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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바이벌게임]PART 3.(DATA1~4)

왕보리 |2012.06.11 11:46
조회 3,672 |추천 3

출처 : http://web.humoruniv.com/main.html
< 웃대 : berser13 님 >

 

Data 01. Kidnapping(납치)

 

“실장님! 그럼 저희 먼저 퇴근 하겠습니다. 그럼 주말 잘 보네세요.”


“어. 그래. 들어가. 수고했어.”


인사를 마친 두 명의 여직원은 방에서 나가 복도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 실장님 너무 멋지지 않아요. 언니!”


“그걸 말이라고 하니……. 40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30대 초반 같은 외모에다가 우수에 찬 눈 빛.

키도 크시고 일단 무엇을 입어도 폼이 나잖아. 수영복 입은 몸매를 네가 봤어야 하는데. 정말

죽음이야. 몸은 20대 청년이라니깐.”


“정말이요?”


“당연하지. 우리 회사 2년마다 한번 씩 팀별로 해외여행을 가잖아. 작년에 푸켓에 갔는데 거기서

실장님 수영하는 모습보고 완전 뽕 갔잖아. 넌 올 초에 회사에 들어 왔으니 볼 기회가 없었겠지만

내년을 기대 해봐.”


“이야. 그런데 실장님 혼자라면서요?”


“어. 사모님은 돌아가셨어.”


“그래요?”


“나도 들은 이야기인데. 실장님 러브스토리도 실장님 얼굴만큼이나 화려해. 실장님은 대학교

2학년 때 결혼 했었나봐. 6년간 사귀던 사람이었는데 그게 죽은 사모님이었고 그 분은

고등학교를 바로 졸업했었나봐.”


“어머. 멋지다.”


“그런데 왜 이렇게 결혼을 서둘렀데요?”


“그게 사모님이 병에 걸려 있었나봐. 시한부 목숨이었던 거지.”


“어머. 어머.”


두 여성의 수다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도 계속되었다.


“그래서 그래서요?”


신참은 다음 이야기가 너무나 궁금했다.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야. 사모님은 1년 후에 돌아가셨데.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모습으로

말이야.”


“멋지다.”


“그 후부터 지금까지 쭉 혼자 사시는 거야. 이제는 일이랑 결혼 하신거지.”


“이야. 정말 멋지다. 실장님 같은 분이라면 내 한 몸 다 헌신해도 좋을 텐데.”


“어머. 얘도 참.”


“정말이에요. 선배. 이 여름 긴긴 밤 얼마나 혼자서 외로우시겠어요. 그 빈자리를 제가 채울 수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말이에요.”


“호호. 그럼 한 번 도전 해보지. 지금까지 수십 명의 여자가 실장님에게 도전했다가 망신을

당했으니 너도 한번 도전 해봐.”


“혹시! 그 망신당한 여자 중에 선배도 포함되는 거 아니에요?”


“뭐…뭐야. 아…아니야.”


“그런데 왜 갑자기 말을 더듬어요. 얼굴까지 새빨개지셨네요.”


고참 여자는 작년 푸켓에서 자신이 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 때 이국의 정취와 술에 취해 저지른 일이지만 말이다.

흡모하던 실장님을 꼬시겠다는 생각에 실장님 침실에 몰래 침입했었다.

나체로 침대에서 자고 있는 실장님을 덮쳤다.

그런데 실장님한테 가슴이 있었던 것이었다.

알고 보니 실장님에게 몸이 달아 있던 여자 중역이었던 총무 이사 역시 똑같은 생각으로

미리 그의 침대에 누워 있었던 것이었다.

그날 실장은 사장과 밤새 해변에서 술을 마시느라 침실에는 오지도 않았다는 것을 다음 날

알게 되었다.

그날의 해프닝은 두 여자가 서로 무덤까지 가지고 가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얘. 헛소리 하지 말고 빨리 가자. 내가 저녁 사께.”

 

***


서 실장은 창으로 두 명의 여직원이 회사 건물을 빠져 나가는 것을 쳐다보았다.

그는 다시 의자를 책상 쪽으로 돌려 앉았다.

그의 책상에 올려져 있는 파일들을 꺼내보았다.

N학생복 광고를 위해 에이전시에서 올라온 파일 등이 놓여 있었다.

학생복 광고이다 보니 전국의 중, 고등학생 및 대학 초년생 여학생 위주로 구성되어 있었다.

N학생복에 광고에 출연하게 되면 단번에 연예계의 화려한 데뷔가 되기에 대상이 무척이나

많았다.


서 실장은 이미 한명의 학생을 낙점 시켜 놓은 상태였다.

그는 그 중 한명의 파일을 꺼냈다.

사진에 속의 여학생은 너무나도 맑고 청초했다.


정유나. N예술 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 학업 성적 중.


“소연…….”


서 실장은 자신도 모르게 죽은 자신의 아내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문득 이 사진과 그녀가 겹쳐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의 눈에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남의 E외국어 학원]

 

이 학원은 90% 원어민 강사로 구성되어 2:1 강의를 기본으로 하는 학원이었다.

영어를 잘 가르치기로 소문이 난 학원이었고 거기에 비례하여 학원비 역시 비싸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하지만 학기 초에 미리 등록하지 않으면 거의 등록이 불가능 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유나야! 넌 좋겠다.”


막 수업을 마치고 나온 두 여학생이 있었다.


“왜?”


“왜긴 왜야. 너는 예쁘고 인기도 많잖아. 그리고 공부도 잘하고.”


“잘하긴….”


그녀는 그냥 명령대로 하고 있을 로봇 일뿐이었다.

탤런트를 시키겠다는 엄마의 말대로 어릴 적부터 연기 학원을 다녔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 얼굴도 고쳤다.

머리가 비면 욕먹는다고 과외도 열심히 받고 있었다.

덕분에 잡지 모델로 데뷔도 했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었다.

어머니가 말하는 정상은 말이다.


“넌 또 학원가야지? 나 먼저 가께.”


채현은 사라졌다.

오늘은 첼로 교습을 받아야 하는 날이다.

엄마가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 배우고 있는 것이었다.


[삐리리~~]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아. 네. 유나 학생이죠?”


낯선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런데요.”


“아. 여기 T교습실인데요. 오늘 학원 차가 고장이 났거든요.”


“아. 그래요?”


“네. 죄송한데 오늘만 버스타고 오세요.”


“버스요?”


전화는 끊겨버렸다.

바쁜 모양이었다.

유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엄마에게 전화를 할까 했지만 그 정도 일에 전화를 건다는 것이 자존심이 상했다.

엄마는 ‘택시 타고 가’라고 할 게 분명했다.

유나는 버스를 타고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길을 건너서 타야 하는 것 같았다.

길을 건너기 위해서 신호등으로 향했다.


“저기 학생.”


유나는 무시하고 계속 걸었다.


“저기 학생!”


다시 한번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다가왔는지 검은 중형 세단이 옆에 멈춰 있었다.

유나는 멈춰 섰다.


“저기 학생! 미안한데 길 좀 물어 보고 싶은데….”


유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열린 차창으로 운전자를 살펴보았다.

아주 단정한 용모와 깔끔하게 차려 입은 양복.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눈은 매우 선량해 보였고 말투에도 뭔가 모를 품위가 흘러 보였다.


“여기 S호텔이 어디쯤이죠? 약속이 있는데 내가 이곳 지리에 좀 서툴러서요.”


“S호텔이요?”


S호텔은 이 근방에서 제일 유명한 호텔이었다.

유나 역시 몇 번 엄마를 따라 가본 적이 있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네. 이 쪽 길을 따라 가시다가 두 번째 큰 사거리에서 좌회전해서 가시다가 다시 첫 번째

사거리에서 우회전 하시면 되요.”


그녀는 친절하게 설명했고 엄마에게 교육대로 말을 마치고 나서 살짝 미소 지어 보였다.


“두 번째 사거리에서 좌회전 그리고 다시 우회전이란 말이지. 정말 고마워요. 학생.”


남자는 꾸벅 인사를 하고 짙은 선팅이 되어 있는 차창을 닫고 차를 출발시켰다.

유나가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차가 다시 멈춰 섰다.


[위이잉!]


차장이 다시 내려가고 그 호감가게 생긴 얼굴의 남자가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그런데 학생! 우리 어디서 본 적 없나요?”


유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상하다. 잠깐만요. 학생.”


남자는 잠시 보조석에서 무엇인가를 뒤적거렸다.

유나는 그냥 갈까 망설였지만 주변에 사람도 많아서 그다지 위험할 것 같지도 않았고

물론 남자 역시 전혀 위험해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잠시 멈춰서 기다렸다.

남자의 행동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혹시 N고등학교에 다니는 이유나 학생 맞아요?”


남자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그녀는 깜짝 놀랐다.


“아 그렇게 놀라지 말아요. 유나 학생 이번 N학생복 모델 선발에 지원했죠?”


“네.”


유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물론 유나 자신이 지원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를 통해 광고 에이전시에 지원했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사진도 찍었고 말이다.

이 광고에만 뽑히면 단번에 연예계에 화려하게 진출할 수 있다고 엄마가 몇 번이나 말했던

것도 기억하고 있었다.


“역시 맞구나. 여기 프로필이 있거든요.”


남자는 에이전시에서 작성한 프로필 자료를 들고 있었다. 유나의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난 이런 사람이에요.”


남자는 명함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N광고 회사 기획 실장 서승현]


N광고는 한국에서 2번째로 큰 광고 회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회사에 기획 실장이라면 꽤나 높은 위치임에 틀림없었다.


“아. 네.”


남자의 얼굴에는 약간의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왠지 모르게 상대를 안심시키고 인정해주는 그런 미소였다.


“이건 비밀인데요. 이번 광고 모델 최종 후보 10명을 뽑았는데 거기에 유나양도 포함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얼굴이 기억이 났었나봐요.”


“아 예. 고맙습니다.”


유나는 얼떨결에 고맙다는 말이 튀어 나왔다.

실수 한건가 생각했지만 남자의 반응에 안심했다.


“고맙긴요. 제가 뽑은 것은 아니니 저에게 고마워 할 필요는 없어요. 물론 우리 팀에서 뽑긴

하지만 엄정한 평가를 통해서 뽑거든요. 그리고 아직 최종적으로 선발 된 것은 아니고요. 하지만

유나양은 참 요즘 학생답지 않게 예의 바르네요. 프로필 사진의 이미지와 딱 맞아 떨어지네요.”


