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지방에 살고 있는 열아홉, 한참 공부해야 될 학생입니다.
제목 그대로 저는 사랑받는 왕따입니다.
하지만 사랑받는곳과 왕따인 곳은 다릅니다.
집안에서는 누구보다 사랑받는 딸이지만 학교안에서는 누구도 신경쓰지않는 왕따입니다.
난 친구가 없어. 라고 말할만큼 왕따라는 말에 거리낌이 없었고,
왕따 그자체로 창피해 할 것 없이 지내왔습니다.
사실, 몇일 전 아주 크나큰 심경변화가 있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저는 초등학교 삼학년 때, 하루도 떨어질 수 없어 항상 붙어다녔던 각별한 동생을 잃었습니다.
십년이 흐른 지금도 아직도 그 아이의 생각이 어렴풋이 납니다.
가끔 아이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을때면 무심했던 누나인 제가 그리 미워질 수 없습니다.
덧니를 빼고 울던 얼굴, 그 다음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소파에서 뛰어 내려오며 나를 보고 웃던 그 얼굴.
미운 아이를 혼내달라하자 사람은 때리면 안된다며 고개를 젓던 아이.
엄마한테 혼나고 나서 울고 있으면 저쪽 방에서 뛰어와 내 침대에 누워 울지마 같이 자자 해줬던 아이.
한참 둘이 싸우고 나면 무릎꿇고 손들고 서있다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를 걸어오던 아이.
못된 나에게 참 착했던 내 동생.
그 당시에는 슬퍼했던 부모님을 웃게해드려야지 생각하며 그 아이를 위해 한방울도 울지 않았던 내가 참으로 원망스럽습니다.
죽었어. 라는 말을 듣고 이해 하지 못한채 한없이 작아져만 갔던 내 발을 바라보며 왜 이렇게 가슴이 뛰지? 하고 생각했던 그 날.
이제서야 그것이 충격이라는 걸 깨달았지만 그것도 얼마 되지 않은 일입니다.
초등학교 사학년. 새로운 동생이 태어났습니다.
우리가족에겐 굉장히 소중한 아이였고 지금도 여전히 예쁘기만한 동생입니다.
고집이 쎄서 가끔 엄마를 힘들게하지만 그만큼 착하기도 하니까 이쁘게 생각합니다.
사실, 지금까지의 관심은 모두 동생에게 쏟아졌고 저조차 그랬기에 제가 쓸쓸함을 느낀다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무의식적으로 저는 고립되어갔나 봅니다.
중학교 때 저는 부모님의 말을 잘 듣는 굉장히 착한 학생이였습니다. 무릎 밑으로 치마가 길고 머리도 단발인 학생말이죠.
선생님들은 저를 좋아라하셨지만 그것이 웃겨보였던 중학교 학생들은 항상 저를 이유없이 욕했습니다.
중학교 시절 기억은 없지만 저런 기억은 있네요.
저는 중학교 시절 아이들이 제일 철이없고 개념이 없다 생각이 들어, 그래서 이해했습니다.
(이걸 보고계실 중학교 학생여러분들 기분이 나쁠수도 있지만 고등학교 들어가면 다들 이생각이 들더라 합니다.)
저는 이 시절 더 고립되어 갔고 친한 친구였던 아이는 남들과 뒤에서 제욕을 엄청 했더랍니다.
그것에 충격먹어 더이상 친구도 못믿게 되어 점점 친구없고 말없는 이상한 아이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땐 일년이 지나면 친구가 바뀌고 그것마저도 뒤에서 욕하는 아이들을 코웃음 치며 저런 아이들과 친구할 가치를 못느끼겠다 싶었죠.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친구를 못만들었고 지내던 친구들과만 친한 그런 학생이 되었죠.
(손에 꼽을정도로 친한 친구들은 초등학생때부터 이어온 아이들입니다.)
열일곱, 이제 일곱살이 된 동생이 이유없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결국에는 병원신세를 지게되었습니다.
전남대병원에서 가망없다는 말을 듣고 서울대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으면서 또한 거기서도 가망이 없다는 말을 들었죠.
그러나 저희 어머니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살이 한달에 10키로 이상 빠지시면서 동생을 돌보았습니다.
