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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이명박 카페지기 '윤활유'... 경찰병원서 사망

조자룡 |2012.03.24 19:24
조회 113 |추천 0
P {MARGIN-TOP: 2px; MARGIN-BOTTOM: 2px} 기륭전자사태 때 공권력의 불법폭력에 한쪽 눈 시력도 잃어 12.03.24 18:00 ㅣ최종 업데이트 12.03.24 18:00 추광규 (chookk7) 유한림, 윤활유, 안티이명박

2008년 촛불시위 당시 앞장섰던 '이명박 심판을 위한 범 국민운동 본부'(이하 '안티이명박') 유한림(아이디 윤활유) 카페지기가 향년 48세를 일기로 24일 오전 3시경에 사망하였다.

 

고 유한림씨는 그동안 지병으로 수술을 받고 투병 중에 있었다. 유씨의 장례식장은 경찰병원에 마련되어 있고, 발인은 26일(월) 오전 6시다. 장지는 성남 영생원으로 정해져 있다. 또 '안티이명박'은 그에 대한 장례식을 '촛불시민장'으로 치르겠다고 공지했다.  

 

<scr1pt type=text/javascr1pt> </scr1pt>   ▲ 안티이명박 공지 팝업 이미지 ⓒ 추광규 안티이명박

'안티이명박' 카페지기 윤활유, 그는 누구?

 

'안티이명박'은 <다음> 카페에 지난 2007년 12월부터 개설된 바 있고, 회원수 12만3464명으로 촛불시위 등을 앞장서 이끈 카페다. '안티이명박' 카페는 공식 소개글에서 "6월 항쟁을 통해 발전해온 우리의 민주주의가 이명박의 집권으로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면서 "이에 우리는 이명박과 수구기득권 세력을 심판하여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을 회복하고 자유, 평등, 정의가 바로 선 나라를 만들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아이디 윤활유는 지난 2009년 봄 무렵부터 카페지기를 맡아 이끌어온 바 있다. 이 카페의 아이디 '노란여우'는 추모게시판에 올린 글을 통해 그와의 첫 만남과 이후 이어진 인연에 대해 회고했다. 

 

'노란여우'는 추모게시판에 올린 글을 통해 "2008년 3월 이명박이 대통령에 취임하게 되자 많은 카페회원들도 이명박 탄핵을 포기하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수백 명에 이르던 촛불도 꺼지고 아무도 이명박 탄핵에 신경을 쓰지 않는 듯 보였습니다. 10여명이 운영진만이 겨우 남아 힘겹게 거리홍보전을 하고 있을 때"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계속해서 "그때 정장을 한 중년신사 한 분이 운영진들에게 다가왔다. 처음엔 늘 그래왔듯이 국정원이나 정보과 형사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집회가 끝나고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에 모였을 때 그 신사는 '일이 바빠서 여러분과 함께 해드리지는 못하지만 여러분에게 사죄의 뜻으로 식사라도 대접해 드리고 싶다'며 식비를 내놓았다"며 그와의 첫 만남을 기억했다.

 

'노란여우'는 이어 "간만에 삼겹살로 배를 채운 운영진들을 그 포만감보다는 여전히 앞에 나서지는 못하지만 수많은 국민들이 안티이명박을 응원하고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고. 다시 희망의 끈이 펼쳐진 것"이라며 그 의미를 새겼다.

 

또 "그 믿음을 초석으로 삼아 4월 26일 광우병반대 집회 때에는 다시 수백 명이 회원들이 함께 되었고 그 여세를 몰아 2008년 5월 2일 촛불집회를 개최하게 된 것."이라고 그 의미를 새겼다.

 

'노란여우'는 마지막으로 그가 한쪽 눈 시력을 잃은 사연과 관련해 "2008년 10월 20일 기륭전자 노조 투쟁에 동참해 공권력의 불법폭력에 항거하다 눈을 가격 당하는 바람에 한 쪽 눈의 시력을 그만 잃었다"면서 "그날 병원을 찾았을 때 윤활유님은 눈이 주먹만큼 부어올랐음에도 그 특유의 환한 웃음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슬퍼하는 우리를 걱정해 주었다"고 회고했다. 

