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eb.humoruniv.com/main.html
< 웃대 : 와이구야 님 >
** 김씨 잡아가기 대작전 후속이라고 하네요~
저승사자의 119 대작전
저승사자는 길게 늘어진 자신의 머리카락을 거울을 통해 보았다. 푸석푸석하고 너저분하다. 냄새가 나는듯
했지만 머리감는 일도 만만치않다. 연신 자신의 머리카락을 코에대고 킁킁 거리던 저승사자는 이맛살을 찌
푸렸다.
"역시... 정리를 해야하나?"
저승사자는 곧바로 외출준비를 했다. 자신의 위엄을 보여주려면 집 앞 슈퍼에 나가더라도 완벽한 모습을 갖
추어야만 한다. 그래서 평소처럼 화장을 짙게하고 검정 저고리를 입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삿갓을 쓰는것
도 잊지 않았다.
저승사자가 향한곳은 미용실이였다. 얼마전 친구인 처녀귀신에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취직을 했다며 방
방 뛰는 목소리로 말하던 그녀는 자신이 일하는 미용실의 장소를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평소 미용에 관심
이 많았던 그녀에겐 안성맞춤 직업이다. 저승사자가 오면 싸게해준다던 그녀를 철썩같이 믿고 그곳으로 향
했다. 시내로 들어서자 온갖 즐비한 미용실이 보였다. 그중에 처녀귀신이 일하고있는 '서걱서걱 머리통 미
용실'로 향했다.
깔끔한 내부인 미용실로 들어서자 저 멀리서 처녀귀신이 손을 흔들었다. 머리를 감겨주고 있던 그녀의 손에
서 물방울이 손님의 얼굴로 튀었다. 그러자 아줌마손님이 벌떡 일어서 화를냈다. 처녀귀신은 죄송하다며 싹
싹 빌었고, 저승사자는 그것이 괜히 자기탓인것만같아 미안했다.
저승사자는 소파에 앉아 대기를 했다. 그는 새로 지은듯 깔끔하고 웅장하기까지한 미용실을 보고 주눅이 들
었다. 머리카락을 기르는것을 좋아라하던 저승사자는 정말 오랜만에 미용실을 찾아 온 것이다. 소파에 혼
자 앉아있는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민망하기도 하다.
주말 미용실은 참으로 혼잡했다. 처녀귀신은 바쁘게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한 쪽에선 메두사가 머리를 하고
있었다. 아니 머리에 달린 뱀들을 깔끔하게 정리하러 온것이 맞을듯하다. 미용사가 영양제를 바르려하자 날
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머리에 달린 뱀이 위협했다. 미용사는 당황하여 땀을 삐질 흘리고 있었다. 또 한 쪽
에선 달걀귀신이 자신의 머리스타일을 최신형으로 해달라하여 또다른 미용사를 당황케했다. 저승사자는 그
러한 광경을 어벙벙하게 바라만 보고있었다.
시간이 흐른후 처녀귀신이 저승사자를 불렀다. 드디어 차례가 온것이다. 큰 거울앞 의자에 앉아 긴머리를
어루만졌다. 자를 생각을하니 긴장이되기 시작했다.
처녀귀신이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하려구?"
"흠, 머리... 아니, 머리카락좀 자르려구."
저승에선 '머리좀 잘라주세요.'란 말은 금지어였다. 가끔 취향이 독특하고 자신의 모습을 과시하고 싶어하
는 여럿 사람들이 머리카락이 아닌 머리통을 자르기도 했다. 머리통을 잘라 꾸미면 좀더 흉측하고 공포감
을 심어줄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저승에서는 검정고무신에 '기영이'같은 머리스타일을 자주 볼수
가 있다. 저승 미용실에서 머리통이 안잘릴려면 '머리'와 '머리카락'을 명확하게 구별해 주어야만 한다.
다시 처녀귀신이 말했다.
"그러니까 어떤 스타일로 자르려구?"
"흠...."
저승사자는 턱을 만지며 망설였다. 처녀귀신이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을쯤 저승사자가 말했다.
"오늘은 짧게 자르려고 해."
"뭐?"
처녀귀신은 저승사자의 말을듣고 화들짝 놀랐다. 평소 긴머리가 자신의 마스코트에 가까웠던 그가 머리카락
을 짧게잘라 달라는 것은 파격적인 일이였다.
저승사자에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분명 자신은 머리가 긴 것을 추구하지만, 요즘 트렌드가 그렇다. 얼
마전 오랜만에 '저승사자 에이스'를 보았다. 그의 짧게 자른 머리가 강력한 기운을 풍겼다. 저승사자조차
도 움츠려 들 정도로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요즘 저승사자들의 머리스타일은 대부분이 짧게 변화하였
다. 강력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함이였다. 그렇기에 지금에 저승사자도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려는 것이다.
저승사자가 긴머리를 만지며 말했다.
"짧게 잘라 달라구."
"갑자기 왜? 무슨 바람이 불어서 머리를 짧게 자른다는거야?"
"요즘 그게 유행이더라구. 잔말 말구 자르기나해."
"어, 그래. 알았어...."
처녀귀신이 가위를들고 저승사자의 머리카락을 자르기 시작했다. 저승사자는 잘려나가는 자신의 머리카락
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항상 동거동락했던 머리카락인데, 그 누구보다 아껴줬던 나의 머리카락인데, 저승
사자는 바닥에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보며 눈물이 나올것만 같았다.
한창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을때, 눈에 띄는 한 여자가 저승사자의 뒤로 지나갔다. 저승사자는 앞에 있는 거
울을 통해 지나가는 그녀를 볼수가 있었다. 그녀는 머리카락을 배배 꼬아서 위로 올렸다. 하늘을 향해 길
게 뻗은 머리카락은 적어도 이 십 센티미터는 될것만 같다. 어찌보면 일본 사무라이 같기도하다.
저승사자의 시선이 지나가는 여자를 따라갔다. 그리고는 처녀귀신에게 말했다.
"저 여자는 머리가 왜저래? 쪽팔리지도 않나? 쯧쯧..."
"저 여자 머리스타일 말이야? 왜? 괜찮기만한데, 뭘. 요즘 이승에서 유명한 가수인 산다라박 몰라? 보아하
니까 저여자, 산다라박 따라한거 같은데. 요즘 꽤 유행이잖아. 따라하기가 민망해서 그렇게 많이하지는 않
지만서도."
저승사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도 산다라박을 알고있었다. 하지만 거울을 통해 지나가던 여자의 얼굴을
본 저승사자는 심기가 불편했다.
"뭐? 산다라박? 저얼굴에 산다라박을 따라해? 그냥 다락방 아니야? 값 싼다락방."
처녀귀신은 저승사자의 말을듣고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머리카락을 잘랐다.
어느덧 저승사자의 머리는 스포츠형 수준으로 짧아졌다. 저승사자는 어색한 자신의 모습에 적응이 되지 않
았다.
"으아! 너무 짧은거 아냐?"
"너가 짧게 해 달라며? 원하는대로 해줘도 지랄이여."
"아무리 그래도! 인간적으로 너무 짧잖아!"
"입 닥치세요. 저승사자씨."
저승사자는 입이 삐죽 튀어나온채로 투덜거렸다. 처녀귀신은 그를 무시하고 마지막단계인 면도를 시작했
다. 목덜미에 잔털들을 깔끔하게 정리해나갔다. 하지만 그순간 처녀귀신의 손이 미끄러졌다.
"으아악!"
처녀귀신의 손에 쥐어있던 면도칼이 저승사자의 뒤통수를 그었다. 거의 십 센티미터 정도 그어진 곳엔 머리
카락이 몽땅 떨어져나갔다. 그리고는 피가 슬금슬금 나오기 시작했다.
