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살인 강간 왕따와 폭력에 관한 뉴스가 인터넷과 TV채널을 점령하고 있는 요즘,
나 또한 갓 두살 된 딸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그리고 갓 서른세살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세상살이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
세상은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무섭고 악해졌을까.
사람과 문명은 점점 똑똑해져가건만
세상은 왜 반대로 점점 더 비이성적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얼마전 발달심리사 워크샵 강연중
가족 상담 전문가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자꾸 머릿속을 맴돈다.
'아름답지 못한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들은 좌절 분노를 느끼게 되지요.'
선생님께서는 상담사의 역할로서
상담을 받으러 오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며
그들 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해줄 것을
그래서 그들이 아름답지 못했던 과거의 구조에서 벗어나
새롭고 유용한 구조안에서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함을 강조하셨다.
그렇다.
모든 사람에게는 악도 존재하지만 선도 존재한다.
악을 컨트롤하고 적절히 선을 드러내며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선생님께서 부탁하신 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찌해서 악을 컨트롤하지 못하게 되었는가.
그것을 아는 것도 나의 역할.
그리고 그 대답 중 하나로 나는 대중매체의 책임론을 부각시키고 싶다.
사회학습이론으로 유명한 반두라의 유명한 실험 중 보보인형 실험이라는 것이 있다.
반두라는 4세 가량의 유아들을 나누어
공격적으로 인형을 가지고 노는 성인과
얌전히 가지고 노는 성인을 관찰하게 한 후
각기 다른 방으로 옮겨 보보인형을 가지고 놀게 하였는데,
공격적인 놀이 모습에 노출되었던 아이들은 역시나
자신들 또한 인형을 공격적으로 가지고 놀았다.
관찰만으로도 학습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옛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는 찬물도 못마신다.' 고 말씀하셨던게 아닐까.
나 또한 만 16개월 된 딸아이가
나의 사소한 행동과 말을 똑같이 따라하는 것을 볼 때면
순간 정신이 바짝들어 몸과 마음을 재정비하게 되건만
요즘의 대중매체와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거칠고 포악한 소재들을 볼때면
그 무책임함에 마음이 씁쓸해진다.
티브이를 켜면 나오는 안좋은 뉴스들,
자극적인 소재의 드라마들과
생각없는 웃음 혹은 비아냥만 유발하는 예능프로그램,
클릭을 유발하는 비방과 들춰내기들이
더 잔인해야 더 잔혹해야 재미를 느끼는 감각 무뎌진 세상을 만들어내는건 아닌지..
선생님의 말씀대로
인간은 아름답지 못한 이야기에 분노와 좌절을 느낀다면,
우리는 도대체 하루에 몇번을 분노하고 좌절하며 살고있는 것일까.
인간은 본디 선에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악에는 슬픔과 화로 반응하는 감정의 동물이거늘
선을 자극하지 못하고 악만 자극하는 세상에서
아름다움을 인간다움을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욕심일지도 모른다.
성범죄자에게 죽어간 한 여인의, 가장의 영결식이 있던 오늘.
별의 별것을 다 쏟아내는 이 똑똑한 세상이
왜 아름다운 소식만 전하는 뉴스는
아름다운 헤드라인만 보여주는 인터넷 사이트는 만들어주지 않는지.
인간의 무분별한 남용이 환경오염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결국 인간을 위협하게 된 것 처럼
대중매체의 무절제한 자극의 남발이
또한 결국 인간에게 독이 되어 돌아온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이것을 역이용하여 병들어가는 세상에 솔루션을 던져줘야 하지 않을까.
혹시 여러분은 김선아와 현빈이 열연했던 '내 이름은 김삼순' 이라는 드라마에
표절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있는가.
2002년 영국에서 공부할 당시 즐겨보았던 BBC의 'Eastenders'의 한장면에 이런것이 있다.
Kat Moon이라는 등장인물이 남자친구와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데
결정적인 순간 콘돔이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곤 Kat Moon은 뜨겁던 순간을 stop하고 남자친구에게 콘돔 심부름을 보내는데
마트에서도 약국에서도 이런저런 해프닝으로 결국은 콘돔을 사지못하고
터덜터덜 빈손으로 Kat Moon이 있는 방으로 돌아가보니
이미 Kat moon은 침대에서 혼자 잠들어 있고
남자친구는 기분좋은 포기를 하며 상황종결!
보면서 '와우!'를 외쳤던 이 장면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나는 이유는
아무것도 아닌 이 에피소드가
'콘돔이 없으면 섹스도 하지마라'
즉, 성에 대한 책임감을 시청자들로 하여금 관찰학습시키기 때문이었다.
또한 당시 우리나라의 드라마 속 성적인 장면은 늘 하는 행위에만 초점이 맞줘져 있었지
어떻게 해야하는가 그 자세와 태도에 대해서는 언급하는 일이 없었기에
더욱 인상깊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그리고 내 뇌리 속 박혔던 이 장면이
2005년 어느날, 당시 히트의 히트를 치고 있던 '내이름은 김삼순'에서
마치 쌍둥이 마냥 똑같이 재연된다.
표절이건 뭐건(사실 표절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그냥 표현상)
이 순간 내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던 것은
'와우 누군가 드라마 속 성적인 장면에 대한 책임감을 갖기 시작했어!' 뭐 이런식의
왠지모를 안도감 같은 것 때문이었다.
이야기가 살짝 산으로 갔는데,
결국 내가 이 글을 통해 하고싶은 이야기는
대중매체는 사람과 그 시대의 문제에 대한 책임을 갖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대중매체뿐 아니라 이부분에 대해서는 사회 각층에서 관심과 책임을 갖는것이 필요하다.
인간다움을 파헤치는 세상.
아름다움을 갈망하고
아름다움에 감동받고 자극받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며
말많고 생각많은 아줌마는 여기서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