알아보자 어색하지만 웃으면서 인사를 받아 주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선배 ”
친한 후배들이랑은 형, 동생 하다 보니, 존댓말이 낯간지럽고 쑥스러워서 얼굴을 붉히며, 책상에 걸터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어디서 전학을 왔냐. 왜 혼자 있냐. 등 일방적으로 내가 질문하고 예진 이는 드문드문 답하면서 대화를 이어나갔습니다. 같이 교실에 가던 친구들은 전학생과 이야기 나누는 나를 의아해 하면서 먼저 교실에 갔고, 나는 점심시간이 끝날 때 까지 예진이랑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짧은 인연, 교무실에서 점심시간까지 실제로 서로 얼굴을 본건 1시간 남짓, 근데 5교시 수업을 듣는 내 마음 한편에는 예진이의 이름 석 자가 너무나도 깊이 각인 되었습니다. 수업을 드는 둥 마는 둥 기계적으로 필기를 마치고, 어느새 마지막 수업까지 듣고 미술학원을 가기 위해서 가방을 매고 학교 정문을 내려갔습니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학원, 여느 때와 같이 이젤을 피고 가방을 풀어두고 화판을 걸고 도화지를 화판에 종이테이프로 붙이고 사비를 깎으며 실기를 준비하고 있는데, 학원 실기실 창문 너머로 낯익지만 낯선 교복을 입은 학생이 지나가는 것이 넌지시 보였습니다.
놀란 나는 버벅 거리며 창문에 매달려 학원복도를 걷는 여학생과 학부형을 보았습니다. 나중에 자초지종 들어보니 우리학교 선생님과 친분이 있는 원장이 운영하는 학원이다 보니 유달리 우리학교 학생들이 많았는데, 예진이 또한 학과 선생님의 추천으로 우리학원에 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학원에서까지 세 번 마주친 예진 이와 나는 필연처럼 선, 후배의 관계에서 벗어나 친구처럼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한 달, 두 달
고3의 시간은 화살 같다더니, 정말로 매일 하루 3시간의 숙면과, 미술실기, 공부로 나날이 피폐해져 갔지만 학교생활을 더없이 즐거웠습니다. 매일매일 예진 이와 두런두런 점심시간마다 학교 스탠드 그늘아래에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힘든 입시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만 같았습니다.
전학 온지 두 달이 지났지만, 예진 이는 친구를 쉽사리 못 사귀었습니다. 한 없이 밝고 쾌활한 아이였지만, 엮이고 엮인 실타래 같은 복잡한 집안문제로, 어릴 때부터 사랑을 유달리 받지 못해, 정서적으로 많이 불안전한 했고, 또래에 친구들에 비해 생각은 깊지만 사색이 많고,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해 동기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결국 왕따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나와 몇 명의 내 친구들은 그런 예진 이를 친 동생처럼 챙겨 주었고 예진이 또한 우릴 학원에서든 학교에서든 친오빠, 언니처럼 따랐습니다. 그런 예진 이와 나의 관계를 바라보는 선생님들 또한, 걱정을 하면서도 나에게라도 의지하는 예진 이를 보면서 쉽사리 우리 둘 사이를 갈라놓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무더위 속에 방학이 찾아왔습니다. 고3인 우리에게는 방학은 형식적일 뿐, 매일같이 실기실에 처박혀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늘어났을 뿐이었습니다. 고 2인 예진이 또한 여름방학 반을 맞이하여, 우리보단 덜 했지만 실기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평소보다 더 늘어났습니다. 나보다 3시간 더 빨리 마치는 예진 이는 8시에 집에 가야 했지만 또래 동기들 보다 미술을 더 늦게 시작 했다보니, 학원 문이 닫는 11시 까지 우리들과 함께 자기 스스로 남아서 더욱 실기에 정진했습니다. 내 옆에서 이젤을 펴두고 수채화 붓을 들고 낑낑대는 예진이가 귀엽기 그지없어서 때때로 나는 예진이의 그림을 봐주기도 하고, 그림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기도 했습니다. 자연스레 11시가 되어 학원에서 나오면 배고픈 배를 부여잡고, 집에 가는 버스를 타기 전에 짧디. 짧은 15분간 예진 이와 편의점에 가서 컵라면을 먹으면서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는 것이 또 하나의 낙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방학중순, 어쩌다가 약속이 잡혔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큰마음을 먹고 토요일 보충을 안가고 예진이랑 시내에 영화를 보러 가게 되었습니다. 예진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점심을 먹고, 가난한 학생 주머니 속을 탈탈 털어 영화표를 사고 뭐가 그렇게 좋은지 방긋 방긋 웃으며 시내를 거니는데, 우리 앞에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교복을 입은 여학생과 사복을 입은 남자가 손을 잡고 걸어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벤치에 앉아있던 우리 둘 다 그들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다가 예진이가 입을 땠습니다.
