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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속에 담아주는 말 "I trust you."

김상복 |2012.08.13 00:54
조회 292 |추천 0

밖으론 수없이 짙은 빗물이 흐르고 있네요, 자정을 향해가는 시각, 11시 30분 하소연할 곳, 아니 제 이야기를 단지 들어주셨으면 하는 답답한 마음, 혹은 제 고민을 조금 같이 풀어가 주셨으면 하는 아주 작은 소망에서 글을 적고자 합니다. 아마 답은 결론이 나 있겠죠, 더는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이야기가 매우 길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읽기 어려우신 분들은 과감히 스크롤을 내려주세요. 그러나 간절히 읽고, 고민을 들어주실 분들을 향해 큰 마음을 먹고 글을 적습니다.]

혹자, 저는 작년 초 호주 갈 채비를 모두 마친 채였고, 수많은 일을 거듭하고, 많은 일들을 겪으며 호주를 가는 데 비로소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늘 그렇듯, 처음 하는 일들이 쉬울 리 만무했고, 처음 묵은 홈스테이어서도 많은 어려움에 봉착했었습니다. 언어적, 문화적, 여러가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섞인 상태였죠.
작년 4월 도착한 호주에서는 4주 동안의 짧은 홈스테이 기간이 지나갔고, 시티 북쪽의 아주 작은 집에 거취를 옮긴 상태였습니다. 당시, 처는 친한 친구와 방을 구하는 중이였는데, 그 방을 위해 2주간 머물 곳이 필요했기에, 잠깐 머물 집을 찾던 중이였습니다.
제가 다니던 어학원은 그 지역 내 큰 규모의 학원은 아니지만, 바닷가가 있으며, 따뜻한 온정이 느껴지고, 버스역 마지막 역에서 걸어서 채 3분 남짓 밖에 걸리지 않는, 아주 소박하지만 쇼핑몰이며, 커피숖이며 필요한 것은 모두 구할 수 있는 곳이였습니다. 또한 관광지로서도 매우 좋은 곳이여서, 많은 외국인들 자국인들까지도 드나드는 곳이였습니다.
우선, 제 소개를 하자면, 굉장히 평범한 올해 스물 넷의 남성입니다. 작년은 물론 스물 셋 이였구요, 짧은 스포츠컷 형태의 머리에 왁스를 가볍게 발라 다니는 것을 즐깁니다. 잘생긴 편은 아니나, 남들과 즐기는 것을 즐기는 남성입니다.
호주에 처음 갈 당시, 저는 아주 짧게나마 짝사랑을 하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는 남자친구와 깨졌다는 이야기가 있었던 이례, 저와 계속 연락을 주고 받다가 오래지 않아 남자친구와 다시 연락이 닿았다는 소식이 전해졌었습니다.
그 사이 매우 실망한 제게, 같은 학원의 한 여성 한분이 곧잘 제 이야길 들어주곤 하셨죠, 저 보다 두 살이 많은 누나는 꽤나 성격이 밝은 편이였괴, 한국인에게나 타국인들에게나 매우 호감을 갖게 만드는 그런 신비스런 느낌이 있는 사람이였습니다.
각설하고, 사실 제 호주 생활은 매우 어려운 편에 속했었습니다. 돈이 넉넉한 편도 아니였기에 학원을 다니면서도 곧잘 학원을 공부를 잠깐 중지하고 다시 돈을 벌고 학원을 다니는 식의 형태로 계속해서 학원을 다녀야만 했고, 실제로 1달러(1000원)만이 잔고에 남을 만큼 실제로 궁핍한 생활을 거듭했었습니다.
하늘의 운이 닿게도, 어려운 상황에서는 어떠하게든 도와주나 봅니다. 그녀는 계속 학원을 다니고 있을 무렵, 저는 빵공장에 취직을 하게 되었고(물론 학원을 잠시간 그만두었으며, 그때까지 그녀에게는 아무런 감정조차 없었습니다. 단지, 친한 누나동생관계정도) 그곳에서 한달 남짓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성격이 좋게 받아들여졌던 탓인지, 학원을 그만 둔 상태에서도 학원을 다니던 수많은 외내국인들에게 많은 연락이 왔었고, 일을 하면서도 종종 잩게 파티에 합류해 인맥을 관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일들을 제 손으로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일을 하며 돈을 벌면서도 잊지 않아주는 분들에게 감사하며 계속해서 그들과의 연락을 끊지 않았죠. 그리고 한달이 지났을 무렵, 돈이 어느정도 쌓여, 일을 그만두고 학원을 다시 다니기 시작했었습니다.
