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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얼마나알고계세요?★★★1부

안녕하세요 ㅎㅎ 네이트판 보기만 많이 봤지 글은 처음써보는 사람..ㅋㅋㅋㅋ이네용파안

요즘 독도문제가 많이 많이 이슈가 되어있잖아요?

 

당연히 우리나라땅인데도 불구하고 일본의 저 뻔뻔한 행동은 국민적 반감을..ㅋㅋㅋㅋ

 

하지만 우리나라사람들은 저런상황에 욕만 많이 하시지 왜 독도가 우리나라땅인지 정확히는

알고 계시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물론, 저도 그런사람중 한명이였고 이번기회로

많이  조사했고 반성도 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ㅎㅎㅎㅎㅎ

 

내용이 많아서 상당히 길것 같아요.

그래서 몇부로 나눠야 할것같네요.

하지만 그만큼 독도가 우리땅이라는 증거가 많다는 소리겠죠? ㅎㅎㅎㅎ

그래도 지루하겠지만 참고(?) 봐주셨으면 좋겠고

퍼갈수있다면 퍼가주셨으면 좋겠네요.

 

 

 

<독도>

 

독도는 한반도의 부속 도서로서 우리나라의 동쪽 끝에 위치해 있습니다.

독도는 동도와 서도 및 89개의 바위섬(부속 도서)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독도의 총면적은 187,4㎡로 동도가73,297㎡, 서도가 88.639㎡ 입니다.

기타 부속 도서의 면적은 합하여 25,517㎡입니다.

독도의 지번은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1~96번지이고 우편번호는 799-805입니다.

 

 

★독도가 울릉도에서 보이는 사실의 중요성★

 

우리나라 울릉도에서는 맑은 날 육안으로도 독도가 보이지만, 일본 오키섬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울릉군 석포와 도동의 독도 전망대 등 여러 곳에서 맑은 날이면 독도가 관측됩니다.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인다는 사실은 중요합니다.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이므로 울릉도 주민들은 예로부터 독도를 오가며 어로 생활을 했습니다.

이것은 독도가 울릉도 주민의 생활 권역에 포함되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17세기에 조선과 일본이 울릉도와 독도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논쟁할때,

일본은 두 섬과 두 나라 사이의 거리를 각각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이 조사는 1696년 1월 25일, 돗토리 번이막부에 제출한 문서 [죽도지서부]에 나와있습니다.

그 결과 독도가 조선의 울릉도에서는 약 200리, 일본 오키에서는 약 400리 거리라는 사실을 알고

일본측에서 조선의 영토로 인정한 사실이 있습니다.

 

 

★국제법상 독도의 지위★

 

독도는 국제법상 "섬" 이므로 12해리 영해와 200해리의 배타적 경제 수역을 가질 수 있습니다.

EEZ란 영해 기선으로부터 최대 200해리까지에 이르는 수역 중에서

영해를 제외한 수역입니다.

타국의 선박이나 항공기는 연안국의 EEZ를 자유럽게 통항할 수 있지만

자원 개발이나 어업 활동 등에서는 여러 가지로 제약을 받습니다.

1996년 한국과 일본이 각각 200해리EEZ를 선포한 결과,

양국의 EEZ에 중첩되는 해역이 발생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양국의 해양 경계가 필요했으나 경계에 대한 양측의 주장이 대립하여

잠정적으로 어업에 관한 사항만을 규율하는 어업 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이 어업 협정은 한&일 양국의 배타적 경제 수역에 적용됩니다.

우리나라의 땅인 독도의 영해는 양국의 배타적 경제 수역이 확정되지 않은

이른바 중간수역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독도가 이 중간수역에 포함되어 일본의 영토라는 주장은 억측입니다.

 

 

 

★동해 표기 문제와 동해와 일본해 지명의 병기 추세★

 

동해는 우리 민족이 2000년 이상 사용해 온 지명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삼국 사기』 고구려본기 동명성왕 조와 광개토대왕릉비의 비문,

『신증 동국여지승람』 에 수록된 『팔도총도』 , 『여지도』 에 수록된 『아국천도』

등 다수의 고문헌과 고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세기 말까지 일본은 지도에 동해 해역을 조선해, 일본해 등으로 표기했고, 서양에는

중국해, 만주해, 동양해, 동해, 한국해, 일본해, 타타르해 등 다양하게 표기하였습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과 20세기에 걸친 일본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로

국제 사회에서는 " 동해" 대신 " 일본해" 지명이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유엔 가입후 1992년 유엔지명표준화회의에서 동해 해역의

지명을 일본해로 단독 표기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국제 사회는 두 국가 사이에 지명 분쟁이 발생할 경우, 해결이 이루어지기 이전까지는 지명을

병기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에 한국은 East Sea / Sea Of Japan 으로 병기할 것을

주장하고 있으나, 일본은 동해 해역의 지명으로 일본해 단독 표기 이외에

어떠한 지명도 수용이 불가하다는 융통성없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 정부와 민간 단체들은 동해 지명이 국제 사회에서 널리

사용될 수 있도록 노력해 왔습니다. 그 결과 세계 각국의 지도 제작사가 발행한 지도에는

" 동해/일본해 " 로 병기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일본 외무성과 우리나라 외교통상부의 조사에 따르면 2009년까지 꾸준하게 늘어

2009년에는 28.07%가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고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김장훈 씨의 뉴욕타임즈 전면광고>

 

그런데 왜 국제 사회에 일본해 지명이 보급되었을까요?

 

그이유는 1929년 국제수로기구에서 『해양과 바다의 경계』를 발간한 것을 계기로

이때부터 일본해가 국제 명칭으로 등재되었습니다.

