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여행] 불인지심(不忍之心)을 만난 김제 벽골제
...날이 새면 우리 김제 만경 들녘 보러 가세
지평선이 이마를 치는 곳이라네, 자네는 알고 있겠지
들판이야말로 완성된 민주대연합 아니던가...
좋아하는 시인의 시에서
처녀 젖가슴 만지 듯
상상만 해 본 김제평야를 향한다.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3대 저수지로 배운 곳...
(가장 오래되었다는 김제 벽골제와
제천 의림지, 밀양 수산제를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3대 저수지^^)
쌍용 전설을 모티브로 만든 조형물이 눈에 들어온다.
5층 빌딩 크기라는데
문화재청은 김제시가 내놓은 ‘임진년의 용, 벽골제 쌍용으로 부활하다!’ 를
올해 체험답사 우수 콘텐츠(생생 문화재)로 선정했다고 한다.
민속놀이 '벽골제 쌍용놀이'는
단야의 넋을 위로하는 진혼제였는데 지금에는 극화로 꾸며졌다.
이는 벽골제 축제공사, 쌍룡의 싸움, 단야의 희생, 그
리고 단야의 소원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단다.
쌍용 설화: 신라 원성왕 때의 일이다. 김베 벽골제를 쌓은 지가 오래 되어 붕괴 직전에 놓이게 되자, 나라에서는 ‘원덕랑(元德郞)’을 보내어 보수공사를 하도록 했다. 이에 덕랑과 김제태수 ‘유품(由品)’은 백성들에게 부역을 시키며 밤낮없이 공사를 진행시키고 있었는데, 갑자기 천둥과 번개가 일면서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쳤다.
겁에 질린 백성들은 “이러한 공사를 하려면 예로부터 처녀를 용추에 넣어 주고 청룡을 달래야 하는데, 원덕랑이 우리말을 듣지 않아서 이렇게 되었다”고 원망했다. 벽골제 아래 원평천 용추에는 착한 백룡이 살고 있었고, 연포천 용추에는 심술 사나운 청룡이 살고 있었다. 화가 난 청룡이 사람들을 해치고 벽골제를 무너뜨리려 하자 백룡이 나타나 청룡을 가로 막았고, 두 용 간에 피나는 싸움이 벌어졌다. 백룡이 패하여 어디론가 물러나 버리자 청룡의 기세는 한층 더 높아졌다.
마침내 유품과 백성들은 원덕랑의 약혼녀 ‘월내’를 몰래 용추에 넣기로 했다. 그런데 원덕랑을 짝사랑하던 유품의 딸 ‘단야’는 이 사실을 알고 고민 끝에 자신이 대신 희생하기로 결심한다. 월내 방에 대신 누워 있던 단야는 보쌈을 당하여 결국 청룡에게 먹히고, 그와 동시에 비가 그치며 청룡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후 보수공사는 완전하게 준공을 보게 되었다. 이후 김제 고을 백성들은 단야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소복을 한 아낙네들이 연포천 용추에 수없이 모여 들어 진혼제를 올렸다고 한다.
벽골제 쌍룡놀이는 전설적인 요소가 매우 강하며, 논농사 시대에 접어든 초기에 발생한 향토신사로 생각된다. 수리관개는 삼국시대 때부터 있었던 일로, 전국에서 가장 넓은 호남평야의 한 가운데 있는 벽골제는 특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사전 자료]
벽골지문을 지나면...
동양최대 최고를 자랑하는 백제시대 축조된 수리시설, 벽골제가 보인다.
백제 비류왕 27년에 축조된 벽골제는
일제 강점기 군량미 확보를 위한 식량증산의 일환으로 농토화가 되었으며
현재는 5개 수문 중 장생거와 경장거 수문과 일부 제방만이 남아 있다.
벽골제(碧骨堤)는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에 위치한 저수지로 대한민국 저수지의 효시이다. 축조 시기는 백제 비류왕 27년(330년)으로 추정되나, 그보다 좀 더 후대일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 인종 때 수축하였다가 인종 24년(1146년)에 왕의 병이 벽골제 수축 때문이라는 무당의 말로 일부를 파괴한 일이 있다. 태종 15년(1415년)에 국가적인 대규모 수축공사를 일으켜, 군정 만 명이 2개월 동안 주위 7만 7,406보, 높이 17척의 제방을 수축하여 몽리 수전은 충청도, 전라도에 걸친 방대한 지역으로 9,800결에 달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관리, 유지가 전폐된 이래 농민의 모경으로 지금은 거의 경지화되고 말았다. 이때의 석조수문과 기념비 등의 유물이 남아 있어 1958년에 기념비(1433년)를 사적 제111호로 지정하였다. 이후 벽골제의 남쪽을 호남 지방, 서쪽을 호서 지방으로 부르고 있다.