“아. 네. 고맙습니다.”


유나는 이번에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까지 숙여 인사 하고 말았다.


“유나 학생! 지금 어디가나요?”


“네. 학원에….”


“무슨 학원이죠?”


“T교습실에서 첼로를 배워요.”


“아 그래요? 그럼 S호텔과 같은 방향이네요. 태워다 줄 테니 타요.”


“감사합니다만 괜찮습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타요. 왜요? 제가 나쁜 사람 같아 보이나요?”


“아…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라.”


“허허. 그럼 타요. 이렇게 호의를 거절하는 것도 좋지 않아요. 그리고 어차피 모델이 되려면

심층 면접을 해야 하는데 연습을 할 기회도 되고 좋잖아요.”


“아. 네.”


유나는 엄마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만약 N학생복 광고 모델로 뽑히게 된다면 펄쩍펄쩍 뛰면서 좋아할 것이 틀림없었다.

여기저기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면서 자랑을 해대면서 말이다.

아버지가 돌아가고 나서 엄마가 밤에 몰래 혼자 술을 마시고 우는 것을 본 적이 많았다.

자신 밖에 모르는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이렇게 말 잘 듣는 로봇이 된 그녀였다.

잘만 하면 엄마의 소원이 이루어질수도 있는 기회였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유나는 차에 올라탔다. 차에는 은은한 향이 났다.

뭔지 모르지만 좋은 느낌이었다.

남자는 차를 출발시켰다. 조금은 느릿한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훔. 그럼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예비 면접 한번 해볼까요? 일단 유나 학생은 학생복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해보세요.”


“네?”


“왜 너무 갑작스러운가요?”


“아…아니에요. 교복이라고 하면 학생들은 단순하게 규율만을 떠올리는 것 같아요. 학교에서

학생들을 통제하기 쉽게 만들기 위해서 만든 옷으로 여기는 거죠. 그래서 교복이라고 하면

지긋지긋한 물건처럼 여기게 되죠. 하지만 저는 교복이 같은 학교의 학생이라는 동질감을

부여하게 함으로서 원만한 학교생활을 가능하게 해준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학생으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도 부여시켜 주죠. 물론 학교에서도 학생들의 개성에 맞게 교복에 약간의 개성을

부여 하는 것을 인정해주면 더욱 좋겠죠. 다 똑같아 보이는 교복이라도 생각하겠지만 입는

학생들에게는 조그마한 차이도 큰 차이가 되거든요.”


남자는 약간은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만점 답안이네요. 훌륭해요.”


“아…아니에요.”


"유나양은 편모슬하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에 열심히 하는 학생이라고 하더군요. 착하고

주변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좋더군요. 남학생들에게도 인기 많죠?“


“아…아니에요.”


유나는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좌회전해야 하는데 차는 직진을 하고 있었다.


“어! 여기서 좌회전해야 하는데….”


“앗! 이런! 유나양이랑 이야기를 하다보니 신호를 놓쳐 버렸네요. 저기서 유턴 하고 다시

와야겠네요. 조그만 올라가면 유턴하는 곳이 나올겁니다. 열을 세면 말이죠.”


남자는 피식 웃으며 낮은 목소리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유나는 왠지 모르게 갑작스럽게 한기를 느꼈다.

물론 에어콘 때문에 차안은 매우 시원했다.

하지만 아까는 그렇게 친절하고 포근해 보이던 남자의 미소가 왠지 모르게 차갑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상했다.

이 지역을 몰라 S호텔의 위치를 물어보려고 멈췄던 남자가 어떻게 내가 다니는 교습소

위치가 S호텔 근처인지를 알고 있었던 것일까?


“일곱. 여덟. 아홉. 열.”


남자의 말대로 유턴을 하기 위해 차는 앞 차 뒤에 멈춰 섰다.


“이제 잠들 시간이에요.”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남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유나는 무슨 남자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의아해했다.

자신에게 하는 말인가? 아니면 혼잣말?


“몸이 무거워지고 편안한 잠에 빠져듭니다.”


그 순간이었다.


‘어 내가 왜 이러지?’


유나는 갑자기 몸이 이상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기분이었다.

갑자기 시야가 뿌옇게 변하고 있었다.


“저기요!”


“왜?”


남자는 여전히 미소 짓고 있었다. 유나는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졸려요? 유나 학생!”


덜컥!


유나는 문을 열어 보려고 했다.

하지만 고속으로 주행 중인 차의 문이 그냥 열릴 리가 없었다.


“왜 그래요? 유나 학생! 졸리면 그냥 한숨 자요.”


유나는 몸부림을 치려고 했지만 온 몸이 갑자기 납덩이처럼 무거워 지는 것을 느꼈다.

눈꺼풀을 뜨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이내 그녀의 몸은 물을 흠뻑 먹은 스펀지 마냥 시트에 축 처졌다.

유턴을 하려고 정지했던 차는 어느새 차선을 바꿔 손살같이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후후….”


남자의 차가운 웃음소리가 차 안에 가득했다.

 

 

 


Data 02. Mission Change(미션 변경)


[2010년 7월 24일 토요일 00시03분 강남역]


“현재 시각 0시 3분입니다. 미션 완료 시간이 3분이 지났지만 조성환 고객님은 미션을 완료

하지 못했습니다. 이미 톱날은 작동을 시작했습니다.”


“제기랄!”


나는 큰 소리로 윽박질렀다.

여전히 나는 도망치고 있었고 숨이 차 심장이 고통스러웠다.


“기계는 3분전에 작동 했고 정확히 117분 후면 목 피부에 닿게 됩니다.”


화면 속에 지우의 모습이 떠오르자 심장의 고통은 극에 달했다.

심장이 끊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몇 초간 핸드폰에 대고 욕을 내뱉었다.


“제기랄! 네 년이 말한 대로 그곳에 머리를 넣어 놓았는데 왜?”


“고객님! 여전히 진지하게 게임에 임하지 않고 계시군요.”


“이런 제기랄! 살인자로 몰리고 지우까지 그런 상황인데 내가 진지하지 않다니….”


“고객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이 실험에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어갔습니다.”


문득 튀어나온 단어였다.


‘실험.’


이 여자가 처음으로 쓴 단어였다. 이 여자 아니 이들이 나에게 시키고 있는 것은 실험인 것인가?


“첫 번째 미션을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한 사람의 머리를 지하철 2호선 강남역 2번 출구의

물품 보관소 3번에 넣어 두시면 됩니다.”


“그래 난 그 말에 그대로….”


“하지만 저희가 요구한 것은 당연히 우리가 보내준 머리가 아니라 다른 이의 머리였습니다.”


“제기랄. 그런데 왜 일찍 전화 하지 않은 거야. 조금 전 당신 나에게 실험이라고 말했지. 도대체

무슨 실험을 하는 거야! 당신들 도대체 무슨…. 지금도 나를 보고 있잖아. 계속 해서 나를 보고

있으면서….”


나는 지나가는 행인 한명을 붙잡았다.


“당신이야!”


남자는 당황해 하며 내 손을 거세게 뿌리쳤다.


“뭐야! 당신!”


그는 나에게 삿대질을 하려다가 내 뒤에 서 있는 신중이 녀석을 보더니 그냥 바쁘게 사라졌다.


“진정하세요. 조성환 고객님!”


“왜? 왜? 난 당신 말대로 진지하게 게임에 임하고 있다고, 그런데 미션이 틀렸으면 내가 머리를

그곳에 넣은 시점에서 알려 줬으면 됐을 거 아냐? 그런데 왜? 왜?”


나는 우뚝 멈춰 섰다.

길 한 복판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통화 하고 있었지만 그다지 신경 쓰는 사람도 없었다.

소리를 지르며 통화를 하는 사람은 그리 흥미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나체로 길거리를 활보하거나 사시미 칼을 휘두르며 거리를 활보해야지 어느 정도 관심이

되는 세상이었다.

모두들 바쁘게 자신의 갈 길을 가고 있었다.


“흥분하지 마시고 제 말을 들으세요. 전 어디까지나 고객님을 위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아직

2시간의 시간의 여유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제 말을 잘 듣고 그대로 하시면 첫 번째 미션은

성공할 수 있습니다.”


좀처럼 흥분은 가라앉지 않았지만 여자의 말은 나에게 깊은 어둠 속에서 비쳐오는

빛과도 같았다.

나를 어둠 속에 가둔 것도 이들이었고 나에게 빛을 비추고 있는 것도 이들이었다.


“게다가 미션을 변경시켜 드리겠습니다. 아주 좋은 조건입니다. 아무 말씀 없으신 걸 보면 조건이

마음에 드신 모양이군요.”


다시 머리가 바쁘게 돌아갔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뭘 하면 됩니까?”


“네. 그럼 이제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지정된 사람을 한명 죽이면 됩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시간은 지금도 계속 흐르고 있습니다.”


놀랄 여유조차 없었다. 지우를 생각하면 심장이 끊어질 것 같았다.


“누구입니까?”


“이제야 하고 싶은 마음이 드신 모양이군요. 고객님!”


“마음에 들고 말고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미 다 계획된 것 아닙니까? 내가 이렇게 행동하게끔

유도 한거 아닙니까? 그리고 그 형사도 일부러 보낸 거겠죠?”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은 고객님 자유입니다.”


“누구를 죽이면 됩니까?”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옆에서 신중이 녀석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 조금 진지해 지셨군요. 일단 택시를 타십시오. 그리고 제가 말하는 장소로 이동하십시오.”


나와 신중이는 택시를 집어탔다. 시간은 초조하게 흐르고 있었다.

 

***

 

적막한 공간.

멀리서 산새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이 소리는 가까운 곳에 산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서울에서 불과 30분만 차를 타고 오게 되면 도착 할 수 있는 별장.

이 별장을 이용하는 사람은 오직 서 실장 본인뿐이었다.

물론 이 별장을 알고 있는 사람도 서 실장 본인뿐이었다.

명의는 죽은 아내의 먼 친척 분 것으로 되어 있었다.

물론 그 분을 만난 적은 15년도 넘었다.


이곳은 그가 여름휴가를 즐기는 공간이었다.

물론 이 사실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으음~”


유나는 무거운 눈꺼풀을 떴다.

눈을 뜨자 분홍빛 천정이 흐릿하게 보였다.

은은한 향이 코를 스쳐 지나갔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몸을 움직이려 보려고 했지만 마치 팔 다리가 없는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꿈속인가?’


