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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호][효사자 베이비] 나는 진정 강한 여자였다 : 18시간 진통과 자연분만

Hyo |2012.07.31 07:21
조회 1,963 |추천 0


임신과 출산이라는 것은
효야에겐 항상 두렵고
하고 싶지도 겪고 싶지도 않은 그런 일이었습니다.


결혼한 지 6년이 넘도록
아기 갖기를 피해왔던 것도
효사자 둘이 노는 게 더 재미있었기도 했지만
임신이라는 것이 너무 싫고 두려웠기 때문이었지요.
실망


하지만 임신을 하기로 결정을 내리고
아기를 가진 이후로는
피할 수 없다면 즐기고
아는 것이 힘이다! 라는 마음으로
임신과 출산에 대해 공부하고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임신 기간 동안 한 달에 약 5-7권의 책을 읽은 것 같아요.
소설책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임신과 출산에 관한 책을 섭렵하다시피 했지요.

책 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 유튜브 동영상, 각종 임신+출산 관련 웹 싸이트
등등등...

수많은 정보들을 흡수하다시피 공부하고 알아가기 시작했어요.


아는 것이 힘이다.


전혀 모르는 채 막연히 두려워만 했던
임신에 관한 많은 부분들을 알게 되면서
막연한 두려움들은 사라지고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출산/분만이라는 부분은
글을 아무리 읽어도
경험해 보지 않은 입장에서는
그 고통의 정도나, 어떤 느낌인지조차 상상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출산과 진통에 관해서는
각종 출산 후기 등을 많이 읽어보았는데
특히나 한국 산모들의 출산 후기들은
모조리 호러 스토리라고나 할까요.....
화남


어떻게 하면 출산에 대비하고
진통을 이겨내는가 하는 해답을 알려주는 이는 없고
그저 무시무시한 호러 스토리들만 난무하더란 말이지요.

으으으으으으
무서워
허걱


그러던 중
출산, 진통, 분만에 대한 나의 생각과 두려움을 180도 전환시켜버린 책
을 한 권 만나게 됩니다.


 

 http://www.jujusundin.com/



'쥬쥬 선딘' 이라는 물리치료사의  Birth Skills 라는 책인데요.

효야는 이 책을 읽고 출산에 대한 생각이 완젼 뒤바껴버렸답니다.



두려움이 없어지고

자신감이 생겼다고 할까요.



시드니에 살고 있었다면 꼭 그녀의 분만 수업에 참여했을텐데

일단은 책으로 출산의 고통을 이겨내는 법을 연습하는 수 밖엔 없어서 아쉬웠죠.



어떤 면에서, 무엇이

출산과 진통의 고통을 이겨내는데

크나큰 도움을 주었는지는

효야의 생생한 분만후기와 함께 이야기 해 볼까합니다.








2012년 7월 17일 새벽 1시 30분 경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고 있는데 무언가 뽁~! 하며 터지는 느낌이 나더니

물 같은게 속옷과 바지를 적십니다.



엥????

이거 뭐지???

양수가 터진건가???



" 오빠, 나 양수 터졌나 봐."

띠옹





오빠 나 자러갈께~ 이런 말투로

침착하게 양수 터졌다고 말하는 날 보더니



" 어어어??? 진짜??

허걱허걱허걱




화장실에 가서보니 냄새도 색깔도 없는 맑은 액체가

속옷과 바지를 조금 적셨어요.



양수가 터지면 물이 콸콸콸 쏟아져 나올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그냥 속옷만 살짝 적신 정도네??




[이미지 출처 : 베이베센터 ]



Show 라고 하는 (한국에선 이슬) 핏빛 살짝 비치는 분비물이 먼저 나오고

양수가 터질거라고 예상했는데 이슬은 어디갔지?





 [이미지 출처 : 베이베센터 ]



Show(이슬)은 지난 9개월간 아기가 안전하게 엄마 뱃속에 있을 수 있게 막고 있던

플러그 같은 게 분만이 시작되면서 빠져나오는 분비물입니다.



양수같은 것이 터지고 난 후 화장실에 가니
핑크빛이 도는 분비물이 보입니다.

이슬(Show)이 비친거지요.


이거 정말 오늘 미지수를 만나는 걸까요???


두근두근

설렘    설렘




어쨋든 침착하게 병원에 전화를 합니다.

상황을 설명했더니

양수가 터진 것 같으니 지금 당장 병원으로 오라고 합니다.





뭐야

나 오늘 아기 낳는거야???

진짜????

예정일보다 8일이나 이른데???





사자오빠도 어리둥절합니다.

진통도 없고 멀쩡하게 티비보다가

지금 애 낳으러 가는 건가요?



ㅎㅎㅎ




어쨋든 대충 꾸려 놓았던 출산 가방을 다시 점검하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카메라도 챙기고 병원으로 향합니다.




병원으로 향하는 지금 시각 새벽 2시.


" 오빠아아아아아으으으윽, 애가 나오려고 해에에에에에엑."
허걱

사자오빠는 빨간 신호등을 다 무시하고 시속 120킬로로 마구 달립니다.
그러다가 경찰이 우리 차를 세웁니다.

" 경찰 아저씨, 지금 제 아내가 애를 낳으려고 해요요오오!!"

다급한 상황을 본 경찰이 우리 차를 에스코트 해서
병원까지 논스톱으로 달립니다.
.
.
.
.
.

이런 드라마틱한 상황을 줄곳 상상하고 있었던 사자오빠.



현실은 새벽 2시.
길거리엔 차도 하나 없고 고요합니다.

효야는 진통은 커녕 아무런 느낌도 없다며
멀쩡하게 조수석에 앉아서 쫑알쫑알 떠들어댑니다.

물론 경찰차의 에스코트도 없습니다.
시속 50킬로로 천천히, 신호 다 지키면서 병원으로 향합니다.

사자오빠는 이런 맹숭맹숭 드라마틱 하지 않은
병원행이 어디있냐며 실망이라고 합니다.




사자오빠씨, 영화를 너무 많이 보셨쎄요.
ㅋㅋㅋㅋㅋㅋ

 꺄악







 

경찰차의 에스코트 따위는 전혀없이
효야는 두 발로 걸어서 병원으로 들어갑니다.
ㅋㅋㅋ



일단 아까 나온게 양수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소변검사를 하고
효야는 배에 태아의 심박수, 태동 그리고 진통을 체크하는
모니터 두 개를 달고 기다립니다.


