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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최악의전투

최숙희 |2012.05.03 11:49
조회 48,560 |추천 85

 

앉아있는 사람이 유재흥.



지금부터 쓰는 글은 대한민국 국군 역사상 최악의 패전인 현리전투의 이야기

자세한 작전상황은 밀덕(밀리터리 덕후)이 아닌 이상엔 의미없을테니 간략하게 쓰겠음




3군단은 1950년 10월에 창설되었음. 주로 후방작전을 담당했으나 중공군의 참전이후

최전선에 투입되어 중동부 방어선을 담당하게됨





사건은 강원도 현리에서 벌어짐. 현리는 국군 3군단이 방어하는 거점이었으며 좌측에는 미군 10군단

우측에는 국군 1군단이 방어전선을 구성하고 있었음

중공군은 현리에 주둔중인 3군단을 목표로 공격작전을 수립하고 공격을 감행





당시 3군단의 보급로는 오마치 고개라는 작은 통로하나뿐이었는데 3군단장 유재흥은

그곳에 일부 병력은 배치했으나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고 중공군은 밤사이에 산악지형을

30키로나 돌파해서 오마치고개를 점령해버림.

당시 오마치 고개를 점령한 병력은 달랑 중공군 1개중대 백여명.

포위당한 3군단은 총병력 2만 2천명.




하지만 포위당했다는 공포에 휩싸인 군단장은 소식을 듣자마자 경비행기를 타고 1등으로 도주해버렸고

지휘관을 잃은 부대는 고위 장교들부터 차례로 겁에질려 계급장을 떼버리고 뿔뿔히 흩어져 도망침.

군단의 지휘체계는 순식간에 공중분해.

병사들은 아무런 지휘를 받지 못한 상태로 처절하게 패주.




중공군의 추격으로 70킬로미터 이상 밀려나고나서 미군이 급히 구원부대를 파견해 겨우 정신을 차린 국군은

병력의 절반이상 장비의 대부분을 잃게되었고 역사상 최악의 패전으로 기록됨






미군 총사령관 밴플리트가 이후 유재흥을 만나 물어봄

밴: 자네의 부대는 어디있는가?

유: 잘 모르겠습니다.

밴: 당신 예하 사단들은 어디간거야. 모든 포와 장비는 상실한건가?

유: 그런거 같습니다.

밴: 당신의 군단을 해체한다. 다른 일자리나 알아봐



이 전투에서 보여준 한국군 지휘부의 무능을 기화로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은 미군에 넘어가게 되었고

전작권은 노무현시대에 와서야 겨우 환수논의를 시작하게 됨.




지휘관 유재흥 약력

대표적인 친일파 일본군 출신 장교. 미군에 의해 해방이후 국군장교로 발탁



의정부에서 패배로 2사단 해체

- 6.25 발발 직후 바로 옆지역 1사단이 파죽지세로 달려드는 인민군의 T-34 탱크에 맞서

대전차 무기 하나없이 그야말로 맨주먹으로 피를 쏟으며 기적에 가까운 방어를 해내며 버텼으나

유재흥이 담당한 2사단이 순식간에 공중분해 당하면서 곧바로 방어선이 뚫렸고 이로인해

서울이 그대로 점령당하고 전쟁초반에 저항할 수 있는 시간, 공간적 여유를 날려버림.

결국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림.





중부전선에서 패배로 2군단 해체

-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UN 군과 국군이 북진하여 북한을 완전히 점령하기 직전의 상황에서

대규모의 중공군이 기습적으로 투입되었고 대부분의 부대가 기습에도 불구하고 각부대의

영웅적인 저항 ( 예를들면 미 해병대의 장진호 전투 ) 에 힘입어 단번에 망가지지 않고 버틴 상황에서

유재흥의 2 군단이 곧바로 공중분해



뚫린 방어선으로 중공군이 집중적으로 밀고 내려오는 바람에 전면적인 전선붕괴로 1. 4 후퇴 시작

결국 사라진 2군단의 지역을 터키군 1개 여단( 군단의 10 분의 1병력 ) 이 대신 틀어막고 버틴덕에

겨우 완전 포위를 면하고 UN 군은 후퇴함. 하지만 역시 서울을 다시 빼앗김.





현리전투에서 패배로 3군단 해체

- 휴전선 부근에서 치열한 고지전이 벌어진 전쟁후반부에 군단장이 단 백수십명의 적군에게 겁에질려

부대를 버리고 도주. 군단은 결국 전멸당했고 다시한번 방어선에 대규모 구멍이 남.

이 패배로 전선이 다시 수십킬로미터 밀려났고 그 거리는 수십만의 국군과 UN 군 병사의 피와 목숨으로

다시 회복해야 했음.




정전협상 당시 남한측 옵저버로 참석하였으나 일본군 육사 출신이라

"" 한국어 "" 를 제대로 못알아듣는 바람에 통역을 데려감.




