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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공리 그것에 따라 사람은 존재하게 된 것이다. 변명은 소용없는 짓이다.

한재영교수 |2012.02.10 00:46
조회 19 |추천 0

변명은 소용없는 짓이다. 다만 선택을 행하는 주권자의 뜻에 따를 뿐이다. 

선택공리 그것에 따라 사람은 존재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면서도 실제로 따르지 않는 만고의 원칙이란 『선택공리(Axiom of Choice)』라는 것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고들 하지만 배려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배려란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씀이다.

배려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Thank you very much for your kind consideration.)

그의 지나친 배려가 오히려 부담스럽다.

(His solicitousness for me is too much.)

나는 교수님의 배려로 가까스로 낙제를 면했다.

(Thanks to the professor's special consideration.)

그는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배려하는 데 서투르다.

(He's not very considerate of other people's feelings.)

여기에 집합 A=(1,2,3,4,5}가 있다고 하자. 태자 담덕을 상징하는 1을 선택하여 꺼낸 다음에 담덕(1) 「너는 황제라고 불린다.」다고 한다면 그는 광개토대왕이 된 것이다. 장군 덕담(4)을 선택하여 『너는 하늘 아래 없을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는 단칼에 하늘 위에 있게 된다. 담덕은 선택하는 사람의 배려로 국왕이 됐지만 덕담은 또 다른 배려로 유명을 달리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허망한 인간사를 뒤로 하고 다음처럼 말해보자.

「이 집합의 원소들 가운데 어떤 것을 꺼내어라. 꺼낸 것을 칠판에 써보아라.」

그랬더니 지시를 받은 한 학생이 3을 칠판에 써놓았다.

아무도 주어진 집합에서 하나를 꺼낼 수 있는지, 그것이 왜 하필이면 3인지 모른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행위의 결과를 선택공리라고 한다. 이런 행위는 증명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수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져왔다. 근래에 들어서는 선택공리를 증명했다는 사람들이 가끔 신문지상에 보도되기도 한다. 어떤 식으로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가에 대하여는 의심이 갈 것이다.

「선택공리가 없어도 설명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선택공리는 자명한 진리이다.」

『어느 목회자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다. 그는 100년 신앙생활에 하나님이 없이 되는 일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하나님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만나본 바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존재하신다.』

예를 들어 1,2,3,4,5,6,7로 상징되는 7명의 학생이 수학과목을 수강했다고 가정해보자. 5번(영자)을 선택하여 C학점을 주었다고 해보자.

「선생님, 왜 하필이면 접니까? 다른 친구 모두는 A학점인데요?」

이 학생은 단 하나의 우주의 원리를 몰랐던 것이다.

7명 중에서 하나 정도는 C학점을 주어야 하고, 그 선택된 사람이 바로 자기였다는 것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선택된 당사자는 자기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산택된 것이다.

선택된 자는 『왜 나인가』라고 항변을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구차스러운 변명을 늘어놓는다 하더라도 별무 소득이다. 그렇지 않다면 영원히 살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성전의 욥기에서 선택공리에서의 주권자(선택하는 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는 이른바 『잘못을 하면 벌을 받는다.』라는 사상에 대해 정면으로 반대하고 있다.

누가 누구에게 잘못을 했다고 정죄할 수 있으며, 누가 자신은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는 것이며,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에 달려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의 견해로는 변명은 소용없는 짓이다. 다만 선택을 행하는 주권자의 뜻에 따를 뿐이다.

인간으로서의 인간에게 잘잘못을 재판받아서는 안 된다. 만약, 악한 자에게 심판을 받게 되면 무조건 용서를 빌어라. 그런 자들에게는 배려는 기대할 수 있으나 다른 사람의 운명을 선택지울 만한 용기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선한 자에게는 배려를 기다려라. 그런 자들은 그 자신도 이와 같은 곤란한 처지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선한 자가 악한 자가 되는 경우는 없으며 악한 자기 선한 자가 된 적은 역사적으론 있을 수 없다.

빅톨위고와 백과사전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명언 모음집이 생긴다.

「모든 생은 하나의 전투이기 때문에 일리아드는 위대하다.」

「모든 생은 하나의 여정(나그네)이기에 오디세이는 위대하다.」

「모든 생은 하나의 수수께끼이기에 욥기는 위대하다.」

「욥기는 인간의 마음에 대하여 쓴 최대의 걸작이다.」

그들의 하나님을 원망 않고 신앙은 공리가 아닌 것을 증명하는 의인의 존재에 의해 하나님의 영광이 오르는 것이라는 뜻이다. 신앙은 인간이 주관하는 선택공리가 아니라 그들의 하나님이 행하는 선택공리라는 말이다. 

이 글을 읽는 모두는 『수학으로 하늘의 문을 열어라』에 동의 하시리라 믿으며 또 다른 수학을 배우기로 하자.

정리1: 함수 f(x)가 폐구간 [a, b]에서 연속이면 f(x)는 [a, b]에서 최대값과 최소값을 갖는다.

정리2: 함수 f(x)가 x=a에서 극대 또는 극소가 되고 f'(a)가 존재하면 f'(a)=0이다.

문제1: 함수 f(x)=x^3은 모든 점에서 미분가능하고 f'(0)=0이지만 x=0에서 극값을 갖지 않는다.

문제2: 폐구간 [0, 2]에서 정의된 함수 f(x)=-x^3+3x의 최대값과 최소값을 구하여라.

풀이: f(x)=-x^3+3x는 [0, 2]에서 연속이므로 최대값과 최소값을 갖는다. 구간 (0, 2)에서 f(x)는 미분가능하고 f'(x)=-3(x^2-1)이다. 따라서 (0, 2)에서의 f(x)의 임계점은 x=1이다. 그러므로 f(x)의 최대값과 최소값은 x=0, x=1, x=2의 함수값 중에서 존재한다. 그런데 f(0)=0, f(1)=2, f(2)=-2이다. 결과적으로 최대값은 f(1)=2이고, 최소값은 f(2)=-2가 된다.

http://blog.hani.co.kr/hanjy9713/44578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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