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들으실분들은 재생해주세요
오늘 아침에 기상해서 뙇 하고 네이버들어감
못보신분들이 많겠지만 저는 이렇게해서 찾음ㅋ
일단 네이버에서 재가본게 이겁니다.
으잌ㅋㅋㅋ 105주년이면 뭐해 친일파인데ㅋㅋㅋㅋ
이효석씨 교과서에 글도 실리고 하신분인데
여러분이 아셔야할게 이분은 친일파이십니다.
예 맞아요 친일파 맞아요
우리 1학년때 또라이같은 사회선생하나 있었음 근대 걔가하는말이 이효석은 친일파야.....
순간 표정
레알마드리드?
예맞아요
근데 일단 설명을 드리려면 친일문학이란걸 아셔야하는데 이 친일문학이라는게 뭐냐면
친일 문학은 1937년 5월 조선문예회(朝鮮文藝會)의 결성에서 시작되었다. 학무국 사회 교육과가 주동하여 조직한 이 단체는 조선 총독부 방침인 사회 교화를 위해서 가요(歌謠) 정화 운동을 전개하였다. 김억이 작사한 〈종군간호부의 노래〉, 〈정의의 수(帥)에〉, 최남선이 작사한 〈김소좌를 생각함〉, 〈정의의 개 가〉, 〈총후의용(銃後義勇)〉, 〈방호단가(防護團歌)〉, 〈장성(長城)의 파수〉 등의 이른바 '애국가요'은 1940년대의 국민 문학 운동의 원시적 출발이었다. 한편 안서는 〈매일신보〉에 〈신춘문단의 전망〉(1933)에서 "앞으로의 시가는 가장 농후하게 군가적(軍歌的)으로 씩씩하고 우렁찬 경향을 나타내야 한다"고 말하고 시 〈신년송〉(《매일신보》, 1944년 1월 4일)을 통하여 대동아 결전과 미국과 영국의 격멸을 읊었으며, 〈님 따라 나서자〉(《매일신보》, 1944년 12월 7일)라는 시로 가미카제(神風) 특공대로 나가 전사한 조선인 가네하라 군조(金原軍曹)를 뒤따르자며 징병을 격려하는 시를 쓰기도 하였다.
[편집] 조선문인협회 결성1939년 4월에는 임화, 최재서, 이태준이 주동하여 황군 위문 작가단을 결성하였고, 김동인, 박영희, 임학수 등 3명이 파견되어 박영희가 〈전선기행〉을, 임학수가 〈전선시집〉을 창작, 발표하였다. 이후 1939년 10월 29일 부민관에서 학무국의 산파 역할로 조선문인협회가 탄생하였다. 조선문인협회는 초대 회장으로 이광수가 선출되었는데, 이 조직을 통하여 작가들이 문필 보국 운동에 총동원되었다. 이광수는 결성식에서 "이 협회의 창립 목적은 새로운 국민 문학의 건설과 내선 일체의 구현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조선문인협회'의 활동은 범민중적인 지탄의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이러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일제에 의한 친일 문학은 새로운 자리를 잡았다.
[편집] 전시 체제와 친일 문학일본은 만주 사변과 태평양 전쟁을 치르면서 전시 행정 체제에 돌입하였고, 한반도는 일제의 병참 기지로 전락하였다. 일제는 앞에 열거한 친일 문학자들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에게 친일을 강요하였으며, 민족 정신을 말살하기 위한 식민지 정책을 한반도에 강요하였다. 친일 부역은 단지 몇 사람의 일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당시의 저명 인사들 모두 이에 해당된다고 해도 무방하다.
[편집] 성격친일 문학의 성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일본 정신을 그 기본으로 한다. 일본 정신이란 일본 천황을 중심으로 제정(祭政)이 일치(一致)된 가족 국가의 조직을 고무, 찬양하는 것이다. 둘째, 일본에 대한 일본 국민으로서의 자각과 긍지와 감사를 그 내용으로 한다. 셋째, 그들에게 국어(國語)인 일본어로 창작된다.
[편집] 주요 인물 [편집] 최남선최남선은 이광수와 함께 대표적인 친일 작가로, 청일 전쟁이 "일본의 진보적 정신이 청조(淸朝)의 정신을 구축하려는 전쟁"이라는 성전론을 주장하면서 태평양 전쟁을 미화시키기도 하였다. 그의 〈성전의 설문〉 〈아세아의 해방〉 등이 성전론을 피력한 작품들이다.
