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번 올림픽을 마치며.. 서른 한살의 단상
이동훈
|2012.08.13 11:23
조회 62 |추천 0
올림픽을 마치며..
제 기억 속 첫 올림픽은제가 5살때86년 서울 아시안 올림픽이었습니다가난하던 대한민국에서서울에 살지만 중하위층 시민 가정이던우리 가정과 주변 사람들그리고 성장 위주의 정책으로 모두가허리띠를 조르며 살아가던 사람들은임춘애 선수의 라면먹고 뛰었다는헝그리 정신 금메달 획득에 감동 받으며 우리들의 미래를노력이라는 이름으로 꿈꾸게 했습니다달력에 등장하던 임춘애 선수의 사진은어린 시절의 제게도 감동을불러 일으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88년 서울 올림픽아직 서울 도심에도 교통체증이라는말이 없을 무렵이었던경제 성장보다는 근대 역사의슬픔을 유난히도 많이 겪은세계의 변방국이던 우리 나라에서기적을 펼쳐 보였습니다
내부로는 군사독재의 연장선외부로는 냉전 체제의 종반부였지만역시 미국은 친구 소련은 빨갱이 악마로취급되던 반공 교육에 국민이 길들여져있던 그 시절 굴렁쇠 소년은 개막식에서세계인 앞에서 대한민국의 희망을그려 보였습니다
손에 손 잡고 라는 그룹 코리아나의대한민국인이라면 감동에 북받칠 수밖에 없을 노래가 세상에 울려퍼졌던그 시절
80 모스크바 올림픽에서 미국의 결장84 LA 올림픽에선 소련의 결장냉전이 극으로 치닫던 그 시절지정학적 위치로 극단의 위기를 품고살아온 근대 역사의 희생양인한반도의 반토막 가난한 그 나라에서미국과 소련의 참가 동독과 서독의참가는 세계에 평화의 화합이 가능하리란희망과 개발도상국이 개최국이 될 수있다는 꿈을 널리 펼쳐 보였습니다
변방국 대한민국은 놀랍게도4위를 차지했고대한민국인들은 기쁨과 환희에 모두를부둥켜 안고 희망을 키워갔습니다
게다가 84년 부터 시작된 양궁금러쉬는 물론 88년에도 이어가우리에게 꿈은 이루어진다는 가르침을심어주었습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노태우 정권의군사독재의 연장선에 대해 끝 없이타오르고 있었고 대학생들을 중심으로한 정권에 대한 불만은 끊임 없는데모로 이어져갔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세계의 대 화합을세상에 보여주었던 가능성의 이면에우리 나라는 근대를 넘어 현대의 역사세계의 변동성을 받아들이며 끊임 없는사투를 벌여나갔습니다
그런 일들이 왜 일어나는지 알 수없던 저는 연세대 앞에 산다는 이유로집으로 날아오는 화염병과 전투경찰이뿜어내는 최류탄의 두려움에 떨고살아가며 지독히도 대학생들을원망하곤 했습니다
평화의 상징 올림픽이 끝나도 대한민국은 여전히 혼란의 세대성장통을 지독히도 앓고 있었습니다
삼성등 대기업을 중심으로 성장위주의 정책이 빛을 발할 때보통 사람들로 불리우던 사람들의삶의 질은 그닥 나아지는 것 같지않았습니다
그런데소련이 해체하고 동독과 서독이통일하면서 세상은 민주화의 강한바람을 정면으로 맞이했고
우리 나라도 오랜 군사정권을마치고 경선을 통해 김영삼 대통령이당선 되었고 경제 위주의 성장을이어나갔습니다 여전히 대학생들의데모는 극에 달했을 때 입니다
그 무렵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올림픽이 열렸고 우리 나라의황영조 선수는 1936년 손기정 옹의나라 없이 1등한 설움, 한 을 갚아주는금메달로 세상에 대한민국을 널리알렸습니다
역시 양궁을 비롯한 종목에서 금메달을놓치지 않았고 세상에 대한민국을널리 알릴 수 있었습니다