"야이 미친년아! 무슨짓을 한거야!"
저승사자는 화가나서 소리쳤다. 그러자 처녀귀신이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혀를 내밀었다.
"헤헤, 내가 실수를 해버렸네...."
실수? 지금 그따위 말로 다 해결되는줄 알아? 저승사자는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가만히 생각 해보니 그녀
는 이곳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아무리 평소 미용공부를 해 놓았어도 초보자임이 분명했다. 그런데 왜
그녀가 머리카락을 자르지?
"너, 너! 그러고보니 왜 니가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는거야?"
"그, 그게... 너와 나의 친목도모겸, 실습이랄까...?
실습? 이년이 말 다했나? 감히 내머리를 이용해 실습을 했다고? 저승사자는 화를 참을수가 없었다. 손가락
으로 자신의 뒤통수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너! 이게 안보여? 사람 대갈통을 이따위로 만들어놓고 실습이라니! 너 뒤질래?"
저승사자가 큰소리를치자 처녀귀신이 미간을 찌푸렸다.
"왜! 뭐 어때서! 머리카락은 잘 잘랐잖아! 그 면도하다가 실수좀 한거가지고 왜 성질이야! 성질은!"
"뭐? 실수? 이게 지금 실수라 말하면 넘어갈수 있는 일인거같아?"
"이미 엎질러진걸 나보고 어쩌라구! 불만이면 나가! 돈 안받을테니 나가라고!"
처녀귀신이 저승사자를 떠밀기 시작했다. 뭐 낀놈이 성낸다더니, 저승사자는 그러한 처녀귀신의 손을 뿌리
치고 씩씩거리며 혼자서 미용실을 나왔다. 입구로 나오자 커다란 간판이 보였다.
"신발! 누가 서걱서걱 머리통 미용실이라 안할까봐, 진짜 내 머리통을 자르고 지랄이야!"
2.
저승사자는 이제 겨우 아문 상처를 만져 보았다. 역시나 땜빵이 나버렸다. 또다시 화가났다. 그날 이후로
처녀귀신과 일체 연락도 하질 않았다. 저승사자는 씩씩거리며 또다시 외출준비를 하였다.
오늘의 도착지는 김씨의 집이였다. 요즘 보는게 뜸했다. 아이도 보고싶었고, 무엇보다 처녀귀신을 같이 씹
을수있는 누군가가 필요했다. 저만치서 풀뿌리를 캐고있는 김씨의 뒷모습이 보였다.
"여어~ 영감님! 나 왔수다."
저승사자가 손을 흔들며 다가가자 그모습을 본 김씨도 벌떡 일어서 손을 흔들었다. 얼굴에 화사한 꽃이 핀
것이 많이 반가운가보다.
둘은 바닥에 앉았다. 저승사자가 오는 도중에 초상집에서 몰래 훔쳐온 수육과 막걸리를 꺼냈다. 김씨는 맛
나보이는 새참에 눈이 번쩍였다. 등에 엎혀있던 아이도 손을 쪽쪽 빠는것이 먹고싶은가보다.
둘은 종이컵에 막걸리를 따르고 한 잔 들이켰다. 크아- 하며 수육을 한 점 집어들어 입속에 넣었다. 일한
뒤 먹는 수육은 환상이다.
고기를 질겅질겅 씹던 김씨가 말했다.
"어쩐일로 온거여?"
그러자 저승사자가 차분히 삿갓을 벗어 바닥에 놓았다. 그리곤 고개를 획 돌려 뒤통수를 보여줬다.
"이것좀 보세요! 글쎄 제가 처녀귀신이 일하는 미용실에 갔는데 말이에요. 그 처녀귀신이 제 머리를 이따위
로 해놓았지 뭐에요! 확 뒤집어 엎어 버릴려다가 참고 나왔어요."
김씨가 호탕하게 웃었다.
"허허허! 것 참 웃기구만. 니 말을 들으니 갑자기 처녀귀신이 보고싶구나, 왜 같이 오지않았어?"
"아니! 제 머리를 이렇게 만든 녀석하고 상종을 왜 해요! 전 두 번 다시는 그녀석 얼굴도 보지 않을꺼에
요!"
"뭐 어때서 그랴? 나름 멋져보이구만."
"그게 무슨 말이세요? 이게 뭐가 멋져요! 저승사자는 카리스마가 생명인데... 이건 뭐 영구도 아니고..."
저승사자는 화가 풀리지않는듯 계속해서 씩씩거렸다. 김씨는 그의 모습을 보며 털털하게 웃으며 수육을 입
속에 넣었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멍하니 해가 뉘엿 저무는걸 바라보았다. 잠시후 저승사자가 차분해진 모습으로 막걸
리 한 잔을 들이키고 말했다.
"영감님은 외롭지 않아요?"
느닷없는 저승사자의 질문에 김씨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시 눈가에 미세한 주름을 만드며 말했다.
"응, 외롭지 않어. 나에겐 손주녀석이 있으니께."
"에이 말도 못하는 애랑 있는데 진짜 외롭지 않아요?"
"물론, 말은 못해도 애교덩이리인걸."
"아무리 그래도... 아들이 보고싶거나 그러진 않아요?"
"흠... 아들이라...."
시간이 멈춘듯 잠깐동안에 공허함이 일었다. 김씨가 천천히 입을 땠다.
"물론 보고는싶지. 하지만 지금은 손주가 더 중요해. 이 아이를 키워놓은 다음에 봐도 늦지 않어. 어짜피
나도 저승으로 가면 볼수 있을테니말여."
저승사자가 고개를 푹 숙였다. 한 숨을 내쉬고 나지막이 말했다.
"영감님 아들... 못 볼지도 몰라요..."
"응?"
김씨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자 저승사자가 고개를 들어 웃어보였다.
"아, 아니에요. 그냥 저승세계엔 인간들이 워낙에 많아서 찾기가 힘들다는 말이에요. 신경쓰지마세요."
김씨가 방긋 웃었다.
"그려 신경안써. 열심히 찾다보면 만날수 있것지."
해가 완전히 저물어갔다. 등에 기대고있던 아이는 스르륵 잠에 빠져들었다.
3.
강렬한 햇볕이 내리쬐는 오후에 저승사자는 수첩을 뒤적이며 골목길을 걸었다.
"가만보자... 이 근처가 맞는데..."
저승사자의 오늘 임무는 올해 이른이 된 최씨를 잡아가는 것이였다. 최씨의 주소를 알아내어 집을 찾아내
고 있었다.
"아씨, 어디있는거여..."
복잡한 골목길에서 좀처럼 최씨의 집이 보이지않자 저승사자는 답답했다. 왼쪽 손목에 감긴 명품브랜드 짝
퉁 시계를 바라보며 안절부절했다. 시간이 촉박하다. 저승사자는 네 갈래 길로 들어서 좌회전을 했다. 그순
간 어느집 담장너머로 낯설지않은 머리가 보였다.
"으음? 저 머린?"
꽤 높은 담장 위로 배배꼬인 머리카락이 빠끔히 나와 있었다. 저승사자는 다가가 담장너머 그 머리의 주인
을 보았다. 다름아닌 '싼다락방'이였다. 그녀는 집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저승사자는 뭐하나? 하고 생각
했지만 별 흥미없이 시선을 돌려 최씨의 집을 찾았다.
"아앗! 여기다, 여기!"
한 집 대문에 최씨의 문패가 걸려있다. 저승사자는 환호하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창문으로 나홀로 바둑을
두고있는 최씨가 보였다. 한 손엔 바둑책을 들고있고 다른 한 손으론 바둑알을 놓았다. 착용하고있는 돋보
기가 흘러 내리자 계속 올리며 나홀로 바둑에 집중하고 있었다.