꿈처럼 몽롱했다.


“이제 일어난 거야. 당신!”


선명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누구세요?”


꿈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누구긴 나야!”


유나는 이제야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아차렸다.

뿌옇던 시야가 조금씩 환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시야에 낯선 아니 이제는 머릿속에 아주 강하게 인식 된 남자의 모습이 들어왔다.


“아…아저씨. 왜? 왜 이러세요?”


“이런 나보고 아저씨라 너무 한거 아냐? 당신!”


유나는 이 남자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욧!”


그녀는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렸다.

자신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

손과 발은 끈으로 묶여 있었다.

그 끈들은 다시 침대에 묶여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침대에 큰 대자로 누워 있었다.

발버둥을 쳐보려고 했지만 손과 발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묶여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손발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지금까지 한번도 남자에게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던 그녀였다.

참을 수 없는 수치감이 밀려들었다.

저절로 눈물이 흘러 내렸다.

수치심과 함께 두려움이 밀려왔다.


“왜 그래? 소연.”


남자는 서서히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남자는 목욕 가운 하나만 걸친 채였고 머리는 방금 샤워라도 한 듯 촉촉이 젖어 있었다.


“당신 왜 울고 그래? 무서운 꿈이라도 꾼 거야?”


유나는 남자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가온 남자는 자신의 옆에 걸터앉았다.

그러더니 손을 자신에 뻗어왔다.

희고 창백한 손의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손가락이 자신의 어깨에 닿았다.

마치 얼음 조각이 닿는 것처럼 차갑게 느껴졌다.

온 몸에 소름이 돋는 느낌이었다.


“왜 놀라고 그래? 당신!”


“왜 이러세요! 전 당신을 몰라요. 왜 저에게 당신이라고 그러는 거예요!”


유나는 용기를 내어 소리쳤다.

큰 소리를 치고 싶었지만 모기만한 목소리가 정도 밖에 나오지를 않았다.


“이런 왜 이러는 거야. 소연아. 화난거야?”


유나는 소연이 누구인지 생각했다.

자신을 당신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것으로 보아 소연이라는 여자가 이 남자의 애인이나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왜 이 남자가 자신을 그렇게 부르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저씨! 왜 이러세요? 전 소연이가 아녜요. 전 유나예요. 채유나!”


“무슨 소리야. 소연아. 넌 소연이야. 유소연”


“아저씨 제발 절 놓아주세요. 제발요.”


“오늘 따라 우리 소연이가 앙탈이 심하네. 많이 삐졌나 보구나.”


“아니에요. 전 소연이가 아니라고요. 아저씨 절 놓아주세요. 제발요. 돈이 필요한건가요? 엄마가

얼마든지 줄 거예요. 그러니 제발 놓아주세요.”


남자의 얼굴은 점점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차갑고 날카로운 눈이 그녀의 입술에 고정되었다.

그녀는 여태껏 남자와 입술을 맞춰 본 적이 없었다.

남자의 얼굴이 점점 자신에게 다가왔다.


유나는 무의식적으로 눈을 꽉 감았다.

눈을 꽉 감는다고 이 상황에서 도망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남자의 입술이 자신의 입술에 포개지고 있었다.


“흑흑! 제발!”


유나의 눈에서는 한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남자는 포개었던 입술을 때어냈다.


“어이구! 오늘 왜 이러지! 우리 울보 때문에 오빠가 또 주문을 외워야겠네. 언제나처럼….”


잠시 이 둘만의 공간에 침묵이 흘렀다.


쓱!


남자는 귀를 덮고 있는 유나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고 귀에 가까이 입을 가져갔다.

남자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남자의 차가운 숨결이 귓불을 스쳤다.

그리고 그 숨결이 귓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마치 가는 뱀이 귓속을 미끄러져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유나는 이를 악물었다.


“이제부터 열을 세면 평소처럼 착하고 말 잘 듣는 소연이가 되는 거야! 알았지.”


남자는 이렇게 귀에 대고 속삭였다.


“하나, 둘….”


남자는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유나는 문득 이 남자의 차에서 일을 떠올렸다.

그 때도 이 남자가 이렇게 숫자를 센 후에 갑자기 잠이 몰려 왔다.


“다섯, 여섯…….”


갑자기 남자의 숫자 세는 속도가 빨라졌다.

남자는 정확하게 유나의 심장 박동에 맞추어 숫자를 세고 있었다.


“아홉. 열.”


다시 공간은 침묵에 휩싸였다.

어디선가 새 울음소리가 잠시 들려왔다.


“이제 그쳤구나.”


어느새 유나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멈춰 있었다.


“소연아?”


남자는 16년 전에 죽은 자신의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마치 자신의 죽은 아내가 앞에라도 있는 듯 말이다.


“네.”


유나의 입에서 나온 대답이었다.


“옳지. 이제 착한 소연으로 돌아왔구나.”


남자는 입고 있던 목욕가운을 풀었다.

벗겨진 가운과 함께 수영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가 들어났다.


“이제 시간이 된 거야. 우리 둘 만의 시간이.”


멀리서 산새 소리만이 고즈넉이 들려오고 있었다.

 

 

 


Data 03. The Murders in the Underground(지하실에서의 살인) 1.


[2010년 7월 24일 토요일 0시 48분 경기도 하남]


우리는 택시에서 내렸다.

서울을 빠져나와 30분 쯤 달렸다.

산이 보였고 그 앞에 작은 강이 흐르고 있었다.

드문드문 집들이 보였다.

강어귀에 별장 같아 보이는 집들도 보였다.


“왜 여기 까지 온 거지?”


신중이가 물었다.

하지만 나도 알 수 없었다.

핸드폰 확인 바라보았다.


[0:48]


시간은 여전히 막힘없이 흐르고 있었다.


[삐리리~~]


핸드폰이 울렸다. 나는 재빠르게 핸드폰을 받았다.


“여보세요?”


“지정한 위치에 도착 하셨군요. 고객님.”


여자의 말투는 느긋했다. 내 마음과는 반대였다.


“바로 앞에 보이는 다리를 건너 길을 따라 800여 미터 올라가면 집이 하나 있습니다.”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신중이 녀석 역시 아무 말 없이 나와 함께 뛰기 시작했다.


“그 집에 가면 목표물이 있습니다.”


“목표물?”


“네. 그곳에 있는 남자를 죽이면 첫 번째 미션은 완수하게 됩니다. 참고로 부연 설명을 하자면

고객님의 목표인 남자의 이름은 서승현. 나이 39세. N기획이라는 광고 회사의 기획 실장을 맡고

 있습니다. 내년에 이사 승진이 확실시 되는 촉망받는 남자입니다. 16년 전에 결혼한 지 9개월

만에 부인을 잃고 지금까지 혼자 살고 있습니다.”


“듣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정말로 듣고 싶지 않았다.

지금부터 내가 죽여야 할 남자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그 따위 것 필요 없었다.

지우를 살리기 위해서 나는 그냥 할 일을 할 뿐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 남자가 무엇을 하고 어떤 생활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게 되면 더욱 힘들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남자를 죽이는 게 힘들어 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고객님! 듣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았다.

택시를 타고 오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이들은 나에게 살인 누명을 씌웠다.

한번 본적도 없는 남자를 죽인 것으로.

하지만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나를 경찰 포위망에서 탈출 시키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제시한 미션. 나는 혼동했다.

그들이 나에게 준 머리를 넣어 놓으면 되는 것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그들이 제시한 제한 시간이 지나서야 그들은 나의 판단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을

나에게 알렸다.

그리고 곧바로 제시한 변경된 미션.

아마도 이들은 처음부터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 처음부터 이렇게 하려고 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그들은 나를 관찰하면서 즐기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 게임이 너무 쉽게 끝이 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우가 살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이들의 말대로 따라하면 말이다.


“지금까지 설명은 이 남자의 밝은 면입니다. 하지만 이 남자에 대해 그 누구도 모르는 점이

있습니다.”


나는 계속해서 뛰면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

달이 꽤 밝았지만 숲 사이에 난 길이었고 비포장 도로였기에 조심해서 달려가야 했다.


“이 남자의 어두운 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남자는 연쇄 살인마입니다.”


“연쇄 살인마?”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왔다. 옆에 있던 신중이 녀석도 의아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네. 그는 지금까지 모두 15명의 여성을 살해 했습니다.”


“15명?”


“뭐라고 하는데?”


신중이 녀석은 궁금한 듯 물었다.


“네. 그 남자는 17세에서 19세 사이의 여성 15명을 죽였습니다. 대부분 여고생이죠.”


“그런?”


이 말을 믿어야 할까? 나 역시 하루아침에 살인자를 만들지 않았는가?


“이 남자는 그녀의 부인이 죽은 후 매년 그녀의 부인 죽은 기일이 되면 여성 한명씩을 살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 기일이죠.”


나는 잠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 여자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머리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 그만 해 주십시오.”


“네?”


“그가 누구든 저는 상관없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그가 착한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말입니다.

그냥 죽이면 되는 거 아닙니까? 당신 말대로.”


“아 네. 고객님! 그렇군요. 지금 현재 시각 00:53분입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톱날은 지우씨에게

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67분후면 아시겠죠?”


“알겠습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분명히 첫 번째 미션을 완수 할 겁니다. 두 번째 미션 역시 준비되어 있겠죠.

당신들의 명령대로 그대로 따를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 미션까지 말입니다. 당신들도 내가

미션을 완수하리라고 생각하고 있겠죠?”


“네. 고객님 물론입니다. 두 번째, 그리고 마지막 미션까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고객님이

모두 완수하리라 믿습니다.”


진실일까? 거짓말일까? 물론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진실이라고 믿고 싶었다.


“할 이야기가 더 있는데 그만 해도 괜찮겠습니까?”


여자가 물었다.


“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눈앞에 집 한 채가 보였다.

어두웠지만 집안에 불이 켜 있는 것은 확실했다.

희미하게 불빛이 발하고 있었다.


“네. 그럼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뚝!]


통화가 끝난 것과 동시에 나와 신중이는 멈춰 섰다.


“이집이야!”


우리는 집으로 다가갔다.

2층집이었다.

집이라기보다는 별장이었다.

아마도 집 반대편으로는 아까 본 강이 내려다보일 것 같았다.

철제 대문 앞에 세워져 있는 검정 중현 세단으로 다가갔다.

나는 본네트에 손을 올려 보았다.

