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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잡아가기 대작전

왕보리 |2012.05.25 12:44
조회 2,528 |추천 10

출처 : http://web.humoruniv.com/main.html
< 웃대 : 와이구야 님 >

 

김씨 잡아가기 대작전

 


한적한 산골 마을 귀퉁이엔 오랜 세월 아련함을 담고 있는 한채에 초가집이 있다. 그곳엔 예순이 훌쩍 넘

은 김씨가 이제 갓 돌이 지난 손자와 단둘이 살고 있었는데, 늙은 나이에 그는 손자를 돌보느라 많이 버거

운 상태였다. 허리는 45도쯤 휘어 자신의 앞가림 조차 힘들었으나, 손자에게 이유식 한잔이라도 먹여줄려

면 매일 같이 풀밭에 나가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런 김씨가 자존심은 어찌나 쎈지, 주변 사람 도움을 전혀

원하지 않았다. 뭐든지 자신의 일은 자신이 알아서 한다며 안그래도 없는 사람 발걸음을 마다 하였다. 하지

만 그것은 허세에 불과하였다. 머리가 새하얗게 쉬어버린 노인이 할만한 일은 마땅히 없었다. 그저 먹을 만

한 풀뿌리 몇개를 뽑아들어, 멀고먼 읍내까지 아이를 업고나가 그것들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였다. 물론

나라에서 몇푼 쥐어주는 푼돈이 매달 들어왔지만, 이래저래 돈들어 갈 일이 많은 요즘 세상에 그런 푼돈으

론 살기가 벅찼다. 그날도 노인은 멀고먼 읍내까지 나가 한 소쿠리에 천원 하는 풀뿌리를 다섯 소쿠리밖에

못팔았다. 요즘들어 물가가 급상승 하다보니 이유식에 가격이 만만치가 않다. 어제 팔아놓은 돈과 오늘 번

돈을 모아 근처 슈퍼로 향했다. 김씨는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손자에게 싸구려 이유식을 먹이고 싶진 않았

다. 자신의 반쪽이 5년전 이 세상을 떠나고 난 후, 그는 홀로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런 그를 찾

아온 손자는 한 줄기에 빛이였다. 자신의 삶에 낙이며, 이유로 자리를 매김 한 것 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손자만은 잘먹이고 싶었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제일 비싼 이유식 하나를 집어들어 계산대로 향했다.

"어이 총각. 이거 하나만 계산해 주게나."

 

 

집에 도착한 노인은, 제일 먼저 손자를 이불자리에 눕혔다. 하루종일 시끄러운 시장바닥에서 낮잠도 제대

로 자지 못했을 아이였다. 눕자말자 스르륵 눈이 감기는 손자를 보니 마냥 귀엽기만 하였다. 오른손 검지

를 굽혀 포동포동한 볼살을 어루만졌다. 아이는 잠이 들고 그런 모습을 김씨는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는 생각하였다. 과연 자신과 살면서 아이가 행복 할 수 있을까? 지금은 아무것도 모른채 잠을 자고 있지만

점차 나이가 들어갈수록 늙은 노친네와 단 둘이 사는 자신의 모습에 열등감을 가지게 될 가망이 높았다. 그

러므로 아이에겐 부모가 필요하였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던 아이의 어미는, 출산을 함과 동시에

생을 마감하고야 말았다. 그렇게 마누라가 죽어버리자 김씨의 아들인 아이의 애비는 매일같이 술을 들이키

며 괴로워했다. 하지만 아무리 괴롭더라도 그래서는 안되었다. 몇날 몇일을 술에 쩔어 살던 그는 끝내 해서

는 알될 짓을 결심하고야 만다. 처량하게 목을 매달은 김씨의 아들은 방 안에서 써늘하게 식어만갔다. 그로

써 아이는 제대로 눈을 뜨기전에 부모를 몽땅 잃었다. 자신을 낳아주신 부모님 얼굴도 익히지 못한채 모두

보내고야 말았다.

김씨는 가여운 아이를 바라보다 자신의 배꼽시계가 울리는 것을 느꼈다. 생각해보니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

질 못했다. 늙어 갈수록 잘먹어야 힘이 날텐데, 그럴만한 사정은 되질 못하였다. 그날도 김씨는 한 칸 짜

리 냉장고에서 쉰 김치를 꺼내어 밥과 함께 먹었다. 그저 요란한 배꼽시계를 진정시키기 위한 행동이였다.

어느새 한 그릇을 말끔히 비운 김씨는 밥상을 들기위해 두 손으로 밥상에 양 옆을 쥐었다. 흡!하는 소리를

내며 밥상을 들어 올리자 허리가 지끈함을 느꼈다. 두통 또한 슬금슬금 기어온다. 들려던 밥상을 도로 내려

놓은뒤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았다. 두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다가오는 두통을 최대한 멀리 보내었

다. 하지만 도통 나아질 기색이 없다. 그제서야 김씨는 자신의 몸이 많이 쇠약 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

자 덜컥 겁이 난다. 자신이 죽을꺼란 생각보단 혼자 남을 손자를 생각하니 두려움이 엄습하였다. 안그래도

부모님을 잃어 심란해할 아이인데, 보살펴줄 보호자 하나도 없어진다면 아이의 삶에 먹구름이 걷히는 날은

없을 것이다. 김씨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자를 위해서라도 결코 쓰러져서는 안되었

다. 김씨는 기합을 넣으며 다시한번 밥상을 움켜쥐었다.