“ 선배! 나중에 선배도 졸업하면 우리 저렇게 되는 거겠죠?”
예진 이는 그 둘을 가리키며 나에게 물었습니다. 그때 까지만 해도 늘 고등학생으로써 예진이 옆에 있을 것 같던 내가 곧 있으면 수시니 정시니, 시험을 통해 대학생이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수험생인 것이 떠올라 보충을 안간 것이 씁쓸해진 나는 예진이의 말에 도리어 부정적으로 답하고 말았습니다.
“ 글쎄. 저 사람들은 손을 잡고 있는 거 보니 커플인데 우린 아니잖아? ”
내말에 뾰로통해진 예진 이는 한껏 볼을 부풀리며 투닥 거렸지만 곧 둘은 또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다가 영화를 보러갔습니다. 무슨 영화를 봤는지는 지금에서야 정확히 떠오르지 않지만 영화를 보고 나오니 해가 수평선을 향해 지고 있었습니다. 노을 지는 하늘아래 우리는 시내를 거니며 배고픈 배를 부여잡고 무엇을 먹을지 걷고 있었습니다. 저녁 시간이 되다보니 거리는 연인들로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와 아무 말도 없이 뭘 먹을지 서로 찾고만 있다가 예진이가 입을 말을 걸어 왔습니다.
“ 선배 ”
“ 응? ”
“ 선배는 내가 그냥 후배에요? ”
무슨 의미로 한 말인지, 사실 나는 그 당시에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마음 한편에 요동치는 설레는 감정보다, 고3이라는 수험생의 이성이 나를 옭아매고 있었고, 예진 이에 대한 마음 한편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우리는 선, 후배로써 있을 수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가던 길을 멈추고 애절하게 나를 바라보며, 내가 입을 때기만을 바라보고 있는 예진이의 모습을 보자 그 마음의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봄날에 휘날리던 벚꽃과 함께 찾아 온 설렘의 물결이, 기어이 마음의 벽을 뚫고 내 입 밖으로 표현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우리 둘은 선, 후배에서 연인이 되었습니다.
연인이 되었다고 해서 평소와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단지 둘이 붙어있는 시간과 남들 몰래 하는 문자의 내용에 붙는 칭호와, 내 핸드폰에 저장된 예진이의 이름이 여자 친구로 바뀌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붙잡히는 건 당연지사, 평소에 나를 싫어하던 동기들에 눈에 우리 둘의 관계의 변화를 들키고 말았습니다.
둘이 팔짱을 끼고 데이트를 하고 있는데 동기들과 길에서 마주치고 만 것입니다. 개학이 1주일 남은 지금, 들키고 난 다음날 바로 학원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고, 1주일 뒤에 개학을 하자말자 나는 담임선생님께 불려가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걸걸한 내 담임선생님은, 호탕한 성격 그대로, 내가 여자 친구를 많이 사귀었던 말 던 지금 힘든 예진 이에게 좋은 오빠 그리고 선배로써, 또 힘든 너의 고 3생활에 의지 할 수 있는 여자 친구로서 서로를 존중하며 오랜 사랑하라고 당부 주셨습니다. 연애가 금지된 우리 학교에서 혼날 줄 알고 잔뜩 긴장한 나는 그만 긴장의 끈이 풀어져 한숨을 내쉬며 교실에 왔습니다.
점심시간이 되기를 학수고대 하면서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드디어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밥을 빨리 먹고 늘 예진 이와 만나던 곳에 먼져 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분이 10분같이 느리게 흘러가고 예진이가 왜 이렇게 안 오나 초초 할 때 쯤 저 멀리 예진이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평소와 같이 예진아 부르면서 반겼지만 돌아오는 화답은 잔뜩 풀이 죽은 예진이의 대답이었습니다.