이렇게 누워서 약 30분을 기다렸다가
아랫부분에 고인 액체를 체취해서 현미경으로 보면
양수일 경우 양수만의 독특한 패턴이 있어 구별이 가능하다고 해요.


이 모든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기 위해
효야는 글을 씁니다.

사자오빠는 옆에서 가지고 온 책을 읽습니다.


아프지도 않고 진통도 못 느끼겠고, 효야는 웬지
양수터진 거 아니에요. 자, 이제 집으로 돌아가세요~
할 것 같다구요.





 

시간이 흘러 새벽 3시쯤 되었을까요?



태아의 심박수, 태동은 아주 정상이고

가진통인지 진진통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모니터 상으로는 진통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고 해요.



정말요??

전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진통 같은 거 안 느껴져요...^^;;



소변검사와 양수체취 현미경 검사의 결과가 나왔답니다.



아까 나온 맑은 물,

양수 터진거 맞데요!!!



미드 와이프가 내진을 해 보는게 어떻겠냐고 묻습니다.

호주에서는 내진을 하려면 산모의 동의가 꼭 필요하데요.



한국 산모들의 출산후기에서

3대 굴욕이다 하면서 내진이 얼마나 끔찍하고 싫은지

너무 많이 읽은터라 조금 겁이 납니다.

실망

미드 와이프가 손가락을 넣고

조심스레 무언가를 만져보고 체크합니다.



엄청 고통스럽고 싫다길래 잔뜩 겁을 먹었는데

손가락 하나 정도로 아주 조심조심

살짝 불편한 감은 있지만 힘들지 않습니다.

미소



내진을 한 후 미드 와이프 왈,



" 효정, 지금 자궁문이 3cm 정도 열렸어요!"



네에에에???

허얼!!!!!!!!!

허걱




양수 터진거 아니고

아기 나오려면 멀었으니 집으로 돌아가시오!

할 줄 알았는데

웬걸

양수 터졌고 자궁문도 이미 3cm나 열렸데요.


흐흐



오늘 IKEA 가서 가구 구경하면서 돌아댕기고

저녁요리도 하고

티비 보면서 띵가띵가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진통도 시작되었고

자궁문도 3cm나 열렸다니....




대~~~~박!!!

당황




효정,

이제 입원 수속하고 3층 분만실로 올라갑시다!



엄마야...

저, 진짜 오늘 미지수 만나는 건가요???



두근 두근 두근

설렘    설렘    설렘  


  





[이미지 출처 : 베이베센터 ]



내진을 하고 난 미드와이프가 말합니다.



보통 양수가 태아의 머리 앞쪽으로 터지는데

효야는 태아의 머리 뒷부분 쪽으로 사알~짝 찢어진 상황이라구요.



그래서 양수가 콸콸콸 나오지도 않았고

태아도 아직 밑으로 많이 내려오지 않은 상태랍니다.



하지만 일단 양수가 터진 이상

18시간 이내에 아이를 낳지 않으면 감염의 위험이 있음으로

촉진제 등을 투여해서 아기를 낳아야 할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실망




효야의 계획은 아무런 약물투여나 의료진의 개입없이

완젼한 자연분만으로 미지수를 만나고 싶기 때문에

지금부터 18시간 안에 분만이 빠르게 진행되기를 간절히 희망해 봅니다.




미지수야, 어서 빨리 내려오렴~

엄만 약물같은 거 없이 자연스럽게 너를 만나고 싶어.







 

거의 새벽 4시가 다 되어서 3층 분만실로 입원을 합니다.



이제 생리통 비슷~한 아주 경미한 통증이 아랫배에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아기가 나오려면 멀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이 정도 아파서야 애가 나올리가 없겠죠?

^^;;





 

사자오빠에겐 집으로 돌아가서

잠시나마 눈을 좀 부치고 해 뜨면 오라고 합니다.



해가 뜨고 본격적인 진통이 시작되면

효사자 우리 둘 다 체력이 필요하니

지금 푹 자 두어야 합니다.






 

배정 받은 분만실은 수중분만을 할 수 있는 욕조가 없습니다.

약 20여개의 분만실 중 욕조를 갖춘 방은 6개에 정도이거든요.



효야는 수중분만을 꼭 시도해 보고싶기 때문에

혹시나 아침에라도 욕조있는 분만실이 나오면 방을 옮겨주십사 부탁합니다.



제발,

욕조있는 방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어느새 새벽 5시가 넘었어요.

얼른 좀 잠을 자 두어야해요.



날이 밝으면

미지수를 만나는 엄청난 경험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죠?




 

 

아침 7시 30분이 되니까 아침을 먹으라고 깨웁니다.



잠은 겨우 2시간 남짓 잤나봐요.

이거 오늘 하루종일 견뎌야 하는데 잠이 부족해서 좀 걱정입니다.

삐질



그래도 눈을 뜨니 화창하고 푸른 하늘이 효야를 반갑게 맞습니다.

날씨가 좋은 것이 오늘 하루도 기분좋게 풀릴 거라 생각해요.


메롱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비썩마른 빵조각에 씨리얼과 우유.


황당한 아침식사이지만

ㅋㅋㅋ


호주사람들이

한국사람들의 국과 밥 만큼 일상적으로 먹는

아침식사 식단이 씨리얼과 우유임으로

놀라울 일은 없습니다.



메뉴를 보니 점심과 저녁메뉴는

따뜻하고 다양한 요리 음식들이 많이 있어요.



아침은 가볍게 먹고 점심이랑 저녁 든든하게 먹으면 됩니다.






아침 8시 30분, 너무나 다행히도

 욕조있는 분만실이 나왔다며 방을 바꾸어 줍니다.



처음 방 보다 훨씬 더 넓고 모던하고

무엇보다 욕조가 있어서

수중분만을 원하면 시도해 볼 수 있는 옵션이 생겼다는게 기뻐요!!


방긋




 

호주 병원(WCH) 의 분만실은 최대한 병원스럽지 않게 하려고

모든 의료기구들 대부분이 벽 속의 수납공간 안으로 들어가 있고

벽에 걸린 액자 뒤로 숨겨져 있습니다.



