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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마리아가 정말 동정녀일까? 및 다윈 등

의문의 |2012.05.01 21:40
조회 9,245 |추천 16

안녕하세요...

흠, 오랜만에 톡톡 쓰니 쓸말이 많네요....

으, 종교가 참으로 미묘하고 건들기 어려운 부분이에요.

근데 요즘 보면 까는 사람이나 반박하는 사람이나 논리적인 사람도 많지만, 무조건 적인 사람들도 많은것 같아요......

근데 중요한건 진실 아닐까요......

신이 내리거나 신의 말씀을 적었더라도 시간이 흐르며 인간의 손을 타기에 오류는 발생하고, 거짓도 나타날수 있습니다. 인간이니깐요.

제가 몇가지 오해에 대해서 몇자 적어볼께요.

 

일단 예수의 인간 아버지의 직업이 목수라고들 알고 있습니다만, 확실한건 아닙니다. 그리승 테크톤(tekton)이 목수라는 뜻임은 분명하지만, 그 단어는 아람어인 나가르(naggar)를 번역한 것이며, 나가르는 장인이나 교양인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유명한 오역은 이사야서에서 젊은 여성을 가리키는 헤부르어(almah)를 처녀라는 뜻의 그리스어(parthenos)로 번역한 것입니다.

 

네, 기독교에서 말하는 동정녀 마리아. 동정녀는 번역의 오류입니다! 마리아를 동정녀가 아니라 단지 젊은 여성이라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번역하는 과정에서 젊은 여성이 동정녀, 처녀로 바뀐것이고, 수천년이 지난 지금도 그 오류를 우리는 진실로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니, 대부분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죠. 아니라고 하시는분들은 찾아보세요. 인터넷은 많은 정보를 제공해주고, 도서관은 다양한 책들로 가득합니다.

 

 

찰스 다윈의 임종 직전 회계 했다는 소문

 

인터넷상에 돌아다니는 글 중에, '찰스 다윈의 유언' 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윈이 죽기 전에 '호프 부인(Lady hope)'이라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진화론에 대해 후회했다는 이야기입니다만 이 이야기에 대한 진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레이디 호프(Elizabeth Hope, 1842/12.9 ~ 1922/3.8)는 자신이 1882년에 다윈이 사망하기 전에 잠시 만나 그와 이야기를 했고, 그가 자신의 진화론을 사망하기 전에 부정했으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다고 1915년에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찰스 다윈의 일가는 이것을 부정했으며, 또한 "레이디 호프는 그가 최후를 맞을 때, 혹은 한번이라도 병석에 있었을 때도, 단 한 번도 그를 만난 적이 없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레이디 호프의 이야기는 흔히 창조설자(Creationist)들에게 '진실' 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큰 거짓말 중 하나이며, 일종의 현대의 전설처럼 취급되고 있습니다.

레이디 호프의 이야기는 미국의 침례교도 신문 'Watchman Examiner'의 1915년 8월 15일호에 실렸으며, 그 저자는 "신실한 영국 여인, 레이디 호프" 라고 알려졌으나 조사된 바 그 실제 저자는 L. G Pine에 의해 엘리자베스 호프라는 사람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기사는 신문에 실리기 전에 1915년 7월 30일, 노스필드의 summer Bible conference에서 4페이지짜리 리포트로 공개된 적이 있었습니다.

 

 

원문 -


[그것은 어느 화창한 가을 낮, 우리가 영국에 있었던 언젠가, 내가 유명한 교수, 찰스 다윈을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그는 죽기 전까지 거의 몇 달 동안 계속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나는 그를 보았을 때 왕립 아카데미에 걸려 있는
그림과도 같은 위엄을 느끼곤 했지만, 그보다 더 굉장한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며, 자수가 된 부드러운 가운을 입은 채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있었습니다.
베개에 등을 기댄 채 그는 바깥의 숲과 옥수수밭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일몰에 의해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의 모습은 내가 방을 들어설 때 거의 빛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창 밖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다른 한 손에는 한참 읽고 있었던 듯, 펼쳐진 바이블을 쥐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읽고 계신가요?"

