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이값 못하는 남자들이 너무도 많은 것 같다.
남자들의 권위의식을 인습이 아닌 전통으로 여기고,
자신들의 하는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모습에 치가 떨린다.
가해자가 되려 당당하고 피해자는 움츠려야만 하는건가.
관용은 왜 피해자의 몫이 되어야 하는가.
어느 지인이 당한 성추행 사건은 우리의 현실을 엿보게 만든다.
버스에서 성추행 당한 지인은 그의 추악함을 견디지 못하고,
한 아저씨의 가발을 벗겨내버렸다.
그는 그 창피함을 알지만, 한 여인이 느꼈을 더러움을 알지 못한다.
되려, 경찰서에서 당당한 그의 모습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자신감인가.
종로 경찰서, 한 남자 경찰관은 되려 피해자 기록이 남는다거나,
절차가 복잡해진다는 어불성설로 귀찮음을 떨쳐내려 한다.
아니, 이게 어찌 귀찮은 일인가.
하물며, 피해자가 왜 피해 사실이 기록에 남는다는 것인가.
중재에 나선 여경찰은 당당히 말하지 못하고 어느 좁은 곳에서
피해자는 기록이 남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지인은 남자 경찰의 지나가는 한 소리 때문에 고소를 포기하려 했었다.
하물며, 수많은 여인들은 그런 수치심에 어찌 신고를 하겠는가.
되려 신고를 다독여야할 경찰이 여성들에게 신고를 하지 못하게
만드는 문화를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남성들의 권위의식이 사라지지 않기 위함인가. 병신아.
더불어, 남성들의 성추행을 경범죄로 여기기 때문에,
범죄자는 작은 내역과 작은 벌금으로 다시 세상에 기어나 오게 된다.
이런 사회가 범죄자에게 재범을 유혹하고 다독거리고 있다.
도대체, 왜 우리 사회는 피해자가 움츠려야만 하는가.
분노가 치민다.
성추행 당한 여인의 심정을 아는게, 나도 지하철에서 성추행 당해봤었다.
진짜 더러운 아저씨가 자신의 성기를 내 힙업된 엉덩이에 흥분했는지 계속 문댔다.
내가 그때 불같이 화를 냈어야 했는데,
사람이 가득 꽉차서 소리치면 괜히 다른사람 알기에 과민 반응하는거 같아서 피하고 말았다.
휴, 거기다가 군대에서 개찌질 정하사가 절 성추행 하려 했던걸 생각하면 화가 치민다.
진짜 불결함에 닭살이 돋음.
중요한건 그 더러웠던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는거야.
범죄자들은 가벼운 벌금으로 잊혀지고. 더러워.
아 지인에게 재차 소식을 들었는데, 진짜 분노에 이루말할 수가 없음.
가해자가 성추행 하긴 했는데,
사람이 많아서 떠밀려서 엳받아서 한거지 고의적으로 한건 아니라고 주장한대.
경찰은 정황을 봐야한다고 해야하고.
물론 가해자의 입장도 봐야하는 민주주의 사회이긴 하지만,
가해자가 말하는 것 좀 보소. 고의적으로 한게 아니래. 이게 말이 돼.
이런 피해자가 병신이고 경찰이 병신이냐.
그런 얼토당토 않을 변명을 하려고 했으면 차라리 말이나 말지.
정황상 아니면 그 범죄자는 아무것도 아닌게 되잖아. 이게 우리 현실이야.
씨씨티비 확인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대.
야호, 완전 희소식이야.
일단 성추행관련 고소가 접수가 되면 그 사항이 가족통보가 되는모양이야.
이래저래 항상 당당하던 그 사람이 경찰서에 전화해서 피해자와 통화를 하고 싶다고 하는거야.
아마도 합의를 보자고 하는거겠지.
가족들 앞에서 아주 큰 창피를 당했을거야.
꼭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되어야 대화를 요청한다고.
물론 반성해서가 아니라, 재수 옴 붙었다 생각하겠지.
그런놈들은 당연 법의 처벌을 받아야 하기에 합의 따윈 없다고 했지.
물론 이런건 양명성이 있어.
여인분들 잘 생각하고 고소해줬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