당시 학원 분위기는 매우 달랐었습니다. 제가 처음 갔었을 때는, 학원에 수많은 한국인들을 비롯, 80여명의 학원생들이 있던 반면, 그들이 졸업하고 난 학원은 매우 썰렁했고, 공교롭게도 한국인들이 저를 비롯 3명 그리고 30명 내외의 아주 작은 소규모 그룹의 학원이 되어 있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익숙한 곳에서 활보를 하며 다니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저는 그간의 힘들었던 생활들을 극복해 나가면서 매우 즐겁게 생활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이전의 한국 분들과는 어느정도의 인맥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로 나가고 있는 상태였고, 공교롭게도 그 누나는 학원에 종종 발걸음을 하곤 했었습니다.
아마, 그때부터가 시작이였던가 봅니다.
[사실, 정말 많은 일들 이 존재하나, 그 이야기들을 매끄럽게 풀어내기 위해선 책 한권남짓의 매우 긴 장편이 될 것 같아, 미흡하지만, 적어보려고 하니 부디 여기까지 읽어주셨다면 끝까지 읽어주세요. 간절함을 담고 있긴하나...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실, 남 녀 사이라는 것 복잡 미묘한 일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누나와 학원의 다른 여동생도 가끔 함께 들렸었는데, 처음에는 인터넷을 하기 위해 들렸었습니다. 알다시피, 그곳은 인터넷이 한국처럼 매우 빠르게 되는 곳도 아니었고, 용량제식으로 제한이 걸려있는 곳이 많았었습니다.
그 때문, 그게 아마 처음의 시작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Intermediate클래스에서 공부를 하던 제가 있는 곳으로 와 셋은 곧잘 이야기도 했고, 가끔은 시간 여유가 나면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즐겁게 이야기도 했었습니다.
공부를 하고자 책을 펼치고 있는 앞에서, 분필로 앞에서 끄적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작지만 정말 귀여운 여자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치만 그럴 뿐, 당시 아마 제 목표는 굉장히 확고해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앞서 있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한 날 저녁 늦게 쯤 연락이 왔었습니다. 계속해서 연락은 하고 있는 중이였고, 저녘 약속이 있다며 시티에 나가는 걸 잘 다녀오라고 하며 집에 있는 사람들과 놀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희집은 한국인과 외국인이 굉장히 적절한 배분율로 섞여 있어서, 매우 집이 활개했고, 성격들도 곧잘 맞았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들과 전부 연락하고 지내고 있습니다.
카카오톡을 계속 주고 받으며, 사실 그 방이 폭파가 되어 내용은 전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이미, 그 사건이 일어나고서도 일년가까이 되가는 시간이 되었네요, 시간이 청산유수라는 말이 딱이지만, 지금 제 모습을 보면 그저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M// 무슨일 있어요?W1// M야, 전철역으로 나올래? 나 술에 많이 취...W2// 오빠, 언니가 많이 취했어요...M// 얼마나 마셨길래 그렇게 취한거야?W1// 나와서 나랑 얘기좀 하자!M// 얘기요?W2// 언니 얘기는 무슨, 오빠 저희 전철역으로 가는데...M// 에휴.. 어쩌다가 그렇게 된거야? 갈게 언제쯤 도착하는데?W2// 지금 출발했으니까, 아마 곧...
이런식으로 이야기가 이끌어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저 또한 걱정이 매우 되었던 상태였고, 당시 문자 내용들이 복잡하게도 이상한 느낌이 굉장히 많이 들었었습니다. 마치, 제 확신을 주겠다는 식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나 할까요.
저도 반, 반정도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녀도 매우 좋아했던 것, 아니 지금은 굉장히 아플만큼 추억에 사려 일어나질 못합니다만, 그 당시 대만 여성과도 굉장히 호감이 있는 관계로 발전하고 있던 까닭에 사실 저는 긴가민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 혼자, 이렇게 감정을 추스리지 못하는 건지 싶었고, 사실 같은 시간이 두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질 않는다고 생각해 둘 다 누르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W1 : M : W2 // 도로