평소와 같이 활기차 보이려고 하지만, 눈에 띄게 풀이 죽은 예진이가 의아해서 단도직입적으로 캐물었지만 예진 이는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긴 나는 평소와 같이 재잘재잘 떠들었지만, 예진 이는 한 없이 우울해 보이는 것이 마음에 계속 걸렸습니다. 점심시간이 끝남을 알리는 타종이 울리고 예진 이는 힘겹게 입을 땠습니다.
“ 선배.. 오늘부터 우리 따로 만나지 마요.”
눈가에 그렁거리는 눈물을 참으며 힘겹게 말을 내뱉은 예진 이는 교실로 뛰어가 버리고 홀로 남은 나는 예진이의 말에 당황하며 곰씹고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사귄지 10일째.. 나는 그렇게 일방적으로 예진 이에게 이별통보를 받았습니다. 5교시 수업을 듣지도 않고 그날 수업이 다 끝날 때 까지 엎드려만 있었습니다. 왜 그럴까.. 대체 이유가 뭘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나는 학교가 마치자 말자, 예진이랑 친한 2학년 후배에게 연락을 해서 따로 만났습니다.
“ 예진 이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니? ”
이미 나와 예진 이에 관계에 대해서 아는 예진이의 친구는 말을 안 하려고 했지만 나의 거듭된 독촉에 못 이겨 입을 때기 시작했고 나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습니다.
내가 담임선생님께 불려 간 것처럼 예진이 또한 담임한테 불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진 이는 그 자리에서 담임에게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모멸적인 말을 들으며, 안 그래도 평소에 반에서 왕따를 당하며 아이들에게 많은 고충을 안겨주던 문제덩어리이던 예진 이를 담임은 신랄하게 비판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 또한 예진이 전에 학과 내에서 여자 친구를 사 겼던 적이 더러 있으니, 나 또한 예진 이와 엮어 신랄하게 비판하게 되었고, 담임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예진이의 부모님한테 연락하여 예진 이와 나를 신랄하게 비꼬아 예진이 부모님 까지 학교에 왔다 가셨다는 거였습니다.
-(당시 예진 이와 나는 부모님들에게 모두 말하고 교재하고 있었지만.. 담임의 신랄한 비판에 예진이 부모님은 딸의 안위가 걱정되어 우리 둘 사이를 갈라서게 만드셨습니다.)
예진이 친구와 이야기 하고 있는데 예진이가 저만치 멀리서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나는 예진이의 이름을 부르면서 사거리를 지나 예진 이에게 달려갔습니다. 당황한 예진 이는 나를 피하려고 했지만 예진이의 어깨를 우악스럽게 붙잡고 나는 처연하다 싶이 예진 이에게 외쳤습니다. 왜 이런걸. 혼자 짊어지려고 하냐고. 나에게 왜 감추는 것이냐고. 예진이의 대답을 듣기 싫다는 듯이 몰아붙이던 나는 예진이의 옷소매가 젖어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놀란 나는 그제야 예진이의 얼굴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울었는지 두 눈은 퉁퉁 부었고 옷소매는 눈물로 촉촉이 젖어 있었습니다. 당황한 나는 뒤로 물러섰고 예진 이는 그대로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버렸습니다.
그 후로 나는 예진이의 집 앞에 찾아가 수 시간을 기다리다가 쫓겨나기도 하고, 그리움에 사 묻혀 며칠 제대로 된 일상을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간은 흐르고 흘러 벌써 수시 철. 과잉된 경쟁은 서로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쌓게 되었고, 폐인이 된 나는 당시 나를 노리던 수많은 사람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습니다. 몇 명의 선동을 통해 나는 모범생에서, 문제만 만드는 나쁜 놈으로 찍혀, 내 친구들에게 까지 축출 당하게 되었고, 예진 이를 잃음으로써 나는 학교에서 입학 했을 때처럼 혼자가 되었습니다.
