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정리 중 우연히 오래 전 전역할 당시의 행보관님께 전역 후 보낸 편지를 찾았습니다.
그것을 읽어보며 내 군생활은 나에게 많은 것을 알려준 시간이었구나 잠시 추억해봤습니다.
이곳엔 앞으로 입대할 사람도 다녀온 사람도 많은 듯 하니
입대할 사람에겐 두려움을 없애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다녀온 분 께는 다시가고 싶진 않지만 그 시절을 잠시나마 떠올리시라고 한 번 올려봅니다.
글이 매우 긴 편임을 미리 알려드려요 ㅎㅎ
존경하는 행보관님께
날씨가 무척이나 더워졌습니다. 아마 올해도 우리 탄약창에는 사방이 푸르름에 덮혀있겠네요. 물론 사회와는 다른 느낌으로 와닿는 푸르름이겠지만요. 무더운 이 계절에 행보관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저에게 있어서 군생활은 사실 생각만으로도 힘들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저 뿐 아니라 모두가 그렇겠지만 다른 사람들에 비해 조금은 늦은 시기에 입대를 하게 되어 입대 전 군복무에 대한 스트레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일이었습니다. 50사단에서 행보관님 말씀대로 야매로 신병교육을 받고 자대로 배치 받았을 때 뭐라 하기 힘든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는 천운이 따라주는 것 같습니다. 여태 깊이 바라던 일 중에 이루지 못한 일은 크게 없으니까요. 군생활도 그랬습니다. 막연한 두려움과 낯설음은 제 개인적인 것이였고, 제가 배치받은 우리 5탄약중대는 모두가 저를 따뜻하게 대해주었습니다. 원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제 나이를 선임들도 흠으로 여기지는 않았습니다. 지금도 복무했던 선임들과 동기, 후임들과 종종 연락을 하곤 합니다. 전역 후 군복무에 대한 꿈이 악몽이라는 사람들의 말과는 달리 제 꿈에서 나오는 군복무 시절은 거부감만이 들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그립기도 할 정도니까요.
최근 해병대 사건과 연이어 터지는 자살, 탈영문제를 볼 때면 사실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육체와 정신이 힘들다는 것은 분명히 알겠지만 그것이 자살과 탈영이라는 단순한 현실도피로 막으려는 것은 한 번만 더 생각해보면 그 후에 돌아올 일을 견디는 것이 다른 방법을 찾는 것 보다 그렇게 좋아 보였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군복무를 할 때에는 모두가 서로 관심을 가지고 아껴서 이런 생각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건가 하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행보관님에 대한 기억은 제 군생활에서 만나게 된 기분좋은 인연입니다. 때로는 저희를 웃게 해주시고 병사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시고, 저희의 입장에서 말해주실 때마다 너무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적절한 비유가 아닌 것 같지만 고용주와 고용자가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있듯 간부와 병사간에도 그런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간극은 현재 군에서 가장 신경쓰고 있는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로의 부분적인 전환(저는 사실 이 부분이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군대의 본질과 어긋나니까요...)으로도 도저히 없앨 수가 없는 것인데... 행보관님은 제가 심리적으로 흔들리고 걱정이 생길 때 존재만으로도 의지할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심지어 행보관님이 출장을 가시거나 휴가이실 땐 오히려 불안하기도 했었습니다. 지금도 그럴겁니다^^
저는 건강히 군복무를 잘 마쳤고, 군복무를 바탕으로 사회생활에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역할에 충실해야 함을 배웠고, 각자가 서로의 역할에 최선을 다 할 때 비로소 조직이 제대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누구하나 죽어도 그런가보다 하는 사회와는 달리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는 곳이 바로 군대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론 편하고 좋기만한 군생활이라고는 누구도 말 못하겠지만 남들이 버리는 22개월이라고 말하던 시간을 저는 여러 가지를 배운 22개월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전투부대에서 적들과 접하는 정도는 아니었으나 건강한 몸을 가져서 국방에 일조할 수 있었다는 점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5탄약중대의 분위기가 어떤지는 잘 모르겟습니다. 하지만 어느 사회에서나 그렇듯 그곳도 진통과 오류를 거치며 조금씩 발전하고 있는 조직일 것이라 믿습니다. 더욱이 행보관님과 같은 간부님이 어머니로 계시는 곳이니 이 믿음은 더욱 견고합니다. 이제 그곳에 제가 알고 있는 친구들이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부디 그곳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젊음을 보내는 친구들이 건강한 몸과 더욱 건강한 정신을 가지고 조금이나마 보람을 찾으며 복무하길 바랍니다. 서로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하여 필요한 요구를 하되 사적이고 남에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주는 행동을 하지 말며 전역후에도 저희들 처럼 함께 만나 술한잔 나누며 행복한 추억으로 안주삼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가길 바랍니다. 행보관님께서 이들을 그렇게 이끄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는 이곳 안동에서 방학이지만 부모님이 생업에 매달려 공부하고 싶어도 책이 없고, 공부할 곳이 없는 아이들을 학교로 불러내어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행보관님께서 늘 말씀하셨듯이 사람을 만드는 일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내 마음대로 되는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이 아이들이 몰랐던 것을 알게되고 저를 통해서 좋은 습관이 하나하나 생기는 것을 보면서 말할 수 없는 보람을 느낍니다. 남들이 교사라는 직업을 아무리 깎아 내려도 변해가는 아이들을 보면 그 쯤이야 무시할 수 있습니다. 군인도 마찬가지 인 것 같습니다. 여전히 왜 군인이 민간인에게 도망치듯 조심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잘한 일, 고생하는 것은 생각지도 않은채 사고가 날 때만 이슈를 삼는 태도가 너무 불쾌하지만 국가에 국군이 있어 우리가 주권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많다는 점 알아주시고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계신 분이 바로 행보관님과 이하 여러 장병들이라는 점 아시겠지만 한 번더 말씀드리며 또 감사드립니다.
1년 12달이 늘 바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와중에도 유머와 웃음을 잃지 않으시는 모습이 너무 좋았고, 존경스러웠습니다. 부디 앞으로도 그 웃음으로 건강하시며 가정에도 늘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꼭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만이 스승이 아닙니다. 행보관님은 제게 인생의 스승이십니다.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2011년 7월 22일 금요일
한때 행보관님의 오른팔이자 5탄 행정과장이었던
OOO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