내가 그의 침대 곁에 다가가 앉아서 묻자 그가 답했습니다.

"히브리서요. 히브리서는 위대한 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책이오. 그렇지 않소?"

그는 몇 몇 구절들을 짚으면서 그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창조의 역사를 증명하는 많은 사람들의 강한 견해와 창세기의 앞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인정하게 되었소."

그는 매우 좌절한 듯했고, 그의 손가락은 덜덜 떨리고 있었으며, 고통스러운 표정이 그의 얼굴에 나타났습니다.

"그 때 나는 불확실한 생각들을 손에 쥔 청년이었소. 모든 의문과 암시, 모든 것에 대한 질문들을 내던졌지.
그리고 나도 놀랄 정도로 그것은 들불처럼 퍼져 나가서, 사람들은 그것으로 종교를 만들었소."

그는 멈추고, "신성하신 신과 신성한 이 책" 에 대한 몇 문장을 더 읽으며 손에 쥔 바이블을 부드러운 시선으로 몇 번이고 쳐다본 뒤 갑자기 말했습니다.

"나는 저기에 서른 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여름 별장을 가지고 있소."

그리고 그는 열린 창문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습니다.

"당신이 저곳에서 많은 이야기를 해 주기 바랍니다. 나는 당신이 사람들에게 바이블을 읽어 주길 바랍니다.
내일 낮에 저기에 하인들과 소작인들과 이웃들을 모이게 하겠소. 부디 그들과 이야기해주실 수 있겠소?"

"제가 무엇에 대해 말해야 할까요?" 내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웅장하고 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Christ Jesus)!"

그리고 낮은 톤으로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희생에 대해서요. 가장 좋은 주제가 아니오? 그리고 당신이 노래를 좀 불러주셨으면 합니다.
당신이 만약 세 시에 그 모임에 참석해 계실 때 이 창문이 열려 있다면 나도 그 노래를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될 것이오."

내가 얼마나 바라왔던 일이었는지! 나는 그 기념할만한 날, 그의 모습에서 아름다운 빛을 본 것 같았다! ]

(본문 끝)

---다윈의 가족들의 반박


다윈의 가족들은 모두 이 이야기에 진실성이 없으며 그 이야기가 거짓말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윈의 아들 프랜시스(Francis)는 1918년 5월 28일,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습니다.

[[아버지의 종교관에 대한 레이디 호프의 주장은 철저한 거짓말(quite untrue)입니다.
나는 그녀의 거짓됨에 대해 고발했으나, 그 어떤 응답도 없습니다. 나의 아버지의 불가지론적 관점 (Agnostic point of view)는 나의 "찰스 다윈의 삶과 편지들" 1권 305-314페이지에 담겨 있습니다.
당신은 이것을 발표할 자유가 있으며, 그렇게 해 주신다면 감사할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1922년 다시 되살아나자, 다윈의 딸 헨리에타 리치필드(Henrietta Litchfield)는 'the christian'의 1922년 2월 23일호의 기사에 서술했습니다.

[다윈의 임종 이야기에 대해 : 나 R. B. Litchfield는 그것을 부정합니다.

나는 아버지의 임종 때에 함께 있었고, 레이디 호프는 그의 마지막에도, 그 이전에도 단 한번도 그와 함께 있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그녀를 만난 적조차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설사 만났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아버지의 생각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했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그 어느 때에도 자신의 과학적 관점을 철회한 적이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이야기가 미국에서 위조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중략)
그 모든 이야기들은 단 하나의 근거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1958년, 찰스 다윈의 자서전이 다윈의 손녀 Nora Barlow에 의해 재판될 때, 1887년 아들 프란시스 다윈이 수정했던 문장들이 복원되었습니다.
이 문장들은 다윈의 신에 대한 관점을 담고 있었고, 그것은 기독교(Christianity)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고 있었습니다.


