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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경작의 섭리 (옥창재님 봐 주세요^^;)

하얀비 |2012.08.16 23:51
조회 362 |추천 3

 

 

 

 

 

 

 

아까 댓글로 말씀드리겠다고 한 답변입니다. 무지개

 

많은 사람들이......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인생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인가?" 등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깊이 생각합니다

세계적인 성인이라고 불리는 공자나 석가모니, 소크라테스도 근본적인 해답을 찾고자 힘썼습니다.

공자는 인을 정치, 윤리상의 이상으로 하는 도덕주의를 설파해 많은 제자를 양성했고,

석가모니는 생로병사의 번뇌에서 해탈하고자 스스로 고행의 길을 갔으며,

소크라테스도 나름대로 진리를 추구하며 참다운 지식을 탐구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근본적이 해답을 찾지 못하여 참된 진리에 이르지 못했으며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굳이 많은 천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만드신 목적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때때로 홀로 있는것이 좋지만 진정 자신의 마음과 맞고 서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상대가 있다면 더욱 행복하고 즐겁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대상을 원했기 때문에 인간을 창조 하셨습니다.

가령, 옥창재님께 두 자녀가 있다고 해볼게요..

한 자녀는 시키는 대로만 순종할뿐 아무런 감정이 없는 듯 자신의 의견이나 사랑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다른 자녀는 자신의 의지 가운데 때로는 부모를 서운케 하지만 이내 돌이키며 사랑스럽게 매달리기도 하고 여러가지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 합니다.

그렇다면 이들 가운데 어떤 자녀를 더욱 원하고 사랑하시겠습니까? 당연히 후자일 것입니다..

만약, 가정에 로봇이 있어 밥도 짓고 청소도 하며 모든 시중을 다 들어준다고 해볼게요.

그렇다고 해서 자녀보다 로봇에게 더욱 정이나 사랑이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로봇이 아무리 유익하다고 해도 자녀를 대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6장 5-6절에,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셨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이렇게될줄 몰랐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 전능하시니 만세전에 이미 모든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사람이 불순종하고 타락하여 한탄하고 근심하게 될것을 알았지만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자녀를 낳아 기르는 부모의 심정을 안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자녀를 낳아 기른다는 것이 얼마나 고생스러운 일인지요?

잉태한 열 달 동안 여러고통이 따르고 해산할 때에도 큰 수고를 해야 합니다.

자녀를 먹이고 입히며 가르치기 위해 얼마나 힘써 일하며 밤낮으로 수고해야 하는지요..

이처럼 고생을 하면서도 부모가 자녀를 낳아 기르는 이유는 부모의 사랑을 느끼고 부모를 진정으로 사랑해 줄 수 있는 대상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수고해도 자녀를 낳아 기르는 기쁨으로 행복한 것이지요

물론 모든 자녀가 성장해서 부모에게 효도 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효도하는 자녀가 있는가 하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녀도 있기 마련이지요..

그러나 부모는 이를 알면서도 자녀가 훌륭하게 성장하여 큰 기쁨이 될것을 기대하며 고생이라 생각지 않고 많은 수고를 하는 것입니다.

"내 자녀가 자라면서 삐뚤어지거나 잘못될수도 있으니, 두려워서 아기를 낳지 않겠다" 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사람이 불순종하여 타락할 것과 이로인해 근심할 것도 알았지만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가 나올것을 알기 때문에 기꺼이 인간 경작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이는 농부가 농사짓는 것과 비유할 수 있습니다.

농부가 열심히 땅을 갈고 씨를 뿌리며 농사를 짓는 이유는 추수때에 많은 소산을 거두기 위해서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영광을 돌리는 참 자녀를 많이 얻기를 원하십니다.

농부는 최선을 다해서 경작하지만 추수때에는 알곡만 있는 것이 아니라 쭉정이도 섞여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알곡은 창고에 들이고, 쭉정이는 불에 태웁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인간 경작을 마친 뒤에는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십니다.

(마 3:12절,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또한,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두신것은 결코 사람을 멸망케 하려하심이 아닙니다.

오히려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을 오해할 수 밖에 없으며,

설령 하나님을 믿는다 할지라도 많은 분들이 참된 신앙생활의 목적을 깨닫지 못한채 교회를 다니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선악과를 아담이 따먹을수도 있는 동산 중앙에 두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상대성을 알게 할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입니다.

 

쉬운 예로,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와 가정 형편이 아주 어려운 아이가 있다고 해볼게요..

만약 두 아이에게 크리스마스날, 똑같이 장난감을 선물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항상 풍족한 아이는 감사할줄 모르겠지만, 가난한 집에서 자란 아이는 마음 중심에서 감사를 느끼며 행복해할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에는 상대성이란 것이 있어서 어떤 것의 참 가치를 알려면

그와 반대되는것을 알고 경험해 보아야 합니다.

즉, 참 행복을 알려면 여러가지 어려움을 통해 행복의 참된 가치를 알아야 하는 것이지요..

또한,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질병으로 고통당해 본 사람이라야 더욱 절실히 느낄수 있으며,

사망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알때에 생명의 귀중함을 아고 천국을 주신 하나님께 마음 중심에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행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상대성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들이 행복한지, 또 행복이 뭔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아담은 처음부터 풍요로운 에덴동산에서 마음껏 누리며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까지 받았고,

땀 흘려 수고하여 얻은것이 아니므로 하나님이 주신 모든것에 대한 소중함과 고마움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상 저의 답변이었습니다. ^^;

부족하지만.. 또 궁금하신점이 있으면 제가 아는 한 최대한 성심껏 답변해 드릴게요~

예수님을 핍박하고자 하는 마음이라도... 그 중심에는 분명 하나님을 찾는 영이 깨어 나려고 한다는것을 믿습니다.

그럼, 질문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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