의료기구들이 널려있는 병실은

따뜻한 분위기도 없고 웬지 무섭잖아요.



내 집 처럼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려는 노력이 엿보여서 좋아요.





 

샤워를 할 수 있는 욕실도 널찍하구요.





 

내가 너무너무 원했던 수중분만용 욕조에요.



수중분만이 나에게 맞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생겼다는 것 만으로도 맘이 놓입니다.

방긋



효야는

오늘 새벽 2시에 병원에 와서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을

꾸준히 글로 남기고 있어요.



지금 상황으론 다 기억날 것 같지만

순간순간 가졌던 느낌들이나

생생한 기억들이 이렇게 적어놓지 않으면

나중에는 희미해 져 버리거든요.

(천상 블로거인가요...? ㅎㅎ ^^)





아침이 되니 새벽근무하던 직원들이

모두 아침근무 직원들로 바뀝니다.



아침에 효야를 담당해서 돌보고 체크해 주는 미드와이프는

신기하게도 남자!! 미드와이프 입니다.



그의 이름은 Tim.

미드와이프이자 간호사인 그는 이 일을 한 지 10년이 넘었다고 해요.



다른 미드와이프들은 거의 사적인 말은 하지 않고

효야의 몸 상태만 체크하고 조용히 방 한 곁에 있어주는데 반해

팀은 아주 사교적? 입니다. ㅋㅋㅋㅋ



팀이 퇴근하는 오후 1시 30분경 쯤에서는

효야는 팀의 첫사랑부터 전 여친의 이름까지 다 알게 되었어요.

ㅋㅋㅋㅋㅋㅋ



팀은 오래된 클라식한 차를 모으는 게 취미인데요.

그렇게 모은 클라식한 차들만 열 다섯 대.

헐........



그 차들을 웨딩카로 렌트해 주는 비지니스를 시작해보려고 준비중이랍니다.




" 효정, 근데 한국 여자들은 다 너처럼 이쁘니?"

ㅋㅋㅋㅋㅋㅋㅋㅋ

꺄악


아... 미쳐 ㅋㅋㅋ

예쁘다고 해줘서 참 고마운데

애 낳으러 온 산모한테 지금 작업멘트는 아닌거지?

ㅋㅋㅋㅋㅋㅋㅋㅋ



아직 싱글이라는 팀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오전을 보냈습니다.

Thanks, Tim.


미소


 




 

어쨋거나 이렇게 웃고 미드와이프와  셀카질하면서 놀고있는 동안

효야는 진통이 조금씩 조금씩 강해지고 그 간격도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생리통 정도의 욱신욱신한 아랫배의 아픔정도?



효야는 누워있거나 앉아있지 않고

계속해서 방안을 걸으면서, 수다를 떨면서 움직입니다.

이렇게 Active 하게 움직여 주어야 분만의 진행속도가 빨라진다고 해요.



효야는 이미 양수가 새벽 1시에 터졌음으로

오늘 저녁 6시-7시 까지 분만이 진행되지 않으면

촉진제(씬토시논: Syntocinon) 을 맞아야 하는 상황이 오기 때문에

어서 빨리 진통이 진행되게 최대한 활발하게 움직여주는 거죠.



약물을 쓰지 않고 자연분만을 꼭 하고싶은
효야의 의지가 빛을 발하길 바래봅니다.



 

진통이 조금씩 조금씩 더 강해지고 간격이 좁혀지는 동안

효야는 샤워도 하고 머리도 감고 드라이도 합니다.


눈썹도 살짜쿵 그리고

입술에는 붉으스레한 립밤도 발라요.



아직까지 살만하다는 거겠죠?

ㅋㅋㅋㅋㅋ



이렇게 멀쩡해서야

도대체 애를 언제 낳을 수 있을런지???

진행이 느리면 촉진제 맞아야하는데...



앞으로 효야의 분만이 어떻게 진행될지

미지수가 언제나 나올런지

참으로 미지수입니다 그려.





 

오후 12시가 조금 넘자 사자오빠가 도착했습니다.

효야는 이제 슬슬 진통의 강도가 강해지고 있어요.



아직은 참을만 하지만 꽤 아픕니다.

심한 생리통에 응가까지 마려운 것 같은 느낌...??



이건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글로써는 뭐라고 설명하기가 힘든 고통입니다.



짐볼 위에 앉아서 골반을 오른쪽 완쪽으로 리듬있게 움직이면서

진통을 하나하나 견뎌나갑니다.


신발을 벗어던지고

맨발로 바닥의 찬 감촉에 신경을 집중합니다.


진통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정신을 집중해서

고통을 이겨내는 중이지요.



쥬쥬선딘의 책 'Birth Skills' 에서 배웠던

진통을 이겨내는 수 많은 방법들 중에 하나입니다.





 

라디오를 클라식 채널에 맞추어 놓고

음악에 정신을 집중합니다.



출산일지를 계속 쓰면서

진통이 올 때는 일어나서 움직이면서

고통을 몸 밖으로 내보내려고 노력합니다.



고통에 집중하지 않고
음악, 사자오빠가 들려주는 이야기, 맨발로 차가운 바닥을 밟는 감촉에
온 정신을 집중합니다.


우리의 뇌를 진통의 고통이 아니라
다른 감각에 포커스를 두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에요.


예를 들면, 손가락을 베어서 쓰라린데
누군가 허벅지를 꽉 꼬집으면 손가락 쓰라린 고통은 잊고
허벅지 아픈것만 느껴지는 원리랄까요?


진통의 고통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고
음악, 주변의 물건, 내 손에 닿는 옷의 감촉,
바닥을 맨발로 걸을 때의 느낌 등에 정신을 집중하면
진통의 고통을 이겨내기가 훨씬 수월해 지는 거지요.


글로 적으니 쉬울 것 같지만
이것은 굉장한 집중력과 포커스를 요하는 것이었어요.





 [이미지 출처 : 베이베센터 ]


쥬쥬선딘의 "Birth Skills' 란 책에서 나를 가장 강하게 사로잡았던 부분은

진통이란 무엇인가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진통이라는 것은 간단히 말해서

근육이 열심히 일을 하면서 생기는 고통입니다.



