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남자친구를 사겨본 건 중학교3학년 때
물론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그랬는 지 병신 같았지만
22살 공익근무원을 만났다 기간은 두달 정도.. 만난 것도 아니겠지만 나한테 좀 위로가 되준 사람이니
당시 몸이 안좋아서 시립에서 운영하는 보건소를 찾아 갔다가 [무료로 뭐 해준다고였나..]
보건소에서 근무하는 공익근무원 오빠가 접수처에 적은 내 번호를 보고 연락했다
그 때는 내가 핸드폰 생긴 지 얼마 안되었을 때 마냥 신기 했지 뭐 우와~ 이정도
알지도 못하는 날 친동생 여기듯 이뻐라 해줘서 그게 그냥 좋았다
나는 장녀이기 때문에 뭔가 항상 잘해야하고 이끌어야 되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는데
못해도 괜찮고 다음에 더 잘해도 된다는 말이 그렇게 크게 와닿을 수가 없었다
근데 지금 생각해도 남자로 좋아한건 아닌것 같다
헤어진 계기는 두달만에 오빠가 손 잡았다는 이유였다
보수적인 게 있나 싶기도 하지만 그냥 싫었다 그래서 헤어졌다
고등학교에 올라갔다
남들은 고3때 살이 많이 찐다 하는데 나는 고1때 내 인생 가장 큰 몸무게 수치를 찍었다
문제는 내 스스로가 처음에 내가 뚱뚱한 줄 몰랐다
홀로 중학교 아이들과 떨어져 고등학교를 갔기 때문에 처음에 적응하기도 힘들고 그랬지만
나름 사교성 있고 친하게 지내면서 애들과 친해졌다
하지만 오래가진 못하였다
한창 미에 관심 같고 남자와 잘 어울리는 아이들의 구박이 시작되었다
이유는 모른다 그냥 심심하니까? 정도
아는 이 하나 없는 고등학교에서 나는 동아리 활동을 안했다
아니 못했다가 맞을꺼다 밴드 동아리에서 드럼 배우고 싶었는데 여자라서 안된다고
나에게 그렇게 말해서 나는 정말 그런 줄 알았다
그리곤 뒤에서 들었지 못생기고 뚱뚱한년이 어디서 드럼을 치겠다고 설치냐고
그렇게 마음을 닫았다 아 내가 뚱뚱하구나 못생겼구나
친구들과는 멀어지고 학교생활이 힘들어 지면서 나 스스로 게임에 빠져들었다
잘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냥 있는 그대로 나를 봐주는, 익명성에 가려주는 그곳이 좋았다
그렇게 두명의 남자를 만났다
동갑과 1살 많은 오빠
동갑은 나를 보자마자 뚱땡이소녀라며 내뺏고 1살 많은 오빠는 그에 비해 제법 오래 만났다
나는 나의 외모에 대한 자신감은 아예 잃은 상태인지라 그가 뚱뚱한건 상관이 없었다
그도 마찬가지라고 나에게 말했지만 금새 돌변했다
나 정도가 널 만나주는 건 감사해야 한다며 나에게 헤어짐을 고했다 많이 슬펐지만 참았다
일주일도 안되서 다시 만나자며 연락 왔지만 끊었다
그는 나와 만나면서 나보단 2살 어리고 귀엽게 생긴 여자애에게 고백했지만
차이고 나에게 다시 온거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2가 되었다
남고, 여고 같던 반들이 섞이고 얽히면서 남여합반이 되었다
남자애들도 밝고 여자애들도 밝고 좋았다
아직 고1때의 상처는 아물지 못한 채로 그렇게 아이들과 새로 사귐을 시작했다
이 또한 오래 가지 못하였다
당시 나는 문자 무제한 요금제이기 때문에 아이들과 문자를 잘하였다
이게 문제였다 당시 좋아하지도 않고 그냥 친구로 생각하는 남자아이와 문자를 하루에
100통 가까이 했는데 그렇게 했던 내 행동이 꼬리치는 년이 되었다
나는 고등학교 들어 야자를 해본적이 없다