점심시간. 이젠 급식소에 밥을 먹으러 가지도 않고, 여느 때처럼 매점에서 빵을 사서 늘 예진이랑 이야기 나누던 장소에서 빵을 먹으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더 이상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친구들조차 사라져버린 홀로 된 상황, 이 같은 상황이 나를 더욱 예진 이에 대한 그리움에 사 묻히게 만들었습니다. 여느 때 처럼 무료하게 점심시간을 보내고 온 나는 수업이 시작하려면 10분 남짓 남았다고 표시하는 시계를 표독스럽게 바라보다가 귀에 엠피를 꽂고 책상에 멍하니 앉아있었습니다. 너무 심심해진 나는 그 당시 보던 미대입시(실기책) 이라도 볼 심상으로 책상 서랍에 손을 넣었는데 조그마한 비닐 랩에 정성스럽게 기름종이 하나하나 포장된 비타민제가 딸려 나왔습니다. 뒷면에 포스트잇으로 짧게 한마디가 적혀 있었습니다.
‘ 힘을 네요. 늘 지켜보고 있어요.
나는 눈물을 왈칵 흘리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엎드린 나는 흐느끼는 소리가 세어나가지 않기 위해 옷소매를 왈칵 깨물고 숨넘어가듯 참았지만,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예진 이에 대한 그리움과 내가지금 처한 상황에 대한 처연함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그동안 참고 있던 감정에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처연하게 울던 나는 엎드린 채로 각오를 다졌습니다.
다음 날,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나는 다시 전쟁 같은 입시 통에 홀로 몸을 내던졌습니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매일같이 악착같이 내 할 일 만 하면서 남들보다 더욱더 독하게 입시에 매진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태연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보이게끔 더욱더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잠자리에 누우면 예진이의 얼굴이 떠올라 잠을 설치기 일 수였습니다. 사람이 정말로 그리우면 꿈에도 나타난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경험 했습니다. 몇 날 며칠 예진 이와 웃고 떠들던 모습이 꿈에 나타나 나를 괴롭혔습니다.
힘들지만 책상 한 어귀에 붙여둔 예진이의 쪽지를 보면서 매일같이 각오를 다지면서 입시에 열중했습니다. 이젠 친구조차 한명 없는 공간이지만, 나의 각오는 흔들림 없이 수시 철까지 이어졌고, 나는 동기들 보다 훨씬 좋은 조건에 대학에 모두 합격하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8개의 수시원서를 쓴 대학교에 모두 합격하고 지방이기는 하지만 미술대학으로는 내놓으라는 대학교에 3개나 붙은 나는, 모두 앞에 당당해 질수 있고 예진 이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었습니다. 수시철인 한 달간은 학교를 안 나가고 고 3 수험생들은 실기를 위해 미술학원에서만 지냈는데, 한 달 만에 찾아간 학교 첫날에는 예진 이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 나에게 힘이 되어주고, 나에게 행복을 주고, 끝끝내 나에게 용기를 준 존재
만약 내가 조금만 더 빨리 합격해서 학교를 갔었으면?
만약 내가 합격발표하기 전에라도 연락을 했었으면?
그 일을 막을 수 있었을 가요..?
한 달 만에 학교를 찾아간 둘째 날 나는 왜 첫째 날에 예진 이를 못 만났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모두 쉬쉬 했지만...
내가 학교 로 온 첫째 날.. 예진이가 무단결석을 해서 의아해 하던 담임선생이 집에 전화를 하니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아서 이상하게 여기고 있는 차에 예진이 어머님한테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병원인데 예진이가 입원해서 당분간 학교에 가기가 힘들 거라고.. 자초지종 세세한 상황 까지 아는데 애법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시간이 흘러 내가 알게 된 사실은..
나랑 헤어진 예진 이는.. 그나만 있던 친구 두 명과도 멀어져 버리고, 스스로가 안 어울리고 홀로 생활하게 되었는데, 평소 예진 이를 아니꼽게 보던 친구들이 나라는 놈이 사라져, 괴롭힐 수 있게 되자, 예진 이를 무잡히 하게 괴롭히게 되었고. 예진 이는 학교 선생에게 괴롭힘을 당한다고 호소했지만 예진이가 평소에 왕따 당하는 것을 아니꼽게 보던 선생은, 도리어 예진 이에게 문제는 너에게 있다면서 혼을 내게 되었고, 전적으로 의지할 곳이 없어진 예진 이는 .. 끝끝내 방안에서 큰 가위로 자기 손목을 긋게 됩니다.. 아침에 학교 갈 시간이 되어서도 딸아이가 일어날 생각을 안하자 의아하게 여긴 부모님이 방문을 따고 들어가 보니 이미 침대시트는 피로 물들어 있고 예진 이는 생명이 위험할 정도로 출혈이 심각했다고 합니다. ..