저승사자는 품에서 '그것'을 꺼내었다. 얼마전 김씨에게 쓰디쓴 치욕을 당한 뒤 저승사자는 다른 방안을 생
각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골똘히 생각해 보았지만 자신의 방법엔 문제란 없었다. 창호지에 구멍을 뚫고 자
신의 실루엣을 보여주며 김씨를 긴장하게 한 다음에, 불쑥 장롱에서 튀어나오며 호랑이 흉내를 낸 그의 방
법은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왜 그런거지? 단정하게 깍은 손톱이 문제였던가? 저승사자는 이것저것 생
각을 해보았다. 그러자 머리속에서 무언가가 어슬렁 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날카롭고 긴 이가 인상적인
그것. 그래 호랑이! 저승사자의 머리속에선 폭죽이 터졌다. 결론이 나버렸다. 그래, 문제는 호랑이였던거
야. 내가 흉내 낸 호랑이가 문제였던 거라구, 저승사자는 곧바로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저승사자가 품에서 꺼낸 것은 호랑이 탈이였다. 저승사자는 호랑이 흉내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
다. 단지 그 흉내가 완벽하지 못했고, 실감나지 않았다는거에 문제점을 두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호랑
이 모양에 탈이였다. 저승사자는 집 앞에서 호랑이 탈을 써보았다. 유리창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자 완
벽했다. 이런데도 안놀랄 인간은 없다. 두려워서 오줌을 싸버리고 말것이다. 그런 생각을 가지자 저승사자
는 웃음이 실실 나왔다. 딴 생각을 하다 유리창을 다시보니 저승사자는 화들짝 놀랬다. 그만 호랑이 탈을
쓰고있는 자신의 모습에 놀라버린거다. 역시 호랑이는 무섭다. 아무리 탈이라고 해도 호랑이가 최강이다.
저승사자는 자신했다.
저승사자는 지금 최씨에게서 모습을 감추었다.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말고는 귀신들의 마음이였다. 저승사
자가 최씨의 눈 앞에서 어슬렁 거렸지만 눈치를 채지 못한다. 저승사자가 최씨의 뒤로 다가가 손으로 등을
쓸어내렸다. 그러자 최씨의 머리가 삐죽 솟아오르며 화들짝 놀랬다. 눈이 커다라진 채로 뒤를 돌아 이곳저
곳 살펴보았다. 하지만 최씨의 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저승사자는 식은땀을 흘리는 최씨의 앞에서
혀를 내밀고 메롱 하였다. 최씨는 애써 진정을 하며 계속해서 바둑을 두었다. 바둑알을 하나 하나 옮기는
그의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저승사자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차근차근 자신의 시나리오대로 진행
되고 있었다. 저승사자는 최씨의 귀옆으로 다가가 입김을 후 불었다. 그러자 다시한번 최씨가 몸을 부르르
떨며 발작했다. 식은땀이 줄줄 흐르며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저승사자는 최씨의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자
기뻤다. 최씨는 거치게 숨을 몰아쉬며 바둑알을 손으로 쓸어버렸다. 촤르르 하며 바둑알이 범버카처럼 서
로 부딪쳤다. 최씨는 일어서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쉬는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나보다. 저승사자
는 곧바로 벽을 통과해 최씨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문앞에 서서 이번에도 잘 정리된 손톱을 드러냈
다. 최씨가 방 문 손잡이를 붙잡고 돌렸다. 끼이익하며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완전히 열리자 저승
사자가 소리쳤다.
"어흥!"
별안간 들려온 호랑이 흉내 소리에 최씨가 화들짝 놀라며 뒤로 자빠졌다. 그런 그의 눈가가 미세하게 떨리
고 있었다. 분명 두려워 하고 있다. 탈 속에 감춰진 저승사자의 얼굴이 히죽 웃고있었다. 저승사자가 천천
히 최씨에게로 다가갔다. 최씨는 두 눈을 질끔 감으며 집이 무너질듯한 고함을 내질렀다.
"도둑이야!"
최씨의 뜻밖에 반응에 저승사자가 당황했다. 도둑이라니? 난 지상 최강의 생물인 호랑이란 말이다! 저승사
자가 달려들어 최씨의 입을 틀어 막았다.
"읍! 읍!"
최씨가 몸을 격하게 움직이며 저항했다. 당황한 저승사자는 더욱 쎄게 입을 막았다. 그런 그의 이마에선 식
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여, 여봐요! 진정해요, 진정! 난 도둑이 아니란 말이에요."
흥분한 최씨를 장시간 붙잡고있자, 차차 진정이 되는듯 몸에 떨림이 가시고 있었다. 어느정도 진정이 되자
저승사자는 최씨의 입에서 손을 때었다. 최씨는 경계심이 한 보따리인 눈으로 저승사자를 보았다.
"도둑이 아니라면 무어란 말이오?"
저승사자는 쓰고있던 탈을 벗었다. 거무죽죽한 그의 얼굴이 나타났다. 최씨는 다시한번 놀랬다.
"전 저승사자에요. 당신의 수명이 다 되어서 찾아온 것이랍니다."
"그, 그렇군. 내가 그렇게나 나이를 먹었던가? 세상 돌아가는게 어지럽다보니 나이 먹는것도 잊어버렸군.
허허..."
저승사자는 쓴웃음을 지으며 최씨의 몸을 이르켜주었다. 읏차! 하며 최씨가 일어서고 뒤를 돌아보자 자신
의 몸뚱아리는 그대로 바닥에 누워있었다. 최씨는 자신이 죽었음을 실감했다. 씁쓸한 표정을 머금고 둘은
집을 나섰다.
"최영감님 제가 궁금한게 있는데 말이죠."
"음? 그게 뭔가?"
저승사자는 망설이듯 우물쭈물하다 입을 때었다.
"솔~직히 아까전에 저 무서웠죠? 호랑이 탈을 쓰고있는 제가 말이에요!"
최씨는 그의 말을 듣고 어리둥절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저승사자는 마음속으로 '유레카!'를 외쳤다.
4.
저승사자는 최씨와 함께 복잡한 골목길로 들어섰다. 왔던 길을 되돌아 가는것도 만만치가 않았다. 저승사자
는 최씨에게 길을 물어볼까하다 그것도 체면이 살지 않을것만같아 포기했다.
한참을 헤매던 그는 드디어 아까 보았던 골목길을 찾아내었다. 저승사자는 다시한번 '유레카!'를 외치며 걸
었다. 그러던중 아까전 '싼다락방'을 보았던 담장이 눈에 띄었다. 저승사자는 계속 길을 걸으며 흘끗 담장
너머를 쳐다보았다.
"저게 뭐지?"
담장너머 집 창문을 통해 내부가 보였다. 그 속에선 왠 남자가 배를 부여잡고 쓰러져 있었다.
"최영감님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이 집 좀 살펴보고 올게요."
최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저승사자는 성큼 집으로 다가갔다. 점점 배를 부여잡고있는 남자
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였다. 잔뜩 찌푸린 얼굴로 쓰러져있는 남자의 배에선 붉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승사자는 그모습에 발걸음을 빨리했다. 정신을 집중하여 남자를 바라보자 아라비아숫자가 머리위에 나타
났다. 이것은 저승사자들만에 특별한 능력이였다. 사람의 수명을 알수있는 숫자였다. 저승사자는 왠지 빨간
사과를 베어 물고 싶어졌다.
서서히 창문앞까지 다가가자 그 남자의 앞에 서있는 '싼다락방'이 보였다. 그리고 그녀의 손엔 큼직한 칼
이 쥐어져있다.
"당신 무슨짓을 벌인거야!"