날씬하고 근육잡힌 몸매를 만들려고
운동을 하잖아요?


아령을 몇 번만 들었다 놨다 해도
근육이 찢어질 것 처럼 아픈것을 경험합니다.


아기를 낳을 때는 이 근육이
자궁문을 0cm에서 10cm까지 열기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으니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할지 조금 상상을 할 수 있나요?



효야가 지금 겪고 있는 '분만 제 1기'가 바로

자궁문이 10cm 까지 열리는 진통과정인 것이지요.




 [이미지 출처 : 베이베센터 ]



진통이라는 것은
암이나, 교통사고 등으로 인해 오는
Sick Pain(아픈 고통) 이 아니라

그저 근육이 자궁문을 10cm 열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서 오는
Healthy Pain (건강한 고통) 이라는 것입니다.


효야는 이 구절을 읽는 순간
상상할 수 없는 진통이라는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더랬어요.




 

진통은 그저 근육이 열심히 일하면서 오는
건강한 고통( Healthy Pain) 일 뿐이다.



어느 누구도 진통을 이렇게 설명해 준 적이 없었는데

효야는 지금 진통이 점점점 심해지고 있는 이 순간

' 이것은 그저 근육이 일하면서 오는 건강한 고통일 뿐이야.'



건강한 고통

그저 근육이 일하고 있는 것 뿐.


건강한 고통

그저 근육이 일하고 있는 것 뿐.



 되뇌이고 되뇌이면서

고통에 사로잡혀 컨트롤을 잃지 않으려고 

정신을 집중합니다.



 



 

현재 시간 오후 2시.



효야는 느닷없이 배가 고픕니다.

아침 7시 30분에 비썩마른 빵 한 조각

씨리얼에 우유 먹은게 다이다 보니 허기가 져요.



" 저...배고픈데 점심 안 주시나요??"



미드와이프가 난처한 얼굴로 효야를 보더니

" 분만이 진행되고 나면 음식을 먹을 수 없어요.

만일의 경우(제왕절개)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은 물이나 얼음조각만 드릴 수 있답니다."


헐....

우씨



잠도 세 시간 남짓밖에 못자고

아침으론 씨리얼 조금 먹었더니 허기는 지고

에너지가 있어야 출산을 무사히 치루어 낼텐데....



아....배고프다

흑흑






여기서 효야의 걱정 또 한가지



자궁문이 열리고 아기가 나올 때가 되면

힘을 줄 때 응가도 엄청 나온다고 하던데....

당황



한국에선 관장을 필수적으로 한다던데...

나 애 낳다가 똥 싸면 민망해서 어쩌나?



" 저... 대변이 나올 수도 있다던데 관장같은 것은 안 하나요?"



" 우리는 약 10-15년 전 부터 관장이나 제모같은 시술은 하지 않고 있어요.


효정, 아기를 낳을 상황이 되면

대변이 나오고 안 나오고는

여기있는 모든 사람들이 걱정하는

최고 마지막 사항이에요.


일단 대변이 나온다는 것은 제대로 힘주고 있다는 소리임으로 좋은거구요.

대변이 나오면서 아기 나오는 공간이 넓어져서 또 좋아요.


대변이 나오면 우리가 치워주면 되고

효정은 아무 걱정도 하지 말아요.


대변이 나오고 안나고는

비중조차 없는 하찮은 일일 테니까요.



정말이요...?

그래도 좀 걱정이 됩니다.

우리 사자오빠도 옆에 있을 텐데....



부끄






 

 

2시가 넘어가자 의사 선생님이

인위적으로 양막의 앞부분을 터뜨리자고 합니다.



효야는 양막이 태아의 머리 뒷쪽으로 살짝 찢어져만 있는 상태라

분만의 진행도 느리고 아기가 내려오지 않고 있다면서요.



일단 찢어진 양막이고

인위적으로 앞부분을 떠뜨린다고 해도

약물을 쓰는 것도 아니고 분만의 진행속도를 빨리해 준다고 하니

좋은 아이디어 같습니다.



양막의 앞부분을 인위적으로 찢기전에

일단은 내진을 한 번 더 해서 자궁문이 얼마나 열렸나 확인해 보기로 합니다.








미드와이프가 내진을 한 결과,

진행이 무척 느리다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효야의 자궁문은 현재 약 7cm 열린 상태!!!



와우!!!



의사쌤도 미드와이프도 놀랍니다.


이미 효야의 몸이 자기만의 속도로 분만을 진행시키고 있으니

일부러 궂이 양막을 찢거나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합니다.



자연스럽게 효야의 몸에 맡기고

미지수가 스트레스 받지 않고 순리대로 나오게 지켜보자고 결정합니다.



의사와 미드와이프들은 분만이 진행되는 동안

여러가지 조언을 해 줍니다.



하지만 결국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기를 낳는 산모인 나!!



내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지식이 있어야 결정도 내릴 수 있습니다.


병원가면 의사쌤이 다 알아서 해주겠지.

간호원이, 또는 미드와이프가 시키는 대로 하면 돼.


라는 생각을 가지고 아무런 공부나, 사전 지식없이

애를 낳으러 가는 산모들이 있다면

이것은 아주 위험한 마음가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무진장 공부하고 준비했다고 생각해도

막상 닥치면 출산이라는 경험은 상상을 초월하고

내가 감히 생각도 할 수 없었던 경험입니다.



아이를 낳는 것은 나!

의사나 간호사가 나 대신 아기를 낳아줄 수 없음으로

꼭, 할 수 있을 만큼 공부하고 준비해서 가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입원해서 현재까지 진통을 한지 약 12시간이 흘렀습니다.



진통 12시간 했어요...하면 헐...!! 싶지만

사실 첫 12시간은 길고 피곤했다는 것만 빼면

꽤 무난하고 견딜만한 12시간이었다는 걸 

이제 본격적으로 알게 됩니다.



지금부터 시작이었던 거에요.



지금까지 12시간은 아무것도 아니었어어어어으으

빙산의 일각이었던 것이이야야아으으윽


한숨





 

오후 4시가 되어갑니다.



잠을 못자서 피곤은 몰려오고

밥을 못 먹어서 힘은 없고

참기 힘든 깊은 고통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효야를 덮쳐옵니다.




진통은 점점 더 강하고 길게

간격은 더 짧게 옵니다.



