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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억해야할 역사속의 어느 한 일본인#

십육살 |2012.03.04 23:23
조회 1,028 |추천 12

 

 

일본인 변호사 '후세 다치즈(布施辰治 ふせ たつじ)'  1880.11.13-1953.9.13

 

일본변호사 후세 다치즈의 이름을 기억하는 한국인은 거의없다

그리고 그가 변호한 인물 가운데엔 아직도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독립운동가 박열과 그의 일본인 아내 가네코 후미코 부부가 있다.

 

후세는 1919년 2월 8일 도쿄에서 2.8독립선언을 했던 '조선 청소년 독립단'사건을 자진해서 변호사로 나서면서 부터 독립운동과 연계된다.

그뒤로

- 박열 부부의 일본왕 암살 미수사건 1923년

- 20년대 일본인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의열단 단원 체포사건 1923년

- 일본 왕궁에 폭탄을 던진 김지섭의사의 '일본왕 시해 미수사건'(1924년)등 독립 투사의 변호를 도맡다시피했다.

 

일본이 동양척식회사를 내세워 1926년 전라도 궁상면(나주)의 농지를 수탈하려던 때 직접 현지조사까지 마치고 동척을 향해 '합법적인 사기'라는 주장을 펼쳐 결국 총독부가 농민들과 협상에 나서게 하기도 했다. 후세는 또 1923년 9월 관동 대지진때 일본 경찰이 조선인폭동설 등 유언비어의 진원이었음을 밝혔고.조선인학살에 책임을 통감한다는 사죄문까지 발표했다.

 

3.1운동때는 '조선독립운동에 경의를 표한다'는 논문을 발표

일본검찰에 불기소 되었고 독립운동에 대한 지속적인 지지활동으로 끝내 변호사 자격까지 박탈당했다.

 

농촌에서 태어나 메이지법률 학교를 졸업하고 도쿄에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후세는 톨스토이에 심취하고 인권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사회주의계열의 변호사였다.

 

조선독립운동사에서 빠짐없이 등장한 후세의 노력은 국내에선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에선 일본변호사100인에 꼽힐만큼 활발한 연구대상이 되고있다.

 

제작진은 고통받는 조선인만큼 낮아지려했던 후세, 일본인이면서도 '신민지 동포와 함께 그 해방을 바라고 있다'고 했던 그를 매개로 지배와 피지배라는 관점으로만 바로보았던 한일역사를 보다 폭넓게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자신이 한국인이라면 분명 독립운동을 할 것이다

독입운동은 올바른것이고 그렇다고 하면 자신도 완전히 똑같은 입장에 서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의열단 사건변호도 했고 조선공산당 운동도 변호했습니다

 (중국이나 한국은) 존경할 만한 국가이며 그곳에는 존경할만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생각이 이미 고향에서 보냈던 유년시절에 확립되었습니다.

 (청일전쟁에 참가한)아저씨들이 자랑삼아 조선 농민들을 쫓아가서 어떻게 학살했는지 젊은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런 슬픈 얘기를 모두를 재미있게 듣는걸 보고 참을수 없었던것 같습니다

 약하고 옳은자를 위해 저를 굳세게 해주십시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너무나도 잔혹한 비극입니다

조선동포6천은 학살됐습니다

그들의 영혼은 죽어도 죽을수 없는 무념에 혀를 악물고 있씁니다

 후세는 관동대지진 당시의 학살사건 문제만이 아니라

식민지 지배 전체에 대해서도 같은생각을 품고 있었습니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지배한 것에 대해 우선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고 사죄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유 법조단 결성(1921년)

일본 역사 왜곡 교과서 채용 반대 공동 성명 한국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일본 자유법조단

2004년 3월 29일

제가 조선에 온 것은 가장 비참하게 생활하고 있는 조선 여러분들을 만나면

인간의 생활을 어떻게 개조하면 좋을지를 알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꼭 성공 시키고자 하는 산미증식계획은 전임자 12개년 계속사업으로 입안한 조선민족의 행복을 위한 대사업입니다

늘어난 곡식은 일본으로 들어갔고 그 대금도 일본인을 부유하게 하였을 뿐입니다

조선인은 적어도 그 이익을 꿈조차 꾸지 못했습니다

제가 어린시절 후세(이분할아버지)집에 가보면 집옆에 작은 별채가 있어서 거기에 한국학생이 살고 있었습니다

창문으로'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하던 어린시절의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유배달을 하던 조선 유학생이 후세의 집에 매일 아침우유를 두병씩 배달해 주었다고 합니다

무료로 말입니다 어려운 학생이 말이죠

조선인 밀주사건(1948년)

조선인은 조국을 일본제국주의에 빼앗긴 탓에 갈곳을 잃고 떠돌다 이제 강제 연행까지 되었습니다

그날 그날 벌어 간신히 연맹해 오던 끝에 밀주를 판매하게 된 것입니다

 

(해석)조선의 독립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이 날은 나에게도 자유의 날이다

 

후세 다츠지 기념비

 

"죽어야 한다면 민중을 위해 살아야 한다면 민중과 함께"

 

 후세 다츠지는 대한민국의 독립에 기여한 공로로 2004년 일본인으로는 최초로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캡처는 제가 한게 아니구요 원본은 모두 사진이엿고오..

나름 모바일배려한다고 최대한 적엇어요!

 

 

일본인 모두가 나쁜사람 아닌건..아시죠

많이 길지 않은데 다읽으셨나요

사진때문에 스압있을지도모르겟네ㅇ..

많은분들이 볼수있게 추천 꾹 눌러주세요ㅎㅎ

 

 

 

대한민국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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