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란 지방대 출신 부산남,
만26세 최연소로 비례대표 최종후보까지 올라가...
<꿈을 알다>
초등학교 시절 갑자기 부도나 버린 아버지의 사업때문에 집안은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휘청했습니다.
빚쟁이라 불리우는 사람들이 무서운 사람들과 집을 들락날락 했고, 저는 그저 바라만 보았습니다.
그렇게 중학생이 되어 아버지는 다른 지역에서 일하시게 되고, 어머니와 저는 단둘이서 부산에서 살았습니다.
한번 무너져버린 가정은 쉽게 다시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벌이로 가정살림을 하시던 어머니는 어려운 경제환경 속에서 저를 위해 모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닥치는대로 일하셨습니다.
그러한 가난속에서도 저는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학급 반장으로서 모범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몇 번이고 나쁜길로 빠지고 싶었지만 저를 위해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이를 악물고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고등학교 때, 부모님은 이혼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저희를 편모 가정이라고 불렀고, 저는 어머니와 단둘이 세상에 남게되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은 더욱 힘들기만 하였고, 가난으로 한 가정이 얼마나 힘들 수 있는가 처절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힘든 기색 안하시며, 저를 위해 몸이 부러지도록 고되게 일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부자가 빈자를 돕고, 빈자는 부자를 존경할 수 있는 나라를 가슴 깊이 열망하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함께 활짝 웃는 세상을 상상했습니다.
<꿈을 품다>
학업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또 공부했습니다. 그저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인생의 단 하나뿐인 목적인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과 다른 새로운 세상을 꿈꿨고, 새로운 비전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Why not change the world'라는 기치를 걸고
지방의 어느 한 대학이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내세우며
세상을 변화시키자고 저를 도전했습니다.
저는 서울의 명문대를 나와 기존 사회질서에 잘 정착하는 것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였고 새로운 대안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대학에 수시지원하여 합격하였습니다.
저를 너무나도 사랑하여 친아들처럼 아껴주셨던 저의 지도 선생님은 저의 높은 성적과 가능성을 안타까워하며 '너가 그 대학을 가면 너와 인연을 끊을거다.'라며 답답해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새로운 곳에서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대학교 생활은 역시나 달랐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무궁무진하게 펼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마땅히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들에 대해 고민했고 탈북자들을 만나 대화하면서 통일문제가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통일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전국대학생통일캠프'를 기획하여 미국 및 유럽지역의 북한관련 동아리인 LINK를 비롯하여 연대 학생 동아리, 이대 총학생회 등 전국에서 수백명의 대학생들과 탈북자들을 초청, 시대의식을 공유하였습니다.
또한 한국 청년들이 자신의 평생을 보내게 되는 '기업'이라는 생존사회를 경험하기 위해
3곳의 기업에서 다양한 활동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리고 동북아시아에 대한 폭넓은 감각을 갖고자 중국과 일본을 리서치하였습니다.
평범한 재학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평의회 회장으로 맡았으며, 총학생회의 일방적이고 독자적인 태도에 반감을 갖고 있던 수 많은 학생들의 의견을 대표했습니다.
저는 민주적이고 소통하는 총학생회를 꿈꿨고 출마하여 전 총학생회에서 나온 후보와 경쟁하여 75%의 지지율로 당선되었습니다.
학생들이 당면한 현안과제와 지속개선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로 뛰고, 또 뛰었습니다.
대학이라는 작은 사회에서도 무수한 일이 일어났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울고 웃었습니다.
학생들과 소통하여 정책을 만들고, 학교에 전달하고, 필요한 부분은 개선해 나가는 과정은
그 자체가 저의 존재목적이었고 저의 가슴을 뛰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속에서도 높은 등록금은 제 어깨를 짓눌렀고 경제적 부담으로 늘 과외와 아르바이티를 하며 생계를 이어나가야 했습니다.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마음 편히 대학생활 할 수 있는 대한민국 사회를 갈망했습니다.
<꿈을 펼치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청년들이 소속되어 있는 '기업'에서 조직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대한민국을 알고 싶었습니다.
다양한 기업의 다양한 직무에 지원하였고, 지방대 출신의 한계에 부딪히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SPC 본사 인사팀에서 처음 일을 시작하게 되었으며,
교육에 더 큰 적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포스코 교육법인에서 컨설턴트로 다시 일을 배웠습니다.
기업에서 일하면서 저는 사람에 대해서 더 공부해 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꿈꾸는 새로운 세상은 '사람이 행복한 세상'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동대학교 상담심리대학원에 입학하여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늘 외치던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바로 '청년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출' 이었습니다.
제가 학창시절에 느꼈던 뼈 아픈 가난,
주입식 교육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경쟁,
대학 시절 제 어깨를 짓눌렀던 무거운 학자금.
나아가 기업현장에서 보고 배웠던 것들, 그리고 알게된 이 땅의 평범한 청년들.
이러한 모든 것들로부터 체득한 사회문제와 그에 대한 고민은 제 몸속에서 용솟음 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뿜어낼 때가 되었습니다.
물론 '완전히' 준비되었기 때문에 국회로 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이제는 여의도의 기성정치에 새로운 생기와 활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훌륭한 집안환경을 가진 잘난 사람들이 많아 보였습니다.
그 동안 생각해 온 정책관을 진솔하게 전달했고, 모든 과정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결국 최연소로 최종후보에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시대 청년들의 고민을 몸으로 처절하게 느껴왔기에, 청년들과 소통하는 청년정치의 새시대를 열겠습니다
청년들의 실업문제에 대한 기존에 나온 피상적 해결법이 아닌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겠습니다.
등록금때문에 학업에 전념하지 못하는, 경제적 부담으로 허덕여야 하는 대학생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실적이면서도 합리적인, 대학생을 위한 등록금 해소 방안을 제시하겠습니다.
몸으로 뛰며, 낮은 곳에서 섬기겠습니다.
기성 정치에 흡수되지 않고, 새로운 바람이 되겠습니다.
대한민국 청년 정치의 새 역사를 쓰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기호6번 심규진의 선거인단이 되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