참기 힘든 깊은 고통.



진통과 진통 사이에는

의자에 앉아 정신을 잠시 잃고 잠에 빠져듭니다.



사자오빠는 내 옆에 산처럼 든든하게 서서

머리기댈 기둥이 되어주고

진통을 하나 하나 견뎌낼 때 마다 빨대 꽂은 물을 줍니다.



비록 효야의 고통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사자오빠는 그 오랜 시간동안 자리에 한 번 앉지도 않고

효야의 옆에서 커다란 산처럼 버팀목이 되어줍니다.



사자오빠가 없었다면

효야 혼자서는 도저히 이겨낼 수 없었을 것 같아요.



효야와 사자는 함께 진통을 겪고있고

함께 미지수를 낳고 있습니다.








 

엄청난 파도처럼 진통이 덮쳐오면

자리에서 일어나 오빠 목에 팔을 감고

차가운 바닥을 맨발로 탕탕탕탕 구르면서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발과 발로 느껴지는 감촉에 정신을 집중합니다.



다른 곳에 집중하면 할 수록

진통을 이겨내기가 수월해집니다.




 

언제나 10cm 가 열리는 건가.

진통은 점점 심하고 간격은 짧습니다.



쥬쥬 선딘의 책 'Birth Skills' 에서 배운

온갖 진통 이겨내는 법들을 사용해 봅니다.



자궁문 7cm 가 넘어가고 진통이 극한에 다다르기 시작하자

발 구르기, 차가운 바닥의 감촉에 집중하기, 음악듣기

등등의 효력이 없어지기 시작합니다.



고통의 크기가 너무 커서

이 고통을 넘어설 만한 더 강력한 무엇이 필요합니다.



슬슬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추위가 덮쳐옵니다.


가져간 가운을 걸치고
정신줄을 놓지 않으려고 몸과 마음을 초집중하지만
무언가 더 강력한 것이 필요해요.





 

[이미지 출처: 쥬쥬 선딘의 책 Birth Skills ]



쥬쥬 선딘의 책에서 배운 또 한 가지

Vocalizing(보컬라이징) 을 떠올립니다.


'보컬라이징' 이라는 것은 한 마디로 입 밖으로 큰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끼아악, 꺅~ 하는 패닉상태에 빠진 비명소리가 아니라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아아아아아아아아아

오오오오오오오오오



성악가가 낼 법한 낮고도 규칙적인 소리를 냅니다.

이소리와 함께 고통도 몸 밖으로 내 보내는 거죠.






처음엔 소리를 낸다는 것이 조금 쑥쓰럽고 민망했어요.


하지만 극한의 고통이 내 몸을 덮치고

지금까지 잘 견뎌왔던 컨트롤을 잃어버리는 것이 한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자

쑥쓰러움은 간데없고

내 몸에서 이런 소리가 나올 수 있구나 싶을만큼

낮고 굵고 규칙적인 목소리로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하면서 고통을 소리와 함께 내 몸 밖으로 내보냅니다.



진통 하나만 견뎌내자.


자 또 하나만 더 견뎌내자.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고통아 이 소리와 함께 밖으로 나가라아아아아

고통 OUT~~~~~~~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이런 식으로 진통을 하나, 또 하나 견뎌냅니다.





 

 

극한의 고통이 내 몸을 덮쳐오면

비명을 지르고 싶거나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불끈불끈 솟아옵니다.



이런 생각이 들면

지금까지 가까스로 견뎌오고 지켜왔던 콘트롤을

종이 한 장의 차이로 한 순간에 잃어버리고 패닉상태에 빠져들것 같습니다.



30년을 넘게 살면서 이런 고통은 단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습니다.

말로는 설명할 수도, 적절한 단어도 찾을 수가 없어요.





아, 여기서 수중분만 이야기.

욕조에 들어가 보겠다고
수중분만을 한 번 시도해 보고싶다고
미드와이프에게 알립니다.


헌데 효사자가 느끼기에
병원 측에서 수중분만을 그리 권장하는 분위기가 아니에요.


아무래도 산모가 물 속에 있다보면
모니터 하기도 까다롭고
 아기가 나올 때도 개입하기가 여러모로 불편한 것이겠죠.


결정적으로
수중분만을 하려면 분만이 많이 진행되기 전에
동의서를 읽고, 싸인을 했어야 했는데
그 시기를 놓쳐버렸다는 겁니다.


입원할 때 부터 수중분만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고
아침에 수중분만 용 욕조가 있는 방으로 옮겨주었으면서
어느 누구도 이 동의서에 대해 언급해 주지 않았다는게 의아할 뿐이에요.


하지만, 이미 늦었으니
과감하게 포기하고 넘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수중분만을 시도조차 해 보지 못해서
과연 내 몸에, 진통을 이겨내는 데에
도움이 되었을지의 여부를 알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네요.


실망







 

진통이 시작되고 분만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옥시토신(Oxytocin)이라는 호르몬이 몸에서 분비되어야 하는데


컨트롤을 잃고 고통에 사로잡혀 패닉상태가 되어버리면

몸 속에서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옥시토신의 분비를 방해해 버립니다.



한 마디로 정신줄을 놓고 패닉상태에 빠지면

분만이 진행되지 않아 촉진제를 맞아야하고,

인공적인 촉진제를 맞으면 그 진통의 강도도 심해서 결국 진통제나 무통주사로 가고,

마지막엔 제왕절개를 해야 할 상황이 오기도 하는거죠.



자연분만을 하고 싶다는 의지로

패닉상태에 빠지면 모든게 허사라는 신념으로

고통에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마지막 남은 체력과 정신력을 짜 냅니다.






 

자궁문이 거의 다 열려가고 있지만

효야는 지금 까딱하면 패닉상태에 빠질 것만 같습니다.



육체적으로도 너무 힘들고

정신력도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간당간당한 거에요.



이 극심한 고통의 피크 부분을

조금만, 아주 조금만 줄여줄 수 있다면

견딜 수 있을 것 같은데....



출산용 진통제인 Pethidine(페티딘) 같은 약물은 맞고 싶지 않아요.

약물 없는 자연분만을 위해서 지금까지 잘 버텨왔는데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습니다.