저승사자가 소리치자 '싼다락방'이 놀란 눈을 뜨며 그를 보았다. 그녀의 눈은 초조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저승사자는 성큼 다가가 그녀의 뺨을 쳤다. 그녀의 손에선 칼이 떨어졌다.
"당신 무슨짓을 한거냐고! 아직 이 남자의 수명은 한참이나 남았단 말이다!"
"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신발! 지금 그런말로 해결될게 아니잖아! 당신도 귀신이면 알거아냐? 수명이 남은 사람을 죽였을때는 어떻
게 되는지!"
그녀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아, 알아요..."
"그걸 아는 사람이 왜 이랬어! 아우, 미치겠네!"
저승사자는 소파에 앉아 마음을 진정시켰다. 기다리던 최씨도 집으로 들어와 구석에서 나홀로 바둑을 두었
다. 칼에 찔린 남자는 이미 숨을 거두기 일보 직전이였고, '싼다락방'은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하~ 귀신 세명이서 이상황을 어떻게 해결하냔 말야... 병원에 데려다 줄 사람도 없고."
"죄송합니다..."
'싼다락방'이 허리를 숙이며 사죄했다.
"지금 죄송하다고 해결될게 아니라고 했잖아. 수명이 다 되지않은 사람을 죽였으니 당신은..."
저승사자가 끝말을 흐리고 정적이 흘렀다. 잠시후 그의 한숨과 함께 말이 나왔다.
"무(無)의 세계로 가버린단 말야..."
저승사자의 말엔 진심어린 걱정이 묻어났다.
"네... 저도 알아요. 그곳이 어느 곳인지."
무(無)의 세계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그런 곳이였다. 자신의 형태도, 생각도, 감정도... 그 무엇도 존
재하지 않는 곳이다. 저승이란곳은 사실 무(無)의 세계로 가기전, 한 번의 기회를 더 주는 것이였다. 저승
에서 해서는 안될 나쁜짓을 저질렀거나, 지금처럼 수명이 끝나지 않은 인간을 죽였거나 했을때 그곳으로 간
다. 저승은 무(無)의 세계로 가는 거름종이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곳에 가는 이는 모든것이 사
라지고만다.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고민하던 저승사자가 입을 열었다.
"후... 당신 나와 함께 가야겠어. 어떻게 된 일인지 상세하게 설명한 후, 염라대왕님에게 가야할 것이야."
'싼다락방'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칼에 찔린 남자는 서서히 숨을 거두었다.
5.
건물로 들어서 사 층으로 향한 저승사자는 한켠에 마련된 유치장으로 향했다. 그곳엔 삼 일 전에 잡혀
온 '싼다락방'이 구석에 쭈구려 앉아있었다. 이처럼 저승사자 건물 유치장엔 무(無)의 세계로 가기전 조사
를 받기위해 대기를 하는 자들로 바글거렸다. 그들은 죄다 절망에 빠진 표정으로 다가올 앞날을 두려워하
고 있었다. 그만큼 무(無)의 세계란 무서운 곳이였다.
"어이 너 나와."
저승사자가 '싼다락방'을 부르자 그녀는 비척비척 걸어나왔다. 둘은 취조실로 들어가 문을 잠구었다. 중간
에 테이블을 두고 마주 앉았다. '싼다락방'은 모든걸 체념한 표정을 짓고있다. 저승사자는 가져온 종이를
엎치락 뒤치락하다 말했다.
"내가 조사를 좀 해봤어. 데충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더라구?"
저승사자는 빨간펜으로 뭔가 있어 보이는척 종이에 줄을 그었다. 잠시후 종이위엔 별 다섯개가 그려져 있었
다. '싼다락방'은 조심히 입을 열었다.
"그 남자는... 어떻게 된거죠?"
"음? 남자? 그야 물론 저승에서 주거지가 마련될때까지 대기중이지."
"그런가요? 별 문제 없겠죠?"
"당연하지, 남자야 무슨 문제가 있겠어? 지는 억울하게 살인을 당했는데 말야. 아마 염라대왕님께서 좋은
집으로 구해주실꺼야."
"다행이군요..."
저승사자는 펜촉으로 테이블을 탁탁 쳤다. 한 손으론 턱을 만지작 하더니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힘껏 내리치
며 말했다.
"자! 그보다 조사중에 중요한 사실을 알아냈는데 말이야."
'싼다락방'이 침을 꿀꺽 삼켰다. 저승사자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너가 이승에 있었을땐 그 남자의 애인이였더군?"
'싼다락방'은 잠시 눈이 커지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숙였다.
"역시! 그렇다면 모든 상황이 이해가 가지! 복수였구나? 널 차버린 남자친구였어?"
'싼다락방'은 침묵을 유지하였다. 저승사자는 히죽 웃었다.
"야, 야, 야! 너무 시무룩하지마~ 난 다 이해하니께. 잘못된 놈은 그녀석이지 뭘~ 너만 벌을 받아야 한다
니 내가 맘이 아프다."
저승사자는 자신을 차버린 여자친구가 떠올라서 진짜 마음이 아팠다. 눈가에 눈물이 살짝 고여있다. 그녀
와 본 '과속방지턱' 영화의 티켓값이 만 사천원이였는데. 문뜩 그녀에게 썼던 돈도 아까워졌다.
"하... 난 진짜 너의 편이 되어주고 싶은데말야... 수명이 덜 된 사람을 죽인 죄는 보통 죄보다도 너무 큰
죄야. 진짜 조금만 참지 그랬어? 아무리 얄밉고 화가나도 참았어야만 했는데.. 쯧쯧..."
"그러게 말이에요... 이미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답니다. 무(無)의 세계는 언제쯤 가게 되나요?"
저승사자와 '싼다락방'의 눈이 마주쳤다.
"뭐가 그리 성질이 급해? 무(無)의 세계란 곳이 그렇게 쉽게 가지는곳이 아니야. 절차를 밟아야지. 그것보
단 남자를 죽인것에 궁극적인 이유가 없어? 아니면 이승세계때 그와 어떻게 헤어졌는지라도 말해봐바."
"그냥... 별 것 없어요. 보통 연인들처럼 사소한 말다툼에 헤어지고... 그 다음에 저는 사고사를 당했
고... 우연히 그의 집을 찾아갔는데 행복한 모습에 그를 보고 화가나서 벌인 일이에요..."
더듬더듬 말하던 그녀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너!"
저승사자가 대뜸 손가락질 하며 말하자 '싼다락방'이 화들짝 놀랬다. 저승사자는 눈을 작게 만들며 노려봤
다.
"거짓말하고 있어. 난 사람의 표정만 봐도 알수가 있어. 아까전부터 너의 표정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
무언가를 감추고있는 사람처럼 말이야. 분명히 말해. 숨기는게 있지?"
"어, 없어요!"
'싼다락방'이 당황한듯 손을 격하게 저었다.
"거짓말 따위는 그만해, 난 사실 모든걸 알고 왔으니까."
6.
하루 전, 저승사자는 남자를 찾아갔다. 저승 오피스텔에서 지내고있던 그는 많이 핼쑥해진 얼굴에 자폐증
에 걸린것마냥 벽을 손톱으로 긁고 있었다. 저승사자는 혀를 차며 남자의 앞에 앉았다.
"여봐, 괜찮아?"
"아, 아저씨.. 도데체 어떻게 된거죠? 제가 죽은게 맞나요? 이곳이 저승이고 당신이 저승사자인게 맞나요?"
"다 알고있으면서 왜케 물어봐? 멍충아."
"믿기지가 않아요... 죽음 뒤에 세계란게 이런것이였다니, 살았을적하고 다를게 없잖아요?"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잘 생각해보니 이게 맞는거더라구. 죽은 인간들도 결국엔 인간이니까 발
명도 하고 할꺼아녀? 무엇보다 귀신들은 이승세계를 몰래 훔쳐 볼수가 있으니 신개발품도 금방금방 나오고
말야."
