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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제발 이 글 한 번 읽어주세요 ...

애국자 |2012.08.15 21:20
조회 48 |추천 0

지금 외교상으로나 정치상으로나 독도의 영유권 문제가 크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독도 세레머니 일로 더 관심이 높아 지고 있는 이 시점에

우리는 독도가 왜 우리의 땅인지 그 정확한 근거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독도가 우리땅이라고 주장을 외치는 것 보다

역사적인 자료를 뒷받침 하여 우리의 의견을 더 내세워야 합니다.

저는 비록 아직 학생인 신분에 불과하지만

저의 작은 노력으로 인해서

모든 사람들이 독도에 더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가져다 주었으면 합니다.

이 글의 내용을 통해

왜 독도가 우리땅이며 왜 우리가 지켜 나가야 하는지

진정한 한국인 이라면 이 명백한 사실을 어느 누구에게나 당당하게 외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독도는 우리땅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지켜 나가야 합니다!

이 글이 많은 사람에게 읽혀 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진도 같이 첨부하려 했으나 잘 안되는 바람에 이렇게 글만 올립니다 (죄송ㅜ)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시면 더욱 구체적인 설명이 나와 있으니 꼭 들어가 보시길 바랍니다)

 

◆    첫 째!

◆    http:// www.dokdohistory.com

 

일본은 관계없는 조선땅

일본 메이지 정부도 ‘독도는 조선땅’ 인정

1905년 독도를 병탄한 메이지 정부조차도 처음에는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다.

 

메이지(明治) 정부는 사다 하쿠보(佐田白茅) 등을 부산에 파견했다. 그들의 임무는 조선과의 국교 재개 및 병탄 가능성을 내탐하는 것이었는데,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로 되어 있는 전말’을 조사하라는 지시사항이었다.

 

1870년 조선을 내탐하고 귀국한 사다 하쿠보 일행은 ‘조선국교 제시말내탐서(朝鮮國交際始末內探書)’라는 제목의 조사결과 보고서를 제출했다. 병탄을 주장한 사다 하쿠보였지만 “독도는 울릉도의 부속 섬이며 독도에 관해서는 기록된 서류가 없다”는 보고를 했다. 결국 그의 보고는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인정한 당시 외무성과 태정관의 인식을 확인한 셈이다.

1877년 메이지 정부는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더욱 분명하게 인정한다.

 

일본 내무성은 1876년 10월 16일자 공문을 통해 ‘울릉도와 독도를 시마네현(島根縣)에 포함시킬 것인가?’의 여부에 관한 질의를 시마네현으로부터 받는다. 내무성은 약 5개월에 걸친 심층 검토 끝에 이 건은 1696년에 끝난 문제로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의 영토로서 ‘일본과 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한편 1905년 1월 28일 독도의 편입을 일방적으로 결정한 일본 정부는 한동안 그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다 1906년 3월 28일에 시마네현(島根縣) 관리들이 울릉도를 방문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독도를 거쳐 울릉도에 들른 시마네현 관리 간다 요시타로(神西由太郞) 등 일본인들이 울릉군수 심흥택에게 독도가 일본에 편입되었다고 알렸던 것이다.

 

독도가 일본의 영토가 되었다는 소식에 놀란 심흥택은 바로 다음 날 이 사실을 강원도 관찰사 이명래에게 보고하였다. 이명래도 이 사안의 긴급성과 중대함을 인식하고 울릉군수의 보고 내용 그대로 의정부 참정대신에게 보고하였다.

의정부 참정대신 박제순은 1906년 5월 20일자 지령 제3호를 통해“독도가 일본의 영토가 되었다는 것은 전혀 사실무근이니, 이의 형편과 일본인이 여하히 행동하였는지를 다시 조사 보고할 것”을 지시하였다.

 이를 통해 당시 정부가 독도를 우리 영토로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음을 잘 알 수 있다.

 

◆    둘 째!

◆    http://dokdo.mofat.go.kr

 

가.   독도는 지리적으로 울릉도의 일부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   독도에서 가장 가까운 우리나라 울릉도(독도로부터 87.4㎞)에서는 맑은 날이면 육안으로 독도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하여 독도는 역사적으로 울릉도의 일부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   이러한 사실은 우리나라 고문헌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예컨대 조선 초기 관찬서인 『세종실록』「지리지」 (1454년)는 “우산(독도) ∙ 무릉(울릉도) … 두 섬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특히, 울릉도 주변에는 많은 부속도서가 있지만 날씨가 맑은 날에만 육안으로 보이는 섬은 독도가 유일합니다.

 

나.   우리나라가 독도를 우리 영토로 인식하고 통치해온 역사적 사실은 우리의 관찬문헌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   조선 초기 관찬서인 『세종실록』「지리지」(1454년)는 울릉도(무릉)와 독도(우산)가 강원도 울진현에 속한 두 섬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섬이 6세기 초엽(512년) 신라가 복속한 우산국의 영토라고 기록하고 있으므로, 독도에 대한 통치 역사는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   독도에 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1531년), 『동국문헌비고』(1770년), 『만기요람』(1808년),『증보문헌비고』
(1908년) 등 다른 관찬문헌에서도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   특히『동국문헌비고』「여지고」(1770년) 등은 “울릉(울릉도)과 우산(독도)은 모두 우산국의 땅이며, 우산(독도)은 일본이 말하는 송도(松島)”라고 기술함으로써, 우산도가 독도이며 우리나라 영토임을 더욱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다 읽은 당신은 진정한 애국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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