이과였지만 예체능을 해 볼 생각이였기 때문에 미술 학원을 가기 때문이였는데
그 야자시간이 반 아이들에게는 나를 까고 씹고 우스워라 하는 시간이였나보다
내가 큰 맘 먹고 미술학원 하루 빠지고 야자한다고 하면 아이들이 그렇게 난리였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미술은 하루라도 빠지면 솜씨가 굳는다고
신발장에 신발 가지러 간 그 사이 남자애의 소리 뚱뚱한 년이 뭔 지랄
꼬리치는 것도 지랄 미술한다고 공부 피하는 것도 그리고 야자한다는 것도
많이 울었다 남들이 보이지 않는 공원에 숨어들어가
집에서 학원에서는 학교에서 야자하는 줄로 알았던 그 시간에 정말 많이 울었다
여름방학을 맞았다 많이 앓았다 많이 아팠다 모르겠다 먹는 족족 토하고 역겨웠다
얼마나 살이 빠졌는지는 모른다 여름방학 소집일에도 나가질 않았다
개학 당일 아이들은 나를 못알아봤다 전학생으로 알아만 봤다
짧았던 머리도 긴 머리가 되었고 64였던 나의 몸무게는 48이라는 숫자를 가지고 있었다
나라고 말하는 그 날 여자아이들은 살을 어떻게 뺏냐고 물어봤고
예전부터 날 좋아했다고 말하던 남자아이들이 생겨났다
혹자가 보면 기뻐야 할 상황일지도 모르지만 많이 역겨웠다 더 말을 하지 않았다
10에 8은 그렇게 청순수수해졌다며 관심가져라 했지만 나는 증오만 생겼다
고3이 되고 미술학원을 다니면서 학교와도 점점 멀어졌다
출석체크만 하고 홍대앞 미술학원에 가 말없이 그림만 그렸다
그러면서 남자친구가 생겼다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도 안난다
1살 많은 오빠였는데 집안 막둥이였다 고집도 쎄고 막무가내였다
나름 잘생겻다고 학원친구들이 부러워라 했지만 속내는 까만 놈이였다
자신이 고2때 사고를 쳐서 부모님이 고생하셨다는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말하고
또한 같은 동급생이랑 일쳐서 임신시켰는데 그 미친년이 안지우려고 지랄이라며
그 말 들은 날 헤어지자 했는데 힘으로 상가화장실에서 나를 덮치려 했었다
정신없이 그의 중요부위를 차고 도망치고 그날 그 일 계기로 보지 않았다
10살 이나 많은 친형에게 전화도 왔었고 그 부모님들에게도 연락이 왔었다
화도 내시고 어르기도 하시고 형이 조폭이기에 협박도 하였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워 아무에게 도움을 구하지 못하였다 다행히도 아무일 없었지만
처음으로 핸드폰을 없애고 모든 연락을 끊었다
유명한 미대에 붙었지만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에서 횡령범이 나타나면서 그 책임을 아버지가 맡게 되셨다
집안의 모든 가구에는 딱지가 붙고 아버지는 많이 좌절하시고 어머니도 많이 우셨다
수능이 끝나고 바로 일을 시작했다
등록금을 낸다고 했지만 역부족이였고 한 학기도 되지 않아 어느 봄날 울면서 자퇴서를 냈다
그렇게 겨울, 봄을 보내고 한창 더울 여름 인천공항에서 횡령범이 붙잡히면서 일이 풀렸다
부모님은 미술공부를 시켜줄수는 없지만 다른 공부를 하고 싶다면 해도 된다며 지원해주셨다
학교 처럼 잡아준다는 어느 학원에 들어가 츄리닝 두벌로 그렇게 보냈다
그 곳에서 생활은 힘들었다
술먹자며 놀자며 화장하고 오는 여자아이들, 나랑 만나지 않을래 하는 남자아이들
그 와중에 놀던 아이들 틈바구니에 있던 한 남자아이가 나에게 고백하면서 모든 아이들과 단절됬다