"그렇군요... 근데 저는 언제까지 이곳에 머물러 있는거죠?"
"난들 아냐? 때가되면 옮기것지 뭐, 지금은 그게 중요한게 아니니까."
"그럼 뭐가 중요한거죠?"
"널 죽인 녀석이 어떻게 되느냐가 중요하지 뭐, 무엇 때문에 죽인거야?"
남자가 복잡한 수학 문제라도 본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죽...이다뇨? 누가요?"
저승사자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사진 한장을 꺼내었다. 그속엔 '싼다락방'이 브이를 하고 있었다.
"이 여자가 말야! 이유없이 널 죽였다지 뭐야... 참 너란 놈도 지지리 운도 없다."
남자가 사진을 들어 멀뚱히 바라보았다. 들고있던 손이 서서히 흔들리고 있었다.
"은...정이?"
저승사자가 놀라며 벌떡 일어섰다.
"뭐야? 아는 사람이야?"
"네... 예전 여자친구였어요."
"정말?"
저승사자가 무릎을 탁! 쳤다.
"하하! 그랬던거군! 예전 여자친구의 복수극인가? 얼마나 심하게 차버렸기에 이 여자가 그런거야?"
남자는 눈을 동그랗게뜨며 저승사자를 보았다.
"안...찼는데요? 이 여자는 저랑 만나던 중에 죽어버렸거든요..."
"뭐야?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그런데 이 여자가 너를 왜 죽인거냐구?"
"아니요... 그녀는 절 죽이지 않았어요..."
남자의 눈에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저승사자에게 해주었다.
7.
남자는 한장의 사진을 바라보며 흐느꼈다. 나는 왜 그녀를 보냈던 것일까? 후회감이 막심하게 차올랐다. 연
인의 다툼이란 참으로 사소하다. 이것저것 하나라도 맞지않으면 다툼이 일어나 시간이 흐를수록 살이 붙어
갔다. 어느덧 거대해진 다툼은 쉽게 움직일수 없을정도로 뚱뚱해졌다. 미련하게 뒹굴거리며 도통 사라져주
질 않았다. 한적했던 공원에는 남자와 여자의 다툼소리로 요란했다. 가까운 아파트 주민들은 베란다에서 얼
굴을 찌푸린채 그들을 보기도 하였고, 말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싸움은 진정되지 않았다. 여자는 화를 이기
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남자는 병신같이 왜 우냐며 그녀를 나무랐다. 그러자 여자는 남자의 뺨을 쳤다.
붉게 물든 남자의 뺨이 탐스럽게 익어갔다. 둘의 감정은 점점더 고조되었다. 남자의 언성은 높아지고 여자
도 절대 지지않았다. 여자는 자신의 휴대폰을 던져버리곤 뒤를 돌아 성큼 걸어갔다. 남자는 그녀를 따라가
지 않았다. 자신도 화를 참지 못해 씩씩거렸다. 여자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남자는 무시했다. 그녀
도 무시했다. 점점 그녀가 멀어져갔지만 남자는 그 자리에 계속해서 서있었다. 여자의 모습이 사라지자 남
자는 휴대폰을 줏었다. 통화는 여자의 엄마에게서 온 것이였다. 남자는 휴대폰을 주머니속으로 넣고 그녀
가 걸어간 곳으로 자신도 걸었다. 그녀의 발자국이 아직도 공원바닥에 남아있다. 천천히 그 발자국을 따라
밟으며 걸었다. 어느정도 걸어가자 저만치서 사람들이 웅성이는게 보였다. 남자는 궁금해 곧바로 달려갔
다. 그곳엔 여자가 있었다. 여자는 피곤했던지 바닥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에게 이불대신 자
신의 몸을 덮어주었다. 남자가 여자의 얼굴을 쓰다듬자 남자의 손바닥이 붉게 물들었다. 강렬한 헤드라이트
가 눈을 부시게했다. 남자는 그것때문인지는 몰라도 눈물이 났다. 점점 많이 흘렀다. 어느덧 통곡을 했다.
바닥에서 잠을 청하는 그녀를 꺠우려 몸을 흔들었지만 너무도 곤히 잠들었다. 또다시 여자의 휴대폰이 울렸
다. 이번에도 그녀의 엄마였다. 남자는 이번엔 무시하지 않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자의 엄마와는 생전 처
음으로 통화를 해보는 것이였다. 그런데 처음으로 한 통화는 그녀의 사망을 알리는 통화가 되어 버렸다.
남자는 멍청했던 지난날에 자신을 떠올리며 책망했다. 왜그리도 미련하고 바보같았을까? 한번 물러나 사과
를했으면 됐을껄, 그럼 착한 그녀는 모든걸 용서해 주었을텐데 말이다. 왜그리도 자존심을 부렸던 것일까?
남자는 자신을 용서할수가 없었다.
남자는 매일같이 술에취해 살았다. 그것이 버틸수있는 유일한 길이였다. 술이 없으면 하루하루 살아갈수가
없었다. 매일같이 술에 취해서 잠이 들었다. 또 눈을뜨면 그녀가 떠올라 술을 마셨다. 점점 그의 몸이 망가
져갔다.
오늘은 남자의 술이 바닥이 났다. 남자는 술을 사러 나가려다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건 아니다, 이래선
답이없다. 남자는 굳게 결심했다. 자신이 살아서 뭐하나? 병신같이 그녀를 떠나보낸 자신이 살아서 뭐하
나? 남자는 점점 자신이 싫어졌다. 이세상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싶다. 그리곤 끝내 결심했다. 생각만 하지
말고 진짜 없앨것을.
남자가 그러한 생각을 가졌을때, 여자는 귀신이되어 그의 집 앞을 서성였다. 여자는 죽어서도 그를 볼수 있
다는게 행복했다. 자신때문에 괴로워하고있는 그가 가여웠지만 사랑이 확인되는 순간이라 한편으론 기쁘기
도 하였다. 오늘은 괴로워하는 그를 위해 여자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생각이다. 아예 계속해서 몸을 드러
내 그와 살고싶었지만 귀신이란게 그럴수는 없다. 아주 잠시뿐이였다. 저승사자처럼 공무원이 아닐시에는
몸을 드러낼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다.
여자는 그에게 자신이 잘 지낸다는것을 보여주고싶어, 미용실에서 한껏 단장했다. 평소 꺼려하던 최신유행
을 그대로 모방했다. 배배 꼬아올린 머리가 다소 부담스러웠지만 기뻐할 그를 생각하니 자신도 웃음이 나왔
다. 여자는 천천히 그의 집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모습을 보여주는게 좋을까? 여자는 마음이 들떴다. 하지
만 큰 바위가 쿵!하곤 가슴에 떨어졌다. 남자의 손엔 큼직한 칼이 쥐어져 있었다. 그런데 날카로운 날은 보
이지않고 오로지 손잡이만 보인다. 대신 붉은 물줄기가 보였다. 날카로운 칼날은 그의 몸속으로 모습을 감
춘듯 했다.
"꺄아아악!"
여자는 고함을 내질렀다. 왜 그래야만했어? 왜! 여자의 머리속은 의문감으로 뒤섞였다. 남자는 괴로워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여자는 성큼다가가 남자를 어루만졌다. 예전 남자가 여자를 만져주듯이 얼굴을 쓰다듬었
다. 그리곤 예전 그처럼 눈물 방울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은...정..아... 보고...싶...어..."
숨조차 제대로 쉬지못하는 그의 입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나왔다. 그소리는 무척이나 작았지만 여자의 귀
속을 파고 들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조금만, 조금만 있었으면 볼수 있었을텐데, 도대체 왜이런짓을
벌인거야? 여자는 너무도 슬펐다.
