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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질을 하나놈으로 일반화시키는 개독들에게-실존주의

Атеист |2012.02.29 13:24
조회 55 |추천 3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사르트르

 

 

머리 나쁜 개독(물론 모든 개독들은 머리가 나쁘다. 논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이라면 잘 이해가 안 되는 말일 것이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뭘까? 어떤 목적이 있을까?

 

이 질문에 개독들은 하나놈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창조했다고 할 것이다 . 결국,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일까?

 

만약 시계공이 시계를 만들 때, 시계의 본질은 사람들이 시간을 알기 위한 것이 된다.

 

이 논리로 개독들은 인간의 본질은 하나놈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개독들은 모든 일의 원인을 하나놈으로 보고, 그래서 평생토록 하나놈을 숭배한다.

 

하지만, 적어도 '나'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사실.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그 목적은 뭘까? 부모님한테 물어봐도 답은 얻지 못한다. 물론 자식을 낳고 싶어하는 부모님의 마음이 있어서 '나'가 태어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본질은 아니다.

 

세상의 수많은 위대한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그 본질을 가지고 태어났을까? 당신은 하나놈에 의해 개독의 본질을 가지고 태어났는가? 그렇다면, 당신에게는 자유란 없는 것이다. 물론, 성별과 인간이라는 존재로 태어난다는 것은 내 의지가 아니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사이의 C(Choice)다.'-사르트르

 

우리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수많은 선택을 한다. 그 선택을 통해 직업, 성격 등 우리의 본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모두에게 주어지는 '나는 ~다'라는 질문에는 처음부터 답이 적혀있지 않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답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끊임없는 선택을 통해 본질을 만들어가고, 선택의 주체는 '나'이며, 선택에는 반드시 스스로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개독들은 실존을 개독교에서 찾았으며, 편협한 세계관 속에서 살고 있다. 그들이 선택했기 때문에 뭐라고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우리의 실존이 하나놈과 예수놈 때문이라고 길거리에서 붙잡고 확성기를 틀어대며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쳐대는 개독들이 문제다.

 

인생의 주체는 '나'다. 이 세계는 '나'가 보고 있는 세계다. '나'가 보고 있는 세계와 '너'가 보고 있는 세계는 같지 않다. 각자의 주관대로 인생을 사는 것이지, 정해져 있지 않다는 얘기다.

 

 

p.s 진화론을 까는 개독들에게.

 

당신들은 이 논리를 적용시키고 있다. '시계는 설계자가 있다. 그러므로 인간도 설계자가 있다.'

 

이 논리는 '토끼는 풀을 먹는다. 인간도 풀을 먹는다. 토끼는 자기 똥을 먹는다. 그러므로 인간도 자기 똥을 먹는다.'와 같다. 당신들은 성급한 일반화를 하고 있다.

 

복잡한 것들은 우연에 의해 출현할 수 없으므로, 하나놈이 그 원인이다라고 말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하나놈도 복잡하므로 우연에 의해 출현할 수 없다. 하지만 당신들은 분명히 하나놈을 저 논리에서 열외시킬 것이다. 말도 안 되는 논리다.

 

최초의 생명체가 출현할 확률을 의심한다면, 생명체와 우주를 설계한 더 복잡한 신은 과연 어떻게 출현했는지, 확률이 얼마인지 따져보기 바란다. 당신들이 하나놈은 태초부터 존재했다라고 주장하면, 우리는 최초의 생명체가 있었다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리고 우연은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 신기한 일이 아니라, 인과 관계없이 일어난 일이다.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난, 인간이 의도하거나 기인한 일 외를 말한다. 정말 원인이 없거나, 아니면 인간은 그 원인을 알 수 없거나 둘 중에 하나다.

 

진화론의 핵심인 자연 선택은 확률적인 선택을 통해 있을 법 하지 않은 복잡한 생명체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과학은 종교가 아니며, 믿음도 아니다. 절대적인 진리도 아니다. 다윈의 자연 선택은 진화론을 가장 잘 설명해주고 있는 이론이다. 하지만 얼마든지 결정적인 반증이 나오면 뒤집힐 수 있다. 처음에 가설이 세워질 때, 그 가설은 반증에 취약해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반증의 반증을 거듭하며 새로운 이론이 나온다. 그러므로 과학을 숭배한다, 과학이 종교다라고 하지 마라. 반면에 종교에 대해 어떠한 비판도 하면 안 된다. 과학에선 어떤 비판도 허용하지만, 종교에서는 그렇지 않다. 왜? 신성하니까 말이다. 왜 신성한가? 신성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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