뒤늦게 모든 사정을 알게 된 나는.. 예진이가 퇴원 할 때쯤에야 돼서야 병원을 찾아가게 되었지만 예진이의 부모님의 저지로 예진 이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저 손목에 붕대를 찬 채 부모님과 실랑이를 버리고 있는 나를 바라보는 문 너머의 예진 이를 본 것이 전부 이었습니다.
그 사건 이후에 겨울방학 직전에 예진 이는, 퇴원을 하고 학교에 출석을 하지 않다가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됩니다.
겨울방학이 며칠 남지 않은 이 시점, 학교에는 나를 포함해 수시에 붙은 학생 몇 명만이 출석을 하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실기를 위해 학원을 가있어 교실이 텅텅 비어 있었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쉬는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나는 곧 방학이 다가오니, 집에 가져갈 짐을 챙기기 위해 사물함을 열었습니다. 아끼는 책들을 꺼내 차곡차곡 가방에 넣고, 내가 쓰던 컵을 넣는데 컵 아래에 편지 하나가 있는 게 눈에 띄었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집어 뜯어 읽기 시작했습니다.
- 오빠
- 오빠는 한창 수시 준비 때문에 한창 힘들겠지?
- 힘네 오빠! 오빠는 워낙 굳건한 사람이기 때문에 잘 해처나갈 거라고 믿어!
- 오빠! 비타민제는 하루에 하나씩만 먹어야해 또 맛있다고 많이 먹으면 안 돼!
- 오빠.. 우리 힘들지만 조금만 더 참자! 참고 우리 졸업하면 그때 다시보자
- 오빠 나는 아직도 오빠를 정말 사랑해.. 하지만 말 할 수 없어서 나도 답답해 하지만
- 이게 오빠를 위한 길이라 는걸. 난 굳게 믿어.
마지막에 적힌 날자는 내가 학원에 한 달간 나가있던 마지막 주중 이였습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빨리 이 편지를 봤었더라면.. 나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 못하고
주변에 눈초리를 신경 쓰지도 않고 소리 내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뒤편에서 평소에 나를 싫어하던 여학생 한명이 ‘꼴깝떠네’ 라고 말하는 게 귓가에 들려와 이성을 잃고 여자애를 때려버려서 방학하기 몇 일전에 학생부에 불려가 큰 수모를 겪고, 부모님들이 학교에 오시는 고초를 겪고 말았습니다.
겨울방학이 되어서, 사방팔방으로 예진 이에 대한 행적을 찾아보았지만, 핸드폰 번호는 없는 번호라고 뜨고, 집에 찾아가 무작정 대문 앞에 서성여도 만날 수 없고, 도리어 예진이 부모님을 만나 큰 고초를 치르기 일 쑤, 도저히 연락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방학이 끝나고, 졸업식을 앞뒀지만, 나하나 반겨주는 사람 없는 곳에 나는 가기 싫어 졸업식을 가지 않았습니다. 하루 이틀 시간은 흐리고, 나는 예진 이에 대한 행적을 찾다가 포기하고 대학교를 가기 위해 윗 지방으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하게 된 나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하는데 화들짝 놀라버리고 맙니다.
예진 이와 비슷한 키에 비슷한 외모를 한 아이가 신입생이라고 앉아있는 겁니다.
처음에는 너무나도 당황해서 그 아이 주변만을 맴돌았습니다. 성격을 하나하나 알아나가면서 예진 이와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하는 행동, 외모까지 사사로운 부분이 어쩌면 콩깍지 일지도 모르지만 너무나도 많이 겹쳐 보였습니다.
예진 이와의 추억을 마음깊이 간직하기 위해서 쪽지하나, 포스트잇 까지 모두 고이 모셔두었지만 한편으로는 예진 이에 대한 미련을 떨쳐내기 위해서 이 여자 저 여자 쉽게 연애를 했습니다. 나를 조금이라도 좋다고 하면 사귀기 일쑤, 그리고 쉽게 해어졌지요.. 그 과정에서 자취방에서 동거를 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여자친구들에게 그러면 안 됀 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쁜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내 스스로가 의지할 곳이 너무나도 필요했기 때문에 쉽게 만나고 쉽게 해어졌습니다..