그순간 누군가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것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여자는 단번에 그것이 저승의 것임
을 알아챘다. 그리곤 혼란스러웠다. 이 모습을 보인다면 큰일이다. 남자가 이대로 죽었다면 정말 큰일이
다. 여자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곤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귀신으로썬 너무도 큰 마음의 준비였다. 하지
만 망설일 시간이 없다. 녀석은 점점 다가왔다. 여자는 남자의 배를 관통한 칼을 빼내었다. 그리곤 칼을
든 채로 몇 걸음 물러나 섰다. 다가오던 그것이 창문 앞까지 왔다. 그리곤 녀석이 소리쳤다.
"당신 무슨짓을 벌인거야!"
8.
'싼다락방'은 초조하게 시선을 외면했다. 저승사자는 실실 웃으며 말했다.
"맞잖아? 니가 그를 죽이지 않은게."
"아, 아니에요! 제가 죽였어요! 제가 죽였단 말이에요!"
"하~ 답답하네. 내가 다 듣고 왔다니께? 뭐 그리 무(無)의 세계로 가고싶어서 안달인거야?"
"정말이에요, 제가 죽인거 확실하다니까요! 제발 믿어주세요, 네? 저승사자님 제발요!"
'싼다락방'은 손이 닳도록 빌었다. 저승사자는 그런 그녀를 무시한채 취조실을 나갔다. 잠시후 누군가를 데
리고 들어왔다. 다름아닌 남자였다.
"은...정아?"
남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싼다락방'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초조한 눈빛으로 시선을 외면했다. 저승사자
는 콧방귀를 뀌며 남자를 자리에 앉게 했다. 그녀의 낯빛이 허옇게 변하였다.
"자, 오랜만에 둘이서 이야기좀 해봐바. 알았지?"
저승사자는 빙긋 웃으며 취조실을 나갔다. 남자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고, '싼다락방'은 계속해서 초조
하게 동공이 흔들렸다. 남자가 슬며시 입을 열었다.
"잘 지냈어?"
'싼다락방'은 아랫 입술을 물며 미간을 찌푸렸다.
"응 잘 지냈어. 불과 이 삼일 전에는 말이야."
그녀는 퉁명한 말투로 말했다. 남자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왜 이렇게 되어버린거야? 너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이런데 잡혀 온거냐구?"
"넌 알 필요없어. 그냥 아무것도 모른척하고 당장 떠나. 그게 날 기쁘게 하는 일이니까."
"무슨 소리야? 내가 어떻게 그래?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이런곳에 잡혀왔는데 어찌 모른척을 한단 말이야?"
그녀가 남자를 쏘아보며 말했다.
"여자친구? 넌 아직도 모르겠니? 그런 시시한 연애놀음은 이런곳에서 아무 필요없어. 알겠어? 난 이미 너란
녀석은 질색이니까 당장 꺼져."
"시시해? 우리가 만났던게 그렇게 시시했었니? 내가 너 죽은다음에 얼마나 힘들었는데... 얼마나 힘든 삶
을 살아왔는데! 그래서... 그래서... 결국엔 내가... 읍!"
'싼다락방'이 남자의 입을 급하게 틀어막았다.
"입 함부로 놀리지마. 넌 아무짓도 하지않았어. 난 죄를 받아 마땅한 짓을 했고, 그러니까 잡혀 온거야. 너
는 아무런 관련 없으니 정말 가줘. 부탁할게."
남자가 그녀의 손을 뿌리치며 소리쳤다.
"신발! 그래서 내가 자살을 택했는데! 얼마나 힘들었으면 말이야!"
'싼다락방'이 머리를 쥐어 뜯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때, 저승사자는 다른 방으로 가서 CCTV를 통해 그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리곤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
다. 모든것이 이해가 갔다. 그녀가 애써 거짓말을 한것도, 무(無)의 세계를 택할수 밖에 없었던 그녀도.
저승이란 무(無)의 세계에 거름종이 역할을 한다. 하지만 한가지의 예외가 있었다. 염라대왕이 가장 싫어하
고 미련하게 여기는 것. 쓰리고에 흔들고 피박까지 했으면서도 똥을 내놓아 역전을 당하는 것보다 더 미련
한 것. 그것은 바로 '자살'이였다. 자살이란 저승이든 이승이든 가장 해서는 안될 악행이므로 마땅한 벌을
받아야만 한다. 그래서 자살을 택한 미련한 자들에겐 더이상에 기회란 주어지지 않았다. 곧바로 추락이다.
아무것도 없는, 귀 끝을 간지르는 바람 한 점없는 무(無)의 세계로의 추락.
'싼다락방'도 물론 그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쩔수 없는 결정을 내린것이다. 사랑하는 남자를 보내는
것보단 자신이 가는것이 나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또한 멍청한 생각일 뿐이다.
저승사자는 계속해서 지켜 보았다. 모니터 안에선 그녀가 흐느끼고 있었다.
"흐으으윽... 왜 그런거야, 왜! 왜 그런 멍청한 짓을 해버린거냐구...."
"미안해... 너무 힘들어서 그랬어... 니가 없는 세상은 정말 살기 싫어서 그랬던거야..."
"그래도 이 병신아! 그러면 안되는거야! 자살같은거 하면 어떻게 되는줄 알고나 그래?"
"응... 그 저승사자분한테 들었어. 무(無)의 세계로 간다구? 그래, 내가 미련했으니 어쩔수 없는 거겠지.
하지만 난 그곳에 가는것이 두렵지 않아. 단지 앞으로 널 볼수없다는게 두렵긴 하지만서도..."
"뭐, 뭐야... 저승사자한테 말해버린거야? 이 멍청한 자식아!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바보같
이 그걸 말해!"
"괜찮아... 뭣하러 니가 죄를 뒤집어써? 전부 내가 감당해야지... 안그래? 하하..."
"으아앙! 진짜 넌 바보 멍청이야! 으앙..."
'싼다락방'은 테이블에 엎드려 오열했다. 그 모습을 보고있던 저승사자는 울컥 눈물이 났다. 너무도 감동적
인 이야기가 아니던가? 선천적으로 마음이 여렸던 그는 또다시 마음이 약해졌다.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
던 그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결심했다. 꼭 둘을 행복하게 만들자고.
9.
다음날, 저승사자는 '저승사자 장'을 찾아갔다. 저번 김씨의 일도 있었는데 또다시 이런 부탁을 해도 될런
지 걱정되었지만 그의 움직임엔 망설임은 없었다. 또다시 서류를 챙겨 든 그는 '저승사자 장' 앞에 섰다.
"저승사자 장님! 지금 자살이란 범죄로인해 대기중인 남자를 무(無)의 세계로 안보내면 안되겠습니까?"
저승사자의 당당한 발언에 '저승사자 장'이 황당한 표정을 머금으며 그를 보았다.
"하, 이게 진짜 단단히 미쳤구나? 너 사회생활이 장난이야? 니 마음대로 다 되면 이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겠
어? 미친소리 작작하고 내 눈앞에서 당장 사라져!"
"아아잉~ 저승사자 장니임~"
저승사자는 온갖 아양을 떨며 윙크를 했다. '저승사자 장'은 거북한 표정을 지었다.
"야, 야! 면상좀 치워라 으잉? 이번엔 또 무슨일이길래 그랴? 이종사촌이라도 되니? 생명의 은인이야? 어?"
응? 내가 저런말을 했던가? 그냥 생각만 했었던거 같은데? 저승사자는 왠지모르게 뜨끔했다. 하지만 얼굴
에 모든 주름이 지도록 웃으며 계속해서 애교를 떨었다.
