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글에 들어가기 앞서 방탈 정말로 죄송합니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저보다 더 많은 날을 사신 분들의 조언을 듣고 싶어서 실례를 범합니다.. 거기다 여자만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라서 이곳에다가 올립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불효자식이라고 말할 지 모르겠지만 저는 아버지가 싫습니다. 제가 3살 때는 주식때문에 1억의 빚이 생겼습니다. 순전히 아버지 탓이지요. 한강변에 있던 40평짜리 아파트에서 시장통에 있는 방 하나짜리 집으로 옮겨가야 했지요. 그렇게 저희 부모님은 아침9시부터 밤 10시까지 시장에서 옷장사를 하며 빚을 갚았습니다. 저희 아버지 진짜 무능했습니다. 빚도 빚이지만, 친구들을 너무 좋아해서 가게에 붙어있는 날이 없었어요. 어머니는 자신의 친구조차, 사생활조차 없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을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흥청망청 논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에 비해 편하게 일하신건 사실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절박해서 열심히 일했다고 합니다. 무능한데다가 무관심합니다. 어머니께서 시집살이를 엄청 심하게 당하셨는데 그때 쉴드 한 번 못 쳐주고 무관심하게 티비만 보더랍니다. 어머니는 고되게 일을 하면서도 오빠와 저를 돌보고 모든 집안살림까지 도맡아 하셨습니다. 그렇게 십 년을 사셨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머니 몸에 병이 나셨습니다. 어머니는 방 3개짜리 집으로 이사하고도 몸을 혹사하는 생활을 유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셨던 거 같습니다. 밤이건 낮이건 소음이 끊이지 않고 화장실을 가려고 2층에서 1층까지 내려가야하는 그 집이. 그렇게 일을 하고 얻은 것은 자궁암입니다. 어려서 잘 기억은 안나는데 자궁을 드러냈다는 사실은 확실하게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펑펑 우셨드랬죠... 솔직히 그 때 아버지에 대한 증오가 극에 달아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집안일을 하시며 자기 한탄을 많이 하셨는데 저는 그 원인을 아버지에게 돌렸습니다. 아빠가 무능해서 엄마가 고생하는 거야. 아빠가 능력이 없어서 오빠가 나를 개패듯이 패도 막아줄 수 없는거야. 오빠랑 집에 둘이 있으면 거의 노예같은 생활을 했습니다. 기본적인 라면끓이기 밥차려놓기부터 시작해서 심부름을 갈 때는 무조건 오 분 내로 갔다와야했습니다. 걸어가면 8분거리를요. 오빠가 이빨을 닦을 수 있게 한 컵에는 물을 한 컵은 빈컵으로 해서 칫솔에 치약을 뭍혀 컴퓨터 앞에 가져다놓고 치우고 이런 나날이였죠. 하루는 학원에서 늦게 와 자신의 심부름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엉덩이를 오백대를 맞았습니다. 제가 5학년 때 일입니다. 오빠가 너무 싫어서 차라리 죽을려고 식칼을 들었다 놨다...... 아버지를 증오하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있습니다. 오빠가 죽으라고 대놓고 목을 조르는데 그걸 보면서도 태연하게 티비만 보고 계시더군요. 그것도 아버지 앞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어머니는 힘이 달려서 오빠를 막지도 못하고 그저 안절부절하고만 계시고요. 저 그때 게거품 물었습니다.
그저 이렇게 무능력하고 무관심하다면 증오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어릴적부터 정막 감당도 못할 쌍욕을 엄청 많이 들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애한테 나가 뒈지라느니 조금 더 머리가 크고나서는 신발년 쌍년같은 막말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보통 어머니랑 싸우고 나면 그 화풀이감이었는데 물마셨다고 욕먹은 적 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고 제 방문을 닫기 시작했네요. 중학교 3학년때는 노는데 바뻐 항상 11시에 들어와서 가족이랑 마주칠 일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방에 틀어박혀 화장실 갈 때 빼고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가족행사도 언제나 빠졌습니다. 하지도 않는 공부핑계를 대며요. 오빠는 재수,삼수,사수를 했는데 그 기간마다 모두 기숙학원에 가 있어서 마주칠 일 없었구요. 저희 가족은 고등학교때부터 붕괴가 됐네요...... 고등학생 때 제 목표는 하나였습니다. 대학생이 되면 집을 나가자.
그런데 집을 나갈 것은 저 혼자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이혼결정을 하게 된 거지요. 저는 당연히 어머니를 따라가기로 했습니다. 오빠는 아버지와 같이 살겠다고 하더군요. 일단 예정일은 제가 대학교에 들어가는 날로 잡고 있습니다. 저는 솔직히 당연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차라리 지금에서야 이혼한다고 한 걸 원망하고 있습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어릴 때 아버지와 따로 살았다면 이렇게 누군가를 싫어하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정도로 저희 모녀는 아버지를 싫어했습니다. 근데 어머니의 이혼은 단지 아버지가 싫어서가 아니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바람을 피우고 계셨습니다. 심지어 그 아저씨를 제게 소개시켜주기까지 했네요. 물론 남자친구다 이렇게 얘기를 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확실했습니다. 우연히 슬쩍 번호를 봤는데 여자이름으로 저장이 돼 있더군요. 어머니께서 방에서 전화를 하면 여자들 특유의 애교 있죠?? 남자친구한테나 할 법할 그런 애교를 부리셨습니다. 솔직히 더러웠습니다. 지금 두 분은 각방을 쓰고 계시구요 아버지는 거실바닥에서 주무십니다. 어머니께서 오빠 자취방으로 하루 자러 가셨는데, 이제서야 침대로 들어가 주무시더군요. 저는 지금 글을 쓰고 있구요.
아버지가 죽도록 싫은데 지금 보니까 너무 불쌍합니다. 빚을 져 어머니를 고생하게 만들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하십니다. 예전에 어머니가 했던 그대로 9시에 나가서 밤 10시에 들어오시구요. 함부러 놀러나가는 일도 없으십니다. 그 좋다던 친구도 몇 번 안 만나시구요. 그렇게 매일을 가족을 위해 돈을 버셨는데 결과는 이혼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저희 아버지 요리라고는 계란찜밖에 못하십니다. 할 수 있는 건 설거지정도? 오빠야 자취방에서 생활할 것이고 아버지는 혼자 남게 될 게 뻔한데 이 큰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혼자 라면을 끓여드실 아버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픕니다. 그렇게 사람좋아하고 얘기하는거 좋아하시던 분이 혼자가 될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픕니다. 점점 나이가 들 수록 어머니의 빈자리는 더 커지겠지요. 근데 이기적이게 같이 살기는 싫습니다. 제가 어릴적에 받았던 상처를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버지가 죽도록 싫은데 안쓰럽다고 생각되네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를 설득하고 싶은데 그렇다고 22년간 기다렸을 해방을 좌절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머니가 바람을 피든 안 피든 이혼은 확실했을 겁니다. 솔직히 엄마도 밉습니다. 근데 짜증나게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요. 아버지같은 사람이 남편이라면 숨구멍하나 내놓지 않고는 못살 것 같거든요. 누군가 완벽하게 미워할 사람이 없다는 게 슬픕니다. 제가 받은 상처를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고 싶은데 그럴수가 없습니다. 혼란스럽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그저 나가면 모른척 살아가야 할까요. 아니면 힘들더라도 아버지와 함께 살아야할까요. 머리속에 생각은 많은데 답이 없습니다. 모른척하자니 가슴이 아프고 같이 살자니 제가 너무 힘들 것 같네요.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