어느덧 밤이 깊어 이제는 자야할 시간이다. 김씨는 보고있던 TV에 전원을 끄고 전등불도 껐다. 이내 방안

은 어둠으로 깔렸다. 조용한 산골 마을에는 손자가 자면서 들려오는 쎄-쎄-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김씨

는 손자의 바로 옆에서 몸을 뉘였다. 딱딱한 베개를 목쪽으로 잡아 당기며 눈을 감았다. 그리곤 스르륵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잠시후 김씨는 눈을 떴다. 하지만 자신이 눈을 떴다는 것을 감지하기가 힘들 정도로 방안은 어두컴컴하였

다. 답답하고 숨이 찰 정도로 어두운 방안에서 노인은 더듬더듬 무엇인가를 찾기 시작하였다. 이윽코 원하

던 그것이 손에 닿이자 손으로 움켜 쥐었다. 그것은 전자 손목시계였다. 아들이 죽기전 선물해줬던 것이였

다. 왼쪽에 버튼을 누르자 초록빛 LED가 켜지며 새벽 3시란걸 보여주었다. 김씨는 몸이 쇠약해지니 밤잠도

없어지나하며 한숨을 쉬었다. 손목시계에서 내비추던 빛이 꺼지자 다시금 지독한 어둠이 깔렸다. 빽빽한 어

둠속에서 김씨는 너무나도 답답함을 느꼈다.

김씨는 그저 자는것이 최고라 생각하며 몸을 누인채 눈을 감았다. 그 시각 문 밖에서는 새찬 바람이 일고

있었다. 그 때문에 창호지로 된 문이 마구 흔들리며 듣기 싫은 소음을 내었다. 김씨는 애써 무시하며 잠을

청했지만 갈수록 심해지는 소리는 마치 누군가가 일부로 두들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김씨는 힐끗 문쪽을 바

라보았다. 답답했던 어둠을 뚫고 달 빛 한줄기가 들어 오고있었다. 창호지에 뚫린 동그란 구멍으로 들어오

는 것이였다. 김씨는 의아했다. 조금 전만해도 그러한 구멍은 존재치 않았다. 그것은 마치 고전 성인영화에

서 방안을 훔쳐보기 위해 인위적으로 뚫은 구멍처럼 보였다. 김씨는 의문감에 고개를 갸우뚱 하였다. 그러

한 찰나에 누군가에 발소리가 들려왔다. 저벅저벅- 모래알을 지긋이 밟는 듯한 소리는 점차 가까이 오고있

었다. 김씨는 두려움에 빠졌다. 이런 한적한 산골 마을에, 그것도 지금 이러한 시간에 그곳을 찾아 올 사람

은 거의 없다고 봐야했다. 이런 산골 마을만 노리는 강도인가? 아님 귀신인가? 김씨의 머리속에선 여러 추

측이 난무 하였다. 그런 순간에도 다가오는 발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점차점차 저벅 거리는 소리가 커져만

가고, 김씨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8월초 열대아가 극성인 시기에 써늘하고 오싹함 때문에 추위까지 느꼈

다. 그렇게 몸과 입술을 바르르 떨며 달빛이 새어 들어오는 문을 주시하였다. 그순간 이였다. 어떤 검은 물

체가 획하니 문앞을 지나갔다. 김씨는 덕분에 고함이 터져나올뻔 하였다. 두손으로 입을 덥썩 막아 나오려

던 고함을 저지하였다. 동공이 확대가 되며 머리털이 솟구쳐 올랐다. 그러던 중에 또다시 검은 물체가 획하

니 문앞을 지나갔다. 이번엔 어느정도 뚜렷히 보았다. 창호지 문을 통해 그것의 실루엣이 비추었는데, 얼

추 보아 챙이 길고 동그란 모자를 쓰고 있었다. 옛날 삿갓처럼 그러한 모자였다. 김씨의 두려움은 극에 달

했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해 헉헉 거리며 힘겨워했다. 금방이라도 심장마비로 쓰러질 지경이였다. 하지

만 김씨는 쉽게 쓰러질순 없었다. 옆에서 새근새근 자고있는 손자녀석을 바라보며 굳은 의지를 불태웠다.

그는 무기로 사용 할만한 것을 찾아 보기위해 몸을 이르켜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순간 할멈이 쓰던 지팡

이가 떠올랐다. 그것은 옷장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김씨는 성큼 옷장으로 다가가 문짝을 열었다.

다행히도 구멍으로 새어 들어오던 빛이 정확하게 장롱안을 비춰주고 있었다. 덕분에 너저분하게 쌓여있는

이불가지들이 보인다. 김씨는 지팡이를 찾기위해 손을 집어 넣어 주섬주섬 거리고 있는 찰나, 이불더미에

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게 느껴졌다. 김씨는 그것을 보고 슬금슬금 뒷걸음을 쳤다. 그것의 꿈틀거림은 점

점 심해지더니 불쑥 얼굴이 튀어나왔다. 아까 보았던 삿갓을 뒤집어쓴 얼굴이 말이다. 김씨는 놀랄 노자였

다.

"으아아악!"

더이상 참을수 없는 고함이 터져나왔다. 한적했던 산골이 어느덧 큰 고함소리 때문에 시끄러워졌다. 거기다

가 잠에서 깬 아이의 울음소리가 더해지자 난리가 아니였다. 이불더미에서 튀어나온 얼굴은 씨익 미소를 띄

었다. 그 표정이 어찌나 소름끼치는지 김씨는 오줌을 지릴 지경이였다. 그순간 옷장속 얼굴이 불쑥 튀어나

가 김씨의 얼굴 정면까지 다다르며 소리쳤다.