"아잉~ 왜 그러세요오~ 생명의 은인같은건 아니구요, 사정이 너무 딱해서 그래요오~ 그러니 한번만 도와주
세요, 네? 한번만요~"
'저승사자 장'이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안돼! 이번엔 절대 안돼! 내가 저번일도 걸릴까봐 얼마나 간 졸였는지 알어? 그리고 사정이 딱한 사람이
어디 한 둘이니? 세상에 널린게 그러한 사람인데, 아니 니가 말한 남자보다도 더 딱한 사람이 이세상에 얼
마나 많은데 고작 그딴일로 사정을 봐줘? 너 자꾸 그딴씩으로 할꺼면 일 때려치워! 알겠어?"
저승사자는 입이 삐죽 튀어나온채로 인상을 찡그렸다.
"쳇, 너무 치사하신거 아니에요?"
"뭐? 치사? 이자식이 잘해줬드니 머리 끝까지 기어오르려하네? 너 뒤지고 싶어?"
"됐네요! 치사빤스셔! 저 부탁 안들어주시면 전 염라대왕님한테 갈꺼에요."
"뭐? 염라대왕님? 푸하하! 그분이 니 마음대로 만날수 있는분인지 알어? 어림 반푼어치도 없지!"
"뭐, 두고보세요! 만날수 있을지 없을지!"
"뭐야? 너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고작 모르는 남자 하나 때문에 무시한 염라대왕님을 찾아간다고? 너 미쳤
어?"
"네! 저 미쳤습니다!"
저승사자는 문을 박차고 나갔다. 뒤에선 '저승사자 장'이 어이없이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10.
웅장한 건물 앞에 선 저승사자는 침을 꿀꺽 삼켰다. 염라대왕이 지내고 있는곳은 이승에 청와대는 저리가
라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저승사자의 말은 빈곳이 없었다. 정말로 이곳에 찾아와 버렸다. 고작
그 남자가 자신한테 뭐라고 이러는진 모르겠지만 그의 굳은 의지는 참으로 단단했다.
저승사자가 성큼 다가가 회전문을 빙 돌고 내부로 들어섰다. 고위 간부들이 여럿 보였다. 감히 신입사원인
저승사자가 입에도 못올릴 정도에 전설적인 저승사자도 보이고, 염라대왕 선거때마다 TV에 얼굴을 들이미
는 자들도 보였다. 그들은 값 비싼 고급재질 저고리를 입고있었다. 멀리서 보기만해도 빛이 번쩍번쩍했다.
저승사자는 절로 입이 벌어졌다.
저만치서 안내원이 보였다. 저승사자는 곧바로 그녀에게로 다가가 말했다.
"염라대왕님좀 보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나요?"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예약은 하셨나요?"
"예약을 하면 볼수가 있나요?"
"흠, 예약을 하고 염라대왕님의 승인이 있어야만 볼수가 있어요."
"그럼 저같은 하빠리 저승사자도 그분이 승인을 해주실까요?"
"흠... 그건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솔직히 말해요옷! 솔직히!"
저승사자가 큰소리로 말하자 그녀가 흠칫했다. 살짝 정색을 지으며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좀 힘드실것 같네요."
"젠장... 그럼 전화좀 때려봐요!"
"네? 무슨 말......"
"전화좀 해보라구욧! 염라대왕님한테 말요!"
그녀는 제대로 정색을치며 수화기를 들었다. 버튼을 누르고 잠시 기다리더니 무슨말을 내뱉었다. 염라대왕
이 받은듯 하다. 저승사자는 초조하게 기다렸다.
"역시 안되겠죠? 알겠습니다. 그냥 보내겠습니다."
저승사자는 그녀의 말을 듣고 아!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얼굴을 들이밀어 수화기에 큰소리로 말했다.
"염라대왕님! 저 안만나주시면 밤놀이 다 꼰지를껍니다!"
그녀가 화들짝 놀래며 수화기를 뺐다. 눈은 이미 동그래져있다. 주변 사람들은 몽땅 저승사자를 바라보며
웅성거렸다. 수화기에서 무슨 조잘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듯하다. 그녀는 놀란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귀에
수화기를 댔다.
"네? 들여 보내라구요? 갑자기 왜..... 네, 알겠습니다....."
그녀가 탁 하곤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들어가 보세요. 염라대왕실은 구 층에 있습니다."
저승사자는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탔다. 히죽 웃으며 구 층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저승사자는 내
려 염라대왕실 앞으로 갔다. 다시한번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히 문을 열었다. 그러자 안에있던 염라대왕이
에헴, 하며 헛기침을 했다. 저승사자는 허리를 푸욱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염라대왕님. 처음 뵙겠습니다."
"아, 아. 인사는 됐고. 밤놀이가 무슨 뜻인가? 난 전혀 모르는 말이라 그런데."
염라대왕은 당황한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마엔 땀까지 송글송글 맺혀있다.
"에이~ 왜그러세요? 아마추어같이. 전 염라대왕님이 밤놀이를 즐기는걸 다 알고있답니다."
염라대왕이 또다시 헛기침을 했다. 그리곤 눈을 부릅 떴다.
"너! 그걸 어디서 알았는지는 모르겠다만, 지금 날 협박하는거냐? 이건 엄연한 범죄야! 범죄!"
"에헤~ 전 상관없어요, 하지만 이사실이 세상에 유포된다면 염라대왕님이 타격이 크실텐데요?"
염라대왕은 저승사자의 얼굴이 뚫어져라 노려봤다. 하지만 천진난만한 표정에 그를보자 한 숨을 내쉬었다.
"그래, 용건이 뭔가? 무슨일로 날 찾아온겐가?"
저승사자는 자신이 들고있던 남자의 사진을 내밀었다.
"이 남자가 자살을해서 무(無)의 세계로 갈 위험에 처했는데요. 안갈수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염라대왕이 황당한 표정을 머금었다.
"뭐? 자살을 했으면 무(無)의 세계로 가는건 당연한게 아닌가? 복장을 보니 너도 저승사자가 분명한데, 그
딴게 안된다는건 잘 알고있지 않은가?"
"에이, 그러니까 염라대왕님을 찾아온게 아니겠습니까? 당신 말이라면 하늘도 둘로 가를수 있지 않겠나요?
이미 갈라진 한국은 도로 합칠수도 있을거고."
"에헤이~ 그건 불가능해. 뭐 이 남자가 무(無)의 세계로 안가게는 할수 있겠지만, 굳이 해줄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밤... 놀이.... 잊으셨나요?"
염라대왕의 땀이 얼굴을 흥건하게 적셨다. 입술이 파르르 떨리기도 했다.
"이, 이자식! 날 협박하는게 맞구나! 으...."
염라대왕이 황당함을 금치 못하고 있을떄 누군가가 문을 세차게 열고 들어왔다. '저승사자 장'이였다. 그
는 화가 잔뜩 오른 표정으로 저승사자에게 다가갔다.
"이 자식이 미쳤나! 여기가 어디라고 진짜 오고 난리야! 당장 나가! 짤리기 싫으면 당장 나가자고!"
'저승사자 장'이 저승사자의 팔을 잡고 끌었다. 하지만 단단히 버티고 섰다. 표정의 변화조차 없었다. 염라
대왕은 골치가 아픈듯 머리를 두 손으로 싸맸다.
"하, 이 골치덩어리는 어디서 굴러온겨? 야! 신입 저승사자! 두가지의 방법이 있긴하다. 말해주까?"
저승사자의 얼굴엔 화사한 꽃이 폈다.
"넵! 뭡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흠, 일단 하나는 뭐냐면..... 그 남자가 무(無)의 세계로 안가는대신 담당인 니가 죄를 덮어씌어 무(無)
의 세계로 가버리는거다. 이래도 좋은가?"