제방은 포교마을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월승리에 이르는 평지에 약 3.3km에 달하며, 제방 높이는 5.6m이다. 댐형식은 흙댐(필댐)이다. 관개면적은 10,000ha로 추정된다.[백과사전 출처]
이러한 벽골제는 관광객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김제 지평선 축제’를 열면서부터다.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었던 벽골제는 김제시가 지난 99년 ‘지평선축제’를 처음 기획해
축제의 주무대로 활용하면서 지역주민이 향유하는 문화재로 가치를 높여나갔다.
봄길 / 김명인
꽃이 피면 마음 간격들 한층 촘촘해져
김제 봄들 건너는데 몸 건너기가 너무 힘겹다
피기도 전에 봉오리째 져내리는
그 꽃잎 부리러
이 배는 신포 어디쯤에 닿아 헤맨다
저 望海 다 쓸고 온 꽃샘바람 거기 부는 듯
몸 속에 곤두서는 봄 밖의 봄바람!
눈앞 해발이 양쪽 날개 펼친 구릉
사이로 스미려다
골짜기 비집고 빠져나오는 염소떼와 문득 마주친다
염소도 제 한 몸 한 척 배로 따로 띄우는지
萬頃(만경) 저쪽이 포구라는 듯
새끼 염소 한 마리,
지평도 뿌우연 황삿길 타박거리며 간다
마음은 곁가지로 펄럭거리며 덜 핀 꽃나무
둘레에서 멈칫거리자 하지만
남몰래 출렁거리는 상심은 아지랑이 너머
끝내 닿을 수 없는 항구 몇 개는 더 지워야 한다고
닻이 끊긴 배 한 척.
첫해 축제를 개최할 때만해도 벽골제는 잡초만 무성한 황무지 땅이었으며
지난 91년부터 벽골제 복원사업을 추진해
단야루, 단야각, 농악전수관, 농경문화박물관을 건립하고
벽천 나상목 화백의 유작을 모은 벽천미술관을 개관하는 등
축제를 통해 무에서 유를 창출한 공간으로서
명실공히 시민들의 휴식처로 탈바꿈하기에 이르렀다.
식욕, 성욕, 수면욕, 명예욕...
무엇이 가장 지겨운 욕망일까?
지평선한우...명품관?
고기 굽는 냄새에 이런 엉뚱한 질문을 한다,
불혹을 넘겼다는 사내 ㅋㅋ
늘 예감에 시달렸지 또 다시 한철이었네 한 철 가고 있
네 마침내 오고 말았네 햇빛 먼저 닿았던 동쪽부터, 웃자
랐던 즐겁고 행복했던 날들부터 풀잎들 시들기 시작하
데 속도가 빠르데 서쪽에 이르러선 잠시 이별을 달래데
노을 붉데 서쪽 바다, 제 몸이 무거워 그만 수평선 아래
로 한참을 걸려 무겁게 몸 누이는 해, 그를 만난 적도 있
네 그렇게 가버린 많은 한철들 하얗게 서리 내린 김제 만
경 비인 들판 새벽길로 다시 한철 가고 있네 슬픔 깊으니
나 오래 머물 수 있겠네 한겨울 깊게 머물 수 있겠네 욱
신거릴 수 있겠네 철 나겠네 움 하나 짓겠네
연애시절/정진규
해질녘, 역광을 받으면
흑룡의 해...임진년에 맞게
흑룡으로 변하겠다^^
남녘 태백산맥에서 발원하는 봄기운과
북녘 백두산맥에서 뻗어내린 봄기운이
내려오다 올라가다 얼싸안는 곳에서
어여쁘구나 지리산이여
대명천지 어머니들 일어나
장엄한 젖줄을 쓸쓸한 땅에 물리니
그 한줄기는 소백산맥으로 받아내고 그 한줄기는 노령산맥으로 받아내고 그 한줄기는 백악산맥으로 받아내고 그 한줄기는 차령산맥으로 받아내고 그 한줄기는 광주산맥으로 받아내는 곳에서
눈부시구나 지리산이여
별건곤 어머니들 일어나
둥글디둥근 수평선을 이루며
수려한 치마폭을 황량한 땅에 덮으니
호남평야 일으키러 영산강 달려가고 김제평야 일으키러 낙동강 달려가고 경기평야 일으키러 임진강 달려가고 김해평야 일으키러 섬진강 달려가고 내포평야 일으키러 금강 달려가고 나주평야 일으키러 보성강 달려가는 곳에서
영원하구나 지리산이여
시방세계 울창한 어머니들 일어나
봄기운 휘몰아 산천초목 흔드니
그 바람 압록과 청천에 이르고 그 바람 대동과 두만에 이르고 그 바람 금강 일만이천봉에 이르고 그 바람 묘향산과 구월산에 이르고 그 바람 북만주땅 요동벌에 이르고 그 바람 북방을 휩쓰는 곳에서
우뚝우뚝하구나 지리산이여
온누리 봄을 위해 부르는 노래 / 고정희
봄은 오고 있는가?