1937년 개정판이 나왔을 때는 일본의 식민지였고 1953년 제 3차 수정판이

발간되었을 때는 6.25전쟁으로 혼란한 시기였기 때문에 정정을 요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료에 나타난 독도★

 

독도에 대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입니다.

여기에는 신라의 이사부장군이 우산국을 복속시킨 내용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본래 삼국 시대 이전에 울릉도와 독도는 우산국으로 불렸습니다.

삼국시대에 우사눅 사람들이 신라 내륙까지 들어와 노략질을 벌이자,

신라의 이찬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하게 되었습니다.

우산국 사람들은 지세가 험해 신라가 쉽게 쳐들어오지 못할 것이라 믿었으나

이사부가 계략을 써서 우산국 사람들을 복속시키고 해마다 토산물을 바치게 하였습니다.

 

또한 512년에 신라의 복속된 우산국은 918년에 고려가 세워진 이후 고려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930년 태조13년에 우산국은 백길과 토두라는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고, 고려는 이들에게 관직을 주어 복속 상태를 유지시켰습니다.

1018년 현종9년에는 우산국이 동북 지방 여진족의 침입을 받아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자 왕이 농기구와 종자 등을 하사했습니다.

그리고 1032년 덕종1년에도 우릉도(울릉도) 성주가 아들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습니다.

 

그후 1157년 의종11년에도 왕은 명주도 김창 김유립을 파견하여 울릉도에

주민을 이주시켜 살게 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게 했습니다.

김유립은 울릉도의 면적과 촌락터, 유적지, 산물 등을 조사하고 돌아와,

왕에게 울릉도는 바위가 많아 주민을 이주시켜 살게 할 수 없다고 보고했습니다.

그 후에도 고려 조정에서는 울릉도에 주민을 이주시키고자 여러 번 시도했으나

도중에 풍랑으로 인한 익사자가 많아 중단시켰습니다.

울릉도는 주민들이 살기 어려운 환경을 지니고 있는 데다 왜인들의 침입도

그치지 않았으므로 중앙정보는 울릉도에 이따금 안무사를 파견하여 섬을 관리했습니다.

고려 시대 기록에는 울릉도가 우릉도또는 무릉도로

독도가 우산도로 나타나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기록이 많습니다.

울릉도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으므로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도

울릉도와 주변 섬에 관한 보고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부로서는 주민들이 울릉도에 들어가 사는 일을 방관할 수 없었습니다.

울릉도 주민은 왜구의 약탈대상이 되기 쉬웠고, 한편으로는

정부의 세금을 피해 울릉도로 도망간 경우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정부는 울릉도에 대해 쇄환 정책을 실시하였습니다.

그로인해 일시적으로 무인도가 되었었지만 이는 정부가 울릉도와 주변섬을 관리하기

위해 실시한 정책일뿐 섬을 포기한것은 아닙니다.

또한 사람들은 정부의 쇄환 정책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울릉도로

들어갔으므로 섬이 빈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당시 섬을 조사하기위해 정부에서 파견한 관리의 직함은 "무릉등처 안무사" 혹은

"우산무릉등처안무사" 였습니다. 관직명에 "우산"과 "무릉" , 두섬의 이름이

함께 들어가 있는것으로 보아 울릉도뿐아니라 독도(우산)에대해서도 함께

조사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조선후기에는 정부는 3년마다 수로관을 파견하여

수토 정책을 제도화했습니다

쇄환정책이나 수토 정책은 공도 정책과는 구별됩니다.

이들 정책은 국가가 통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관리 정책입니다.

하지만 공도 정책은 공도화를 섬의 포기와 결부시키기위해

주로 일본에서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억측일 뿐인 용어입니다.

 

그리고 세종실록과 지리지에서도 울릉도와 우산도(독도)에 관련된 내용이 실렸는데

기록 내용을 살펴보면, 우산과 무릉이 별개의 섬임을 말해줍니다.

"두 섬은 서로 거리가 멀지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

라고 한것은 두섬 사이의 거리가 아주 가까운 것은 아니므로 흐린 날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 우산도를 죽도나 관음도에 비유하는 주장이 있는데

이것또한 잘못된 주장으로 세종실록 , 지리지에 두섬이

날씨가 맑은 날에만 보인다고 한 " 우산도 "는 관음도나 죽도가 아니라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죽도나 관음도는 울릉도에서 가까우므로

맑은날이 아니더라도 대부분 잘보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종실록과 지리지에서는 삼국사기와 마찬가지로

이사부가 우산국을 복속시킨 사실들이 기술되어 있어 울릉도와 우산도가 예로부터 중요한 섬으로

인식되어 왔음을 말해줍니다.

 

 

 

죄송해요 슬픔 원래 더 많이 적으려고 노력했는데 몸이 너무 안좋아서..

이번주 토요일날 2부 올릴께요.

지루하시거나 글이 너무 길어도 끝까지 읽어주셨으면 좋겠고

추천같은것도 바라지 않을테니까 빨간글씨라도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독도가 일본땅이 설마 되겠어 하지만 우리가 왜 우리땅인지 모르고

우리땅이라고 주장만 한다면 결국 독도는 일본땅이 될지도 모릅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일본학생들에게 왜 독도가 일본땅이라 묻는다면

비록 왜곡된 역사이지만 대답을 대부분 한다고 합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욕하기에만 급급합니다.

 

독도에 대해 더많은 관심을 가지고

왜 우리땅인지 알아야 독도를 지킬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이 퍼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허허허

 

아 그리고 위에 글들은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출판한  고등학생용 독도 바로알기에서

출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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