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항상 네이트 판에 눈팅만하는 나이 21살의 학생입니다.
사실 네이트 판이 대화의 장이라고는 해도 익명성을 이용하여 상처받을 댓글들을 너무 많이들 쓰셔서,
또한 독립운동, 일제 등의 화제는 너무 민감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익명으로 글을 써봅니다.
할아버지는 항상 제게 말씀해주셨습니다.
"느이 증조할아버지는 독립군 대장이셨다."라구요.
증조할아버지는 고노무현대통령시절 독립군임을 인정받아 훈장을 받으셨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 연금만으로 시골에서 살아가고 계십니다.
아버지는 택시를 하십니다.
택시를 하기까지 아버지는 비가오나 눈이오나 무거운 가구들을 배달하며 성실하게 일하셨습니다.
힘들게 개인택시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아버지 혼자 버는데 네식구 먹고 살기에 빠듯하겠죠.
저는 다행히 제가 어렸을 때부터 지망했던 국문학과에 입학하여 나름대로 성적을 받으며 장학금을 받고
학교 다니고 있습니다. 물론 거의 국가장학금이지만요^^; 다른 분들은 국가 장학금이 안나온다고 하시던
데 우리집은 국가에서 가난하게 봐줬는지(^^;) 그래도 백만원 쯤 나오더라구요. 다행이죠.
아, 물론 동정표 사려는 목적의 글은 아닙니다. 전 그런 글을 정말 싫어합니다.
아무리 빠듯해도 대학교는 잘 다니고 있는걸요. 이 정도면 전세계에서 상위 몇 퍼센트의 교육 수준이죠.
더 잘사시는 분들은 가소롭게 느끼실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름 복받고 잘 살고 있다고.
제가 앞부분의 글을 쓴 이유는,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을 그대로 보여드리기 위해섭니다.
잘사는 독립운동가 후손도 있지요. 그리고 이렇게 실제로 3대가 망하는 후손도 있습니다.
많은 덧글을 봐왔는데, 동정팔이를 하지말라는 덧글, 본인이 독립운동한 것도 아닌데 왜 후손에게 보상을
하냐는 덧글, 6.25참전이나 베트남전 참전한 유공자들이 더 유공자 아니냐는 덧글.
이런 덧글이 참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참 기분이 묘해지더라구요.
동정팔이라.........
신문기사는 동정팔이를 하기도 합니다. 기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일종의 조작이겠지요.
그렇지만 후손 본인들에겐 동정팔이가 아닙니다. 생활입니다. 왜 그렇게 공격적으로 나오셨는지요.
후손에게 보상한다는 것은 때에따라 반발을 일으킬 수 있겠으나, 참 민감한 문제이지요.
독립운동가이셨던 선조분들은 나라를 위해, 민족을 위해, 가족을 위해 운동을 했겠지요.
그들은 현자도 아니고 산신도 아닙니다. 그분들도 한 가정의 가장이고 누군가의 아들이고 손자였겠지요.
국가를 지키면 민족이 살고 가족이 살고 후손이 삽니다.
그런데 본인이 몸바쳐 지킨 나라에서 일제 앞잡이들의 후손은 떵떵거리며 살고
본인의 후손은 어렵게 살고 있으면, 그리고 우리들이 그걸 보고 자라면,
후에 누가 국가를 지키려고 할까요?
왜 그분들의 희생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들이 이렇게 많은가요?
독일유학생님의 글에서 우리나라의 문제 중 하나가 일제 잔재 청산의 부재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일제 잔재 청산.
안되어 있지요.
제 단편적인 지식으로 당시 우리나라의 역사를 조금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우리나라는 해방 후 미군정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북한과 남한이 나뉜 것이 미국과 러시아의 세력 다툼 탓이라는 것은 다들 배워서 알고 계실겁니다.
미국은 하루라도 빨리 자신들의 영향하에서 자신들의 영향을 받는 정부가 생기기를 바랐고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해외파 독립운동가로서 미국과 말이 통하는 존재였습니다.
반면 무장투쟁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던 김구는 미국이 보기에 그리 적합한 지도자가 아니었겠지요.
그래서 김구는 입국할때도 임시정부의 이름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일반인으로 초라하게 입국하지요.
(물론 여러 뒷 사정을 봤을 때 어느쪽이 옳다 그르다 할 수는 없습니다. 둘 사이에 얽힌 여러 문제를 모두
살펴본다면 결국 우리나라가 통일 정부를 만들지 못한 것은 북한지도자 뿐만아니라 우리나라 여러 지도자
들의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아무튼 미국을 등에 업고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미국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또한 그는 해외파 독립운동가였기 때문에 국내 지지기반이 강하지 못했지요.
그래서 국내 돈 많은 부자들과 손을 잡을 수 밖에 없었는데, 해방 후 부자라고 하면 당연히
일제와 손을 잡은 부류겠지요.
어떤 상황으로 보아도 일제 잔재 청산은 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그렇게 일제 잔재 청산없이 우리나라는 2012년 현재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독도 문제에도 열심히 대응하고 있고, 정치계도 많이 변하고 있지요.
21살밖에 먹지 않은 주제에 감히 말하자면 시대가 변하는 것 같다고 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제 뿌리가 참 궁금해졌습니다.
증조할아버지는 독립군 대장이셨다고 하시지만, "대장"이었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습니다.
연락책이셨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정확한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어머니께서 증조할아버지가 사셨던 마을에 가서 여러 이야기도 들으셨지만,
증조할아버지때문에 하도 고생들을 하셔서 반응이 참 냉랭하셨답니다.
우리가족은 족보도 없습니다.
항상 할아버지가 "경주김씨 계룡군파"라고 이야기 해 주셨지만,
제가 찾아보니 계룡군파는 계림군파의 잘못이라는 검색결과만 나오더군요.
이젠 할아버지도 90세이십니다.
고생하신만큼 오래사시길 바라고 있고, 아직 큰 병은 없이 살고 계십니다.
그렇지만 이젠 기억이 깜빡깜빡하십니다.
제가 제 뿌리를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법은 이제 스스로 찾는 것 밖에 없습니다.
제 증조할아버지께서 정말로 독립군 대장이셨는지.
아니더라도 어떤 일을 하셨는지 알고싶습니다. 그게 후손 된 도리라고 생각하기도 하구요.
또한, 제 족보도 다시 찾고 싶습니다. 제가 어디서부터 내려온 존재인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간 후 생활에 치이며 뿌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지금이 제 뿌리를 찾고, 증조할아버지에 대해 알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필 일본과 감정이 격해진 시기에, 반일 감정을 타고 쓰는 글 같아 조금 마음이 불편하지만,
다른 독립유공자 후손분들과, 경주 김씨 후손분들과 대화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노력하다보면 분명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또한 다른 분들도 저 같은 상황이라면, 자신의 뿌리를 한 번 찾아보는게 어떨까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제 미숙한 글을 마치겠습니다. ^^;
혹시 제 생각에 문제가 있다, 오류가 있다, 하시는 분들은 꼭 지적 덧글 부탁드립니다.
저도 아직 계속 배우는 단계고 분명 잘 못 알고 있는 것들이 많겠지요.
그 부분은 양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