 

"어흥!"

 

 

두손으로 머리칼을 붙잡아 뒷 통수로 몽땅 넘겼다. 푸석푸석하게 구겨진 머리카락을 손바닥으로 수없이 문

지르자 어느정도 윤기를 되찾는다. 그 다음으론 빗을 집어들어 어느정도 손질 된 머리를 슥슥- 빗어 주었

다. 깔끔하게 정리된 머리 끝을 둥글게 말아 고무줄로 고정 시켰다.

저승사자는 좌우로 얼굴을 돌리며 거울에 비춰보았다. 만족스런 미소를 띄우며 오른편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삿갓을 머리에 썼다. 미리 해둔 거묵잡잡한 톤에 얼굴 화장과 어울려 영락없는 저승사자다. 그는 거울

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며 괜히 소름끼치는 표정을 지어본다. 출근전 얼굴을 풀어주는 것이다. 눈꼬리와 입

꼬리가 입맞춤을 하듯 히죽히죽 거리던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 현관으로 향했다. 신발을 신던 그는 첫 출근

에 설레임과 두려움때문에 가슴이 콩닥 거렸다. 덕분에 평소 안하던 딸꾹질이 나온다. 5초에 한번 꼴로 딸

꾹 거리던 그는 현과문을 열어 길을 나섰다.

버스에 올라탄 그는 앉을 자리가 없자 노약자석 앞에 서서 손잡이를 잡았다. 앞으로 스물 정거장은 더 가야

만 했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였지만 저승사자는 마냥 기쁘기만 했다. 요즘같은 불황에 저승사자란 공익 근

무는 꿈의 일자리 였다. 매년 수차례에 시험을 보느라 새가빠졌던 기억을 떠올리니 가슴 한켠이 뭉클 하였

다. 1/1000. 이것이 저승사자란 꿈의 직업에 확률 이였다. 수 차례에 퇴짜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팅기

고 또 팅겼지만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계속해서 시도했다. 그덕에 오늘같은 날이 오고야 말았다. 매달 안

정된 월급을 받으며 수명이 다 된 시시껄렁한 인간 몇몇만을 데리고 가면 되었다. 그렇기에 이만큼 편하고

돈벌기 쉬운 직업이 없었다. 아직 자신의 적성에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열심히 해볼 의향은 충만 하였다. 이

런저런 앞으로 다가올 일들을 생각하고 있노니, 어느덧 스물 정거장을 지나쳤다.

건물안으로 들어서면서 쓰고 있던 삿갓을 벗었다. 왼쪽 겨드랑이 사이에 끼운채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위

를 향하고있는 화살표 버튼을 누르자 노란 불이 들어왔다. 잠시후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선 그는 이번엔

숫자 '4'가 적힌 버튼을 눌렀다.

그는 엘리베이터가 3층을 도달하고서야 자신의 딸꾹질이 멈추지 않았음을 느꼈다. 시간으로 보아 한 시간

째 지속되고있는 딸꾹질이였다. 첫 근무만을 생각하던 그는 딸꾹질이란 존재를 아예 배제하고 있었다. 잠시

후에 '저승사자 장'을 만날 때에도 딸꾹질을 하고 있으면 첫 인상부터 비실하게 보일 것이 분명했다. 숨을

참으며 어떻게든 없애보려 애쓴다.

4층에 도달한 뒤 모이기로 한 장소로 향했다. '근무 대기실'이란 표지판이 적힌 문을 보자 다시금 심장이

콩닥 거렸다. 손잡이를 잡아 살며시 돌렸다. '철컥'하며 문이 열렸고 근엄한 누군가에 뒷모습이 보였다.

"꽤 빨리 왔구만."

'저승사자 장'은 그 표정에서 만으로도 모든 기가 느껴졌다. 부릅 뜬 눈하며, 굵직한 콧날 하며, 이마에 깊

숙히 파인 三자에 주름하며… 모든것이 공포에 요소로 느껴졌다. 그 누구라도 그의 모습을 보면 순순히 저

승길을 동행 할 것이 분명했다.

저승사자는 절대 꿀려선 안 될거라 생각했다. 거울을 보며 수없이 연습했던 섬뜩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첫

인상이 중요하다. 그것이 이 직업에서 살아남을수 있는 길이였다.


- 딸꾹!


염병할. 저승사자는 민망한 표정을 감출수가 없었다. 애써 지은 표정이 딸꾹질 한방에 일그러졌다. 자신은

보지 못하였으나 분명 눈알이 뒤집혀 추한 꼴을 하였음이라 생각했다.

'딸꾹! 딸꾹!' 그 이후에도 딸꾹질은 좀처럼 멈추질 않았다. 이곳에 도착하기 전보다 훨씬 더 심하게 튀어

나왔다. 주체 못할 딸꾹질에 저승사자는 얼굴을 붉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저승사자 장'이 혀를 끌끌 찼

다. 첫 인상은 망했다는걸 직감 할수 있었다.