아주 미세한 열이 있었다.

이 차가 이 집에 도착한지 꽤 된 모양이었다.


“들어가자!”


“잠깐!”


신중이가 우뚝 멈춰 섰다.


“왜?”


“왜긴 왜야?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지 설명 좀 해봐."


택시를 타고 오는 동안은 운전기사 때문에 아무런 설명도 할 수 없었다.

물론 택시에 내려서 지금까지는 열심히 뛰면서 통화하느라 이 녀석에게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짧게 녀석에게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연쇄 살인마일까?”


신중이가 물었다.


“모르겠어. 그리고 상관없는 일이야. 그가 누구이던…. 게다가 시간도 없어.”


나는 이렇게 내뱉었다.

신중이게 한말이라기보다 내 자신에게 다짐하는 말이었다.

우리는 철 대문으로 향했다.


하지만 문은 닫혀 있었다.


“이런 문이 잠겨 있는데….”


벌써 문제가 생겼다.


“담을 넘어야겠다.”


신중이가 이렇게 말하고는 담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담의 높이는 신중이 키 정도였다.

하지만 위에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제기랄”


“잠깐!”


신중이는 손을 뻗더니 철조망을 치기 위해 담 위에 몇 미터 간격으로 박아 놓은 쇠막대를

붙잡았다.


“뭐하려고?”


“뭐하긴.”


녀석은 쇠막대를 붙잡고 약간 힘을 쓰는 듯 했다. 휘어졌다.


“허~”


나는 조금 어이없는 얼굴로 녀석을 쳐다보았다.

녀석은 다시 몇 미터 떨어져 박아 놓은 쇠막대 쪽으로 가더니 다시 힘을 썼다.

역시 휘어졌다.


“넌 문에서 기다려 내가 문 열어 주면 들어와.”


녀석은 이렇게 말하고는 철조망을 휘어 눕혀 놓은 담을 훌쩍 넘어 사라졌다.

나는 녀석이 말한 대로 철 대문으로 향했다.


[딸칵!]


문이 열리는 소리가 적막을 뚫고 퍼져나갔다.

크지 않은 소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이 너무 고요했기에 그 소리는 매우 크게 들려 왔다.

조심스럽게 열린 문 사이로 녀석의 얼굴이 보였다.


“들었을까?”


“모르겠어.”


나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정원은 잘 꾸며져 있었다.

정원수와 정원석으로 꾸며진 정원 가운데로 큰 돌과 자갈로 만들어진 길이 있었고 그 길의

끝에 집이 있었다.

불빛이 세어 나오고 있는 곳은 집의 1층이었다.


“어떻게 할 거야?”


“일단 조용히 들어가자.”


우리는 현관문으로 향했다.


[번쩍]


가까이 다가가자 현관등이 들어왔다.

센서로 작동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하마터면 깜짝 놀라 소리를 낼 뻔 했다.

신중이 녀석은 둔해서인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왜 그래?”


“아무 것도 아니야.”


현관문은 잠겨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했지만 잠겨 있지 않았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집안으로 들어갔다.

현관문에는 신발 두 켤레가 놓여져 있었다.

하나는 평범한 여자 신발이었다.

학생신발 같아 보였다.

다른 하나는 남자 구두였다.

신발 사이즈는 쾌 커보였고 무척이나 고급 같아 보였다.

아마도 나의 목표는 이 신발의 주인 일 것 같았다.

그리고 신발이 그대로 안에 있는 것을 보면 이 남자는 아직 이 안에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분명히 여자 신발이었다.

굽은 그리 높지 않았고 리본으로 악센트를 주고 있는 상당히 귀여워 보이는 구두였다.

남자는 17-19세의 여학생들을 죽인 살인마라는 여자의 말이 떠올랐다.


‘사실 인가? 그렇다면 이 안에 여학생도 있는 것일까?’


우리는 그대로 거실로 올라섰다. 꽤 잘 꾸며 놓았다.

불이 켜 있는 방은 한 곳이었다.

안방처럼 보였다.

조금 열린 문틈으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사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벽에 있는 커다란 벽시계의 시침 소리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지나 불이 켜 있는 방으로 다가갔다.


방에 다가갈수록 머리가 복잡해졌다.


‘어떻게 생긴 남자일까? 정말로 살인자일까?’


이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따로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 남자를 죽여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나는 문을 슬며시 열었다.

문은 소리 없이 열렸다.

문틈이 점점 벌어지며 안이 내 시야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잘 꾸며져 있었다.

마치 신혼 방 같았다.

안락하고 따스한 분위기의 방이었다.

커다란 침대가 방 가운데를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앞에는 원형 유리 탁자가 놓여져 있었다.

탁자에는 와인병과 와인 잔 두 잔이 놓여져 있었다.

한 잔은 비워져 있었고 다른 한 잔은 와인이 담겨져 있었다.

탁자 앞 의자에는 여학생 교복으로 보이는 옷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교복 위에는 여자 속옷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탁자로 다가갔다.


와인 병의 와인이 담겨져 있는 부분에 손을 가져갔다.

아직 차가운 느낌이 있었다.

나는 교복 위에 여학생 속옷 중에 아래에 입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을 집어 들었다.


[킁]


나도 모르게 그것을 코에 가져가 냄새를 맡았다.

물론 냄새가 났다.

누군가 사용했던 물건임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이 곳에는 여자의 말대로 내가 죽여야 할 남자와 여학생도 있다는 뜻이었다.


“뭐해?”


신중이 녀석이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내 손에 들려 있는 물건이 여자 팬티이고 나는 그것의 냄새를 맡고 있는 중이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너 언제부터 변태가 되었어? 하긴 이상한 거를 좀 봤어야지.”


녀석은 혐오스러운 물건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나는 손에 들려 있는 물건을 다시 원상복귀 시켰다.


“그…그냥. 여기 누가 있나 확인 할 겸.”


“그…그래? 침대만 봐도 딱 알 수 있을 거 같은데.”


아주 잘 정된 방안 물건과는 달리 침대 시트와 이불은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았다.

젖은 시트는 방금 전 이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말해주고 있는 듯 했다.


우리는 방에서 나왔다.


“어떻게 하지?”


신중이가 낮은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거실의 커다란 벽시계는 1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제한 시간까지는 불과 40여분. 빨라지려는 심장박동을 컨트롤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흥분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1층을 다 뒤졌지만 사람은 없었다.


“잠깐!”


나는 부엌으로 다가갔다.

어둠에 눈이 적응해서인지 불을 켜지 않았어도 대충 다 보였다.

싱크대로 다가갔다.


[스윽!]


나는 싱크대 위에 놓여져 있는 칼꽂이에서 하나를 꺼내들었다.

길이 25센치 정도의 평범한 식칼이었다.

식칼의 표면에 잠시 나의 얼굴이 비쳐 보였다.

왠지 모르게 섬뜻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것을 들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발길을 옮겼다.

2층은 더욱 적막했다.

유리창을 통해 들어온 달빛이 늘어져 1층보다 더욱 밝았다.

창 밖으로 의자와 탁자가 놓여져 있는 테라스가 보였다.

하지만 역시 사람은 없었다.

2층은 2개의 방이 있었다.

역시 아무도 없었다.


‘제길 이미 눈치 채고 숨은 걸까?’


우리는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아무도 없는 거 아냐?”


신중이의 속삭임에 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대문에 주차 되어 있는 차와 열려져 있는 현관문.

그리고 안방 침대와 탁자 위에 와인잔 그리고 내가 냄새를 맡았던 물건을 보건데 분명

이 집에는 누군가가 있었다.

그것도 2명. 아마도 한 명은 현관에 놓여져 있는 신발의 주인인 여자일 것이고 다른 한 명은

그녀가 말한 그 남자 일 것이다.


그런데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연쇄 살인마 남자. 지금까지 매일 죽은 아내의 기일이 되면 한 명씩 여자를 죽여 15명의 여자를

죽였다는 남자.


그리고 오늘이 바로 죽은 아내의 기일.’


나를 집요하게 고객님이라고 부르는 그 여자의 말을 떠올랐다.

침대의 흔적은 분명 성행위를 마친 흔적이었다.


‘그렇다면?’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성행위를 마쳤다면 이제는 그 여자를 죽이는 것일까?

15년간 살인을 저지르고도 들키지 않았다면 무척이나 치밀한 녀석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리고 여자들의 사체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 묻었거나 아니면 조각조각 내서 처리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산에 뭍으로 나간 것일까? 근처가 산이긴 했다.

하지만 그렇게 깊지 않은 산이었다.

15년간 15명의 시체를 묻고도 들키지 않을 수 있는 것인가? 알 수 없었다.


“나가자!”


시간이 없었다. 우리는 집 밖으로 나왔다.


“무슨 소리 안 들려?”


내 물음에 신중이 녀석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고요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산새소리를 제외하고는 이 곳은 너무나도 적막했다.


“저기 지하실….”


신중이 녀석이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을 가리켰다.

나는 바쁘게 그쪽으로 향했다.

달빛이 미치지 않는 공간이라 무척이나 어두웠다.


나는 핸드폰을 열어 액정 불빛을 이용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한발 한발 내려갔다.


[번쩍]


계단을 거의 다 내려갈 무렵 역시 센서에 의해 반응한 등이 켜졌다.

이번에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지하실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잠겨 있는데.”


일단 자물쇠로 잠겨 있다는 것은 그 남자는 이 안에 없다는 것을 뜻했다.

자신이 걸어 잠그고 그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니깐 말이다.

하지만 혹시 그 여자는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열수 있어?”


내가 물었다. 신중이 녀석은 자물쇠를 손으로 움켜쥐더니 힘을 줘 비틀었다.

자물쇠를 걸기 위해 설치 한 철제 걸쇠와 나사못이 한꺼번에 떨어져 나가버렸다.

그리고 다시 아래 있는 잠겨 있는 문고리 역시 어린이 손목 비틀 듯이 몇 번 힘을 줘 비틀었다.

쇠 갈리는 소리가 나는 듯 하더니 문은 힘없이 열렸다.

약간은 이질적인 공기가 밀려 나왔다.

지하실의 습하고 뭔가 다른 느낌의 공기가 말이다.


달칵!


문 옆에 있는 전등 스위치를 눌렀다.

내부가 밝아졌다.

내부는 그다지 넓지 않았고 매우 서늘했다.

하지만 별다른 것은 없었다.

잡동사니가 있을 뿐이었다.

