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시론]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승리한다”
흔히 이 시대를 타락한 시대라 한다.
그렇다면 원인 없는 결과는 없을 것이니, 그 원인을 말하라 한다면
필자는 한마디로 ‘거짓’이라 정의하고 싶다. 이 ‘거짓’이라 함은 ‘참’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래서일까, 예부터 말은 말인데 확인차 습관처럼 묻는 말이 있으니 바로 ‘참 말이냐’고 확인해 왔다.
이는 말이라고 다 같은 말이 아니라 거짓과 참이 상존하고 있음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처럼 참과 거짓이 상존하는 이 세상에서 참보다 거짓이 판을 치는 세상이 왔을 때,
또는 참과 정의가 핍박 받는 세상이 왔을 때, 그 시대는 부패와 타락이 정도를 넘어
말세(末世) 또는 말세지말(末世之末)이 도래했다고 말들 한다.
사실은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참과 거짓을 주관하는 참 신(神)과 거짓 신(神)이 있기 때문임도 이참에 깨닫자.
소위 진달래와 철쭉이다. 이 두 나무와 꽃은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극과 극의 관계를 가졌다.
철쭉은 강렬한 향과 빛을 발산하고 있다. 그래서 언뜻 사람들은 후자에 마음이 더 끌린다.
그러나 진달래의 또 다른 이름이 있는데 바로 ‘참꽃’이다.
진달래를 참꽃이라 부르는 것으로 보아 철쭉은 참꽃처럼 보이나
사실은 참꽃처럼 보이기 위해 몸부림치는 가짜의 극치임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가짜가 더 진짜처럼 보인다는 말처럼 말이다. 가짜의 극치라 함은 철쭉은 독을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상 만물 속에도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는 교훈과 깨달음을 담아 놨다.
그래서 “만물에게 배우라”는 가르침도 있는가 보다.
또 우리의 삶을 통해 이 같은 현상을 발견하게 될 때는 이미 이 세상은 모든 의식과 가치관이
무너져 버린 뒤임을 또다시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깨달은 자는 그 시대의 선각자(先覺者)가 되고 계몽가(啓蒙家)가 되어
타락한 그 시대를 향해 노래를 부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목 놓아 불러도 그 시대는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이미 타락한 세대가 되어 깨닫고자 하는 마음부터 없을 것이다.
“귀 있는 자는 들을찌어다”라고 말이다.
이 세상 천지에 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물며 짐승도 귀는 다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귀는 어떤 귀일까.
들어서 먹을 수 있는 이면적 귀를 말하며, 깨달을 수 있는 마음의 귀를 말한 것이다.
기왕 경서 얘기가 나왔으니 경서의 얘기를 좀 더 진행해 보자.
우리가 생각하기엔 하나님은 그저 하나님 한 분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경서엔 하나님이 한 분이 아니며, 이름도 하나가 아님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 다른 데서는 하나님인 줄 알고 착각하며 믿고 있는 유대인들을 향해
“너희 아버지는 마귀”라고 했으니, 바로 이 마귀가 당시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처럼 행세해
믿게 했으니 진짜가 아닌 ‘가짜 하나님’이었던 것이다.
그런 고로 하나님은 이 같은 가짜하나님을 믿는 가짜신앙인들에게
진짜 참하나님이 따로 있음을 알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시대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먹지 못하고 오히려 욕으로 여겼으니
가짜임을 스스로 증명한 셈이 됐다.
또 아버지가 참이니 그 씨로 난 아들 또한 참일 수밖에 없으니,
예수님도 “나는 참포도나무요”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며,
포도나무에선 포도가 나고, 그 포도에선 포도주가 나니,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포도주가 되는 것이며, 이는 진리의 말씀임을 알 수 있다.
바로 이 진리의 말씀 곧 참포도나무에서 나는 참포도주를 먹어야 신앙의 목적인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상대적으로 가짜 포도나무인 들포도가 있음을 알게 하면서
들포도엔 들포도주가 나고, 그 들포도주에선 생명 대신 죽이는 독이 나옴을 알게 했다.
이 깨달음 자체가 바로 ‘참 진(眞)’자를 쓰고 ‘이치 리(理)’자를 써서
진리(眞理)요 그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소중한 생명(生命)이다.
오늘날 우리 또한 이 진리로 나게 되면 우리 또한 참이 되고 진리가 되어
매사를 이치적으로 깨달아 진리로 회복하는 회복의 역군이 다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말하고자 함은 부패하고 타락한 거짓의 이전세상은 끝내고,
거짓 없는 새로운 세상을 꿈꿔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참으로 진리로
다시 나야만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즉,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사람이 있고, 정의는 분명코 승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