그순간 천장 오른쪽 모퉁이에서 무엇인가 스멀거렸다. 심하게 요동치던 그것은 갑작스레 징그러운 얼굴을

내밀었다. 끔찍하게 피 칠갑은 한 그것을 보곤 저승사자는 강력한 몸부림을 쳤다. '으헉!'하며 최대한으로

꾹 참은 고함이 나왔다. 가슴은 산사태가 일어난듯 우당탕 굵직한 무언가가 쏟아져 내렸다.

모퉁이에서 나온 그것은 장난스런 표정을 지어보였다. 자신의 전신을 드러내며 진정해란 제스처를 취했다.

모든것은 '저승사자 장'의 계략이였다. 모퉁이에서 나온 그 분은 요즘 떠오르던 저승사자 에이스였고 시범

차 그를 놀래킨 것이다. 어느덧 딸꾹질도 멈추어 버렸다.

"이렇게 잘 할수 있겠나? 우리같은 저승사자들은 사람들에게 겁을 줄수 있어야만 하는거네. 자네처럼 비실

해서야 그 누가 겁을 먹겠나?"

따끔한 충고에 저승사자는 의지를 불태웠다. 그리곤 자신도 누군가를 놀래킬 만한 것을 생각해 보았다. 어

떻게 해야 사람들이 겁을 먹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지만 남들이 무엇을 해야 딱히 놀랄지를 몰랐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위주로 생각해 보았다. 자신이 무서워 하던 것은 무엇일까? 바가지 긁던 아내였을까?

돈 갚으라 불같이 전화오던 최씨였을까? 아니면… 불륜을 했던 여자의 남편인 나의 친구녀석 이였을까? 분

명 이들도 무서웠지만 뭐니뭐니해도… 그것이 제일이였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던 그것. 동물원으로 이

송중에 탈출한 호랑이. 자신을 갈기갈기 찢어 죽인 그것이 최강이라 여겼다.

 

 

"어흥!"

별안간 들려온 호랑이 흉내 소리에 김씨는 어안이 벙벙하였다.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소문으로만 듣던 저

승사자가 분명해 보였지만 어설프게 호랑이 흉내를 내는 그것이 의심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어흥! 어흥!"

저승사자는 손을 둥글게 말아 이틀 전 깍은 단정한 손톱을 보여주었다. 호랑이 소리를 내며 아랫 입술을 무

는 그가 앙증맞아 보였다.

여러번 시도에도 꿈쩍 않는 김씨를 보자 저승사자는 당혹 스러웠다. 자신이 생각했던 완벽한 시나리오는 물

거품이 되어 날아갔다. 저승'사자'가 호랑이 소리를 내는것이 다소 모순적으로 보일순 있지만 천하의 호랑

이를 무서워 하지 않을 순 없었다. 특히나 사람들의 또다른 공포대상인 저승사자가 하는데 둥근 눈을 뜨며

멀뚱히 바라만 보고있는 김씨가 도통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안… 무서워요?"

김씨는 저승사자의 물음에 뜨끔했다. 어설프기 짝이없지만 그래도 명색이 저승사자인데 안무서울리가 없었

다. 문밖에 있던 그가 옷장속에서 불쑥 튀어 나온 것으로 보아 이승에 것이 아님을 알았다. 그렇기에 공포

가 몰려 오고 있었다. 하지만 당혹스런 그의 행동에 몰려오는 공포가 조금 더뎌 진것이였다.

김씨는 지레 짐작이 갔다. 여기서 자신이 두려워 하고있단 것을 보여주면 안된다는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분명 저승사자는 다 늙어빠진 자신을 데리러 온것이고, 순순히 그를 따라간다면 홀로 남을 손자녀석만 불쌍

해 지는 것이였다. 그 모습만은 보고 싶지 않았다. 써늘한 노인 시체 옆에서 밥달라 울고 있을 손자 모습

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김씨는 두 눈을 부릅 떴다.

"뭣 땜에 우리집에 온 것이냐?"

저승사자는 '아!'하는 표정을 하며 주섬주섬 수첩을 꺼내었다.

"여기 보세요. 당신의 수명이 현 시간부로 끝이 났어요. 그러니 나와 함께 저승으로 갑시다."

김씨는 예상했던 말이였지만 직접 들으니 덜컥 겁이 났다. 하지만 비장한 표정은 변치 않았다.

"난 못간다! 너 혼자 가거랏!"

"에이~ 영감님. 왜그래요? TV나 책 같은거에서 보셨을꺼 아니에요? 사람들은 다~ 시간이 되면 저승으로 가

야 한다니까요. 그러니 괜히 투정하지 마시고 어여 갑시다."

"글쎄 난 못간다니깐! 이 어린 손자를 두고 어딜 간단 말이냐! 썩 물럿거라!"

"으힉!"

저승사자는 김씨의 기에 눌려버렸다. 부릅 뜬 노인의 눈은 '저승사자 장'과 버금가는 기를 뿜어냈다. 그는

한 발짝 물러 자고있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영감님.. 어디 영감님같은 분이 한 둘인줄 아세요? 다~ 가슴 아픈 사연이 있고 한 거에요. 저 아이의 복

이 그러한걸 어쩌겠어요? 분명 저애가 불쌍은 하지만.. 갈 사람은 가고 남을 사람은 남아야하는게 인지상

정 아니겠어요?"

저승사자는 살살 김씨를 타일렀지만 그는 물러섬이 없었다. 단호한 표정에 그를 보니 한숨만 절로 나왔다.

"에휴.. 알았어요. 알았어. 이번엔 제가 돌아가도록 할께요. 하지만 딱 일주일 이에요! 그 시간까지 아이

를 어디에 맡겨놓든 말든 알아서 하세요. 알았죠?"