고백을 받지 않아 남자아이는 상심하고 그 와중에 다른 여자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던 남자애를
빼앗겼다며 괴롭혔다 반을 옮겨야 했고 나중에는 학원을 끊어버리고 독서실에 혼자 생활했다
그렇게 지금 대학에 들어왔다
미대와 공대의 차이는 너무나도 컸다
미대에서 현역인 나는 나와 다른 아이 둘, 그리고 나머진 재수생, n수생이 주로 되어 있었고
공대에서는 나와 어떤 여자애 하나 빼고는 전부 현역이였다
남여비율도 크게 다르고 힘들었다
그 와중에 한 남자아이가 많이 나를 챙겨줬다
전에 만났던 사람들에 대해 상처 받은 나는 그의 마음을 모르는 체 했다
거부하고 피했지만 그는 자신은 그럴 일 없다며 많이 구애했다
그렇게 나는 우직한 그를 보면서 믿고 맘을 주고 CC가 되었다
남자는 학교를 빨리 들어온 케이스라 동기에 비해 나이가 어렸고 나는 반대로 나이가 많았다
흔히 말하는 연상연하커플이였지만 그는 연하답지 않게 나를 아주 많이 사랑해주었다
사귄 지 1년이 되는 해에 스킨쉽도 거부했던 내가 자연스럽게 잠자리도 했다 물론 피임은 했다
정말 아주 많이 행복하고 사랑했다 좋은게 아닌 정말 이게 사랑이구나 싶은
여전히 CC라는 이유로 많이들 뭐라 하지만 주변에서도 결혼할 것 같은 커플이라며
주변에서도 많이 예뻐라 해주고 인정해줬다 많이 행복했다
그렇게 2년이 다가올 쯤 그는 나라의 부름을 받게 되었다
나는 기다림을 선택했다 그가 날 부담스러워 하진 않을 까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역시나 기다리지 말라는 그에게 정말 날 사랑한다면 그런 소리 하지 말라며 보냈다
춘천에서 남자친구 부모님과 함께 많이 울면서 보냈다
일주일에 2번의 통화, 5분도 채 안되는 시간 그냥 행복했다
편지를 써도 부대 밖에서 근무하는 그인지라 답장은 없었다
물론 컴퓨터로 다이어리를 써도 컴퓨터를 못해 그는 보지 못했다
많이 힘들었다 그렇게 말도 못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휴가에 맞춰 우르르 보기 쉽상이고 그래도 나는 많이 잘해주려 노력했다
2주년에 맞춰 신병정기휴가도 나오고 좋은 시간을 보냈다
포상이 없었던 지라 신병정기, 일병정기, 상병정기 그렇게 세번 보았고
내가 직접 보러 간건 외출때 그의 부모님과 같이 한번, 외박때 한번
그리고 면회때 한번 총 세번이였다
왕복 시간이 8시간이라 쉽게 오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였기에 핑계일지도 모르지만 그랬다
필요하단 소리가 없어 내가 먼저 알아보고 보내고 크게는 아니지만 소소하게
많은 고무신들이 하는 행동을 나도 똑같이 했다
똑같지는 않겠지만 항상 정해진 시간에 전화해주고 꽃도 보내고
손수 학을 접어 보내주는 그도 많이 노력했다
그러면서 학교 생활을 하다보면 별별 소리를 다 듣는다
우리 사이를 예뻐라 해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점점 안좋은 소리만 해줬다
많이 참고 많이 힘들었다 내색을 하지 않고 그러지말라 해도 사람들을 얄밉게
차인다 차인다 차인다 소리를 하고 헤어지라고 미련하다고 그랬다
그렇게 이번 달 그는 병장이 되었다
문제는 그가 나에게 헤어짐을 고했다 오늘이면 거의 한달이구나
점점 나에 대해 이건 아닌 것 같다 하던 그 마음이 이건 아니다라고 되었다고
더 이상 나에게 상처를 주기 싫다며 좋아하지만 사랑하는 게 아니라며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썩은 동아줄 같다고 했다