한 가지, 아주 마일드한 마취제의 일종인

Gas & Air (가스 & 공기) 가 생각납니다.



가스 & 에어라고 불리우는 이것은

Nitrous oxide (일산화질소) 또는 웃음 가스(Laughing Gas)라고도 합니다.



태아에게 전혀 영향이 가지않고

아주 미약한 마취제의 일종인 가스&에어 를 시도해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진통이 시작되면

이 가스를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면서 마시는 거에요.



진통을 없애주는 정도의 파워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진통을 그대로 느끼지만 최고 피크에 다다르는 고통은 조금 완화시켜 준다고 합니다.



그걸 기대하고  진통이 시작됨과 동시에

힘껏 들이마시고 내쉬어보지만 효과가 없습니다.



미드와이프가 가스&에어의 농도를 좀 더 짙게 해 줍니다.



다음 진통과 함께 또 열심히 가스를 들이마시고 내쉬어 보지만

여전히 고통의 피크를 완화시켜주지는 못해요.

흑흑



오히려 가스 들이마신다고

지금까지 해 왔던 보컬라이징도 못하고

되려 고통에 휘말려 정신줄을 놓아버리기 일보직전입니다.



안 되겠다

이건 나에게 맞지 않나봐.



당장 가스&에어를 던져버리고

지금까지 해 왔던 보컬라이징으로 돌아갑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
.
.
.
.
.
.
.
.
.

우여곡절끝에 드디어
자궁문이 10cm 가 열렸습니다.

정말 길고 고통스럽고 힘든 분만 제 1기가 끝이나요.



자궁문이 10cm 열리고 나면

Push (힘주기)해서 아기를 세상 밖으로 밀어내는

분만 제 2기가 닥쳐옵니다.




분만 제 1기만 끝나면 2기는 수월할 줄 알았는데

저만의 크나큰 착각이었네요.




진통과 함께 저절로 힘이 주어지고

Push 하고 싶은 욕구가 마구 몰려오는데

효야는 개인적으로 진통보다

이 힘주기가 더더욱 고통스럽고 힘이 들었어요.






   [ 이미지 출처: 구글 ]



힘이 주어지고 Push 하려는 욕구가 밀려오자 침대로 올라갑니다.

침대를 반으로 접고 상체를 접힌 침대부분에 의지하는 자세로

Push 를 시작합니다.



지금까지는 보컬라이징을 사용해서

아아아아아아아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하며 큰 소리를 내어

고통을 몸 밖으로 내 보내는 식으로 진통을 견뎌왔습니다.



하지만 분만 제 2기인 힘주기에 돌입하면

소리를 내지 않고 모든 남은 에너지들을 끌어모으고 모아서

Push 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진통이 밀려오고 모든 에너지를 끌어모아 힘주기를 합니다.

소리를 내지 않고 모든 것을 Push 에 집중해요.



소리를 내지 않지만

 힘주기와 동시에

저 깊숙한 곳에서 동물의 울음소리 같은 절규가 세어나옵니다.



내 몸에서 그런 신음 또는 동물같은 소리가 나온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에요.



대변도 많이 나왔을 겁니다.

하지만 미드와이프 말대로 대변이 나오냐 안 나오냐 따위는

 비중조차 없는 하찮은 문제입니다.



Push 하고 힘주고 밀어내는 것만 약 1-2시간 걸린 듯 합니다.

정말 이제는 지쳤어요.



포기하고 싶고 울고 싶을 만큼 힘들어요.

도대체 이 고통은 언제쯤 끝이 나는 걸까요.





[이미지 출처 : 베이베센터 ]



지쳐 갈 무렵 자세를 바꾸어보기로 합니다.

접힌 침대에 등을 대고 앉는 자세로 바꾸었어요.



앉아서 두 다리를 접고

두 손으로는 내 허벅지를 움켜쥐고

턱은 가슴팍에 붙인 자세로 마지막 힘주기에 돌입합니다.



아랫 부분이 강렬하게 불타오르는 느낌이 나기 시작해요.



" 효정!!! 계속 쉬지말고 Push 하세요!!

아기의 머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미지수의 머리가 나오기 시작한답니다.

눈을 뜨고 다리 사이를 보니 미지수의 머리를 볼 수 있어요.



고통은 극심해요.



불타는 듯한,

내 몸이 두쪽이 나는 듯한,

찢어지는 듯한 고통.

험악



손으로 미지수의 머리를 만져봅니다.



사자오빠도 놀라움에 나지막히 소리칩니다.



효야, 머, 머리가 보여.

이제 거의 다 왔어.

조금만 더 힘내!!

너 너무 잘하고 있어.

사랑해.

조금만...조금만 더


흑흑





[이미지 출처: 쥬쥬 선딘의 책 Birth Skills ]



얇은 양말 밖으로 빠져나오는 자몽처럼

미지수의 머리가 내 몸 밖으로 밀어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머리가 보이기 시작하면 여기서부터는 힘을 심하게 주면 안 되어요.

지금부터는 숨을 짧고 빠르게 헥헥헥 쉬면서

머리가 조금씩 조금씩 아랫부분을 빠져나오도록 조절해야 합니다.



무턱대고 힘을 주었다가는

얇고 팽팽하게 태아의 머리를 머금고 있는 회음부가 다 찢어지는 결과가 생겨요.



호주병원에서는 회음부를 인위적으로 절개하는 경우도

10 % 미만으로 아주 낮다고 합니다.



응급시가 아니라면 근육조직이 저절로 찢어지게 하는 것이

나중에 회복하는데 더 좋다고 해서 회음부 절개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천천히 조심스레 힘주기만 한다면

회음부가 찢어지지 않는 산모들도 너무나 많이 있어요.



하지만

효야는 지금 거의 정신이 없습니다.

화남



조금씩 조금씩 천천히 힘을 줘서

미지수의 머리를 조금씩 나오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야 회음부가 찢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너무 잘 아는데

불타고 몸이 두 쪽나는 고통속에서 그게 말처럼 쉽게 되지가 않더란 말이죠.



조금은 급하게


조금은 강하게


PUSH


PUSH


PUSH



그제서야 양수가 쏴~~하고 터지면서

미지수의 머리가 나오고

어깨며 몸이 콸콸콸 양수와 함께 빠져 나옵니다




후...아...