저승사자는 그말을 듣고 놀랬다. 자신이 무(無)의 세계로 간다니, 그럴수는 없는 일이다. 그무엇도 존재하
지 않는 그런곳에 간다고 생각하니 두려움이 덜컥 들었다. 너무나도 무서웠다. 자신의 손톱에 낀 때까지도
몽땅 사라지고 말것이 아닌가?
저승사자는 고민에 빠졌다. 물론 가면 안된다는 마음이 강하게 조여왔지만 '싼다락방'과 남자가 떠올랐다.
둘의 애틋한 사랑이 차마 꽃을 피우지 못하고 저버린다는게 너무도 안타까웠다. 그들은 충분히 사랑할 가치
가 있었다. 지금 자신이 무(無)의 세계로 가지않아 그 둘이 헤어지는 모습을 본다면 그역시도 가슴이 찢어
지는 일이테다. 저승사자는 마음이 너무나도 연약했다. 툭 하고 끊어져버리는 김씨가 뽑던 풀뿌리보다 나약
했다. 두가지의 생각이 뒤엉켜 머리속을 맴돌았다. 지끈한 두통까지 오는듯 하다. 저승사자는 괴로웠지만,
끝내 결심을 내렸다.
"가, 가겠습니다. 제가 무(無)의 세계로 가겠습니다....."
저승사자는 약간 침울한 표정을 머금었다. 그리곤 두 손을 꼬옥 쥐었다. 주먹안엔 땀이 한가득 고였다. 그
모습을 염라대왕이 말없이 보았다. '저승사자 장'은 화들짝 놀라며 저승사자의 등짝을 내리쳤다.
"너 이쎄끼야! 말 함부로 하는거 아냐 임마! 그곳이 어디라고 생판 모르는 남자때문에 간다는거야! 정신차
려 병신아!"
'저승사자 장'이 저승사자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하지만 저승사자의 굳은 의지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
다. 염라대왕이 가만히 지켜보더니 말했다.
"너무 소란들 피우지말게나. 아직 한가지의 방법이 더 남아있으니."
11.
저승 나이트에선 눈부신 네온사인이 현란하게 움직였다. 중앙 커다란 스테이지에선 새끈한 미녀들이 머리카
락을 엉크리며 춤을 추었다. 중간중간 작업을 치는 남자들이 그녀들에게 찝쩍거렸다. 여자들은 콧방귀를 뀌
며 남자들을 무시했지만 그들은 물러남없이 들이대었다.
그중엔 저승사자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그는 '저승사자 장'에게 보여주었던 애교만땅 표정을 머금고는 여
자들에게 다가갔다.
"어이, 섹쉬하고 이쁜 아가씨들. 우리랑 놀래? 지금 룸 안에 큰 인물이 와 있으신데 말이야 호호."
여자는 똥씹은 표정으로 질색했다.
"어머 이건 뭐야? 별꼴이야. 흥!"
저승사자는 물러남 없이 천연덕스럽게 웃었다.
"에이~ 왜그렇게 팅기셔? 아가씨들도 좋으면서 흐흐~ 따라가보면 좋은일이 생긴다니께? 루이비똥, 팔에감
어, 구짜는 별게 아니여~ 엄청 쉬운거지쓰야~ 한번 따라가보면 통 큰 우리 대빵을 보고 놀래쓰~ 그래, 놀래
쓰도 별게 아니여!"
저승사자는 약간 비굴하기까지도 했다. 그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자들이 있었다. 다름아닌 염라대왕
과 '저승사자 장'이였다. 염라대왕이 웃으며 말했다.
"허허허, 열심히구먼. 맘에 들어."
'저승사자 장'은 못마땅한 표정이였다.
"아니 도대체 저놈을 밤놀이에 왜 부르신 겁니까? 그리고 남자를 구할수있는 방법이 어처구니 없이도 여자
를 꼬셔오는 것이라니.... 저 솔직히 염라대왕님에게 조금 실망했습니다."
"허허, 왜그러나? 좋지않은가? 매일같이 돈으로 여자를 샀었는데, 뭐니뭐니해도 부킹이 최고였어. 그 짜릿
함은 돈으론 살수가 없지."
"아니, 그야 그렇지만서도.... 그것만으로 남자를 무(無)의 세계로 안보낸다는건 너무 심하신거 아닌가요?"
"흠, 물론 그렇지. 나도 알고는있네. 하지만 난 그의 진심을 보았네."
'저승사자 장'이 무슨말인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 했다.
"솔직히 저승에 그 누구라도 무(無)의 세계를 두려워 할 것이네. 물론 나도 그렇고, 저 놈도 그렇고, 너도
그렇지가 않느냐? 그게 당연한 것이야. 저승 인간들은 모두다 무(無)의 세계를 두려워하지. 그런데 쟤라곤
오죽했겠어? 내가 진짜 무(無)의 세계로 보낸다고 했으면 오줌을 지려버렸을꺼여.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
았어. 무(無)의 세계로 갈 큰 위기에 빠져버린건 그 남자가 아닌 저녀석이였을지도 몰라. 그런데 그의 눈
이 말했어. 난 두렵지만 포기하지 않을거라고. 자신이 무(無)의 세계로 가는한이 있어도 남자만은 구출해
낼 것이라는 굳은 의지를 말했지. 난 그런 녀석에게 반해버린거야. 그래서 기회를 준것이지."
저승사자는 여자에게 따귀를 맞고 눈물을 찔끔 흘렸다. 얼굴이 시뻘게 졌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른 여자에게
로 갔다. 그리곤 요란하게 수다를 떨며 작업쳤다. 그모습을 지켜보던 염라대왕은 흐뭇하게 웃었다. 그 웃음
엔 밤놀이가 유포되지 않아서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12.
"저희 결혼하기로 했어요."
'싼다락방'과 남자는 환한 웃음을 머금었다. 저승자사도 덩달아 웃었다.
"그래? 정말 잘됐네! 축하해!"
'싼다락방'이 우물쭈물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요... 결혼식 사회좀 봐주실레요?"
저승사자는 그말을 듣고 당황했다.
"뭐? 야! 내 나이가 몇인데 사회를 봐?"
"아님 축가라두 불러주세요! 제발요오~"
"흠, 축가라? 하긴 내가 노래좀 쩔긴하지. 왕년엔 가요무대를 휩쓸던 나였어! 에헴!"
'싼다락방'은 어이가 없었지만 그의 기분을 맞춰주려 리액션을 크게했다.
"하하하! 그래요? 우와~ 역시 저승사자님은 멋장이세요! 그럼 불러주실꺼죠?"
"좋아, 좋아! 결혼식 축가로는 역시 '바람바람바람'이 좋겠지? 그대 이름은 바람바람바람~ 얼마나 좋아? 묘
하게 이혼서류도 떠오르고 말야."
"뭐요?"
'싼다락방' 머리엔 뿔이 솟아났다.
"아하하, 장난이여 장난! 근사하게 불러줄터이니 걱정하지 말어. 그보다 결혼하면 살집은 있어?"
"흠... 그게 고민이긴 한데... 돈이 좀 부족해서요. 적당한 선에서 살만한 집 없을까요?"
"물론 있지!"
저승사자는 확신이 찬 목소리로 말했다.
"어딘데요?"
"그게.... 어디냐면...."
저승사자는 빙긋 웃었다.
"우리집 다락방은 어때? 값 싸게 줄게."
-End-
- 다른 이야기
http://pann.nate.com/b315723228
http://pann.nate.com/b315737692
http://pann.nate.com/b315738286
http://pann.nate.com/b315775792
http://pann.nate.com/b315775938
http://pann.nate.com/b315783901
http://pann.nate.com/b315806213
http://pann.nate.com/b315825660
http://pann.nate.com/b315839806
http://pann.nate.com/b31584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