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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뒤집기’를 보는 두 개의 시각

귀여움 |2012.02.21 06:49
조회 28 |추천 0
미국에서 ‘플립플롭(flip-flop)’이 정치인의 말 뒤집기라는 뜻으로 처음 사용된 것은 189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에서는 같은 뜻으로 유턴(U-turn)이라는 단어를 쓴다.

2004년 미국 대선 때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패한 존 케리 민주당 후보가 대표적인 사례다. 케리는 ‘말 뒤집기 선수(flip-flopper)’라는 이미지 때문에 졌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는 “나는 사실 870억 달러의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재건 예산안에 반대하기 전에 그 안에 찬성했다”는 ‘실언(失言)’으로 결정타를 맞았다. 부시는 이라크전에 관한 케리의 말 바꾸기 장면들을 절묘하게 편집한 TV광고로 주도권을 잡았다. 결국 케리는 ‘수시로 말을 바꾸는 믿을 수 없는 정치인’ ‘우유부단해서 전시(戰時) 대통령에 부적합한 사람’으로 몰렸다.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은 1988년 대선 때 “세금을 인상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취임 후 세금 인상으로 돌아서 재선에 실패했다는 것이 정설처럼 돼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에서 대통령에 당선된 현역 상원의원은 존 F 케네디와 버락 오바마 둘뿐이다. 의회에서의 발언과 표결 기록을 통해 정치적 소신과 말을 바꾼 행적이 낱낱이 드러나는 상원의원은 선거 때 상대방의 공격에 취약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케리는 2004년 대선 때 4선 상원의원이었지만 케네디는 재선, 오바마는 초선 상원의원이어서 공격당할 소재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현재 미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1위를 달리는 밋 롬니도 낙태 세금 건강보험 같은 이슈에서 말을 바꾼 것 때문에 공격을 받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관한 야당 정치인들의 180도 말 뒤집기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미 FTA를 타결한 노무현 정부의 총리였던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와 정동영 상임고문, 손학규 전 대표, 통합진보당 유시민 공동대표가 말 뒤집기 동영상의 주인공들이다. 정치인으로 성공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위선적이고 뻔뻔해야 한다지만 ‘한-정-손-유’는 그 정도가 심했다. 제주 해군기지에 관한 말 바꾸기도 마찬가지다.

‘한-정-손-유’는 ‘한미 FTA의 내용과 상황이 바뀌었다’거나 ‘노무현 표 한미 FTA는 좋고 이명박 표는 나쁘다’며 말 뒤집기를 합리화한다. 하지만 민주당이 주장하는 ‘한미 FTA 10대 독소조항’ 가운데 9개가 노무현 때 들어간 것이니 설득력이 없는 변명이다.

정치인이나 유권자가 한미 FTA를 찬성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다. 한미 FTA 찬성이나 반대가 죄일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정권을 잡았을 때 책임 있는 자리에서 한 말을 명분 없이 뒤집고 얼굴도 붉히지 않는 정치인이 너무 많다. 새누리당에는 수도 이전과 관련해 말을 바꾼 사람이 적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도 서울시장 때 수도 이전을 반대하다가 대통령 후보가 돼서는 말을 바꾸었다. 정치인의 모든 발언이 디지털화돼 과거에 한 말과 지금 하는 말을 비교해보기도 쉽다. 미국에서는 진보파가 이유 있는 말 바꾸기에 더 긍정적이고 보수파는 원칙에 충실한 것에 더 매력을 느낀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엘리자베스 밀러 미주리대 교수는 “자기가 좋아하는 정치인의 말 바꾸기는 무시하고, 싫어하는 후보에 대해서는 말 바꾸기 문제를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유권자들의 이중 잣대와 정파(政派)주의 때문에 정치인들이 쉽게 말을 바꾸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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