제가 가운데 있는 상태였고, W2는 그 누나와 인근에 사는 여자 동생이였고, 누나가 제 왼쪽에 있었습니다. 이렇게 도보를 걷기 전, 전철역에선 버스가 도착했었습니다. 마치 정말 공교롭게도 그녀들이 전철역에 도착했을 때 말이죠. 그런데 두 여자들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하더니, 버스가 왔다가 가버린 시간까지 나오질 않아 태우질 못했었습니다. 그 다음 버스까지 30분여 남짓한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저는 난감한 상황에 그냥 있을 수가 없겠다 싶고, 술을 깨 주자는 목적에서 걷기로 마음먹습니다.
알다시피, 쉽지 않습니다. 술 많이 먹은 사람을 데리고 걷는다는 것은, 그치만 우왕자왕하면서도 걷는 것을 보면서 피식했습니다. 원래는 제가 제일 바깥쪽에서 걸을려고 했던 건데, 워낙 누나가 몸을 가누지 못한 찰라에 제가 가운데 걷기로 하고 술 취한 두 여자를 가운데서 조절하는 식의 걸음걸이였죠.
곧잘 누나가 휘청거렸기에, 저는 계속해서 누나의 손을 잡아주었고, 아이러니하게도 누나의 손도 꽉 쥐어져있었습니다.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저는 말짱한 상태였고, 확신을 갖지 못했습니다.
지금보면 수많은 확신이 있었던 상황들에서 저는 굉장히 어수선하게 넘기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날 저는 굉장히 확신을 가졌지만, 버스만 태워주었을 뿐, 더이상 데려주지는 못했습니다. 그 땐 이미 제가 학원을 졸업한 상태였고, 게다가 다음날 새벽 네시에 일을 가야 해 일어나야 하는 상황이였기에 쉽지가 않았었죠. 또한 택시가 잦지 않은 곳이라, 돌아오는 것이 꽤 번거로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그때 조금 더 확신을 갖고 데려다 주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이후로 많은 확신을 갖을 일들이 수두룩 하게 생겼지만, 그 누나는 곧잘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행동을 똑같이 하기 일쑤였고, 저는 헷갈리다가 결국 마음을 뒤엎고 하는 경향이 매우 많았었습니다. 
누나는 동물원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저에게 수차례 했던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그러나 당시, 일하는 시간과 학원시간이 곂쳐 쉽게 그럴 수가 없었고, 저는 작전을 짜기 시작했죠. 며칠 전 이야기를 하다가, 저녘에 어쩌다 나온 이야기를 붙잡고 저녘까지 그녀집에가 가서 얻어먹고는 사실, 늦은 시각에 미안했다면서 우리집에서 하는 저녘 파티에 초대하려고 마음을 먹었었습니다.
우리 집 사람들도 정말 흔쾌히 허락해 주었고, 정말 뛸 뜻 기뻤습니다.또한 그 날이 동물원을 가기로 마음 먹은 날이기도 했었습니다.
저는 눈치가 제법 빠른 편입니다. 아니,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동물원을 가기로 한 열흘 전 쯤, 그녀에게 커피를 마시자고 연락을 합니다. 그녀에게서는 오늘은 곤란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어디서 난 용기인지, "잘생기지는 못했지만, 이정도 남자가 제안하면 좀 받아줘야 하는거 아닌가?"라고, 말을 했었습니다.
그녀가 말하길,
"오늘은 곤란해.. 오늘은, 내일은 아마 괜찮을거야."라고 합니다.
그치만, 계속해 연락은 주고 받는 상태였고, 그녀와 친한 여동생과 연락이 닿아 그녀에게 차 한잔을 사주며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었었습니다. 의아함이 많이 들었지만, 여자들의 그날과 연관이 있었겠거니,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눈치를 보아야 하는거, 볼 수밖에 없는것.
숙명이 아닌가 합니다.
그 때부터였을 겁니다.
그녀는 가끔 무언가 숨기고 있는 듯한 내색을 비추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큰 때문이라기 보단, 항상 밝은 그녀의 모습에선 보이지 않는 어두움을 찾아내기가 어려웠기에 저는 그러려니 믿었었습니다.
항상 궁금해 묻고는 했죠, 그녀가 일할 시간엔, 일을 하냐, 쉬는 시간엔 쉬냐.물으면 그녀는 항상 답합니다. 무엇을 했다. 무엇을 했고, 무었을 하였는데..어느날, 그녀가 처음으로 일을 하는 곳에 대해 불평을 합니다.정말로 답답했다고, 이렇게 힘들더라고, 커피나 한잔 마시자고.그러나 그날 역시도 잠깐이었을 뿐, 그녀는 또 감정을 숨기고 맙니다.
그리고 나서 제가 의아했던 그녀가 제 제안을 거절했던 날이 있었습니다.