 

 

김씨에겐 꿈같은 하루가 지났다. 잠에서 깨어난 그는 그저 악몽이라 생각했지만 열려있는 장롱과 구멍뚫린

창호지를 보니 단순한 꿈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여튼 저승사자는 저승사자고, 지금은 오늘의 하루가 더 중요했다. 잠에서 깨어난 손자에게 어제 사놓은 이

유식을 먹이곤 자신도 밥을 먹었다.

팔다남은 풀뿌리와 몇채를 더 뽑아 소쿠리에 나눠서 담은 뒤 김씨는 또다시 읍내로 향했다. 굽어진 허리위

엔 아이가 바싹 몸을 밀착시켜 업혔다. 늙은 노인에겐 긴 하루가 또다시 시작 되었다.

 

 

어느덧 일주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김씨는 바쁜 생활에 저승사자 일은 까마득하게 잊고 지냈다. 그가 나타

난 그날 이후 일주일이 지났다는 것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였다.

읍내에서 돌아온 김씨는 한 소쿠리 밖에 팔지못한 오늘 하루를 한탄했다. 자신에게 벌을 주듯 김치도 없이

맨밥에 찬 물을 말아 먹었다. 하지만 손자에게 만은 비싼 이유식을 먹인다.

손자가 새근새근 잠이 들었을 무렵, 김씨도 고단함을 느꼈다. 내일을 위해서라도 눈을 감아야만 했다. 그렇

다고 영영 감아서는 안되고 날이 밝으면 뜰 정도로만 감아야했다. 무더위가 극성이던 그날밤은 오랜만에 아

껴뒀던 선풍기를 틀었다. 전기세 때문에 고민고민하다 끝내는 못참고 플러그를 꼽았다. 미풍으로 맞추어 놓

은뒤, 몸을 뉘였다.

잠이 들고 시간이 꽤 흘렀다. 노인은 소름 돋는 한기에 잠에서 깨어났다. 터덜터덜 돌아가던 선풍기를 끄

고 또다시 시계를 찾아 보았다.

새벽 3시. 시간을 보자 김씨는 잊고 있던 그가 떠올랐다. 속 편히 잊고 지낼때가 좋았다. 막상 생각이 나

니 또다시 두려움이 엄습했다. 자신을 데리고 가려는 저승사자가 다시는 나타나지 말기를 빌며 또다시 베개

에 머리를 댔다.

"살…려…주세요…"

그순간 문밖에서 가녀린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애절한 목소리는 도움을 요청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제발… 살려 주세요… 거기 누구 없나요…?"

여자의 다급한 목소리에 김씨는 번쩍 몸을 이르켰다. 순식간에 지팡이를 빼내어 문을 박차고 나갔다. 하지

만 문밖엔 그 누구도 없었다. 환청인가를 의심하는 찰나 대문 넘어 풀숲에서 또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에요… 제발 살려 주세요…"

김씨는 슬리퍼를 데충 신고 잽싸게 풀숲으로 향했다. 소리가 나는 그곳으로 다가가자 점점 여자의 목소리

가 커지고 있음을 느꼈다. 이리저리 둘러보며 소리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느덧 풀숲 깊숙히 들어왔다. 하지만 도통 여자는 보이지가 않는다. 소리는 이제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귓 속말을 하듯 숨결또한 느껴지는 듯 했다. 하지만 여자의 실체는 도통 보이지가 않는다.

"이쪽이에요…"

"어디! 어디란 말입니까! 네?"

"위.. 당신의 위.."

위? 김씨는 곧장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곤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으허억!"

 

 

그날 저승사자는 오줌을 찔끔 지렸다. 김영감의 그 무서운 얼굴은 영락없는 호랑이 였다. 금방이라도 예전

그날 처럼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 자신을 물어 뜯을것만 같았다. 침착하게 일주일에 시간을 준다고 말했지

만, 1분 1초라도 그곳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다시 그곳에 가야한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났다. 그 무서운 할아방을 어떻게 다시보나? 초조함에 단정한

손톱을 억지로 물어 뜯었다. 무섭고 또 두려웠지만 자신의 첫임무를 무산시킬순 없었다. '저승사자 장'에

게 부탁이라도 하는 날엔 노여움을 살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지 무사히 그 영감을

저승으로 인도할수 있을까? 사실 겁이 많았던 저승사자는 계속해서 떠오르는 김씨의 얼굴에 자신감이 도통

생기질 않았다. 누군가에 도움이 필요한 시점이였다. 그는 고민고민 끝에 그 누군가가 떠올랐다. 동료 저승

사자들에게 부탁하긴 쪽팔리니.. 유일한 친구인 처녀귀신에게 부탁하자!

 

 

지금으로 부터 3년전. 저승사자는 계속해서 시험에서 낙방하니 마음이 아팠다. 게다가 사랑하던 여자친구까

지 무능력한 자신을 떠나버리자 큰 소용돌이에 휘말린듯 절망에 빠졌다.

그날은 떠나간 여자친구를 떠올리며 혼자 술을 마셨다. 그녀와 함께 했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며 그

를 괴롭혔다. 동네 바보의 무덤을 파헤쳐 그곳에서 잠도 자고, '지옥 월드'란 놀이 동산에서 오금이 저릴

정도에 아찔한 놀이기구를 함께 탔고, 저승에서 최근 히트를 친 영화 '과속 방지턱'을 보며 과속하다 생긴

사고로 팔 다리가 뜯겨진 주인공을 보고 함께 호호호 웃었다. 그리고.. 그리고.. 또 무엇을 했지?