같은 해 릴레함메르 동계 올림픽에서김지훈 선수가 1,000m 쇼트트랙에서처음으로 금메달을 획득하면서스포츠 강국으로 확실히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1992년은 서태지의 등장과군사독재의 마감 헝그리 정신 황영조의금메달 그리고 X세대(김원준, 이병헌, 신은경)로 대표되는압구정 오렌지족이 세상의 기존 질서를크게 흔들어 놓은 시대였습니다드라마 질투 로 트랜디 드라마가가족중심으로 이어지던 드라마 판도를도시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의관심사로 시각을 변모 시켰습니다
당시 일본과의 문화 수교가 막혀있던시절 일본 문화는 끊임 없이 유입되었고일본을 싫어해야 하는 민족적 정체성과일본의 자극적 문화에 이끌리는 젊은이들의 욕망이 뒤섞이던시절이었습니다
그렇게 1996년 미국 아틀랜타에서올림픽이 열렸고 우리나라는 역시양궁을 비롯한 금메달을 획득했고그에 걸맞춰 비약적인 경제 성장으로세계에 대한민국의 존재감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1997년 후반 태국 및 동남아에서 시발된IMF 의 구제금융지원으로 대한민국경제는 곤두박질 쳤고 당시 많은가정의 가장이 실직하는 어려운 시대가도래했습니다한강의 기적은 이대로 끝나는것인가하는 위기가 사람들을 두렵게했습니다
그러나 일제시대의 구국운동을본딴 금모으기 운동들을 통해 외화벌이로 다시 한번 대한민국은희망을 찾고자 노력했습니다
또한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은경북대구 로 수십년간 이어진 정권을바꾼 최초의 야당의 집권으로대한민국의 서민들에게 삶의새로운 기대를 불러 일으키게 했습니다
그때 프랑스 월드컵이 열렸고대한민국인들은 붉은 악마 라는한국을 열정으로 붉게 수 놓으며스스로 희망을 키워갔습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국기 태권도가 시범종목으로 채택되며대한민국의 향상된 지위를세상에 알렸고 역시 양궁은 놀라운금메달 행진을 보여주었습니다
2001년 초 미국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는 오노가 헐리우드 액션으로김동성의 금메달을 앗아갔고대한민국은 그 선수의 아픔이 자기아픔인양 들끓는 여론이 대한민국의 국력을 키워야 한다는민족적 각성으로 이어갔습니다
그 무렵 일본 문화 수교가 열렸고우리 문화는 일본 문화에 잠식 될것이라 전문가들의 예측이 흉흉하던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발달은기우에 아랑곳 없이 컨텐츠를세계로 수출하는 반전의 쾌거를이루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우리 국민을하나로 모으고 달라진 대한민국의국력과 스포츠 강국의 위상을과감없이 세상에 드높였습니다
저는 그때 이등병이라 대한민국 제1의 문화 행사에 참여하지못해 제 인생에서 가장 아쉬운 순간중하나라 생각하며 군 입대 날을연기하지 않은 것을 매우 후회 합니다
풀 뿌리 민주주의 로 대변되는서민의 대통령 노무현이 정권을 이었고기성 권력의 견제와 젊은이들의 희망이끝 없이 대립되는 혼란이 여전히이어져갔습니다 그러나 예전처럼무력 투쟁은 찾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FTA 를 고민하며 농민과전경의 대립 중 농민의 창에 젊은전경의 눈이 관통되었던 아쉬운 순간은잊기 어렵습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는국민들을 슬픔에 빠지게 했습니다기관사의 도덕적 해이가 230명이넘는 승객을 죽음으로 이어가게 함은잊을 수 없는 비극이었습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윤은혜의 새벽축구 발언이 대한민국을실소하게 했는데 이는 2006년 미디어오늘이 SBS 미디어를 방문하여자료 판독한 결과 사실이 아님이밝혀졌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들었다고하고 루머는 확산되었지만 결론을볼 때 실제와 루머의 갭 얼마나 큰지느낄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사실에는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극적인 루머의유포와 확산에 관심을 기울여갔습니다