본인이 지휘한 부대는 전부 전멸 혹은 해체당함.

4. 19 혁명이후 군에서 쫓겨났으나 박정희의 군사반란이후 요직에 중용.

(유재흥은 박정희의 일본군 육사 3년 선배)


국방부장관, 각국대사, 대통령 특별 보좌관 등 각종 자리에서 활발하게 활동함.

이후 성우회(퇴역장성모임) 회장으로 활동.

전시작전 통제권 환수논의당시 성조기를 들고 앞장서서 반대운동주도

(누구때매 뺏겼는지 기억이 났나?)




당시 현리전투에서 북한군에게 포로가 되어 북송. 북한에 협력하기를 거부하고 죽도록 고생하다가

1994 년 전쟁종전 후 40 년 만에 남한으로 탈출한 조창호 소위가 유재흥에게 면담을 요구했으나

끝까지 면담거부.




원균과 다른점은 그래도 원균은 전투에서 패전후 죽었으나 유재흥은 살아서 나라를 망치고 다녔음.

작년에 91 세의 나이로 잘먹고 잘살다가 사망. 이명박 정부는 즉시 국립묘지 장군묘역에 안장.




원균: 임진왜란 초기 경상우수영 파괴, 임진왜란 후기 칠천량 해전. 조국의 운명을 말아먹는급의 무능 2회.

유재흥: 6.25 초반 서울 북부 방어선 파괴, 6.25 중반 1.4 후퇴 직접적 원인, 6.25 후반 3군단 전멸

조국의 운명을 말아먹기 3회 달성. 500 년 만에 원균을 능가하는 업적 달성.

추천수85
반대수5
베플쓰레기민주당|2012.05.03 12:41
민주당 친일파 후손들 명단*신기남 부친 - 신상묵은 독립투사 잡아들여 온갓 고문을 가하던 일본경찰인 오장(일본명 시게즈미)독립투사분들을 거꾸로 매달아 우물에 처박았다고함그런데도 신기남은 끝까지 그 사실을 부정하다 실제로 신상묵에게 고문당한 독립투사분들이 나타나자 마지못해 사과... *이미영 부친 - 신기남이 아버지랑 거기서 거기... 일제헌병의 딸.이미경 부친이 저지른 악행은 신기남 부친과 맞먹을것임.*정동채 부친-역시 일본헌병 오장 출신*정동영 부친 - 당시 일제의 앞잡이로 조선 농민들을 착취하던 금융조합서기(식산은행 계열)동포의 고혈을 빨아먹던 악질중의 악질 친일파.*김근태 부친 - 일제하에서 훈도훈도가 무엇인가? 큰칼차고 일본제국주의 정신주입에 앞장섰던 악질 친일파*김희선 - 남의 조상들을 친일파로 몰면서 재미봄그러나 정작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부친은 친일앞잡이 만주경찰이였슴(일본명 가나이에이치)일제첩자로써 독립투사 사냥에 적극적으로 앞장섰다고 함.생존 독립투사분의 증언으로는 일본도로 사람의 목을 베고사람을 산채로 굶주린 새파트에게 잡아먹히게 했다고함.악질중의 악질 친일파였음 그러면서 정작자신은 과거에 남의 조상들이 친일파였다고 공격일삼음하지만 자신부친의 진실이 드러나자 사과한마디 안함.*유시민-아버지 일제하 훈도(김근태 부친과 더불어 가장 악랄한 친일파중 하나임)큰아버지는 일제하 면장 이었음.*조기숙 - 청와대/열우당 권력의 대변인하면서, 맨날 박근혜와 조선일보 못죽여 안달인 그 여자... 웃끼게도 그가 맨날 죽이려고 하던 조선일보에 의하여, 조기숙은 동학혁명의 원인이된 친일파 탐관오리 조병갑의 증손녀라고 밝혀짐!!! ... 할아버지는 총독부 기관지 기자 출신 민주당의 김경천 김성호 김태홍 김희선 배기선 박상희 설송웅 설훈 송영길 신기남 심재권 원유철 이상수 이재정 이종걸 이창복 이호웅 임종석 전갑길 정장선 최용규 의원
베플김동건|2012.05.03 21:20
ㅋㅋㅋㅋㅋ진짜 찌질한 나라다 대한민국. 친일파 독재자가 죽을때 까지 무사하게 독재하고도 죽고나서도 독재자 숭베에 제사를 지내지 않나. 정부는 친일파로 가득차지 않나. 일제강점기 끝날때 일본의 장군 하나가 했던말 기억난다. "이미 조선은 끝났다. 조선의 국민성은 이미 우리가 박살냈다. 앞으로 미래는 없다." 라고 했던가. 21세기까지 친일파가 나라를 다스리니 정말 미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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