분명 눈물짓는 일도, 힘드신 일도 엄청났을텐데 저에게 티를 내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가 힘드신 일을 작년에서야 알게되어 한참을 펑펑 울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 나름 힘드셔서 항상 술을 마시고 들어오시며 청소년들이 가출하듯 자주 쏘다니셨습니다.
아버지는 제 첫동생이 죽은 그 사고 때 눈물을 지셨습니다. 그때 제가 본 아버지의 첫 눈물입니다.
그 사고, 나와 동생이 같이 차에서 떨어졌고 땅바닥에 곤두박쳐졌는데도 멀쩡하던 저. 그리고 피눈물을 쏟던 동생.
난 그 하얀 얼굴을 바라보면서 멀겋게 서있기만 하자 아버지가 달려오시며 저를 뒤돌려 세웁니다. 그리고 우십니다. 괜찮을거야 하면서.
전 그때 분명 동생의 얼굴을 보았는데, 하얗기만한 얼굴이였는데 모두들 아이의 얼굴은 피로 시뻘겋게 물들었다합니다.
둘째 동생이 아프고나서 또 아버지가 남몰래 우셨습니다. 강직하기만 하던 아버지. 그러나 참으로 괴로우셨던 아버지.
몇달 후, 동생은 부모님의 사랑때문인지 기적적으로 살아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몇달간의 치료로 인해서 몸이 많이 쇠약해졌고 저를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말도하지 못하였고요.
먹을것을 잘 먹지않던 아이였는데 밥을 정말 많이 먹었습니다. 배부름을 못느꼈지요.
눈에 생기가 없고 멍하기만했던 얼굴이 또 몇달이 지나자 굉장히 좋아졌습니다.
일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동생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지요.
(아직 약은 먹고있습니다. 그런데 그 약이 신경에 영향을 끼쳐 사람을 포악하게 만든다 하더군요.)
지금은 학교까지 다니고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뛰어놉니다. 숙제가 하기 싫어 징징거리지만 엄마가 기어코 하게 만들더군요.
몇일 전, 학교에서 '어떤 일' 이 있었습니다.
(아주 사소한 일이지만 그 일에서 제가 완전히 배제당했습니다.)
그 일로 저는 펑펑 울었고 담임선생님이 보시게 되어 그간 있었던 일을 담임선생님에게 처음으로 털어놓았습니다.
담임선생님은 아주 젊은 여선생님입니다. (나이는 아주 조금 있으시지만 얼굴은 저희 또래와 차이가 나지 않아서 슬픕니다. 게다가 예쁨.)
제 이야기를 하는 동안 옆에서 제 손을 잡아주시며 힘들었겠구나. 하면서 저를 껴안아주시고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자신의 이야기 까지 해주십니다.
저는 그 안에서 위안을 얻고 선생님에 대한 나쁜 생각들을 바꾸어 갔지요.
(초등학생때 부모님에게 나는 이학생을 돌볼 자신이 없으니 돈을 가지고오라는 담임선생님을 본 이후로 선생님들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했던 이야기는 대략 위에 내용과 비슷하고 그리고 한가지 더.
저는 지금까지 죽고싶단 생각을 수도 없이 해왔습니다. 부모님께 말씀드릴 수 없는 나쁜 생각이기도 하고요.
이런 말씀을 드리자 선생님이 놀래십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위에서 상담선생님이 내려와 수요일 상담하시고 가십니다.)
'어떤 일'에서 저를 배척했던, 저를 싫어하는 한 남학생이 있는데 사실 저는 그남자애가 저를 욕하든 그 아이를 미워하진 않습니다.
원래 성격이 천하태평 아무생각 없이 지내곤해서 누군가와 싸우더라도 다음날 풀려버립니다. (싸우고 다음날 원래대로 돌아오는...)
그 아이를 미워해봐야 돌아오는것도 없고, 그애는 저빼곤 다른애들한테는 잘해주는 식이여서 사회에 나가서 잘할 거 같기도 하고.
자신보다 아래라 생각되는 아이에겐 깔보는 경향있는거 빼곤 괜찮게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그사람이 행동한 짓은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하셨습니다. 예전부터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선생님이 더욱 좋아졌습니다.
일주일 전. 학교에서 무슨 테스트더라? 정신관련 그런 테스트를 했는데 제가 문제가 있다 이런 식으로 편지가 날라오더랍니다.
