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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각] 팬덤 수난시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이었다. 기온도 제법 올라가, 눈은 내리지 않았다. 엔젤은, 그리 멀지 않은 인슬의 오피스텔로 걸어가고 있었다. 투둑거리며 땅이 젖는 소리가 꽤나 낭만적이다. 투명한 우산에 털어지는 빗방울들이 엔젤의 마음을 간질였다.
삼십분 전쯤, 전화가 울렸다. 요란스러운 벨소리에 습기 찬 방안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엔젤이, 벌떡 일어났다. 여보세요, 야, 방엔젤. 어? 김인슬 너 웬일. 너 우리 집 놀러올래? 놀러 가는 건 상관없는데, 왜. 아, 오늘 우리····· 야, 끊어, 끊어. 빨리 와라.
황당하게 끊긴 전화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엔젤은, 허탈하게 웃으며 나갈 채비를 했다. 세수도 하고, 양치도 하고. 옷장을 열어 아무거나 집었다. 대충 약간의 보랏빛이 도는 후드티에 패딩을 껴입고, 조이지 않는 청바지에 발을 끼워 넣었다. 하늘색 바탕의 파란 줄이 찍찍 그어져 있는 양말을 조금은 비몽사몽하게 신었다. 그 바람에 양말을 다시 백팔십도 돌려야 했다. 피곤했지만, 심심했다. 현관 쪽으로 가서 문을 열고 나갔다. 아파트 복도 공기는 차가워 소름이 돋았다. 문을 잠그고 정문으로 나가 인슬의 오피스텔 방향으로 향했다.
“얘는 왜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그러고 보니 자신은 이유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인슬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 자기 자신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평소 인슬의 집에 시간이 나면 종종 놀러가곤 했었다. 그러나 이렇게 막, 아무 때나 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생각해 보면 인슬과 그렇게 깊은 관계의 친구도 아니었고, 친분을 쌓은지 그렇게 오래 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집을 나서는 이유는, 엔젤이 인슬을 신뢰하는 이유는, 교감, 정도.
그렇게 잡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인슬의 오피스텔 앞으로 도착했다. 몇 호였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긴 복도형식으로 되어 있는 까끌한 재질의 바닥을 걸었다. 문 앞에 다다르자,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하는 소리와 함께 어어, 기다려, 하는 인슬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달칵, 문이 열리고 인슬이 엔젤을 맞이했다.
“왔네.”
“근데, 갑자기 왜.”
“일단 들어와. 밖에 안 춥냐?”
엔젤은 자신의 말을 가로챈 인슬의 권유를 흔쾌히 승낙했다. 밖은 생각보다 꽤 추웠다.
“와, 따뜻하네. 보일러 틀었어?”
“틀긴 틀었는데,”
“밖에가 추워서 그런가.”
화장실에서 손부터 씻었다. 워낙 청결함을 중요시하던 엔젤이라, 남의 집이던, 자신의 집이던 손부터 씻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손에서 나는 비누향이 지극히 인슬스러웠다.
“근데 진짜, 왜 부른 거야.”
“심심해서.”
“뭐?”
“심심해서 불렀다고.”
얘가 왜 이런대. 지금 엔젤에겐 모든 게 다 ‘갑자기’ 였다. 인슬이 자신을 오피스텔로 부른 것도, 부른 이유도, 인슬이 갑자기 이러는 것도. 갑자기 닥쳐온 일이라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넋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인슬이 건넨 말에 다시 정신을 차렸지만, 그의 돌발행동(으로 인식됨)은 계속해서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아, 뭐하고 놀까.”
“그것도 생각 안 해놨냐?”
“뭐 데이트도 아니고 남자 둘이서 노는 건데.”
“웩, 데이트래.”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머저리야.”
티격태격하며 말다툼이 오고간다. 서로 대하는 본새가, 꽤나 사이 좋아 보인다.
“흠····· 영화나 볼래?”
“무슨 영화?”
“그, 뭐지. 얼마 전에 나온거.”
“얼마 전에 나온 게 한둘이냐?”
“무슨, 팬텀 수난시대? 그거. 김소원하고 이샤월인가? 걔네 나오는 거 있잖아.”
“그거 상영 끝나지 않았어?”
“돈 없는 서민한테는,”
인슬은, 자신의 노트북쪽으로 눈짓했다. 슬쩍 미소 짓자, 엔젤이 궁금한 얼굴을 띄운다.
“불법 다운로드가 있잖아.”
“하····· 팬덤 수난시대야. 팬텀 수난시대 아니고.”
그러든가 말든가. 인슬이 몸을 돌려 자신의 노트북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노트북을 켜더니, 암호를 치고 뜨는 바탕화면에 재빨리 컴퓨터 마크를 더블클릭했다. D드라이브에 있는 ‘영화’ 폴더에서 딱 보기에도 용량이 대단해 보이는 ‘팬덤_수난시대.avi’를 켰다. 곰플xxx 창이 뜨더니 검은 화면을 전체보기로 바꿨다. 천천히 들려오는 웅장한 음악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엔젤은 긴장을 했더랬다. 비록 영화관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오랜만에 보는 영화였기에, 7층의 8관에서 보는 영화와 맞먹는 기분이었다.