사실 그닥 추억이 없는 엔조이로 만난 사이였지만 마음이 아팠다. 어느덧 술병이 줄을 이었고 슬슬 취기가

오르자 실실 거리는 웃음이 나왔다. 기분이 급 좋아진 그는 근처 '저승 나이트'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서

자 강력한 네온사인이 눈을 긁었다. 중앙 스테이지에선 새끈한 미녀들이 과도하게 줄이고 짧은 저고리를 입

고 과능적인 춤을 추었다. 저승사자는 환호하며 스테이지로 나갔다. 부비부비를 시도하려 과하게 들이대었

지만 술냄새 나는 그를 여자들은 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DJ의 탁월한 음악 선택에 퇴짜에도 기분좋은 그

였다.

신나게 놀던 그는 테이블로 돌아와 앉았다. 여기 와서도 벌써 20번이나 퇴짜를 받은거 같다. 자신의 한심

한 모습에 양주가 쓰게 목구녕으로 들어간다.

그순간 저승사자의 눈엔 한 여자가 띄었다. 그녀도 혼자인듯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들이키고 있었다. 이미

만취 상태인듯한 그녀를 보고 저승사자는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다가갔다.

"어이 아가씨. 혼자 왔슈? 나도 오늘 혼자인데 우리 함께 이야기나 할까? 키키키.."

그러자 그녀는 날카롭게 뜬 눈으로 저승사자를 노려봤다.

"신발. 어따대고 껀떡질이야? 내가 얼마나 명품 여자인데 니까짓꺼랑 놀꺼 같애? 난 혼자지만 외롭지가 않

다구.. 기다리는 사람도 있고 말이야."

"키키키.. 무슨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고 그래? 보아하니 쉬원하게 바람 맞았구만 뭐."

"바람? 그래 쒸발! 나 바람 맞았다! 어쩔래? 그 개쎄끼가 날 버리고 바람을 펴버렸어.. 나같은 명품 여자

를 버리고 말야.. 으앙앙!"

그녀는 가엽게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니, 자신을 버리고 간 그녀가 떠올라 저승사자도 울컥

눈물이 났다.

"크흐흑..! 이 세상 놈,년들은 다 바람인겨.. 우리같은 멋진 것들을 두고 말이야.. 흐흑!"

둘은 서로의 공통점을 이야기하며 밤을 지새웠다.

 

 

저승사자는 그녀와 친해진후 3년동안 우정을 과시해왔다. 둘이 마음을 주거나 하진 않았지만 편한 친구로

써 함께 지내왔던거다.

그녀가 떠오르자 곧장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벨을 꾹 누르자 잠시후 현관문이 열렸다.

"어? 무슨 일이야? 여기까지."

"그게 말이지.. 부탁할게 있어서 말야.."

"부탁? 뭔데? 한번 말해봐바."

저승사자는 자신의 자초지종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하지만 끝에 '니가

대신..'이란 말이 나오자 손스레를 쳤다.

"뭐어! 그걸 나보고 해라고? 말이 되는 소리냐? 나는 저승사자도 아니고 평범한 처녀귀신일 뿐인데 그런 일

을 어떻게 하란거야? 못해. 절대 못해! 그리고 난 생각보다 바쁜 여자라구."

"아! 제발.. 우리 친구잖아. 한 번만 부탁할께."

"절대 안돼! 아무리 친해도 이건 아니야."

생각보다 깐깐한 그녀의 태도에 저승사자는 당혹했다. 방법을 생각 하던 중 누군가가 떠올랐다.

"내가 이번일 도와주면 남자 소개 시켜줄께."

"남자? 됐어. 임마. 니가 소개해주는 남자래봐야 별꺼 있겠어?"

"흐흐흐.. 모르는 소린 하지도 마셔. 너 우리 옆집으로 누가 이사온지 몰라서 그래?"

"응? 누구길래?"

"바로 '강재혁'이라구! 세달 전 죽은 이후로 저승에 왔는데 우리집 옆으로 왔지 뭐야. 이웃 사이라 얼마나

친해졌는데! 내가 소개 받아라고 하면 바로 콜해줄껄?"

"강… 강재혁! 그 이번에 저승판 '꽃보다 남자'에 발탁 됐다던 그 강재혁을 말하는거야?"

"그렇다니까! 얼마나 잘생겼는지는 이승 세계에서부터 잘 보아왔을꺼 아냐?"

"그.. 그렇지! 근데 사실이야? 믿을수 있는거야? 왜 하필 너같은 녀석 옆집으로 간건데?"

"낸들 아냐? 어쨋든 어때? 슬슬 해 볼 의향이 생기지 않아?"

 

 

파란 전등이 켜지듯 환한 달빛이 나무가지에 목을 매달은 그녀를 비추었다. 하얀 저고리와 하얗게 질린 그

녀의 얼굴에선 붉은 피가 칠갑이 되어있었다. 하늘을 향해있는 동공은 그녀를 더욱 섬뜩하게 하였다. 혀는

삐죽 튀어나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듯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김씨는 그모습에 놀라 그만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두손 두발을 이용해 네발 달린 짐승처럼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그러는 중에도 눈은 그녀에게서 벗어나질 않았다. 계속해서 몸을 떨고있는 그녀를 주시하며 김씨

는 참을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끄…어억어…"

그런데 그녀가 이상했다. 분명 처녀귀신에 꼴을 하고있는 그녀는 정말 숨이 막히는 듯이 계속해서 리얼하

게 몸을 떨었다.