우리 사이에 끈이 이어져 있는데 서서히 썩고 갈갈 먹혀 끊어지는 거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설득했다
우리는 서로 한 겨울에 놓인 고슴도치라고
춥지 않기 위해 달라 붙지만 서로의 가시 때문에 찔리고 많이 아파하는
하지만 시행착오를 겪다보면 서로 찔리지 않으면서 따뜻하게 겨울을 나는 그런 사이
그렇게 봄을 맞자고 그랬지만 그는 답이 없다
상처준게 미안하다니 그렇게 따지면 나도 알게 모르게 그에게 잘한 건 없을꺼라 생각하는데
제설 작업이라는 이유로 그 이후 통화를 못하고 있다
다시 내일 저녁에 몇시쯤에 전화할께 전화할께 그렇게 밀려오다가
당장 내일은.. 마지막 전화 일지도 모른다며 그렇게 끊어졌다
처음으로 용기내서 붙잡고 그랬는데
오히려 질려 할 것만 같고 돌아올 것 같지 않고 가슴이 먹먹하다
내 꿈 속에 그는 항상 웃고 있는데 현실은 가혹하다
마음이 많이 힘들다
주말에 맞아 학과 과제 때문에 답사를 해야하지만 미룬 채 집으로 내려왔다
아무 말 하지 않고 욕실에 몸을 담고 많이 울었다
그리고 죽고 싶다는 생각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
뭔가 계속 맘이 아프다
헤어지자는 사실 때문인지 뭔가 확실치 않은 배신감 때문인지
그가 우스갯소리로 결혼할래? 이랬을 때도 에이 무슨 결혼이야 우린 어려라고 했지만
속으로 정말 이 사람이랑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고백을 말하던 나의 20대 초반을 행복하게 가득 채워준 사람인데
미팅도 소개팅도 한번도 해보지 못한 나에게
주변 친구들은 남자 만나라며 시간이 도와주겠지만
사랑의 상처는 다른 사랑으로 극복하라며 말한다
하지만 나는 사람을 못 믿겠다
우습게도 내가 헤어진 이들의 거의 대부분은
이상하리만큼 내가 그리웠다며 연락이 온다
나에게 더러운 기억을 준 강아지들도
어떻게 연락을 찾았는지 연락이 온다
더럽다 정말 더럽다 그리고 믿지 못하겠다
왜 있을 때 잘하지 못하는 것일까
무슨 말을 하는지 사실 지금 이 순간도 정리가 안된다
아무에게 말 못할 내 하소연
익명의 힘을 빌어 써본다 여기 써봤자 소용 없을 것 같지만
흔히 악플이라는 존재에 무섭지만 누군가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줬으면...하고......
계속 어리석은 생각이 많이 든다
코헬렛의 말 처럼.. 살아가는 것에 대한 허무함을 느끼며
그만 살고 싶다는 나쁜 생각
누군가의 글 귀에 많이 울며 많이 공감한다
죽을 것 같다고 몸부림 치기엔 우리가 헤어진 지 오래되었고
이제 살만하다고 하기엔 이별이 너무 생생해
처음부터 만나지말껄 후회하기엔 너무 늦었고
우리 정말 헤어졌구나 인정하기엔 아직 일러
왜 날 사랑했냐고 원망하기엔 내가 누린 행복이 컸고
그 행복을 감사하기엔 지금의 불행이 커
아무데서나 울기엔 너무 나이를 먹었고
인생은 어차피 혼자라면서 웃어버리기엔 나는 아직 어려
사랑한다고 말하려니까 우린 이미 헤어졌고
사랑했었다고 말하려니 나는 아직 너를 사랑하고
눈물이 나지 않으니 울고 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울고 있지 않다고 말하기엔 내 맘이 너무 아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난 또 이렇게 하루를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