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마틴 루터 킹과 말콤 엑스 그리고 블랙판터단으로 이어지는 미국 흑인 인권 신장 운동은 어느정도 성과를 거두긴 하였지만 백인들과 동등한 자리에 오르는 것은 실패합니다. 그래서 흑인애들이 화가 나 있었습니다.
여기에 한인들의 태도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주 1~2세대 한인들은 주로 슈퍼마켓과 같은 소매상에 집중했는데 여기서 흑인들을 맞이하는 태도가 문제가 됩니다. 흑인애들을 깜씨로 보고 비웃은 거죠. 간단히 말하면 나보다 더 피부가 더럽네 ㅋㅋ 역시 깜씨들은 무식하고 말하는 것도 웃겨.요렇게 된거죠.그러면서 백인들을 매우 우대했죠.
이런 한인들의 태도에 흑인들은 바나나(것은 노란데 속은 하얗다고)라고 부르면서 치를 떨었습니다.
그러던중 두순자라는 어느 슈퍼마켓 아줌마가 흑인 여자애를 쏴죽입니다.
저 아줌마가 조카 싸이코 패스라서 흑인 여자애를 죽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그녀는 두 차례나 흑인에게 강도를 당한 적이 있었고, 그런 점이 감안되어 총기도 소지한 상태였습니다.
당시 두순자는 포도 드링크를 사고 나가는 나탸샤 힐린즈가 돈을 안 냈다고 착각해서 그녀를 불러세웁니다. 한참 실갱이를 하던 중 당연히 전투종족 흑형의 피가 흐르던 나타샤는 두순자의 얼굴에 강력한 라이트를 후려치고 챔피언 벨트를 획득한 복싱 선수처럼 당당하게 돌아섭니다. 그러나 스킬 경직에서 풀려단 두순자는 바로 서랍에서 권총을 꺼내서 나타샤에게 헤드샷을 날렸죠.
나타샤와 두순자 모두 모범 시민이었습니다. 나타샤는 학업에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고 술이나 담배 마약도 안하고 성격이 좋은 학생이었습니다. 두순자씨 또한 힘들게 미국으로 건너가서 열심히 일했으며 주변의 사람이나 손님에게 친절하게 대했습니다. 그러나 안되는 날엔 모든게 안된다고 일이 꼬이다보니 그러게 꼬인거죠.
이후 법정은 두번이나 강도를 당한 두순자씨의 상황과 먼저 공격당해서 정상적인 상황판단을 할 수 없었다고 판단하여 무죄를 선고합니다. 당연히 흑인들은 빡쳤죠.
이후 결정타가 처지는 로드니 킹 사건입니다. 1991년 3월 3일 LA에서 과속운전으로 도주하던 흑인 청년 킹이 백인 경찰들에게 붙잡혀 곤봉으로 조카 쳐맞었습니다. 사실 이런 장면은 미쿡에서 흔한 장면중 하나였죠. 그런데 이게 인근 주민이 이 장면을 촬영해 언론사에 제공하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당연히 미국 전역이 난리가 났고 흑형들은 경찰들을 고발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넫 법원에서는 다소 폭력적이었다는 점은 인정되나 경찰의 정당한 체포였다고 결론내고 무죄를 선고합니다. 그게 시발점이었습니다.
당연히 이런 병신같은 판결에 분노한 흑인들은 판결이 발표된 그 날 길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며 시위는 점점 폭동으로 변해습니다. 30년전에는 마틴 루터 킹이나 말콤엑스 같은카리스마 있는 사람들이 이런 시위를 발전 적인 방향으로 이끌었지만 이때 시위는 그러한 것이 없었고 이는 폭동으로 연결되었습니다.
흑인들은 주변의 사람들을 아무나 총기나 몽둥이 주먹으로 무장한 다음 닥치는대로 훔쳤습니다. 그리고 지나가는 차도 털었고 근처에 있는 상점들도 털었습니다.
특히 흑인거주구역 바로 옆에 있던 코리아 타운은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아무리 강도에 대비한 대처를 해놨어도 저글링처럼 달겨드는 폭도들에게 무용 지물이었던 거죠. 이국 경찰들도 엄청난 규모의 폭동에 놀라서 계속 시 외각으로 도망만 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한인들은 민병대를 조직해서 이에 대응했습니다. 예비역 장교를 중심으로 한인타운 거점에 지휘부를 설치하고 무장을 한 상태에서 무전기와 한인 라디오 방송을 중심으로 연락책을 강화했습니다.
한인들의 재산 피해는 엄청났습니다. 당연히 대부분의 가게가 털렸고 자경단도 스스로의 목숨을 지키는 정도로 끝이 났습니다.
이후 인종차별에 관한 미국내의 태도가 엄격해졌고 종전과 같이 Black 이나 Nigger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한인들도 인종차별을 거두었습니다. 큰 상처로 얻은 뼈아픈 교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