연애를 해도 예진 이에 대한 향수는 쉽게 걷어지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예진 이와 닮은 아이와 친한 친구가 되어, 시간이 같이 많이 할애하다보니 더욱이 힘이 들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나 스스로의 관리를 손을 놨습니다. 평범하던 나는 하루가 달리 추악스러워져 갔지만, 사람은 그렇게 쉽게 망가지지 않는 다는 것을 여실히 느꼈습니다. 조금씩 망가져 가던 나는 오랜만에 예진이 꿈을 꾸게 됩니다. 잠을 자고 있던 내가 예진이 꿈을 꾸고, 소리를 지르면서 기겁하면서 깨자 컴퓨터를 하고 있던 여자 친구는 겁에 질려 나를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그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당분간 연애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예진 이와 닮은 그 친구에게는 학기 초부터 예진 이를 보는 듯 한 애틋한 감정 때문에 모든 것을 잘해 주었습니다. 배고프다면 밥을 해주고, 과제를 해주고, 곧잘 선물도 잘하고, 희생도 감소하고, 화가 나도 참고... 성격은 판이하게 다르지만 예진 이를 보는 것만 같은 느낌 때문에 나는 매번. 어쩌면 그 아이에겐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예진이라고 생각 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다시 예진이의 꿈을 꿉니다. 그날따라 예진이 닮은 친구와 지나치게 술을 많이 먹은 날이었는데, 꿈을 꾸다가 눈을 뜨니 그 친구가 침대에서 자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꿈에서 본 모습이 내 눈앞에 있는 친구의 얼굴과 겹치면서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아.. 나는 도대체 이 친구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 친구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진 이에 대한 향수 일지, 아니면 순전히 이 친구를 좋아하는 것인지..
만약 예진 이에 대한 향수 일 뿐이면, 내가 이 친구에게 너무나도 큰 죄를 짓는 것만 같아서 조심스러워 졌습니다.
밥을 같이 먹고, 같은 시간을 보내고, 같은 공간에 있기를 일쑤..
주위에서는 둘이 사귀냐고 묻는 사람도 많았지만 우린 그냥 친구라고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최근에 나는 그 친구에게 내 마음을 표시 했지만,
그 친구는 친구로서 남자고 고개를 도리질 했습니다. 나는 집에 돌아와 혼자
내가 왜 그랬는지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예진 이에 대한 향수가 짙어진 나를 채찍질 했습니다.
나는 이제 모르겠습니다.
그 친구를 사랑하는 것인지.. 단순히 예진 이에 대한 그리움 인지..
아니 사실은 압니다..
그 친구를 사랑하지만.. 사랑해서 바라보고 있으면.. 예진 이와의 기억이 떠올라 나를 너무나도 괴롭게 합니다..
그 친구에게 마음을 표한 날 술을 진탕 먹고 일어나 거울을 보니.. 너무 망가진 내 모습이 거울에 비췄습니다. 부산에서 들고 온 책상 한 어귀에 붙어있는 예진이 쪽지를 오랜만에 뒤져보면서. 다시 한 번 나 스스로를 다잡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나 스스로를 다시금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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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긴대학이니 디시인사이드니.. 어릴 때부터 정말 많은 사이트들을 봐았습니다. 요세 페 네이트판이 젋은 여자들 사이에서 인기 있다는 것을 느끼고 이렇게 또 글을 적네요.. 예진이(가명)과 함께 있던 일을 최대한 다른 제 3자가 봤을때 나와 예진이가 누군지 감을 못잡을 정도로만 서술 했습니다.. 혹 누군가 우리둘인걸 눈치 채면 제 3의 피해가 있을까봐 두렵네요.
예진이가 이글을 본다면 필히 우리 이야기 인 것을 알 것입니다.
밤새 이렇게 긴 글을 적어 내리다보니 머리가 지끈 거리고 아프군요..
마지막에 거론한 여 학우를 사랑합니다.
요 몇일.. 계속 고민했습니다. 사랑일까 그리움 일까.
내가 내린 답은 결국 사랑입니다.
처음에는 예진이를 잊기 위해서 시작한 막무가내 연애가, 나중에는 그친구를 나중에 내가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나라면 날 받아 줄 수 있나? 라고 끝맺음 지더군요..
이젠.. 정말 순수하게 한때 사랑했던, 그리고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으로써 그 친구의 연락이 기다려집니다.
잘지네고 있을지.. 보고 싶을 뿐입니다.
예진아 잘 지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