동물원을 가던 날은, 하나같이 순조로웠습니다.행복했고, 처음으로 그녀의 옆에 단둘이 앉아 행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단둘이 지하철에 앉아 구경을 하고,버스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공교롭게도 외국인 학원생들을 가는길목에 무지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행복을 나누었었습니다.

저는 너무 즐거웠고, 그 날 저녘에 있을 파티며, 오늘은 꼭 고백하겠노라고 다짐을 하고 있는 날이였습니다.

집 사람들과의 이야기도 매우 순조로웠고, 파티도 정말 행복하게 마무리를 내렸었습니다.그리고 전 그녈 위해 데려다 주기로 마음을 먹었죠.시간은 그리 늦지 않은 시각이여서 그녀를 데려다 주고도, 버스 시간이 끊기지 않아 다시 돌아 올 수 있는 시각이었습니다. 저는 안심을 했죠, 모든 게 다 "안정적"이라 할 만큼 순조로웠으니깐요.
그녀가 묻습니다."어디까지 데려다 줄꺼야?"
"누나 집 앞까지."
"그래? 그래, 알겠어, 그러면 아까전 부터 궁금하다던거 집 앞가서 이야기.. 해줄게."
전, 절 좋아한다고, 그 얘길 하겠거니 생각을 하며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그래도 제가 먼저 말하겠노라고 다짐을 하면서 옆에 꼭 붙어 버스 정류장에 달았습니다. 멀지만 멀지 않은 시간이 될 거라 생각했고, 버스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내내 이야기를 나누었었습니다.
호주는 한국과는 굉장히 멉니다. 아주, 멉니다, 정말, 멀어요.
"상복아, 나.. 사실 일 그만두었어."
"일, 일을 그만두었다고? 왜 갑자기? 누나 지금 일 하는거 그리 넉넉한 편이 못 돼잖아. 한 주당 그리 많은 금액을 버는 것도 아니고, 일을 할때마다 한 주 겨우겨우 먹고 사는 거 뻔히 아는데, 왜 갑자기 일을 그만두었어? 일 다시 시작해야지? 갑자기 왜, 언제, 언제그만둔건데?"
"그때... 너한테 그때 이야기 했던 날."
그때입니다. 그녀가 제게 딱 한번 불평했던 날, 전 그 후로도 일이 어떻냐는 말을 그녀에게 수없이 물었었습니다. 그녀는 대답합니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괜찮다고 말할때마다 저는 철썩같이 믿었습니다. 이미 십일 쯤 지난 이야기, 아니 그 이상이 되었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기본적인 돈도, 아무것도 쌓이지 않았었을 거고, 분명 힘든 생활에 있었을 겁니다. 일에 치여서 힘들었을 뿐 아니라, 생계비용까지 힘들었을 겁니다.
"그... 그래서, 빨리 다시 일을 구해야지. 일을 못 구하면 돈을 못 벌고, 돈을 못 벌면.... 살 수가 없잖아?"
"응.. 그래, 살 수가 없어... 그래서, 나 한국에 돌아가려고...."










한국에 돌아간다고 합니다.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하필 오늘인지 모르겠습니다. 현진건님의 운수좋은날도 이것보단 운수가 좋을 겁니다.하필, 왜 오늘입니까. 아니, 차라리 제가 말을 하고 나서 이야길 듣지요.
왜 하필, 그 때, 그 타이밍입니까.
하필, 왜 하필... 마음이 찢어질 만큼 아프게...


5일 뒤입니다. 그녀가 떠나는 날, 그러나 전 포기 못하겠다며 그녀를 붙잡았고, 그녀도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한국으로 훌쩍 떠나버렸습니다.