어머니가 굉장히 걱정하시며 무슨일 있니? 하고 묻는데 그거에 또 울컥해 아무것도 아니라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당신의 사랑스러운 딸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어요. 게다가 가끔을 죽고싶단 생각을해요. 그런데 그 생각이 이 끝없는 세상에서 나같은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허탈감에서 오는 거니까 아무신경안쓰셔도 되요.라고 말씀드릴수가 없었습니다.
기어코 어머니가 선생님이라 상담을 하시고싶다하셔서 제가 선생님 번호를 알려드리고 선생님과 잠깐 대화를 했습니다.
선생님에게 제가 선생님께 말한 내용을 부모님께 비밀로 하면 안되냐고 묻자 선생님이 왜? 하셨습니다.
부모님에게 걱정끼쳐드리고싶지 않다 말씀드렸더니 한참을 쳐다보십니다. 그러고 물었습니다.
"oo아. 너혼자 감추는건 좋지 않아. 만약에 부모님께서 너가 걱정이 있는데 그걸 부모님이 듣기를 원하실까 아니면 다른사람에게서 듣는걸 원하실까?"
하는데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선생님 너무 말을 잘해요. 하며 또 울었습니다.
저는 부모님께 걱정안끼쳐드리는 좋은 딸이 되고싶었던 것 뿐인데, 이것마저도 상처준다는 생각에 실컷 울자.
선생님이 oo은 맨날 내앞에서 울더라 하면서 방긋웃으셨습니다.
그날, 어머니는 선생님께 제이야기를 듣고 혼자 우셨던 모양입니다. 지금 아버지도 아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와 더욱 가까워진 느낌이 들어 좋습니다.
어머니. 당신을 생각하면 괜히 마음이 미어지기만 하네요. 못난딸이 못되기만해서 죄송해요.
아버지. 당신은 저에게 강한모습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만큼 당신 속이 타들어가는 것도 이제는 저에게 보여주셨으면 좋겠어요.
5월 8일. 편지를 썼습니다. 아직 보여드리진 않았지만 어떤 대회에 그 글을 냈고 상장을 타면 같이 보여드릴 생각입니다.
깨고 싶지 않은 꿈이 있다. 그 꿈에서 나는 항상 웃고 있진 않지만 내 감정에 한없이 솔직하다. 그 꿈 안에 ‘그’와 ‘그녀’가 있다. 눈을 감았다 뜨면 그들은 나를 보고 웃는다. 그럴때면 복받치는 감정에 괜스레 울컥해진다. ‘그’도 ‘그녀’도 아마 알지 못할 것이다. 그들을 보며 나는 작은 이야기를 만든다.
―한 아이가 있습니다. 이름이 없는 그 아이는 꿈을 키우고 사는 괴물입니다. 아이의 꿈에는 커다란 나무와 노란빛깔의 꽃 한 송이가 넓은 들판 안에 살고 있습니다. 아이는 꿈에서 잦게 휴식을 취하기도, 은은한 햇살에 따스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아주 가끔은, 그 공활한 공간이 숨이 막힐 듯 좁다고 생각했습니다. 괴물이라 놀림 받을 때 아이는 큰 나무 밑에 앉아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커다란 나무는 아이에게 있어서 굉장한 무언가였지요. 그 나무는 너무 높고 커서 아이는 올려다 보다 제풀에 지쳐 고개를 떨구곤 했습니다. 아이는 그 나무처럼 커다래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무처럼 ‘그’는 나에게 있어서 커다랗게 다가온다. 그러나 그의 나이가 늘어날수록 가슴은 미어진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그의 이마에 하나 둘 씩 선이 그어지는 것은 40의 어느 날 후 부터다. 물론 그것마저도 매력적인 ‘그’지만, 안타까운 것은 어찌할 바가 없다. 그는 내 존경의 표본이며 내 삶의 목표이다. 나는 부족한 것 없이 자라왔고 그것이 그의 노력임을 안다. 그는 그만큼 나에게 애정을 쏟는다. 그래서 그는 나의 기쁨이다. 그는 자신의 일에 행복할 줄도 감사할 줄도 알고 주위를 챙길 줄 아는 좋은 사람이다. 그를 아는 모두가 가끔 묻는다. “그는 매우 멋진 사람이야. 너도 그것을 알고 있니?”