"끄어…어어억! 숨막혀… 진짜 살려줘… 나 이러다가 두번 죽겠다…"

그녀의 목을 감고있는 밧줄은 어느새 그녀의 목을 파고들어 숨통을 막았다. 팽팽하게 조여지며 산소에 흡입

을 저지 하였다. 그 고통에 핏줄이 솟아나며 발을 동동 굴렀다.

김씨는 또 한 번 어이없는 광경에 할말을 잃었다. 엉성한 귀신의 몸부림은 가히 웃음 거리였다. 지금 김씨

가 웃을 상황이 되지 않아서 그렇지, 평소 같으면 수 십분은 웃고 넘어가야 할 일이였다.

그순간 검정색 옷깃을 휘날리며 무언가가 나타났다. 이쪽에서 저쪽 나무로, 또 저쪽 나무에서 또 다른 나무

로 옮겨가며 그것은 그녀에게로 접근했다. 이윽코 도달한 그것은 번쩍이는 무언가를 꺼내었다.

그는 다름아닌 저승사자였다.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어 처녀귀신에 목을 조르고있는 밧줄을 베었다. 서걱서

걱- 칼날을 대고 마찰을 주자 서서히 찢어 지더니, 끝내 툭!하고 그녀가 나무에서 떨어졌다.

"켁!켁!"

"야이 멍청한 년아! 진짜 목을 조르면 어떡해?"

"신발!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랬겠어? 실수로 줄을 잡고있던 손을 놓친걸 어떡하라고!"

"참나..."

저승사자는 똥씹은 표정을 지었다. 적잖이 어이 없었나보다. 계속해서 헛 구역질을 하는 처녀귀신을 보자

한심하기 그지 없었다. 그리고 초조했다. 김씨가 자신들을 어떻게 여길지 걱정 되었다.

김씨는 저승사자의 걱정대로 전혀 눈가에 미동도 없다. 오히려 어이없다는 듯이 쓴웃음을 지었다. 자세히

보면 꽤나 이쁘장한 처녀귀신이 조커의 탈을 쓴것처럼 흉칙하게 일그러졌다. 그모습이 마냥 웃기기만 했다.

저승사자는 한숨을 내쉬고 수첩을 꺼내었다.

"여봐요. 영감님. 벌써 수명이 끝나고도 1주일이나 지났다구요. 이런거 염라대왕님 한테라도 걸리는 날엔

저와 우리 저승사자 장님은 모가지라구요. 모가지!"

"내 그딴거엔 관심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난 살아야만 하겠어!"

"에휴.. 그게 어디 영감님 마음대로 되는 줄 아세요? 꼭 제가 아니더라도 다른 저승사자가 와서 당신을 데

려 갈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니 순순히 따라가요. 저승도 생각보단 살만 하다니까요? 특히 지금의 당신처

럼 구질구질하게 사는 것 보단 저승가서 새로운 생활을 하는게 더 좋아요."

"옛끼! 나 하나 잘 살자고 그러는줄 아느냐? 나같은 것은 아무래도 상관 없지만 우리 손자때문에 이곳을 떠

날수 없는 것이다!"

"아.. 것참. 영감님 혼자만 사연이 있는게 아니래두.."

"이 아이가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야 하는지 아느냐? 감히 너같은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도

그런데.. 만약.. 나같은 것이라도 이 아이 곁은 떠나버리면 그 얼마나 박복한 삶이 겠느냐!"

"에휴.. 도대체 뭐가요? 얼마나 박복한 삶인지 한번 들어나 봅시다."

 

 

김씨와 저승사자는 절단 된 나무를 의자삼아 앉았다. 그리곤 김씨가 입을 열어 손자의 인생을 차근차근 말

해 주었다. 어느덧 30분 가량이 흐르자 이야기는 극에 달해 있었다.

"그래서.. 아이의 애비가 자살을 택했지.. 그 이후로.. 응?"

김씨는 이야기를 끊고 놀란 눈을 떴다. 그리곤 앞에 있던 저승사자를 보았다.

"흐으으윽.. 아이가.. 아이가.. 너무 슬퍼요.. 흐으윽.."

저승사자는 이야기를 듣고 하염없이 울었다. 그는 선천적으로 마음이 여렸다. 저승 사자로써는 최악의 조건

인 것이다. 나무 가지에 올라타서 몰래 듣고있던 처녀귀신도 눈물을 쏟아냈다.

"어떡해요.. 흐으윽.. 영감님을 데려 가야 하긴 한데.. 혼자 남을 아이가 불쌍해서 어떡해요.. 흐윽.."

"그렇지? 나 같은 것이라도 곁에 있어줘야만 아이가 그나마 행복해질수 있어. 나도 결국엔 가족이니 말이

야."

'가족'이란 말을 듣고 저승사자는 어머니가 떠올랐다. 그러자 더욱더 펑펑 울음을 터트렸다. 처녀귀신도 마

찮가지이다.

"엄마아! 엉엉.."

 

 

저승사자는 비장한 표정으로 건물에 들어섰다. 건물로 들어선 그는 혼자였다. 결국 김씨를 데려오진 못하였

다. 도저히 아이가 가여워서 데려올수가 없었다. 벌써부터 '저승사자 장'의 잔소리가 들려오는듯 했지만 각

오는 하고 있었다.