올림픽은 역시 양궁 태권도의금빛 물결을 이어갔고 MBC김주하 앵커의 그리스여신 컨셉은시청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습니다
이 당시부터는 국민들의 염원이과거 처럼 헝그리 정신으로대한민국을 드높이자 보다올림픽을 문화의 축제로 인식하고즐기는 행사로 변화했습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의 부진은국민들에게 큰실망을 가져다 주었습니다헝그리정신의 부재를 지적하는 시선이고개를 들며 각성을 촉구했습니다
2008년 광저우 올림픽은박태환 장미란의 기적을 세상에널리 알리며 세상에 대한민국의기적을 다시 알렸습니다세계경제위기로 흉흉한 세계에서크게 휘둘리지 않고 잘 버텨내며성장을 이어갔습니다안타깝게도 여자 개인전양궁에서 금메달을 유일하게 놓쳤지만태권도 전 체급 금메달로13개를 따며 최고 기록을 세우며감동을 전해주었습니다
이명박 정권의 시작은 야당 집권 10년을 강하게 비판하며대북정책과 경제 분야의 개혁을추구해갔습니다대운하로 시작된 계획은 여러 변화를거치며 사대강으로 실현되어 갔고대한민국 내부의 갈등은 여전히멈추지 않았습니다
2009년 벤쿠버 동계 올림픽은 대한민국의 김연아를 세계에 알리며완벽한 여신의 연기로 한 없는감동을 불러 일으켰습니다변방 피겨 종목에서 김연아의세계기록의 금메달은 대한민국을다시 한번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국가임을 널리 알리게 해 주었습니다
2010년 남아공 올림픽에서는다시 16강에 진출하며 체면을 겨우살렸지만 아쉬움은 달래기 어려웠습니다기대치가 이미 너무 높아졌기 때문인듯 합니다
그 외 청소년 대회 아시안게임패럴림픽 등에서 대한민국은 국가의 규모나 인구 수에 비해놀라운 결과를 보여주며 대한민국의위상을 드높였습니다
그리고 2012년이 되어제가 기억하는 7번째 올림픽에서제가 가장 존경하는 아티스트비틀즈의 폴 메카트니의 공연으로시작을 알렸던 그 올림픽에서심판 오심에 같이 분노하고선수들의 선전에 희망을 느끼고아쉬운 결과에 같이 아파했습니다
일본을 꺾고 동메달을 차지한대한민국 축구팀의 성취는 우리의 가슴에 열정의 불이 타오르게했습니다
다만 이렇게 큰 행사의 끝에역사의 희생이 또 하나의 선수에게전가 되어 동메달이 박탈될 위기에치닫게 된 점이너무나도 아쉽습니다
독도는 우리땅 우리 땅인게 당연한데 우리땅이라하지 못한다는게
홍길동 호형호제 불가도 아닌이 시점에 같은 국민이라도 원리원칙을 타개하며 동메달 박탈은당연하다 라고 말하는 여론의대립을 보면서 한 없이 깊은 한숨이저절로 나옵니다
어쨌든 또 한번 놀라운 대 기록을세우며 세계에 대한민국을 스포츠최강국중 하나로 드 높여준 선수단들께이런 값진 추억을 안겨주어감사합니다
또한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최선을다해 열정으로 젊은 삶에 도전한 선수들께 감사와 격려를 보내고 싶습니다
제 삶은 목표와 열정에 앞서얼마나 뜨거웠던가를 생각하며반성합니다
역동의 현대사를 겪으며 살아온대한민국의 삼십대로서 이제삶의 책임감을 느끼며 자기 분야에최선을 더욱 다하며 살아가겠다고다짐합니다
내 조국 내 나라를 위한 정체성을확립하며 나 국가의최선의 결과를 도출함에 있어비록 실낱같을지언정 미력이나마힘을 다하겠다고 마음을 다집니다
앞으로 4년 후2014년 브라질 올림픽이 개최될 때제 삶의 궤적은 진보해있기를 염원하며대한민국 내 조국의 성장과 안녕이내 인생의 노력으로부터 시작됨이라믿고 부단히 힘쓰고자 합니다
대한민국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