있던 사람이 공허하게 사라지는 일, 격하게 무섭습니다. 터무니없이 무섭습니다.같은 길인데, 갑자기 있던 사람이 없습니다.길을 걸을 때마다 눈물이 솟구처 오르고, 온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립니다.마음이 추스려지지 않아, 길을 걷다가도 숨도 못쉬고 아파서 죽을 지경입니다.
있던 곳의 퍼스 시티에 절 굳이 붙잡고 시티에 나가겠다던 같은 집 내의 친구가 절 붙잡고 시티를 겨우 끌고 나갑니다. 그런데 어제 있던 이야기를 그 친구에게 하다가, 울음이 터졌습니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걷는 길 한복판에서... 저는 펑펑울었습니다.
어찌해야 할 지를 모르겠다고, 절 끌고가 성당 뒤편에 서게 만들고는 펑펑울라며 등을 토닥여줍니다.
펑펑, 한시간 두시간,
제 인생에 그렇게 많이 울었던 적은 없을 겁니다.















전 말입니다. 결심을 했습니다. 포기 않겠..... 다고.그런데 포기를 했습니다.
포기를 하고 싶지 않았지만.
전 대전엘 삽니다. 대전 아주 좋은 곳입니다.그런데 수능도 형편없이 본 데다가, 굳이 국립대학과 컴퓨터 공학을 가겠다고 찾다가 찾은 곳이, 여수에 위치한 한 국립대학교입니다. 여수는 매우 먼 곳이여서 대전까지도 3시간하고도 30분, 무궁화호를 타야 했습니다.
하물며, 그녀가 거주하는 서울까지는 오죽하겠습니까.
전, 전 호주에 있는 내내,
아니 그녀가 떠나고 난 한달 뒤에, 그녀에게 말합니다.




"당분간 연락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난 생각 많이 한 거니깐, 날 이해해 달라고."



그녀는 이모티콘 웃음 표시 하나를 주며, 우린 한달간 연락, 하니 그 이상 하지 않았었습니다.그녀도, 그녀도 하지 않았습니다.



참 을 수 없 는 그 리 움 은, 극 복 하 기 힘 든 가 봅 니 다.
그 녀 에 게 말 하 고 난 한 달 뒤,
전 꼬 박 그 녀 에 게 연 락 을 다 시 합 니 다.
스카이프에 접속해달라고, 이야기, 할 말이 있다고.



현실적으로, 지금 당장 헤어지는 건 지금이 어렵겠지만, 먼 미래를 보았을 때, 친구로써 잘 지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한 일입니다. 참 한심하고, 바보같은 일입니다.
그녀와 전 스카이프에서 주절이 떠듭니다. 그러나 정말 실없는 이야기들로만 가득하고, 주위를 빙 돕니다.그러다 한참이 지나고, 전 그녀에게 말합니다.
"나, 여태 여자친구 만들어 본 적 없는데, 만들면 꼭 다짐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고, 꼭 한 여자만을 사랑하겠다고, 그렇게 마음을 먹었었어, 그러면 안될까?"
"근데.... 난 우린, 그냥... 편한 누나 동생사이였으면 좋겠어. 더는..."
알겠다고, 알겠다고 그랬습니다. 전 힘이 없었거든요. 제 결심을 그렇게 말했지만, 그렇게 말하는 누나에게 저는 붙잡을 용기가 나질 않았습니다. 너무 무서워서 더는 물어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더 물었다가는 연락이 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친구... 라는 단어 굉장히 무겁습니다. 무거운 이름입니다. 끊기기 힘든 이름일텐데, 그렇게 엇갈린 실타래처럼 묶인다는게 이토록 싫은 일일줄 몰랐습니다.
그녀와 그 후로도 수 차례 연락은 했습니다. 하고 지냈습니다.
전 어떻게든 다시 한 번 용기를 내고자, 사진기를 들었습니다.
그녀가 못해본 일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내가 그 일들을 대신해서 그녀가 다시 호주로 오고 싶게 만들자는 목표로... 그렇게 일을 시작했습니다.
트레인 플랫폼 내 있는 전 노선의 마지막 역까지 가서 곳곳의 소중한 기억들을 사진에 담고, 그녀와 저, 각각의 호주 생활을 담은 이야기들을 하나로 만들어 이야기 스토리 앨범을 제작해 주자구요!
길도 잃고, 하루종일 애도 썼습니다.
사실, 의욕이 나질 않습니다. 그녀에게 말하길,
"누나에게 선물도 줄 게."라고 했습니다.
오직 그녀 선물만 준비했습니다. 아마 그녀는 모르겠지요.
아니, 알 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에 와서, 지나칠 정도로 저는 귀국을 빨리했습니다. 제가 있던 곳에서 하루도 더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가 없는 곳에서 저는 패닉상태로 계속 살고 있다시피 했었으니깐요. 그 생활을 더 한다는 건 제게 사치 그 이상의 것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귀국한 이후, 12월 19일.....아니, 이틀전 전 그녀에게 말합니다.
"누나, 서울에서 19일날 만날래?"
한참을 아무말 없던 누나는 이렇게 딱 한마디 합니다.
".....무섭다 너."