4층에 도달하여 사무실에 문을 열었다. 저 멀리에서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있는 '저승사자 장'이 보인다. 성

큼성큼 혹은 찔끔찔끔을 번갈아가며 저승사자는 다가갔다.

어느덧 눈앞까지 도착한 저승사자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도저히 용기가 나질 않았다. 무어라 변명을 해

야할까? 김씨가 알고보니 잊고 지냈던 이종 사촌이라 해볼까? 아님 이승세계에서 생명에 은인이라고 해볼

까? 하지만 이딴 변명거리를 늘어놓아봤자 돌아오는 악담은 변함 없을 것이다. 더 플러스가 될 가망도 있

고.

조심히 '저승사자 장' 앞에 섰다. 그러자 모니터에서 눈을 때고 힐끗 저승사자를 보는 그였다.

"무슨 일인가? 자네."

"그게.. 그게 말이죠.."

저승사자는 떨리는 입술을 주체 할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목은 타서 마른 침이라도 원하고 있었다.

"뭔가? 뭘 그리 버벅이지? 그보다 산골 마을 김영감은 데려왔는가? 시간이 꽤 지난거 같은데 말이지. 수명

이 지난건 아닌가?"

"그.. 그게.. 사실 그것 때문에 찾아 뵌건데요.."

"흠, 그래? 무언지 말해 보게나."

저승사자는 계속해서 우물쭈물 거렸다. 그 모습을 '저승사자 장'이 답답하게 바라봤다. 더이상에 지체할 시

간은 없었다. 저승사자는 두 눈을 질끔 감고 마른 침을 다시 한번 삼키며 굳게 결심했다.

"김영감을 데려올수가 없겠습니다. 부디 수명을 연장 시켜주십시오."

'저승사자 장'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벌떡 일어섰다.

"뭐? 이자식! 다시 한번 말해봐."


- Tell me~ Tell me~ Tetete…


그순간 벨소리가 울렸다. 다름아닌 '저승사자 장'의 휴대폰 이였다. 그는 덥썩 집어들어 귀에 대었다.

"여보세요? 어. 아! 염라대왕님! 저한텐 어쩐 일로? 아, 그래요? 하하하."

통화 상대는 염라대왕이였다. 통화인데도 불구 하고 연신 허리를 굽히며 공손하게 말했다. 그러는 중에도

저승사자는 계속해서 김씨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하지만 염라대왕과 통화중인 '저승사자 장'에겐 소음으

로 느껴졌다.

"아, 예!예! 그랬습지요. 아! 야! 너 그만 씨부려 임마! 아, 네? 아닙니다. 염라대왕님에게 한 말이 아니구

요. 옆에 신입사원이 있어서 말이지요. 예, 예. 밤..놀이요? 좋죠! 초대해 주신다면 성은이 망극하겠나이

다. 예? 지금요? 아 당연하지요! 금방 달려 가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요!"


- 탁!


전화를 끊은 '저승사자 장'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옆에선 저승사자가 투덜거리는 말투로 계속해서

김씨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저승사자 장'은 급하게 삿갓을 집어들어 머리에 썼다. 의자에서 일어서 달려나가려고 하자 저승사자가 앞

길을 막아섰다.

"못갑니다! 제 부탁을 들어 주시기 전까진 절대 못가십니다!"

"야! 안비켜? 난 급하단 말이다. 이 쎄끼가 미쳐가지고.. 지금은 넘어 가줄테니 나중에 이야기 하자고. 나

중에!"

"아악! 안됩니다! 지금 말해주십시요. 김씨의 수명을 늘려 주실겁니까 마실 겁니까?"

"아 이쎄끼 정말 돌아 버리겠네.. 너 알아서 해. 이자식아! 그러니까 빨리 비켜."

"허헉! 정말 이십니까? 그럼.. 여기다가 사인좀 해주십시요."

"뭐? 수명 연장표? 것도 20년? 이런 신발! 알았어 자, 됐지? 그러니까 어서 비켜 자식아."

데충 자신의 사인을 휘갈긴 '저승사자 장'은 재빠르게 문을 박차고 나갔다. 저승사자는 뿌듯하게 수명 연장

표를 바라봤다. 어이없게도 생각보다 너무나도 쉽게 얻어진 것이다. 그래서 한없이 기뻤다.

 

 

"우쭈쭈쭈- 맘마 먹자. 맘마!"

처녀귀신은 젖병을 들고 아이를 안았다. 그녀의 앞에선 저승사자와 김씨가 풀뿌리를 캐고 있었다.

"얼구, 얼구. 잘먹는다. 어이 저승사자! 너 두고봐. 강재혁이랑 친하지도 않으면서 친한 척을 해? 날 속였

단 말이지?"

풀뿌리를 뽑던 저승사자는 뜨끔하여 등골이 오싹했다.

"아, 아니.. 그게 말이야. 나만 친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닥쳐. 변명따윈 필요없어."

김씨는 둘을 바라보며 웃었다.

"하하하! 그만들 하게나. 젊은 것들이 뭐그리 싸우나?"

김씨의 만류에도 여전히 둘은 티격태격하였다. 그소리에 놀란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김씨와 저승

사자는 걱정된 표정으로 동시에 아이에게로 뛰어갔다.

 

"얼구, 울지말거라. 내 손주여."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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