 

18시간 끝에 세상에 나온 미지수는

아주 잠시 응애에에에~

하고 울더니



효마미의 가슴팍에 바로 올려지는 그 순간부터

울음을 뚝 그칩니다.






나를 신기하다는 듯이, 뚫어져라 응시하는

이 파랗고 조그마한 사람이

효야가 18시간의 엄청난 경험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내보낸

나의 아기, 미지수인가요?



드디어 우린 만났구나.

Hello, 미지수.





머리칼도 까맣고

눈동자도 까맣습니다.

효야를 더 닮은 걸까요?



오똑한 코랑 뾰족한 턱,

핑크빛 피부는 사자오빠 같습니다.

사자오빠를 더 닮았나요?







 

엄마, 고생많았어요~


윙크 윙크

ㅎㅎㅎㅎ



파랗던 미지수는 빠르게 핑크빛으로 생기가 돌고

이 작은 사람은 울지도 않고

그저 뚫어져라 나를 바라봅니다.



나도 이 작은 사람이 신기하고 낯설어서

우린 서로를 말없이 그저 바라보고 있습니다.


.

.

.

.

.

.

.


Ryan, 탯줄 직접 자르시겠어요?

미드 와이프가 사자오빠에게 묻습니다.


사자오빠가 조심스레 미지수의 탯줄을 잘라요.



지금까지는 이 탯줄로 인해 효마미와 미지수 둘 만이 연결되어 있었는데

사자아빠가 그 연결고리를 잘라줌으로써



효마미 + 미지수 둘 만이 존재하던 세계와는 이제

Good Bye.


사자아빠가 탯줄을 자르면서

효 + 사자 + 미지수 이렇게 셋이 함께하는 새로운 세상으로

Hello.




 

 

사자오빠는 지금껏

신생아들은 솔직히 다 좀 못생기고 이상하더라며

갓 태어난 아기들이 이쁜 줄 모르겠다고 해 왔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미지수를 만나자마자 눈이 하트로 변해가지고


사랑사랑사랑



" 효야, 우리 아기는 신생아 같지가 않아.

이렇게 눈 크게 뜨고 쳐다보는 아기는 처음이야.

이렇게 예쁜 아기는 내 생전 본 적이 없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치겠다..



태어난 지 몇 초만에 사자아빠를 딸바보로 만들어버리는

엄청난 매직파워를 가진 미지수.










반면에 효야는 지금,

여러가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약간 쇼크의 상태입니다.



상상을 초월했던,

아니 내 상상의 범위 저 바깥에 있었던

진통과 출산의 고통,

그리고 너무나 길고 힘들었던 18시간의 경험



미지수가 내 가슴팍에 올려져 나를 뚫어져라 보고있지만

불타오르고 찢어지는 아랫부분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기 낳자마자

그 아기를 보자마자

그 동안의 고통은 까맣게 다 잊는다고

많은 산모들이 말한 걸 읽었는데



뭐야,

전혀 잊혀지지 않잖아요???

흑흑흑흑흑흑




' 오빠....나 너무 아파...아직도 힘들어.

앞으로 둘째 이야기는 입 밖에 꺼내지도 마.

나 두번 다시는 이걸 또 겪고 싶지는 않아.

우리에게 둘째란 없....다!!!"





효야는 아직도 미지수가 조금 낯설고

누굴 닮은걸까 이 아이는?

내가 진짜 이 아이의 엄마가 된 건가?

아 너무 피곤하고 지친다.

배도 고프고 쉬고 싶어....


하는 생각에 멍하기만 합니다.




사자오빠는 끊임없이 효야의 이마 볼 얼굴에 키스를 퍼부으면서

너무 잘 했어. 효야

You are so amazing.


사자오빠에게 있어서도
출산을 함께 치른 경험은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엄청난 것이었다고 합니다.


사자오빠가 큰 산처럼 옆에서 함께 해 주지 않았다면

효야 혼자서는 도저히 해 낼 수 없었던 18시간의 힘든 여정이었습니다.



고마워요

사자오빠.

설렘




 [이미지 출처 : 베이베센터 ]



자궁문이 10cm 까지 열리는 분만 제 1기

Push 하고자 하는 욕구가 밀려와 아기를 낳는 분만 제 2기


이제 마지막 분만 제 3기


아기가 10개월동안 엄마의 뱃속에서

영양분을 섭취하는 공급소가 되어주었던

태반이 나오는 과정입니다.


사람에 따라 약 5 ~ 30분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해요.


효야의 경우 약 15분 정도 기다렸더니

태반이 저절로 빠져나옵니다.


미드와이프가 배를 억지로 누르거나 하는 상황은 없어요.

그저 침착하게 또 조용히 산모의 몸이 태반을 배출하기를 기다려줍니다.




효야는 아기를 낳기 전에

내 태반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더랬어요.



효사자가 렌트하는 집이 아니라

정원이 있는 우리 소유의 집을 가지고 있었다면

아마 태반을 포장해 달라고 해서 집으로 가져왔을 거에요.



태반 하나 포장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꺄악



내 집 정원에 태반을 깊이 묻고

그 위에다가 나무를 한 그루 심고 싶었거든요.




미드와이프가 태반을 보여주면서

아주 크기도 크고 건강한 태반이라고 합니다.


' 효정, 태반 어떻게 할 건가요?

싸 가지고 갈 거에요?"



싸가지고 갈까 생각도 했지만

렌트하고 있는 집이고 정원도 꼬딱지 만하고

이사가 버리면 그만인데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고 거절합니다.



그러면 병원 측에서 알아서 태반을 처리해 주는거죠.




대신 미지수의 탯줄에서 나온 제대혈은 기증을 했습니다.


사비 몇 백만원을 들여 쓰일 수 있을 지 없을지도 알 수 없는

제대혈 보관은 무의미하다고 효사자는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지만


미지수의 제대혈이 필요한 사람에게 다 쓰일 수 있는

제대혈 뱅크에 기증되고

또 연구자료로 쓰일 수 있어

훗날 제대혈을 이용한 의학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아주 뜻깊게 여겨집니다.



우리 미지수가 태어나자 마자

좋은 일에 몸의 일부분을 기증했다는 게 의미있어요.





 

이제 의사가 들어와서 회음부를 꼬매어줍니다.