사실, 용기가 안납니다. 아마 그 누나가 받은 상처가 커서 그런 말을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전 아주 큰 상처를 준 격이니깐요.
그 날, 저는 컴퓨터를 덮고 자리에 누운 이후로 잠을 못잤습니다. 그녀를 만나로 가기로 한 날 저는 꼬박 세시간 남짓만 잠을 잘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섭다는 말이, 이렇게 무섭게 들리...는건 처음이였습니다.

그녀 얼굴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신촌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며, 커피숖에가서 커피도 한 잔 마셨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오늘 가야 할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꺼냅니다.
"그래, 가..."라고 했습니다. 볼 일 보라고.
신촌역 출구 앞에서 그녀는 젤 데려다 주겠다고 내려갑니다.
그녀와 함께 전 다시 올라옵니다. 제가 데려다 주겠다고, 그녀는 가야 할 곳이 있다고 합니다.
알겠다며 저는 가방을 뒤적여 선물을 꺼내줍니다.
그녀는 너스레를 떨며, 열어보아도 되냐고 묻지만, 전 이후에 열어보라고 합니다.















그리곤 거짓말 같지만, 한번도 돌아보지 않고, 그 긴 계단을 다 내려왔습니다.















버스터미널까지 계속해서 달렸고, 버스를 타고 나서도 의미없이 창 밖 서울만 계속해서 바라보았습니다.
대전에 도착해서도 서울쪽만 보았고, 서울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8개월이 지났습니다.
호주에 있던 지인들이 한국에 귀국을 하였고, 모임에 초대를 받아 가게 되었습니다. 그녀도 저도 같은 모임에 초대를 받았고, 다른 일행이 공교롭게도 많이 늦고 빠졌습니다.
제가 그녀 다음으로 곧바로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모임장소는 서울이였기에 저도 길을 헤메다가 늦은 편이였는데, 그녀도 바빴나 봅니다. 보고는 아무말 없이 손을 흔들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합니다. 저도 너스레를 떨며 아무렇지 않은 척 이야기를 합니다.
옆에 있던 친구가 절 빤히 쳐다봅니다.
전 아무말도 하지 않고 다른 주제로 넘어갑니다. 그 친구도 넘어가 주었습니다.
그녀는 1차에서 가볍게 저녘을 먹은 후 자리를 빠졌습니다. 약속이 있다며 갔습니다.















그리곤, 잘 가란 말과 함께 보냈습니다.
내색하지 않습니다. 내색하기도 싫습니다. 그녀앞에서 아픈 척도, 아파하는 것도,
다 보여주기 싫습니다. 미안한데,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답이 없습니다. 제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정말 아무것도 없나봅니다.
용기도 이젠 용기도 없는데 마음만 계속해서 아파옵니다.
지난 9월 1일 이후로, 끊이지 않는 기억속에 맴도는 일 때문에, 그리고 얼마전 그 모임서 만났던 일 때문에 다시 이렇게 마음이 아플 거라곤 생각도 못했습니다. 더 아프지 않을 거라고 제가 내련 결론인데도....
전 정말 미련한가 봅니다.















읽어주셔서 갑사합니다.
그녀가 제게 곧잘 하곤 했던 말입니다.
"I trust you."
추천수0
반대수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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