2012년, 4월이면 오는가?
12월 이면 오는가?
공동체의 부활, 그 못보던 꽃으로 뒤덮힐 산하...
혹독한 추위로...
아내는 무장한(?) 내 사진을 보고
탈레반 전사같다고 했다 ㅋㅋ
누가 갈대는 흔들려도
뿌리는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겠다...
지평선만 보이는 장대한 들판,
수평선만 보이는 무한한 바다.
자연의 거대함에
여행자는 걷는 내내 처연한 상상만 한다...
나쁜 용, 좋은 용...
선택의 12월이 오고 있단다.
난 선택했다, 여행에서!
맹자는 말씀에서 답을 얻다.
결론은
국민의 고통을 차마 보지 못하는 마음... 불인지심(不忍之心).
그 진정성을 찾아 투표하기로 ㅎㅎ
세상 속으로 뜨거운 가을이 오고 있네
나뭇잎들 붉어지며 떨어뜨려야 할 이파리들 떨어뜨리는 걸 보니
자연은 늘 혁명도 잘하는구나 싶네
풍문으로 요즈음 희망이 자네 편이 아니라는 소식 자주 접하네
되는 일도 되지 않는 일도 없고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싶거든, 이리로 한번 내려오게
기왕이면 호남선 통일호 열차를 타고 찐계란 몇 개
소금 찍어 먹으면서 주간지라도 뒤적거리며 오게
금주의 운세에다 마음을 기대보는 것도 괜찮겠고,
광주까지 가는 이를 만나거든 망월동 가는 길을 물어봐도 좋겠지
밤 깊어 도착했으면 하네, 이리역 광장에서 맥주부터 한 잔하고
나는 자네가 취하도록 술을 사고 싶네
삶보다 앞서가는 놀리도 같이 데리고 오게
꿈으로는 말고 현실로 와서 걸판지게 한잔 먹세
어깨를 잠시 꽃게처럼 내리고, 순대국이 끓는
중앙시장 정순집으로 기어들 수도 있고, 레테라는 집도 좋지
밤 12시 넘으면 포장마차 로진으로 가 꼼장어를 굽지
해직교사가 무슨 돈으로 술타령이냐 묻고 싶겠지만
없으면 외상이라도 하지, 외상술 먹을 곳이 있다는 것은
세상이 아직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는 뜻 아니겠는가
날이 새면 우리 김제 만경 들녘 보러 가세
지평선이 이마를 치는 곳이라네, 자네는 알고 있겠지
들판이야말로 완성된 민주대연합 아니던가
갑자기 자네는 부담스러워질지 모르겠네, 이름이야 까짓것
개똥이면 어떻고 쇠똥이면 어떻겠는가
가을이 가기 전에 꼭 오기만 하게
서울 사는 친구에게 / 안도현
"껍데기는 가라."라고 외친 시인처럼
천수답 경제를 고쳐
국민 다수가 혜택을 누리는 경제를!
백제 비류왕처럼 천년사랑...
수리시설을 쌓아 농사 지을 물 걱정 안하게 하는
여민동락(與民同樂),
백성과 더불어 즐거움을 함께하는 대통령을 기다리며 ㅎㅎ
잠시, 정치로 삐딱선을 탔는데...
ㅎㅎ 다시 여행지로 돌아와서^^
벽골제 주변을
농경문화 테마 관광단지로 조성한다고 하니
자세한 관광, 축제 정보는
김제시청- http://www.gimje.go.kr/
축제 때에는 수많은 군중으로 시끄러울
민속놀이체험장...
벽골제를 둘러보고 나오다
길 건너편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으로 유명한 소설가,
'조정래 아리랑 문학관'이 보인다.
대하소설 '아리랑'도 일제 침략부터 해방기까지
일본, 하와이, 만주, 연해주,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민족이동의 발자취를 따라 한민족의 끈질긴 생존과 투쟁을 그린 대작이다...
아리랑문학관에는 작가의 육필원고 2만장과
소설 속의 시대 배경을 시각적으로 정리한
영상자료, 취재수첩, 작품구성 노트, 필기구 등 89종 350 여 가지 물품이 전시되어 있단다.
아, 시간관계상 다음을 기약하며...
이렇게, 김제와의 인연은 마침표(.)가 아니라 미래에 진행형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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