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친왕 이강
일제를 거부한 독립투사 황태자.
장남 순종황제가 승하하고 본래 고종황제의 차남인 의친왕 이강이 왕위를 물려받아야 했지만,
이강은 일제에 대한 강한 반발로
일본에 의한 왕위승계를 강력히 거부했다.
부왕인 고종황제가 독살로 승하하자
독립조직인 대동단을 결성하고 독립군이 있는 곳으로 망명정부 설립을 시도했지만
결국, 만주에서 붙잡혀 강제 송환되었다.
일본의 강화된 감시 속에서도 상해 임시정부 독립군들에게
자신의 전재산을 털어 계속 자금을 대주었고
결국 연금마저 끊긴 의친왕은 광복 후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하다 영양실조로 병궁에서 승하했다.
영친왕 이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어린나이에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일본으로 인질로 끌려갔다
고종황제에 이어 순종황제도 승하하자 의친왕 이강 대신에 일본에 의해 왕위를 물려받았다.
현재 일왕인 아키히토의 어머니와 사촌자매였던
마사코와 강제결혼해 이구를 낳았다.
한국으로 귀국해서는 일본에서의 충격으로 말을 못하는 실어증에 걸렸고
장애인들을 위한 자행원을 설립하고 1989년 병상에서 생을 마감했다.
슬하에는 일본 왕족 마사코 사이에서 낳은 이구가 있다.
덕혜옹주
고종의 마지막 딸.
고종이 독살로 승하하고 오빠인 순종마저도 지병으로 승하하자,
국장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일본에 의해 끌려갔다.
쓰시마섬(대마도)의 영주와 강제로 정혼을 맺었으며
출산 후 지병이 심해졌다.
결국, 쓰미사섬 영주는 덕혜옹주를 정신병원에 15년동안 감금한다.
친딸은 조선인 피가 섞여있다는 이유로 일본인들의 따돌림을 받아 자살하였고
덕혜옹주는 그 충격으로 한국에 귀국 후 실어증에 걸려 지병으로 고생하다
1989년 세상을 떠났다.
이우 왕자
의친왕의 아들로 일명 운현궁의 오라버니로 유명하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관으로 있으면서
아버지 의친왕에 이어 독립운동을 준비해오다 일본에 의해 발각된다.
결국, 수많은 청원에도 불구하고 조선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일본 히로시마에 발이 묶여버린 이우 왕자는
당일 미국이 투하한 원자폭탄에 의해 피폭 당하지만 살아남는다.
하지만, 그날 저녁 청산가리에 의한 독살을 당해 33살의 짦은 생을 마감한다.
그의 장례식날은 일본이 항복하고 조선이 독립한 8월 15일이었다.
이우 왕자의 감시관이었던 요시나리는 후에 이우 왕자의 심복이 되었지만,
일본의 독살을 막지 못한 죄책감에 자신도 유서를 남기고 할복자살했다.
이우 왕자는 평소에
“내가 돌아가면 대한제국은 더 이상 제국이 아니며 백성을 위한 민국이 되어야한다”고 말했다.
그가 만약 살아있었다면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다고 일각에서는 말한다.
황태손 이구
대한제국 황실의 마지막 수장.
어린나이에 볼모로 일본에 끌려간 영친왕과 일본 왕족 마사코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다.
사실상 대한제국의 마지막 적통 황태손이다.
그러나 05년도에 일본 도쿄에서 의문사로 발견되었으며
일본정부에서는 한동안 한국에 알리지 않고 이를 숨겼다.
부검을 담당한 일본 검시관들은 시신과 내장을 표백처리하고 공개했다.
하지만, 시신은 독극물에 피살된 시신처럼 검은빛이 돌았다.
이로써 황실의 적통은 의문사로 끊어졌다.
황손 이석
의친왕의 열한번째 아들로 이우왕자의 이복동생이다.
영친왕의 아들은 이구를 마지막으로 적통이 끊어졌으며
의친왕의 아들은 현재 이갑과 이석만 남았다.
과거 가수로 활동하다가 현재는 전주에서 거주 중이며
황실보존국민연합회 회장으로 있다.
황사손 이원
의친왕의 아홉번째 아들인 이갑의 아들.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추대로
적통인 영친왕의 아들인 이구씨의 양자로 입양되었으나
황태손 이구씨 사후에 입양되어 법적으로 후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황실에서 세력이 큰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은
고종황제-순종황제-황태자 영친왕-황태손 이구-황사손 이원으로 황실 적통을 주장한다.
이진(이해원) 옹주
의친왕의 둘째딸인 이진은
한국전쟁 때 남편이 북한에 납북되면서 4남매를 혼자 키웠다고 한다.
06년도까지 하남시의 네평남짓의 사글세 방에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었다.
대한제국 황족회는 이진을 옹주로 승계하고
제30대 황위 계승자로 옹립하여 2006년 문화 대한제국의 여황으로 추대되었다.
하지만,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은 황사손 이원을 적통으로 내세우며
대한황실재건회와 함께 일제히 반대하고 있다.
이홍
의친왕의 손녀이자, 고종황제의 증손녀.
정식으로 옹주나 공주로 당연히 인정받지 못하지만,
일부 매스컴 언론에서는 한국에 남은
상징적인 의미의 마지막 공주로 말한다.
영화 불꽃처럼나비처럼에도 등장하며
방송인으로 활동해오다 요즘은 연예계 활동은 접은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공주란 황제와 황후 사이에 낳은 여식을 말하며
옹주는 황제와 후궁 사이에 낳은 여식을 말한다.
이진
고종황제의 증손녀이자 황손 이석의 둘째딸.
이홍과 자매지간이다.
자신을 황족이라 생각하지 않고 일을 좋아하는 여성이라 밀한다.
도예과를 전공하여 도자기 제작에 심취한 이진은
무형문화재 호봉 장송모 장인의 제자가 되었다.
여러 예술활동에 참여 중이다.
대한제국 황족의 후손으로 순종은 자식이 없었으며
다음 왕위를 받은 영친왕의 아들 이구씨 또한 자식이 없었다.
일제에 반발에 순종황제 다음 왕위 즉위를 거부한 의친왕은
13남 9녀를 자식으로 두었고 이중 아들로는 이갑씨와 이석씨만 현재 생존 중이다.
이석씨는 슬하에 장성한 두 딸이 있으며 이갑씨는 고령의 나이에 LA에서 생활 중이다.
이갑씨의 아들은 이원으로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는
이갑씨의 아들을 황사손으로 옹립하여 황족의 마지막 핏줄을 지키고 있으며
이원은 현재 98년, 99년생의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미래 황족은 적자인 아들로써
황사손 이원씨의 자제인 저 어린 두 아이들에게 남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