먼지가 뿌옇게 앉은 책, 자전거, 장독대 등등 살림들이 전부였다.

입구에는 거미줄까지 쳐져 있었다.

오랫동안 아무도 들어온 적이 없다는 뜻이었다.


“나가자!”


몇 걸음 계단을 올라가던 나는 멈춰 섰다.

뒤에서 올라오던 녀석이 나와 부딪혔다.

나는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지만 녀석이 재빠르게 붙잡았다.


“왜? 그래?”


“잠깐!”


나는 다시 지하실로 내려갔다.


“왜?”


“이상하지 않아?”


“뭐가?”


“이 지하실 이상하게 좁잖아.”


건물의 면적에 비해 이 지하실은 너무 좋았다.

우리가 이미 뒤진 1층은 매우 넓었다.

넓은 거실과 안방, 그리고 다시 방 하나, 부엌, 화장실, 다용도실 까지 40평은 훨씬 넘어 보였다.

그런데 이 지하실은 채 10평이 되어 보이지 않았다.


“엉! 그게 뭐?”


나는 반대편 벽으로 갔다.


“이상하잖아. 1층은 엄청 넓은데 지하실만 이렇게 좁은 게.”


“집 지을 때 그냥 그렇게 지은 거 아냐?”


나는 벽을 만져 보았다.

그냥 벽이었다.

두드려 보았다.

당연히 딱딱했다.

좌측에서 우측까지 모두 두드려 보아도 소리가 일정했다.

정말로 단단한 벽처럼 보였다.


“에잇!”


나는 조금 뒤로 물러났다가 벽을 몸으로 들이 받아 보았다.


“어이쿠!”


당연히 엄청난 반동으로 튕겨져 나왔다.

물론 단단한 벽이었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신중이 녀석은 불쌍하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해? 넌 너무 만화를 많이 보다 보니 아니 매일 만화를 그리다보니 너무 상상력이 좋아진 거

같아. 혹시 모르니 내가 한번 부딪혀 보까?”


“아니야 됐어. 올라가자.”


시간이 없었다. 우리는 지하실에서 다시 정원으로 나왔다. 나는 핸드폰 시간을 확인했다.


[01:29]


“제기랄! 시간이 없는데.”


나는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그렇다고 울릴 리가 없었다.

갑자기 그 여자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나를 구렁덩이로 빠트린 그 여자의 목소리가 말이다.

지금 나를 구원해줄 것은 그 여자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제기랄! 거짓말을 한건가?”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일단 나는 나가서 집 주변을 한번 살펴볼게.”


신중이는 이렇게 말하고 빠르게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적막했다.

나는 다시 집안으로 들어갔다.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두 켤레의 신발.


남자는 아직 집안 어딘가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어딜까? 나는 잠시 거실을 배회했다.

거실의 벽시계는 여전히 ‘똑딱 똑딱’소리를 내며 시간의 흐름을 알리고 있었다.

나는 불이 켜 있는 침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침실로 들러온 나는 좌측에서 우측으로 시선을 옮겼다.


TV. 대형 TV였지만 분명히 10년도 넘어 보이는 오래된 구형 모델이었다.

그 옆에 높여 있는 오디오. 그리고 커튼이 드리워져 있는 창.

그 옆으로 붙박이 장. 문은 열려 있었다.

조금 전에 내가 뒤져 본 곳이었다.

그리고 침대와 세트일 것으로 보이는 장식장과 스탠드. 그리고 침대.


나는 계속해서 시선을 옮겼다. 침대 옆 원형 유리 탁자.

그리고 그 옆은 방에 딸려 있는 작은 화장실이었다.

문은 조금 열려 있었다.

좀 전에 확인 한 장소였다.


‘엇!’


나의 시선은 다시 유리 탁자로 옮겨졌다.

이질감. 나는 탁자로 다가갔다. 없어졌다.

탁자 위에 올려져 있던 와인잔이 보이지 않았다.

심장 박동이 급격하게 빨라졌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외에 달라진 점은?


나의 시선은 화장실 앞 실내 슬리퍼에 멈추었다.

왜 저기에 슬리퍼가 놓여져 있는 걸까?

나는 집에서 실내 슬리퍼를 신고 생활하지 않는다.


‘화장실에 들어갈 때는 슬리퍼를 벗고 들어갈까?’


그럴 것 같았다.

하지만 화장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화장실로 다가갔다.

화장실은 그리 크지 않았다.

방에 딸려 있는 화장실이어서 작은 세면대와 변기가 있었다.

세면대에는 물기가 남아 있었다.

얼마 전에 사용한 듯 했다.


나는 화장실 내부를 둘러보았다.

한 면은 전신 거울로 되어 있었다.

중간쯤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열어보았다.

수납장이었다.

수납장은 썰렁했다.

젤 위 선반에 새 것 같은 수건 몇 장만 놓여져 있었다.

수납장을 닫으려는 순간 나의 눈에 띈 것이 있었다.


‘물인가?’


수납장 내부 바닥에 있는 물기였다.


‘왜?’


나는 수납장 안쪽 면을 살폈다.

밀어 보았다.

꿈쩍도 안했다.

두들겨 보았다.

재질은 나무였다.

상당히 두껍도 단단한 듯 보였다.

다시 살펴보았다.

위쪽에 손잡이가 보였다.

수납장에 안쪽에 달린 손잡이는 무엇일까?


[끼릭]


손잡이를 잡고 옆으로 밀자 움직였다.

아주 묵직했지만 분명 움직였다.

마치 미닫이문처럼.

두꺼운 나무문이 열리자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었다.

 

 

 


[서바이벌게임]PART 3. D-1 Data 03. The Murders in the Underground(지하실에서의 살인) 2


의식의 공간.

의식의 시간.

그녀를 위해 준비한 공간 그리고 장소였다.


제단 위에 올려져 있는 그녀.

죽은 그녀가 다시 돌아왔다.

고등학교 시절 그녀는 너무나 예뻤다.

너무나 순수했고 너무나 맑았다.

슬픈 영화에 금방 눈물 짖고 불쌍한 사람을 절대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아이였다.


그런데 왜?


그녀는 아팠다.

살리고 싶었다.

아이처럼 순수한 그녀를 살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그녀는 점점 병들어 갔다.

하얗고 곱던 얼굴은 검고 시들어 갔다.

찰랑거리던 검은 머리칼은 점점 빠져 나가 흉해졌다.

살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점점 병들어 갔다.


결국 그녀는 죽었다.

검고 쭈글쭈글한 얼굴로 말이다.

천사 같던 얼굴은 어디가고 머리카락 하나 없고 징그러운 늙은 마녀의 얼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다짐했다.

만약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다시 돌릴 수 있다면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그 방법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천사 같은 얼굴의 그녀의 모습을 영원히 간직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젊고 아이 같은 얼굴을 가친 채 영원한 안식에 빠지면 되는 것이다.

너무나도 행복하고 완벽한 죽음으로 말이다.


남자는 벌써 15번의 실험을 거쳤다.

완벽했다.

젊고 아이 같고 천사 같은 모습으로 죽는 그녀들은 한결 같이 미소 짖고 있었다.

행복한 미소를.


뚜벅!


남자는 한 걸음 다가갔다.

제단 위에 있는 그녀의 머리맡으로 다가갔다.

여자는 잠든 듯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돌 제단 위에 놓여져 있었다.

하얗고 청초하며 순수한 얼굴이었다.

아주 기분이 좋은 듯 미소 짖고 있었다.

마치 아이와 같았다.


남자는 고개를 숙여 여자의 귓가로 자신의 입술을 가져갔다.


“이제 잘 시간이야.”


남자는 아주 천천히 그리고 감미롭게 입을 움직였다.

잠시 멈추었던 그의 입술이 다시 움직였다.


“영원히 말이야.”


남자는 이렇게 속삭이고는 제단의 정 가운데로 몸을 움직였다.


“지금 행복해? 소연?”


물론 그녀는 소연이 아니었다.

그녀는 유나였다.

하지만 그녀의 고개는 아주 천천히 위 아래로 움직였다.

얼굴은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소연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남자의 말대로 행복해 하고 있었다.


“그럼 이제 이 행복을 영원히 이어가게 만들어 줄께.”


남자는 자신의 손을 그녀의 왼쪽 가슴으로 가져갔다.

남자는 가늘고 흰 손가락을 뻗어 여자의 하얗고 봉긋 솟은 왼쪽 가슴 위로 가져갔다.

그리고 살며시 감싸 쥐었다.

그녀의 가슴은 심장의 움직임에 따라 미세하게 위 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살짝 눌러 보았다.

부드러웠다.


“이제 내가 열을 세면 움직임을 멈추고 영원히 잠드는 거야. 하나. 둘….”


남자는 천천히 숫자를 세어 나갔다. 정확히 그녀의 심장 박동과 일치하고 있었다.


“… 아홉, 열.”


어느새 그는 열까지 다 세었다.

정적이 급속하게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그것과 동시에 여자의 가슴위에 올려놓았던 남자의 손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여자의 심장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이던 위 아래로 미세하게 움직이던 그 손이었다.

남자는 여자를 바라보며 미소 짖고 있었다.

이제 영원히 아름답고 순수한 모습을 가질 수 있는 그녀를 보고 미소 짖고 있었다.

 

***

 

나는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계단 끝에서 희미하게 뻗어 나오고 있는 불빛이 나를 인도하는 듯 했다.

내려가는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 지고 있었다.

점점 시야에 무엇인가 들어오고 있었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불빛 사이로 보이는 큰 돌.

그리고 그 위에 가지런히 놓여져 있는 나체의 여인.


나는 어느덧 계단 끝까지 내려와 있었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제단 뒤에 서 있는 남자의 창백하고 싸늘한 눈은 나를 얼어붙게 만들기 충분했다.

남자의 눈은 자신의 알이 있는 둥지를 침범한 침입자를 노려보는 뱀의 눈이었다.


나는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이 곳은 어디일까? 여자가 누워 있는 높이 1m 정도의 돌은 마치 제단 같았다.

돌로 만든 제단.

그 위에 누워 있는 여자는 마치 마취주사를 맞고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것처럼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제단 뒤에 서 있는 역시 나체의 남자.

남자의 손은 여자의 봉긋 솟은 가슴 위에 올려져 있었다.


‘저 남자인가? 그들이 말한 살인마가?’


15년간 15명의 소녀를 죽였다는 살인마.


‘저 여자는 죽은 것일까?’