---후대의 개작(改作)과 학문적 연구


레이디 호프는 이 이야기를 약간 수정하여 'Battlefield of Faith'(1940)의 저자인 S.J.Bole에게 보냈습니다.
이 이야기는 'Dr Paul Marston's article에 담겨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널리 퍼져 유명한 현대의 전설이 되었습니다.
Ronald W. Clark은 그의 'The Survival of Charles Darwin' 에서 이 이야기를 잠시 언급했습니다.
'The Darwin Legend'의 저자 James Moore는 레이디 호프가 1881년 10월 2일부터 11월 28일 사이, 아들과 딸들은 없고 부인 엠마만이 있을 때에 몇 번 다윈을 만났었노라고 주장했으며, 이 이야기를 미화했습니다.

'Dr Paul Marston's article'또한 다윈이 침대 대신 소파에 앉아 있었으며, 언제나 바이블을 읽고 있었노라고 내용을 고쳐 썼습니다.

오늘날에도 이 이야기는 현대의 근본주의적 개신교인들과 창조설자들에 의해 반복되고 있습니다.


---결론

찰스 다윈의 종교관은 복잡했으며, 그의 인생 동안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그는 논쟁을 피하기 위해 주로 불가지론과 이신론(理神論)적 태도를 보였으나, 노년기에는 확실히 기독교를 부정했습니다.

그는 심장병에 의해 죽음에 이르르게 되었고, 73세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어떤 망상 증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그는 임종 전날 말했습니다.
"나는 죽음 앞에서 일말의 두려움도 갖고 있지 않다."

그의 딸 헨리에타는 그의 임종까지 그와 함께했으며, 그가 기독교를 다시 택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진짜 유언은, 그의 부인 엠마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정말 좋은 부인이었소."

 

 

마지막으로 어떤 님들은 우리가 서기를 쓰는것 자체만으로 예수님의 존재를 알수 있지 않냐면서 서기를 쓰는게 예수 생존의 절대적인 이유라도 되는것처럼 말하시는데 절대 아닙니다.

근대에 와서 유럽의 힘이 강해지면서 그들에 의해 세계가 재편되고, 지구촌화되면서 그들이 써왔던 서기를 쓰기 시작했죠. 우리나라나 동양의 여러 나라들이 서기를 사용한지는 백년이나 됬나요?

그리고 A.D 나 B.C나 예수님이 탄생 전, 후를  가르키는 뜻은 맞지만 절대적인건 아닙니다.

실제적으로 많은 학자들도(예수가 존재했다 믿는) 예수의 실제 탄생을 기원 전후 몇년인지 의견이 일치되고 있지 않습니다. 단지, 정치적인 이유로 그 당시 카톨릭을 로마가 국교로 지정하면서 기독교가 전 유럽으로 퍼지면서 사용이 시작됩니다.

 

처음 서기라는 개념이 생겨난 것은 6세기경 로마의 대수도원장이었던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가 교황 성 요한 1세에게 정확한 부활절 날짜를 확인해 주기 위하여 서기라는 개념을 고안하면서 부터입니다.

이는 예수의 탄생이 로마 건국후 754년이라는 것에서 근거한 것으로 이후 9세기경 샤를마뉴 시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즉, 그들도 대충 짐작할 뿐이지 천여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난후에야 사용을 시작했어요. 천여년 전 인물의 생일을 기준으로 한다고 그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지 않나요?

 

 그리고 년도를 떠나 날짜도 12월 25일은 절대 아니구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세요. 한겨울에 양을 몰고 풀을 뜯기로 양치기가 들판이나 산으로 나갈수 있나요.

 

 

읽는 분에 따라서 기독교 까는 글로 보실수도 있지만, 저는 사람들이 믿음이나 신념에 얽매여 진실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니체가 그랬죠.

 

믿음은 무엇이 진실인지 알고 싶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념은 거짓보다 더 위험한 진실의 적이다

 

 

추천수16
반대수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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