 

다음은 '안티 이명박'에 올려진 부음 공지 글

 

 [부음] 안티이명박 카페지기 윤활유... 파란 불꽃으로 승화하다

금일 오전 2시 54분 안티이명박 카페 카페지기이신 윤활유님께서 그만 유명을 달리하셨습니다.

 

2007년 12월 19일 대통령이 돼서는 아니 될 이명박이 국민을 속이고 기만하며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되고 말았습니다. 이에 수많은 국민들이 분기탱천하여 거짓을 바로 잡고자 촛불을 들었고, 안티이명박을 결성하게 되었습니다. 윤활유님 또한 평범하기만 했던 수많은 촛불시민 중 한 명이었습니다.

 

<scr1pt type=text/javascr1pt> </scr1pt>   ▲ 기륭전자 노사 사태 당시 고 유한림씨 ⓒ 안티이명박 제공 윤활유

그러나 2008년 5월 촛불이 거세게 번지면서 어떻게든 국민을 속이고 촛불을 막아보려는 이명박 정권의 탄압이 악랄해지면서 앞장서 나아가던 민주시민들이 하나 둘 쓰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평범했던 시민이자 가장이었던 윤활유님도 더 이상 평범한 시민으로 남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누구인가 쓰러진 자리를 메우기 위해 직장을 버려야 했고 가정을 등져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윤활유님은 평범한 시민에서 투쟁가가 되어야 했고 2008년 7월 안티이명박 운영자가 되었습니다. 수석부대표 초심님께 수배령이 떨어지면서 조계사 항쟁이 시작되던 시기였습니다.

 

2009년 봄부터는 카페지기로 활동하시게 됩니다. 그러던 중 기륭전자사태 때, 공권력의 불법폭력에 항거하다 눈을 가격당하는 바람에 한 쪽 눈의 시력을 그만 잃고 마셨습니다. 그러나 눈 하나를 잃었다고 해서 독재매국정권에 대한 투쟁은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2007년 12월 첫 이명박탄핵 BBK촛불을 시작으로 2008년 5월 촛불항쟁, 조계사항쟁, 2009년 용산참사, 경주선거대첩, 고 노무현 대통령 대한문분향소 항쟁, 독도요미우리 소송, 지금의 한미FTA까지 안티이명박의 운영자로서 그 소임을 다하셨습니다.

 

그러나 안티이명박에 뛰어들면서! 촛불에 뛰어들면서! 그 3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사업은 좌초되고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에 일당 7만원을 받으며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무리하게 일을 해 오다가 간암이라는 병마만이 매몰차게 날아들었습니다. 만약 2008년 안티이명박 운영자로 뛰어들지만 않았다면 이렇듯 병마에 시달리지도 돌아가시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윤활유님은 자신에게 주어진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소명을 다하였고,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남은 우리에게 당부하였습니다. 이 땅에 무너진 민주주의가 다시 서고, 힘없는 약자들이 살아갈 만한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임종의 순간에 함께 한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그리고 안티이명박 촛불동지들은 다짐하였습니다. 반드시 그 당부를 지키겠노라고...

 

인생의 무상함은 아침이슬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윤활유님을 이토록 허무하게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반드시 매국부패정권을 몰아내어 윤활유님의 희생이 진정한 대한민국의 반석으로 기리 남을 수 있도록 싸우고 또 싸워 이길 것입니다.

 

지금도 윤활유님처럼 어디선가 자신을 희생하며 이땅의 광명을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름없는 촛불들!!! 윤활유님이 떠난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어디선가 뛰고 또 뛰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또 누구인가가 윤활유님처럼 쓰러져갈 것입니다. 부디 그분들을 외면하지 말아주십시오. 그분들과 함께 해주십시오.

 

윤활유님 부디 극락왕생 하시어 바로 선 대한민국을 굽어 살펴주십시오.

 

2012.  3.  24.  이명박 심판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출처 : 안티 이명박 카페지기 '윤활유'... 경찰 병원에서 사망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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