하지만 그녀의 몸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는 것 같았다. 아직 죽은 것 같지는 않았다.


‘지금껏 들키지 않고 그 시체들의 시체를 어떻게 한 것일까?’


여자가 누워 있는 곳은 제단 같기도 했고 수술대 같기도 했다.


‘저 위에서 여자들을 처리 한 것일까? 저 남자는 악마라도 숭배하고 있는 것일까? 저 여자를

제물로 바치려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미친 성도착증자인가?’


여자의 왼쪽 가슴위에는 남자의 오른손이 올려져 있었다. 왼손은 보이질 않았다.


‘왼손에 칼이 들려 있는 것일까? 심장을 도려내려고 하는 순간이었을까? 그렇다면 저 여자는

이미 죽은 것인가? 아니면 살아 있는 상태로?’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 시킨 것은 날카로운 남자의 외침이었다.


“누구야!”


그의 목소리는 마치 칼날이라도 달고 있는 듯 나를 공격했다.

텅 빈 공간이어서 인지 남자의 목소리는 매우 울려댔다.

벽과 바닥 그리고 천장을 부딪친 남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모두 나에게 달려들어 찌르는 듯

한 느낌이었다.

단박에 내 전신이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같은 종이다. 인간이라는.

하지만 같은 인간은 아닌 것이다.

나와 그의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언젠가 TV 다큐멘터리 방송에서 본 유전자의 차이라는 것인가?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인간의 정보에 대한 내용이었다.

사람이 태어나서 언제 어떤 병에 걸리며 언제 죽을지 심지어는 사람의 성격까지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는 내용이었다.

바람둥이는 바람둥이 유전자가 있다는 예까지 들어 설명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

갑자기 왜 이런 생각이 든 것일까?


그와 나의 차이 때문이었다.

힘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태어 날부터 정해졌던 것일까?

유전자에 새겨진 능력의 차이 때문인가?


움직여야 했다. 온 몸이 후들거리고 몸이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제기랄!’


나의 유전자에 새겨진 능력이 고작 이것이란 말인가?

하지만 나는 뛰어 넘어야 했다.

만약 내 자신의 유전자라면 지금 이 순간 그것을 뜯어고쳐야 했다.


“그만 두시죠!”


나는 겨우 겨우 내뱉었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미간 사이를 타고 흘러 코끝에 맺혔다가 뚝 떨어졌다.

나는 한걸음 앞으로 나갔다.

나는 잠시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나의 오른손에는 부엌에서 들고 온 식칼, 왼손에는 핸드폰이 들려 있었다.

핸드폰 외부 액정의 시간을 확인했다.


‘앞으로 10분…….’


시간이 없었다.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해온 일을 모두를. 지금까지 15명의 여자를 죽였다는

것 그리고 그 앞에 있는 소녀가 16명 째라는 사실 모두.”


남자의 얼굴 표정은 조금 전 보다 더욱 차가워진 듯 했고 그의 눈은 더욱 더 날카롭게 사나워져

있었다.

남자는 소녀의 가슴에 올려놓았던 손을 천천히 떼어냈다.


“막 심장이라도 도려내려는 중이었나 보네요. 그리고 토막토막 내는 건가요?”


“훗!”


남자의 얼굴에 냉소가 머금어졌다.


“경찰은 아닌 거 같군.”


나는 손에 들고 있는 식칼을 잠시 바라보았다.

나 역시 식칼 들고 다는 경찰은 본 적이 없는 거 같았다.


“어떻게 알아 낸 거지?”


그의 대답에 답을 하자니 너무 긴 스토리였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없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지우를 향한 톱날은 점점 그녀의 목을 향해 내려가고 있을 것이다.

이제 몇 분 후면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설명할 시간이 없어. 당신은 여기서 죽어야겠어.”


“하하하!”


남자의 웃음소리가 사방에 진동했다.

그의 웃음소리는 고막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듯 했다.

나는 그 웃음소리에 잠시 위축되었다.

남자의 웃음소리는 가진 자의 웃음소리였다.

힘이 있는 자가 없는 자에게 낼 수 있는 웃음소리였다.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신중이 녀석이었다.


“제기랄!”


큰 소리를 내질렀다. 이런 순간에도 신중이를 떠올리는 내가 한심했다.


‘신중이가 나타나 이 남자를 해치워주었으면 했던 것일까? 친구의 손을 빌려 살인을 하길 바랐던

것일까? 이 모두가 지우를 구하기 위해서인데….“


내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나는 모든 생각을 지우고 한 가지만 생각하기로 했다.

 

죽인다.


저 남자를 내 손으로.


“어떻게 알고 왔는지 모르겠군. 이 아이의 핸드폰은 서울에서 버렸으니 핸드폰 위치 추적으로

따라 왔을리는 없구. 혹시 이 아이의 남자친구?”


남자는 잠시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얼굴을 보니 남자친구라고 하기에는 너무 늙어 보이는데. 혹시 그렇다면 이 아이를 따라 다니는

스토커라도 되는 건가?”


살인마에게 순식간에 늙수구래한 스토커로 몰리게 되다니 약간 어이가 없었다.

일단 확인을 해보고 싶었다.


“서바이벌 이벤트가 뭔지 압니까?”


나의 물음에 남자의 표정은 별 반응이 없었다.


“세 가지 미션은? 지우는?”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남자는 말투에 약간의 짜증이 섞였다.

더 이상 지체하지 싫다는 듯 보였다.

나 역시 그럴 시간이 없었다.


“당신이 몇 명을 죽였는지 어떻게 죽였는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여기서 죽어야 합니다. 내 손에.”


나는 앞으로 한걸음 다가갔다.

나는 오른손에 끝이 바깥쪽으로 들려 있는 칼을 안쪽으로 돌려 잡았다.

엉성하게 달려가 찌르는 것보다는 들러붙어 목을 향해 꽂아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죽인다는 상상 따위는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올랐을까? 본능일까?


“흠. 나를 죽이겠다고? 복수 때문인가?”


“복수 때문이 아니야! 지우를 위해서야!”


나는 소리를 내지르며 한 걸음 다시 앞으로 나갔다.


“지우? 처음으로 내가 영원한 아름다움을 준 소녀의 이름은 정현이었지. 17세였고 청순한 긴

머리 소녀였어. 모두의 이름을 기억하는데 지우라는 여자는 없어.”


“그래서 내가 이야기 했잖아. 나는 당신이 몇 명울 죽여서 토막 냈는지 땅에 묻었는지 관심없다고.”


다시 한 걸음.

남자는 돌 제단 뒤편에 서 있었고 나와의 거리는 불과 5m 정도였다.

나는 이를 악 다물었다.

단번에 달려가 남자의 달려들어 목덜미에 손에 들고 있는 나이프를 꽂는 일만 생각했다.

심장 박동이 급격하게 치솟았다.

뇌 속은 남자의 목에 칼을 꽂아 넣는 것을 그리고 있지만 심장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 같았다.

한 걸음 내딛는 동작이 매우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웃기지마!”


남자가 소리를 내지른 것과 동시에 사방이 번쩍거렸다.

나도 모르게 제자리에 멈추고 눈을 질끈 감았다.

촛불로 밝혀져 있던 어두운 공간에 갑자기 엄청나게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며 나의 눈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나는 억지로 눈을 떴다.

살인마는 앞에 있었고 나는 그를 죽여야 했다.

일순간 내가 죽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남자는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은 채였다.


“으헉~”


내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어둡던 공간 숨어 있다가 모습을 들어 낸 것들이 나를 일제히 덮쳐 오고 있었다.

사방에서 커다란 창이 날아와 몸을 난도질 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나의 몸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하지만 나의 뇌는 번개로 맞은 듯 상당한 충격에 휩싸였다.


“이…이건.”


양 옆으로 쭉 늘어선 십여 명의 여성들.

모두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고 있었고 마치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살폈다.

이 양 옆은 벽은 유리로 된 수조였다.

그리고 그 건너편 액체 속에는 여자들이 둥둥 떠 있었다.


“시체를 토막 냈느니 땅에 묻었느니 그런 어처구니없는 말은 이제 그만 지껄이겠지. 저들의

모습을 보라고 모두 아름다운 모습으로 영원히 지낼 수 있어. 축복 속에서….”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남자는 자신이 죽인 15명의 소녀들을 모두 이런 식으로 보관하고 있었다.

아마도 수조 속의 액체는 포르말린 액체일 것 같았다.

생물실의 개구리처럼 자신의 죽인 소녀들을 이렇게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들 미소 짖고 있는 저 모습을 보라구…”


나는 소녀들의 얼굴을 살폈다.

하나 같이 모두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 앞에 있는 남자는 완전히 미친 남자였다.

나는 남자를 노려보았다.

남자 역시 차가운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미소 짖고 있었다.

문득 남자가 악마처럼 보였다.


“어찌되었든 당신은 지금 죽어야 해.”


나는 다리에 힘을 주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조금 전과는 다르게 심장에서 급격하게 뿜어내는 피가 내 온 몸에 힘을 불어 넣어주는 것 같았다.


“과연 나를 죽일 수 있을까?”


남자는 비웃기라도 하는 듯 이렇게 내뱉었다.


“너는 내가 열을 세면 내 모습조차 보지 못하게 될 텐데.”


나는 남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 할 수 없었다.


‘이대로 도망치려는 건가?’


하지만 이 공간은 꽉 막혀 있었다.

남자의 뒤편은 벽이었다.

그리고 양 옆은 포르말린 수조였다.

결국 남자가 이곳에서 도망치려면 내 뒤편에 있는 계단을 통해서였다.

하지만 나는 절대 저 남자를 놓아줄 수 없었다.

이제 시간은 5분여도 남지 않았다.


“내가 열을 세면 너는 나를 보지 못한다. 하나. 둘…”


남자는 다시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여댔다.

남자는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나를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서인 것이 분명했다.

저 악마의 페이스에 말려들면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남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와 그의 거리는 불과 2m였지만 나와 그 사이에는 제단이 있었다.

나는 제단을 돌아서 남자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제단 뒤편은 보이지 않았다.

남자가 손에 무엇을 숨겨 놓고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주저할 여유가 나에게는 없었다.


“아홉, 열.”


그 순간이었다. 내 눈 앞에서 남자가 사라져 버린 것은.


나와 그의 거리는 불과 1m 정도였다.

나는 녀석에게 달려들어 녀석의 목에 손에 들고 있는 칼을 꽂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녀석이 중얼거렸던 말을 떠올렸다.