마취주사를 놓고 꼬매지만 이것도 아파요.


흑흑


약 2도 정도의 찢어짐(Second degree tear)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회음부를 인공적으로 찢는 것과 비슷한 강도의 찢어짐입니다.

하지만 인공적으로 찢는 것보다 자연적인 찢어짐이 그 회복도가 훨씬 빠르다구요.



2도 정도의 찢어짐은 아주 Mild 한 것임으로 걱정말라고 하네요.


그래도 너무너무 아프다....힝

한숨



마지막에 미지수 머리가 보일 때

아주 천천히 아기 머리를 조금씩 조금씩 밀어냈어야 하는데

조금 급하게, 조금 강하게 서둘렀던 탓입니다.



하지만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답니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뭐.

실망





18시간의 진통과 분만과정 동안

의사 쌤은 약 두 번 정도 잠시 얼굴을 본 것 같습니다.


인위적으로 양막 찢는게 어떨까요?

했을 때 한 번 보고

지금 회음부 꼬매주는 의사 또 따로.


그저 어떤 의학적인 시술이 발생할 시에만 의사가 개입하는 거죠.



"건강한 임산부는 환자가 아니다."


호주에서 임산부를 대하는 기본적인 마음가짐 입니다.



임산부는 어디가 아프거나 병이있는 환자가 아님으로

응급상황이거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의사를 볼 일은 거의 없습니다.



효야 또한 38주간의 임신기간동안 의사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고

미드와이프만 주기적으로 보면서 정기검진을 받았어요.



호주에서 임신기간 중 의사를 본다는 것은

내 임신에 무언가 문제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아이를 낳는 내내도 미드 와이프가 도움을 주고 지켜봐 줄 뿐이에요.







호주병원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바로 엄마 가슴팍에 올려주고
1시간에서 2시간을 엄마 아빠 아기가 함께 살 맞대고 있는
Skin to Skin 이라는 시간을 줍니다.


이 Skin to Skin 이라는 시간이 너무나 중요한 이유는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엄마 가슴팍에 살을 맞대면
엄마 냄새를 맡고 빠르게 안정을 취하고
체온도 빠르게 정상온도가 되고
젖을 빨려는 본능도 바로 깨어나 모유수유도 쉬워집니다.


아기가 스스로 젖을 찾아 오물오물 빨려고 하는 본능을 깨워줄 시간이 바로 지금인데
아기를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갔다가
Skin to Skin 할 시간을 놓쳐버리면
나중에 모유수유도 훨씬 힘들어진다고 해요.


미지수는 너무나 또릿또릿하게
우리를 쳐다보고
울지도 않고
편안한 모습으로
점점점 핑크빛으로 변합니다.


미드와이프는 우리 셋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주고

우리 셋은 두 시간 이상을  이렇게 살 맞대고 서로를 알아갑니다.



Skin to Skin 시간은 우리가 원하는 만큼 충분히 줍니다.


다만 효야의 몸이 너무 피곤하고 잠이 쏟아져서

우린 이제 그만 멈추어야했어요.



미지수는 7월 17일 20시 20분에

3.33 kg 으로 건강하게 태어났고

예상했던대로 여자아기입니다.





 

분만실에서 나와 효야와 미지수는 함께
4층 회복실로 옮겨집니다.


아기가 태어난 후부터는 쭈욱
아기와 엄마는 함께 하기 시작해요.


효야 침대 바로 옆에 누워 쌔근쌔근 자고 있는
 이 조그마한 아이를 내가 낳았답니다.


아직도 잘 믿겨지지가 않아요.







 


이 긴 출산 후기를 쓰고 있는 지금도

18시간이라는 내 상상의 범위 밖에 있던

길고도 힘들었던 여정을

약물의 도움이나 의료진의 개입없이

자연분만으로, 또 내 힘으로

 무사히 치루어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잘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아직 둘째 생각은 전혀 없는 걸 보니

너무나 힘들고 엄청난 경험이었다는 것만은 확실해요.

미소



믿을 수 없이 고통스럽고

또 말로 형용할 수 없이 놀라웠던

출산이라는 경험을 하고 난 후

내가 느끼는 바는 이렇습니다.



I am a strong woman.


난 진정 강한 여자이구나.



 이런 엄청난 경험을 치루어 낼 수 있다면

세상을 살면서 앞으로 내가 못해 낼 일은 아무것도 없겠구나.





 

 

약물이나 의료진의 개입없는 자연분만을 하는 것이 목표였고

실로 너무나 힘든 과정이었지만 무사히 그 목표를 이루었습니다.



제 스스로가 아주 자랑스러워요.

I am so proud of myself.



하지만 마지막으로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아이를 세상 밖으로 내보내는 출산을 경험함에 있어

성공이냐 실패냐 하는 것은 없다라는 겁니다.



자연분만을 하고 싶었지만

고통을 이겨내지 못해서

진통제를 맞았건 아니건

무통분만을 했건 안했건


응급상황의 발생으로

제왕절개를 했건 안 했건


어떤 방법을 썼던 간에

건강한 아기를 무사히 세상 밖으로 내보내고

그 엄청난 경험을 몸소 겪은 세상 모든 엄마들은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다만 임신과 출산이라는 것은

주변의 가족, 지인, 의료진들이 큰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결국은 내가 하는 것이라는 것.



난 아무것도 몰라요.

그냥 병원가면 의사쌤이 알아서 해 주겠죠.

하라는 대로 다 하면 되는거 아닌가요?


이런 마음가짐으로 분만을 준비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어요.

실망



의료진이나 가족의 조언은 귀기울여 받아들이되

마지막 결정은 내가 하는 것입니다.



 아이를 가지고

10개월 간 뱃 속에서 잉태하고

그 아이를 세상 밖으로 내 보내는 것 또한

결국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거에요.



무지함에서 오는 두려움만 가지고 피하기만 했던 효야가
아는게 힘이라는 마음으로 알아가면서 얻게 된
자신감, 그리고 할 수 있다는 용기


아기를 가지고 출산을 앞둔
세상 모든 예비 마미님들


그대들은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놀라운 일을 겪게 될 거에요.




자신감을 가지고

소중하고 아름다운 아기를 만나시기 바랍니다.






 

 














세상 모든 엄마는 위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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