[편집] 이광수주요한은 시 〈성전찬가〉에서 일제의 태평양 전쟁을 찬양하였다. 그는 대단히 격정적으로 일본을 찬양하는 시들을 창작하였다. 또한 〈적, 미국의 사상모략〉이라는 평론에서 미국을 백인 제국주의의 앞잡이라고 지적하면서, 대동아 단결을 이룩하여 조선의 청년들은 분연히 일어나 영국과 미국의 모략을 분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편집] 채만식 이 목록은 아직 미완성입니다. 여러분이 편집하여 채워주세요. [편집] 김동인 이 목록은 아직 미완성입니다. 여러분이 편집하여 채워주세요. [편집] 서정주 이 목록은 아직 미완성입니다. 여러분이 편집하여 채워주세요. [편집] 박영희박영희는 프롤레타리아 문학 계열에서 친일을 한 대표적인 작가이다. 박영희는 "잃은 것은 예술이요, 얻은 것은 이념"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면서 전향 논리를 폈지만, 기실 그의 전향은 부일(附日) 협력의 길목으로 걸음을 옮긴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1938년 도쿄에서 열린 '시국 대응 전국 위원회'에서 전향의 면모를 드러냈다. 박영희는 '시국 대응 전선(全鮮) 사상 보국 연맹'의 간사로 참여하면서, 김동인, 임학수와 함께 '황군 위문 작가단'의 일원으로 화베이(華北)를 다녀와 〈전선기행〉을 창작하였다.
[편집] 김기진김기진은 일찍이 경향파에서 대중화론을 주창한 뛰어난 이론가였지만, 1943년 8월 1일 징병제 실시 당일에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라는 시를 《매일신보》에 발표하면서 친일 행적을 드러냈다.
[편집] 이효석〈메밀꽃 필 무렵〉등 서정적인 소설을 많이 쓴 이효석은, 〈아자미의 장〉이라는 소설에서 일제가 민족 말살의 수단으로 권유했던 이른바 일선 통혼(日鮮通婚)에 동조하는 입장을 보였다.
[편집] 백철또한 광복 이후 대한민국 문단의 비평계를 주도한 백철의 친일 행각도 빼놓을 수 없는 사실이다. 백철의 평론 〈낡음과 새로움〉은 국민 문학의 원칙을 밝힌 것으로, 이 글을 통해 일본의 정신을 실천적으로 수용할 것을 강조하였다.
[편집] 유치진이 외에 연극인 유치진도 일본에 협력하였다. 유치진은 국민 연극 이념의 수립에 기여하였다. 그는 〈국민연극 수립에 대한 제언〉과 〈신체제하의 연극〉 등의 평론을 발표하였으며, 1941년 현대극장을 발족시켜 총독부의 만주 이민 정책에 호응하는 내용의 〈흑룡강〉, 〈북진대〉를 공연하였다.
(출저: http://ko.wikipedia.org/wiki/%EC%B9%9C%EC%9D%BC_%EB%AC%B8%ED%95%99 위키백과)
이런겁니다.
봐도 모르겠는 불편한진실.
요약하자면
친일문학의 개념
․본래적 의미 - 친일문학이란 일본과 친화적 관계를 가지는 문학이란 뜻이다. 일본의 역사 풍토 생활관습 사고방식 등에 대한 호의적 표현, 호의적 해석 등을 내용으로 하는 문학이다.
(출저: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3&dirId=307&docId=61735110&qb=7Lmc7J2866y47ZWZ&enc=utf8§ion=kin&rank=1&search_sort=0&spq=0&pid=g0UifF5Y7u8sscUSvuRssc--006921&sid=T0XXay7WRU8AACgVC9I edukore님 답변)
이런겁니다.
일단 우리가 위키백과 부분에서 봐야될게 여기입니다.
[편집] 이효석〈메밀꽃 필 무렵〉등 서정적인 소설을 많이 쓴 이효석은, 〈아자미의 장〉이라는 소설에서 일제가 민족 말살의 수단으로 권유했던 이른바 일선 통혼(日鮮通婚)에 동조하는 입장을 보였다.
이히히히힣 아 쪽팔렼ㅋㅋㅋㅋ
어떻게하면 위키백과에 대표적인 친일문학인물에 올라가냨ㅋㅋ
이게 리얼리티야
근데 이효석이 친일파라는게 알려지지 않은이유가 더 궁금하군요
역사왜곡인가? 아시는분은 댓글로 좀 알려주세요
너무 서두없이 써서 어떻게 끝내야될지 모르겠는데 일단 이효석씨가 친일파라는사실은 확실하게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 봉평삽니다. 이효석씨 고향ㅋ
P.S. 찾아보니 이효석관련글에서 이런문장이 나오더군요 위키백과에 올라갈정도면 아무래도 확실할텐데 어느내용이 맞는지 모르겠으나 저는 이효석씨가 친일파라는쪽에 무개를두고 있습니다.
그의 문학활동은 친일과 동떨어진 사랑의 문제와 민족의식을 다룬 새로운 문학세계를 열어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