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혹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이 은과 황녀 덕혜옹주를 아십니까?
일본은 일찌감치 순종의 이복동생이자 마지막 황태자였던 영친왕(英親王) 이은(李垠)을 강제로 일본에 보냈다.
그리고 이은은 육군사관학교를 거쳐 제1항공군사령관(육군 중장) 지위에 오른다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라는 일본 왕녀와 결혼한 것도 강제였다.
영친왕은 일본 패망 이후 황족의 지위도 잃고 귀국도 거부당하면서 심신이 쇠락해 갔다. 1963년 뇌출혈로 인해 혼수상태인 채로 귀국하지만 상태는 호전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덕혜옹주는 고종의 외동딸이다
고종은 9남 3(?)녀로 자식들이 많았는데,다들 어린나이에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종은 덕혜옹주를 금지옥엽처럼 아꼈다
그후 무난하게 트러블없이 잘 지내게 되나 싶었는데,고종에게 다른 걱정거리가 생겼다
영친왕이 11살이 되던 해 이토히로부미가 일본으로 대려가 일본인으로 키우고 일본인이랑 결혼시켰다
고종은 옹주도 이렇게 될까 싶어 빨리 약혼자(?)를 찾는다
이를 알아챈 일본은 고종을 독살하고 조선인들은 폭발해 3.1운동을 일으킨다
8살에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한 옹주는 큰 충격에 휩싸인다
고종이 승하해 버린 이후 옹주는 더욱더 강한 일본식 교육을 받고,영친왕을 따라 일본으로 끌려간다
덕혜옹주는 여자강습원에 입학하게 된다
그녀는 아무도 어울리지 않았고,급우들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덕혜옹주의 동창생 증언中
"덕혜옹주는 매일 보온병을 들고 다녔습니다.왜 보온병을 들고 다니냐고 했더니 덕혜옹주는 아버지 처럼 독살 당하지 않고 싶다고 했습니다"
일본생활 5년 째 되던 날,옹주의 어머니마저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리하여 조선에서 초상을 치르고 온 덕혜는 이상해 졌다
학교에 가고싶지 않다며 항상 누워있고 식사도 하지 않았다
영친왕의 부인 마사코가 덕혜가 걱정이 되어 친찰해 보니 정신분열증을 판정받았다
일본은 그런 그녀를 일본인과 결혼하도록 추진시켰다
1931년 옹주는 떠밀듯이 대마도 주 쇼 다케유키 백작과 결혼한다
강제로 한 결혼이긴 하지만 결혼생활은 꾀 화목했다
그리고 둘 사이에는 마사에(정혜)라는 딸도 태어났다
하지만 그녀는 마사에를 낳은후 우울증까지 겹쳐버렸다
도쿄대학교를 졸업하고 영문학자가 된 백작은 결국 그녀를 감금시키다 정신병원에 맡겨버린다
1955년 정신병원에 있는 옹주에게 이혼통보를 한다
그리고 그 후로 15년 동안 옹주는 정신 병원에 있는다
남편에게도 버려지고 조선에서도 잊혀진 덕혜옹주
어느날 한국에 있는 서울신문의 한 기자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조선 왕족 가족의 귀국을 요청한다
하지만 이승만은 거절한다
왕실에 대한 경계심과 자신의 권력을 잃어버릴까여섰다
그리고 1961년 기자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다시 한번 귀국을 요청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승만과 다르게 "콜!"하고 귀국을 허락한다
1962년 다시 한국의 땅을 밟은 옹주,36년만에 고국땅을 밟게 된다
하지만 귀국한 후에도 그녀의 정신은 돌아오지 않았다
옹주는 7년의 병원생활후 낙선재로 거처를 옮겼다
덕혜옹주가 환국하고 10년이 지난 후
낙선재로 한 일본인 신사가 찾아온다
쇼 다케유키,옹주의 전 남편이었다
그는 옹주를 보게해 달라 청했지만,낙선재 관리인은 옹주에게 했던것이 생각나 그를 매몰차게 돌려보냈다
"당신같은 사람은 일절 면회를 허용치 않으니 돌아가시오"
이렇게 쇼 다케유키와 덕혜는 둘다 한번도 보지 못하고 죽었는데
그후 덕혜옹주의 정신이 맑은날 쓴 글씨가 발견되었다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전하(영친왕)비전하(마사코)보고싶습니다,대한민국 우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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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슬프네요..역시 일본은 4가지가 없어요
한국도 영국처럼 왕실이 존재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출처-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