“오, 재밌겠네.”
노트북에서 하늘색 머리칼을 가진 여리여리한 남자가 등장했다. 딱 봐도 굉장히 말라 보이는 다리와 허리선을 가진 남자라고 칭하기도 힘겨운 소년이, 분홍빛 머리의 남자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여보.」
아, 게이영화였던가. 이런 걸 왜 보자고 한 거지. 엔젤은 인슬의 의도가 몹시 궁금해졌다. 얘가 이런 쪽 취향인건가. 그럴리는 없는데. 문득 엔젤은 인슬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자신이 혼자 추측한 인슬의 성취향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인지, 아니면 갑자기 전화해서 이런 영화나 보여주고 앉아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눈을 반짝이고 있는 남자에게 드는 배신감인지. 그것은 구별하지 못했지만, 옅은 배신감이 짙은 곳에서부터 끓어올랐다.
짜증난다.
“야,”
“뭐.”
“우리 집에 콜라 있거든? 가져올 테니깐 보고 있어.”
그래 뭐, 무슨 영화면 어때. 그냥 재밌어서 쟤도 다운로드 하고 처음 보는거겠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기엔 의문점들이 많았지만, 엔젤은 대인관계가 틀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신뢰도는 떨어지더라도, 허울 좋은 친구관계로 남더라도.
「그냥 가자면 가지!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아!」
이 영화도 시간 꽤 잡아먹는 영화구나. 꼭 이런 것들이 있었다. 내용은 얼마 없으면서, 괜한 클로즈업, 뜸들이기 덕에 용량만 커지는 것들. 그럼에도, 재미는 있다. 하긴, 시나리오에 자신이 없으면 쓸데없이 시간 쓰지도 못하겠지. 영화는 이미 십팔분의 일쯤 진행된 상태였다.
「뭐야, 진짜 뭐가 있어?」
화면 속 남자가 당황했다. 남자가 등치만 커서 그게 뭐냐. 머리는 저런 핫핑크색····· 으으. 자신의 머리색도 평범하진 않으면서 괜히 미간을 찌푸리는 엔젤이었다.
「아, 됐어. 가기 싫음 말아.」
「아니야, 그냥.」
「간다고? 너 분명히 간다고 했다?」
왜 저래. 오글거려. 딱히, 재미는. 자신도 모르게 엔젤은 영화에 빠져들고 있었다. 한편으론 게이영화라는 거부감에 계속해서 혹평을 내리고 있어 눈치채지 못했지만, 꽤 재밌어하고 있었다.
“야, 콜라 마셔.”
뒤에서 들리는 인슬의 목소리는 하찮다는 듯이 뒤로 손만 뻗어 콜라가 담긴 컵을 받았다. 야, 조심해서 들어. 흘리지 마. 귀찮다는 듯 대충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엔젤이, 의식하지 않은 컵을 자신의 입가로 가져다 댔다. 화면 속에 있는 남자들은 대충 노래방에 가려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핫핑크색 머리 남자의 배에는 은근슬쩍 흐릿한 복근이 자리해 있었다. 얼씨구, 몸은 좋네. 옆의 마르다 못해 비리비리한 인상을 주던 남자는, 어느새 가슴팍쯤에 shine이라는 문구가 써진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모자를 쓰니, 귀여운 듯도 했다.
“오, 몸 좋네.”
옆에 있던 인슬이 턱을 괴고 뱉은 말이었다.
이유는 몰라도, 엔젤은 시선이 자동적으로 인슬에게 향했다. 졸지에 엔젤과 눈이 마주쳐버린 인슬이 말했다.
“야, 너 크냐?”
“뭐?”
“너 크냐고.”
엔젤이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누구나 생각하듯 남근의 크기를 묻는 것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이런 쪽으로 생각이 드는 것에 내가 타락했구나, 싶은 엔젤의 뺨이 조금 붉어졌다. 티 나지 않게 마음을 추스른 엔젤은 무덤덤하게 답했다.
“그렇지, 난 쿰이 크지.”
오히려 엔젤의 대답이 재치, 를 보여주었다. 그러자 흥미가 붙은 듯 인슬이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너 야동 봐?”
“그럼 이 나이에 안 볼 것 같냐?”
“어느 나라 꺼 보는데?”
“그런 거 묻지 마, 임마.”
“첫 경험 언제야?”
“아, 내가 엄마한테도 말 안 한걸 너한테 말해야겠냐!”
이 변태. 참····· 왜 이러는지 몰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엔젤은 콜라를 두 모금 더 마셨다. 영화 속 남자들은 택시를 타고 있었다. 그리고, 의식을 잃고 엔젤은 뒤로 쓰러졌다.
야, 미친, 김인슬 너 콜라에 뭘 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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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겠네요 이건 언더로 옮겨지고 다른건 삭제되고 일단 겨울비 시리즈 올림다...흑흑
역시 난 표지는 흑백이 좋은가봐여....흫
해품달 재밌네요 다같이 트윗을 합세다 아개이트 빡친다진짜 이게 뭐가야하다고 슈ㅣ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