―그러고 나서 아이는 금세 나무 밑으로 졸래졸래 들어가 앉습니다. 아이는 곧 다리를 쭉 뻗고 눕는데 그 옆에는 항상 노란 꽃이 환하게 피어있습니다. 아이는 조심스레 후- 하고 바람을 불어 꽃잎을 살랑입니다. 민들레 같은 그 꽃은 그러나 자신의 씨 하나 떨어뜨리는 일 없습니다. 아이가 만들어낸 바람이 뱅뱅 꽃을 돌다 나뭇잎 하나를 얹고 흩어집니다. 아이는 손으로 꽃을 살짝 덮고는 눈을 감아버립니다.
나의 더 커버린 손이 이제는 그녀의 손을 다 품는다. 두꺼비 같다던 그녀의 손은 작은 아기손바닥을 닮아 있다. 길었던 내손이 이제는 그녀를 닮아가는 중이다. 나는 그녀의 아픔을 알기에 ‘그녀’는 여리지만 강한 사람이다. 그녀는 표현 하는 것을 망설인다. 그러나 웃을 때면 그녀는 해를 닮아간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인 그녀는 착한 사람이다. 내가 그녀를 표현하기에 아주 부족한 것도, 어떠한 모든 말을 다해도 그녀를 드러낼 수 없는 것도 안다. 나는 그렇기에 그녀에게 항상 감사하다. 모르는 것 투성이인 나에게 그녀는 항상 희망을 불어넣어 준다. 그녀가 나를 보고 웃는다. 아, 정말 나는 행복한 사람이구나.
―아이는 커가면서 점차 꿈을 꾸는 시간이 적어지고 괴물이 아닌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아이는 새로운 현실이 무척이나 신기했기 때문에 더 이상 꿈을 꾸지 않았습니다. 몇 년 후, 아이는 더 이상 키가 크지 않았습니다. 묵직하게 마음 한 구석을 누군가 내리 누르는 듯 했지요. 아이는 길을 가다 괴물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떠올렸습니다. 오랜만에 들어간 꿈 속의 들판은 바스락거렸습니다. 풀이 가루가 되어 흩어지고 메말라버린 땅이 칙칙하게 바탕을 물들였습니다. 아이는 그런 것에 상관없이 한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곳만은 여전히 푸르렀습니다. 초록색의 나무도 노란빛의 꽃도. 하지만 아이는 더 이상 나무 밑으로 기어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아이가 나무만큼 커버린 탓이지요. 아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다시 한 번 후- 하고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항상 커보였던 그가 요새는 내 눈높이에 존재한다. 그녀는 엄지공주만큼이나 작아져 버린다. 동화 속처럼 지나가지 않는 이야기처럼 ‘그’ 와 ‘그녀’는 항상 내 곁에 그 상태로 있을거라 믿었지만 그것이 아님을 깨달은 것은 꽤나 이전의 일이다.
바람은 넓은 들판을 다시 초록빛으로 물들일 것이고 아이는 꿈속에서 점차 작아져 괴물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이야기의 끝이다. 그리고 내가 도달하는 마지막의 꿈이 있다. 나이 한 서른을 넘길 즈음, 한 명의 아이를 입양하고 직장을 다니다 문득 ‘그’와 ‘그녀’의 생각을 한다. 그날 밤, 당장 나는 그들을 찾아가 문을 두들긴다. 그들은 의아해하며 나를 반길 것이고 따뜻한 차와 과일을 내줄 것이다. 나는 거기서 울음을 터뜨리거나 함박으로 웃을게 분명하다. 그와 그녀는 나를 껴안는다. 나는 따스한 온기에 잠이 든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저는 정말 행복해요.
저의 꿈은 한 아이를 입양하고 정말 소박하고 평범하게 사는것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이렇게 긴데 읽어주실랑가 싶네요. ㅎ.ㅎ
참, 덧붙여서 저는 울랄라세션이라는 그룹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특히 임윤택씨! 그가 암이어서가 아니라 나같은 평범한사람에게도 희망을 주고 꿈을 주는
그런 사람이 굉장히 멋있게보여서입니다. 무슨일에도 노력하고
그렇게 말을 잘하는 사람은 처음이예요. 정말좋아해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