결국 그가 말한 것처럼 그는 내 눈 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제기랄!”


칼을 남자가 서 있던 허공에 대 휘둘렀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하하하!” 남자의 웃음소리가 허공에 메아리쳤다.


“제기랄! 어디에 있는 거야? 나와!”


나는 고함을 질렀다. 나의 목소리는 이 지하 공간 사방을 울려대다가 사라졌다.


“하하하! 조금 전의 큰 소리는 어디에 가고 그렇게 우는 소리를 하는 거야. 하하하.”


“제기랄!”


나는 다시 무의미하게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던 곳으로 달려가 칼을 휘둘렀다.


“하하하. 이 곳은 나만의 장소야. 이 장소에 들어온 것은 매우 큰 죄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지.

너의 그 하찮은 목숨으로 말이야.”


“제기랄! 이 악마!”


나는 발악을 하며 칼을 휘둘러댔다.

남자는 분명히 이 곳에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나를 조롱하는 그의 목소리가 귀에 울려대고 있었다.


“내가 열을 세면 너는 오른손에 든 칼로 너의 심장을 찌르게 될 것이다.”


남자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나. 둘.”


남자가 다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도 이랬다.

내 눈 앞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말을 한 후 숫자를 세었다.

그리고 열을 센 순간 내 눈 앞에서 사라진 것이다.

거짓말처럼.


그런 그가 또 수를 세기 시작했다.


‘오른손에 든 칼로 너의 심장을 찌르게 될 것이다.’


남자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다섯, 여섯.”


남자의 카운트는 빠르게 계속 되었다.


‘설마?’


“아홉. 열.”


그의 카운트는 끝났다.

발악을 하던 나는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나의 몸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나의 몸의 일부분이 통제가 되지를 않았다.

그 부분은 남자가 말하던 나의 오른팔이었다.

나의 오른팔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점점 위로 올라오더니 어깨선까지 올라왔다.

그리고 안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굽어지기 시작했다.


“뭐…뭐야?”


나는 소리쳤다. 나의 입은 잘 움직이고 있었다.


“하하하…….”


남자의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도 나의 귀를 통해 잘 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오른팔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칼날은 점점 나의 가슴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욕을 해대면서 왼팔로 오른팔을 붙잡아 밀쳐 내려했다.


“으윽!”


하지만 나의 왼팔은 오른팔의 힘을 막지 못했다.

내 말을 듣지 않는 오른팔은 나의 왼팔의 힘을 압도 하고 있었다.

칼날은 점점 나의 가슴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하하하! 그대로 심장을 후벼 파는 거야!”


남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여전히 그의 목소리는 허공에서 맴돌고 있었다.


“제기랄! 도대체 당신 뭐야!”


내가 소리를 지르는 순간에도 나의 오른손에 들린 칼은 내 가슴 쪽으로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하하하! 벌레만도 못한 녀석이 나를 죽이겠다고!‘


“제기랄! 이런 말도 안 되는….”


칼날은 어느새 나의 왼쪽 가슴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으윽!”


칼날은 얇은 티셔츠를 뚫고 가슴에 닿았다.

차가운 금속이 살갗에 닿는 섬뜻한 느낌이 신경을 타고 뇌로 전달되었다.

피가 살갗에서 배어나와 티셔츠를 적셨다.


“흑흑!”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아픔 때문이 아니었다.

무력함 때문이었다.

나란 존재는 언제나 이렇게 무력했다.


‘내가 이대로 죽는다면 지우는…지우는 어떻게 된단 말인가? 지우도 죽는 것인가?

그렇게 끔찍하게 죽는단 말인가?’


지우를 위해서라면 어떤 것이라도 할 수 있다는 내 다짐은 그냥 허풍일 뿐이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하고 힘없는 녀석의 공상이었을 뿐이었다.


‘만약 내가 아니었다면…. 지우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아니었다면…. 지우는 살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힘없고 한심한 인간이 아니었다면……. 그랬다면 지우…지우는’


지우의 얼굴을 떠올리려 했다.

하지만 그려지지가 않았다.

온통 머릿속은 그녀의 얼굴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죽는 순간에 그녀를 얼굴조차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나는 한심했다.


“제기랄! 지우야!”


나는 지우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


콰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손에 들려 있던 칼이 바닥에 떨어졌다. 말

을 듣지 않았던 오른팔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성환아!”


신중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신중아.”


굉음의 정체는 신중이었다.

신중이 녀석은 돌 제단 뒤편 벽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녀석은 벽돌로 쌓은 벽을 말 그래도 몸으로 뚫고 들어온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주변을 살펴 남자를 찾았다.


“윽!”


그 살인마는 제단 근처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머리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신중이 녀석이 벽을 무너뜨릴 때 근처에 서 있다가 벽돌 파면에 머리를 다친 모양이었다.


“네 목소리가 들리는데 들어가는 문을 알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녀석은 내부를 한번 둘러보았다.

제단 위에 있는 나체의 여자를 보고 흠칫 놀라더니 녀석은 수조처럼 된 벽 뒤편에 있는

여자들의 시체들을 보고는 얼굴을 있는 힘껏 구기고는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여긴 뭐야? 저 여자는? 그리고 저 수조에 있는 것들은 뭐야?”


녀석은 한꺼번에 많은 것을 물어봤지만 나는 그 중 하나도 대답해줄 시간이 없었다.


“으윽! 이런 제기랄!”


쓰러졌던 남자는 머리를 감싸 쥔 채 일어나고 있었다.

왜 갑자기 남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왜 갑자기 내 팔이 내말을 듣지 않았을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어떻게 벽을 뚫고…….”


남자는 무너진 벽 사이로 고개만 내밀고 있는 신중이 녀석을 보고 중얼거렸다.


“저 남자가 그 살인마야. 이 곳은 이 남자가 지금까지 죽인 소녀들을 장식품처럼 모아 놓은

곳이고….”


내가 외쳤다.


“이렇게 된 바에야 두 녀석 모두 죽여주지. 내가 열을 세면 너희 둘은 죽을 때까지 싸우게 될

것이다.”


조금 전에도 그랬다.

남자는 주문을 외듯 저렇게 중얼거리고 숫자를 세었었다.

그 후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지고 남자의 말대로 내 오른팔은 내 말을 듣지 않고 내 심장을

노렸었다.


“하나. 둘.”


“죽여 버리겠어!”


나는 잇몸에서 피가 나올 정도로 이를 악 다물었다.

두 번 다시 조금 전처럼 울고 싶지 않았다.

나의 무력함과 한심해서 치가 떨려 울고 싶지 않았다.

다시 벌레가 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다시 지우를 보고 싶었다.

조금 전에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던 지우의 얼굴을 다시 보고 싶었다.


나는 숫자를 세고 있는 남자에게 달려들어 그를 밀쳐 냈다.

남자는 휘청거리며 유리로 된 수조 벽에 몸을 부딪쳤다.

조금 전 받은 충격이 아직도 남자에게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남자는 몸을 바로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도 여전히 입을 중얼거리며 숫자를 세고 있었다.


“여덟, 아…아홉.”


“죽어.”


나는 남자의 배에 칼을 밀어 넣었다.

한번도 느껴본 적 없는 기괴한 느낌이 칼을 쥐고 있는 팔을 통해 전달되었다.


[끼익]


남자의 의 배를 뚫은 칼날의 끝은 등 뒤의 유리까지 닿아 유리를 긁는 소리를 냈다.


“컥!”


남자는 두 팔을 뻗어 나를 움켜쥐려 하며 신음소리를 내질렀다.

나는 남자의 배에서 칼을 빼내어 다시 찔러 넣었다.


딱!


이번에는 칼날이 중간에 멈추었다.

몸속에 있는 딱딱한 물체에 닿은 모양이었다.

뼈인 것 같았다.

딱딱한 물체가 갈리는 느낌은 온 몸에 소름을 돋게 만드는 듯 했다.


“퀙!”


남자의 목에서 멱을 따는 돼지가 내지르는 것 같은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울컥!


한 움큼 피! 남자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와 내 얼굴을 적셨다.

남자의 피가 잠시 각막을 뒤덮었다.

세상이 시뻘겋게 보였다.

머릿속에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나의 팔은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나의 입은 계속해서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고 내 팔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으아악!”


푹! 푹! 푹!


“그만 둬!”


신중이 녀석이 등 뒤에서 나를 감싸 안아 뒤로 끌었다.

나는 그녀석의 팔을 뿌리치고 남자에게 달려들려 했지만 녀석의 굵은 팔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이제 됐어. 이젠 됐다구.”


녀석은 칼이 들린 내 오른손의 손가락을 억지로 펴게 만들었다.


땡그랑!


차가운 바닥에 칼이 떨어졌다.

칼은 언제 부러졌는지 반도막이 나 있었다.

그 차가운 소리가 나의 뇌를 현실세계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온통 피범벅이 된 공간이었다.

남자는 수조 앞에 엎어져 있었고 그 근처는 온통 피투성이였다.

나는 나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내 손 역시 시뻘건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뜨거웠다.

손뿐만 아니라 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남자의 피로 젖어 있었다.


[부들부들]


바닥에 엎드려 있는 남자의 몸은 심하게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마치 소금을 끼얹어 죽기 직전에 발악하는 지렁이처럼 고통스럽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잠시 그 떨림이 격해지는 듯 하더니 조금씩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소…소연아.”


남자는 이 한마디를 내뱉고 결국에는 그 발버둥을 멈추었다.


깊은 정적이 찾아왔다.


나는 사람을 죽였다.

내 손으로 사람을 죽인 것이다.

군대에서 표적을 노려보면서 수백발의 총을 쏘아 본 나였다.

표적물에 총알이 관통할 때 저게 사람이라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몸에 맞는다면 살에 구멍이 나고 내장을 후벼 파 밖으로 그 내장을 쏟아내는 그림을 그려봤었다.

실제 내 앞에 펼쳐진 모습은 그것보다 훨씬 끔찍했다.


하지만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내 손으로 저지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그런 느낌이었다.

죄책감도 슬픔도 분노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편안했다.

조금 전까지 엄청나게 날 뛰며 피를 뿜어내던 심장도 어느 샌가 잠잠해졌다.

문득 지우를 떠올렸다.

조금 전에 그려지지 않았던 지우의 얼굴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삐리리~]


핸드폰이 울리고 있었다. 신중이 녀석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핸드폰을 집어 와 나에게 건넸다.


