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실아,
너를 처음 만난건. 2003년 구정이 막 끝났을 때였어.
그때 나는 막 수능을 쳤고
알바를 해서 거금 30만원을 손에 쥐었지.
이돈으로 뭘할수 있을까, 하다가
생활정보지를 뒤지기 시작했어.
너무 반려 동물이 갖고 싶었거든
그때 눈에 띈 '말티즈 분양합니다, 30만원'
동생과 함께 무작정 연락을 했어,
그 추운 겨울날 차안에서 너는 네 형제들과 함께 바구니에 담겨져 있었지.
누구로 할까, 하다가 너와 눈이 마주친 순간, 널 데리고 올 수 밖에 없었어.
너는 다른 형제들에 비해서 몸도 너무 작고 연약해 보였거든
원래는 복실이 라는 이름보다 더 세련되고 예쁜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는데.
아빠가 개는 전부 복실이라고 부르는 바람에, 네 이름이 복실이가 되었어. ㅎㅎ
데리고 온 첫 날, 엄마는 화를 내고 난리가 났었지.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엄마는 동물을 너무 싫어했거든
너는 엄마에게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는지, 사고도 안치고 울지도 않는 아주 얌전한 아이였단다.
생각해보면 네가 참 똑똑하다고 해야 할까, 혹은 사람 마음을 잡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해야하나, 하고 느낀게
너는 엄마의 마음을 열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는 것 같았어.
가족이 모두 바닥에 앉아 있으면, 항상 엄마 무릎을 찾아 '앉아도 되나요?' 하는 눈빛으로 한손을 올리고 눈을 바라봤었지.
또, 엄마가 설겆이를 하고 있으면 다른 모두가 거실에 나와 놀고 있어도 항상 너는 엄마 뒤를 지키곤 했었어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네 정성이 느껴졌는지 엄마는 서서히 너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던거 같애.
앞집 아줌마가 출근 시 꼬맹이를 자주 맡겼었는데,
그 꼬맹이가 하도 너를 괴롭히니까. 엄마가 아무래도 꼬맹이를 봐주는건 거절하는게 좋겠다고
네가 너무 스트레스 받는다고 . 하고 지나가면서 말씀하시는걸 들으니까.
그만 와락 웃음이 나지 뭐야.
두 딸 모두 대학을 다른 지방으로 가게 되어, 허전했던 우리 빈자리를 너는 차고도 넘치게 채워 주고 있구나 싶어서.
참, 별개의 말이지만, 우리는 너를 말티즈라고 철썩같이 믿었는데. 이상하게 다른 말티즈랑 자라는게 다르더구나. ㅎㅎ
그렇지만 네가 말티즈인지 푸들인지 뭔지는 더이상 우리에게 중요한건 아니었어.
네가 우리에게 오고
우리는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고,
결혼을 하여 다른 가정을 꾸릴 때 까지 네가 우리 곁에 있었다는게 네 그 작은 몸으로 그 세월을 버티고 살아줬다는게 그게 고맙고 신기하고 ..
요즘 강아지들은 10년도 넘게 산다던데
너는 성미도 급하네.. 9년 밖에 안됬는데 떠나려는 것을 보면
오늘 병원에서 안락사를 시키는게 좋겠다고 했다는 아빠의 이야기를 듣고.
무언가, 네가 살았다는 흔적을 남겨주고 싶었어.
추억을 풀자면 끝이없을 테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나는건, 너가 우리에게 준 사랑이 많았구나. 하는거.
9년..
짧은 견생이지만.
우리와 함께 너는 행복했을까..?
가는 길이 고통스럽지 않기만을 바래.. 그저 잠자듯이 네가 갈수만 있다면..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