“받아! 어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


“여보세요!”


“지금 시각 01:59분 첫 번째 미션 완수를 축하드립니다. 고객님. 이지우씨는 무사합니다.”


여자의 목소리에 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렸기 때문이었다.


“다음 미션은 06시에 전달됩니다.”


전화는 끊겼다.

 

 

 

 

 

Data 04. Maria(마리아)

그녀의 꿈은 탤런트였다.

TV에서 보이는 그들의 모습이 부러웠다.

그들에 비해 그녀의 삶은 시궁창에 사는 쥐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그녀의 아빠는 2년 전 공사장에서 떨어진 뒤 허리를 다쳐 매일 자리에 누워 있어야만 했다.

엄마는 돈 벌러 나간다고 하고 나가서 1년째 소식이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엄마가 어떤 남자와 눈이 맞아 도망쳤다고 했다.

얼굴 반반한 년이 동네 다 더럽혔다며 엄마 욕을 하곤 했다.

이상하게도 엄마 욕을 들어도 그녀는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동생은 그녀가 7살 때 죽었다.

남동생이었는데 세상에 태어난 지 3년도 되지 않아 죽고 말았다.

눈이 맑고 귀여웠는데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병으로 죽고 말았다.

돈이 많이 드는 병이었다.

그녀의 기억에 점점 작은 집으로 이사를 다니기 시작했던 것은 그 때부터였다.

하지만 결국 동생 선일이는 죽고 말았다.


그녀의 아빠는 몸이 불편했기 때문에 거의 눕거나 앉아서 생활하셨다.

그는 평상시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지만 술을 마시면 그녀를 때렸다.

그녀가 집을 나간 마누라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하면서 때리곤 했었다.

때로는 그녀를 보고 남자를 밝히게 생겼다고 하면서 때렸다.

술 마시는 회수는 점점 늘어가더니 언젠가부터 거의 술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녀는 아빠에게 맞다 도저히 못 참을 수 없게 되면 도망쳤다.

그리고 무작정 위로 달렸다.

그녀의 동네는 남들이 말하는 달동네였다.

서울에서 가장 높은 곳이었다.

그만큼 하늘과 가까웠다.

그래서 그녀는 마을의 제일 꼭대기에서 하늘의 별을 봤다.


그녀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그날 밤. 하늘에서 반짝이는 빛을 보았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빛은 나에게 아주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다.

그녀는 깜짝 놀라 눈을 감고 몸을 웅크렸다.

아무 일도 없었다.


하지만 다음 날 그녀의 몸에는 이상한 변화가 나타났다.

갑자기 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변화는 이틀이 지나가 확실하게 나타났다.

배가 더욱 튀어 나왔다.

그녀는 겁이 났다.

뱃속에 무엇인가 들어온 것 같았다.

뭔가가 안에서 툭툭 차는 느낌도 났다.

결국 사흘 째 되는 날 아빠한테 이 사실을 들켰다.

그날도 그는 많이 취해 있었다.


그는 그녀의 배를 보더니 “화냥년” 소리를 질러대며 그녀를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맞으면서 빌었다. 그

는 더욱 심한 욕을 해대며 발로 그녀의 배를 걷어차기 시작했다.

그녀는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안 맞으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녀는 아빠가 때리다가 지쳤다고 생각하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조용해진 그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빠를 불렀지만 대답을 하지 않았다.

숨을 쉬지 않았다.

동생도 숨을 못 쉬다가 죽었다.

아빠도 똑같았다.


그녀는 무서워서 집에서 도망쳤다.

집에서 나와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집에서 나온 지 나흘 째 되던 날 격렬한 고통을 느꼈다.

온 몸이 찢어지게 아파왔다.

그녀는 길에 쓰러졌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잠시 정신을 잃고 일어나자 나는 무슨 수술대 위에 뉘어 있었다.

다리는 벌려져 묶여 있었고 푸른 가운을 입고 마스크를 쓴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녀는 몽롱한 정신에 그들이 시키는 대로 했다.

고통이 극에 달했다.

마치 신체 일부를 억지로 뜯어내는 기분이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정신을 잃을 수조차 없었다.

격렬한 고통 끝에 무엇인가가 몸에서 빠져 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한 명이 핏덩이를 꺼내들었다.


[응애! 응애!]


그것이 아이라는 것을 그녀는 그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은 후에야 알았다.

그 울음소리는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그것은 그녀의 아이였다.

그 아이의 눈은 죽은 동생과 똑같이 맑고 깨끗했다.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이 아이는 하나님이 다시 그녀에게 돌려주신 죽은 동생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아이의 이름을 죽은 동생과 같은 이름으로 지었다.


선일.


그녀는 평생 선일과 함께 할 거라고 다짐했다.

다시 옛날처럼 선일을 멀리 떠나보내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어렸다.

이제 중학교 3학년이었다.

그리고 고아였다.

그녀는 선일을 키울 수는 없다고 했다.

사람들은 그녀에게서 선일을 다시 뺏으려고 했다.

그녀는 도망쳤다.

한번 잃었던 선일을 다시 뺏길 수는 없었다.

도망 다니며 선일을 키웠다.

춥고 배고팠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이 왔다.

모두 덩치가 컸다.

그리고 검은 양복을 입고 있었다.

미국인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따라가면 선일과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녀는 허락했다.

그리고 미국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녀의 인생은 완전 바뀌었다.


“혜원씨!”


“아 죄송합니다!”


이혜원은 잠시 넋을 놓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S전자에서 새롭게 출시한 냉장고 CF촬영 중이었다.

십년이 지난 일이 갑자기 떠오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감독님! 잠깐만 쉬웠다 하죠.”


“아 네. 20분간 휴식!”


유혜원은 잠시 혼자 휴게실로 향했다.


유혜원.

그녀는 최근 가장 잘 나가는 연예인이었다.

3년 전 미국의 유명 대학을 다니던 도중 한국으로 귀국 한 그녀는 S전자 모델로 CF에

혜성처럼 데뷔했다.

그 후 영화에 출연해 성공한 후 승승장구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었다.

청순하고 깨끗하며 지적인 이미지에 많은 남성들이 그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그녀의 특이한 약력도 그의 인기에 한 몫 했다.

그녀가 고아라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미국으로 입양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곳에서 유명 대학 법학부를 다니다 한국에 왔다는 이력이 그녀의 이미지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게다가 그의 동생인 유선일 때문에도 그녀는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대한민국 뿐 아니라 전 세계 최고의 천재로 알려진 소년.

그 소년이 그녀의 동생인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 아이는 그녀의 동생이 아니라 그녀의 아들이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왜 옛일이 떠오르는 거지?”


의자에 앉은 그녀는 눈을 감았다.


미국으로 온 그녀는 철저하게 통제 속에서 생활했다.

하지만 그녀는 행복했다.

멋진 옷과 멋진 음식이 넘쳐났다.

말만 하면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선일이 역시 잘 보살펴 주었다.

가끔 그들이 선일에게 '엔젤-7‘이라고 부르는 것을 듣긴 했지만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녀는 그들의 권유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개인 교습으로 금세 영어를 배우고 다시 학교에 다닐 수가 있었다.

원래 머리가 좋았기에 성적 또한 좋았다.

그리고 꾸미기 시작하자 그녀는 남들보다 훨씬 예뻤다.

그녀가 아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 누구에도 비밀이었다.

그녀 자신이 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그렇게 시켰다.

그녀 역시 그쪽이 편했다.


그녀의 아들. 선일.


선일은 격리된 생활을 했다.

그곳에서 선일 말고도 다른 아이들도 있었다.

미 정부 관할의 큰 시설이었다.

군 시설 같기도 했다.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잘 알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그들이 선일을 빼앗을 것 같아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들은 그런 마음이 없는 듯

했다. 그들은 선일을 과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극진하게 대했다.


그곳에서 가끔 이상한 검사를 하는 일도 있었지만 대부분 자유로운 생활을 하는 듯 했다.

그리고 격리된 생활이라고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선일을 볼 수 있었다.

선일이도 자신 마음대로 외부에 출입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완전한 격리 생활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물론 절차도 복잡했고 외출 시에는 항상 그들이 따라 다녔다.

검은 양복의 남자들이.


선일은 천재였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신과 완벽하게 대화를 했다.

가끔 자신이 모르는 내용의 대화를 해서 당황하기도 했다.

그곳에 가서 선일이 공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몇 개 국어를 능숙하게 하고 이상한 기호가 나열된 문제를 풀기도 했다.

처음 본 악기를 구경만 한 것으로 능숙하게 다루기도 했다.

실제로 피아노를 전공한 학생이 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한번 본 것만으로

똑같이 쳐내는 것을 그녀도 실제로 본 적이 있었다.


선일은 성장 속도도 남들보다 훨씬 빨랐다.

그들 말로는 그는 1년에 보통 인간의 성장 속도 3년 치가 성장 한다고 했다.

5살이 되어서 그 성장이 멈추었다.

물론 몸은 완벽한 청년의 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언제나 맑은 눈으로 자신을 보며 언제나 미소 지었다.

그 아이는 천사였다.

그 아이가 온 후로 그녀의 삶은 천국으로 바뀐 것이었다.


3년 전 선일은 무엇인가를 한다며 반년 동안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

그들이 시킨 것 같지는 않았다.

선일이 자신의 의지인 것 같았다.

그녀는 한창 대학에서 공부 중이었다.

그녀 자신도 바빴다.


그리고 반 년 후. 다시 선일을 만났다.

선일은 전과 똑같이 맑은 눈을 하고 있었고 자신을 향해 미소 짖고 있었다.

하지만 미묘하게 눈빛이 변해 있었다.

아주 작은 변화였지만 그녀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선일을 따라 서울로 돌아왔다.


[기이익 기이익]


가방에 넣어 두었던 핸드폰이 울렸다. 매우 기이한 벨소리였다.

이 소리는 아기 고래라 어미 고래를 찾을 때 내는 소리였다.

물론 선일이가 넣어준 벨소리였다.

당연히 선일에게 전화가 올 때만 울리는 벨소리였다.

혜원은 서둘러 핸드폰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유혜원 고객님”


“당신 누구죠?”


“당신은 서바이벌 게임 이벤트에 선택 되셨습니다.”


“네? 무슨 말이죠.”


“당신의 아들 유선일군은 납치 되었습니다.”


혜원은 깜짝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머릿속에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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