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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 안드로메다로 보내고 남자 잡았던 동지들에게.

무저갱 |2012.09.22 22:34
조회 8,541 |추천 34

 

판에서도, 친구들도 말하죠.

"니가 정말 좋아한다면 자존심같은거 내던지고 잡아라. 후회 남지 않을때까지 해봐라"

 

곧 29세가 되는 저도, 5년 조금 안되게 만난 남자친구 입에서 헤어지자는 말이 나올때마다

그야말로 피눈물을 머금고 저(低)자세를 취하며 잡았어요.

 

연락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여자와 저 몰래 1년간 연락하다 걸렸을때도,

일찍 자겠다고 하고 나가서 여자친구들과 술 마셨던 때도,

난생 처음 들어보는 욕 퍼레이드를 날리고 헤어지자고 했을 때도

얼마전 저 몰래 나이트 가려고 서울에서 그 먼 거리까지 행차하셨을때도

그리고.. 사랑해서 생겼던 아이 병원에서 보낸지 이틀 후에 집앞에 찾아와서 헤어지자고 할때도..

 

그냥. 그 사람이 없으면 죽을것만 같았어요.

제가 살고싶어서, 제 자존심같은거 다 내던지고 그냥 잡았어요.

 

두달간 서로 헤어져있던 때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어서

택시 타고 집앞까지 가서 아침까지 기다리기도 하고

(이 사람은 친구들과 술 마시고 있다며 내일 볼꺼면 보고 아님 말라는 말만 하고 전화기를 꺼버렸네요)

전화로 헤어지잔 얘기 또 나오길래

택시 타고 새벽에 집앞까지 찾아가 3시간 기다렸다가 마찬가지로 얼굴도 못보고 집에 오고

 

5년 내내 이런 식이었던것 같아요.

제가 잘못했던것도 분명히 많았겠지만,

그 어떤 순간에도 제대로 사과 받아본적도, 화해 신청을 받아본 저도 없어요.

 

3주 전에 나이트 행차하려던걸 걸렸을 때 딱 하루, 정말 딱 하루 미안하다고 하더라구요.

다음날 제게 그러더라구요. 쿨하게 봐줄거면 만나고, 아니면 그냥 가라고.

저 그런 소리 듣고도 3주간이나 그 사람 더 만났어요.

 

 

살다보면요.. 정말 천적같은 상대가 있어요.

사회생활이나 학교 다닐때 성적 여부와는 관계 없이

이상하게 유독 어떤 사람한테만 계속 당할때가 있어요.

제게 있어서 그 아이가 그런 상대였던것 같아요.

 

분명 그 아이가 잘못했는데, 왠지 내가 부여잡고 있고

그 아이 잘못은 온데간데 없이

저보고 성격 이상하고, 남자 이해할 줄 모르고,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래요.

그러면서 성격 차이로 너랑 나랑 헤어지는 거래요.

'이래 저래 해서 난 화가 난거고, 니 잘못은 이거다.'

백날 말해도 교묘하게 저만 이상한 여자로 만들어요. 자기는 한없이 정상이고, 남자들 다 이렇다며.

남자들 화나면 다 여자친구한테 쌍욕 하는거고, 거짓말 하고 놀다올수도 있는거고, 새벽까지 술퍼마셔도 괜찮은거래요. 니가 다 이해하래요.  

 

24살에 이 아이 만나기 전까지 저도 연애 몇번 해봤거든요.

사회 생활 하는 오빠들도 만나보고, 동갑도 만나보고. 나름 이사람 저사람 만나봤는데..

지난 5년간 연애했던 이 아이는 정말 유별났어요.

유별나게 저와 천적이었는데, 정말 유별나게도 그 아이가 좋았어요.

 

제일 화가 나는게 바로 이거였어요. 

그 아이의 뻔뻔한 그 태도보다, 그런 대접을 받으면서도 계속 그 아이를 좋아하고 있던 거.

자존심이 상하는 차원이 아니라, 나란 사람을 근본부터 박살내고 그야말로 무저갱까지 쳐넣어버리는데

아무말도 못하고 뻐끔뻐끔 거리다가 또 부르면 동네 똥개처럼 달려가서 웃고 있는 자신이

정말 너무 너무 싫었어요.

 

며칠전 겉으로는 성격 차이로 합의하에 헤어진것처럼 포장이 되었지만,

결국에는 또 같은 이유였어요. '자유롭고 싶다'는거.

3주 전 제 자존심따위 안중에도 없이 그저 그사람 이해하고 안아줄때

전화를 끊고 어두운 방 침대 위에서 눈물도 흘리지 않고 멍하게 앉아있었어요.

그때 다짐했어요.

내가 이렇게까지 나의 모든것을 버렸는데,

이 아이 입에서 또 헤어지자는 말이 나온다면 이 아이는 내 사람이 아니구나.

비단 내 사람이 아닌게 아니고, 그 누구의 사람도 될 수 없고, 그 누구도 품을 자격이 없는 아이구나.

 

중고등학교 다니신 분들 다 아실거에요. 기회비용이라는 개념.

그보다는 덜 중요하지만, 경제학에는 매몰비라는 개념이 있어요.

sunk cost라고, 그야말로 회수 불가능한 비용을 말해요.

저는 지금까지 매몰비가 아까워서, 그거 회수하려고 5년동안 죽어라고 달려왔어요.

내가 지금까지 이 사람이랑 만난 시간이 있는데,

내가 이 사람 애까지 가졌었는데,

지금까지 내가 준 사랑이 얼만데.. 그래도 좋은 결말은 맺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헛된 바람으로요.

제가 그러고 있는동안 매몰비는 더 커지고 있었는데

바보같이 그 생각은 못하고 그저 내쳐 달리기만 했어요.

 

자존심이요. 정말 좋아하는 사람한테 부리지 마세요.

헤어졌을때 잡고 싶음 잡아요.

그런데요.. 인간 취급 못 받으면서, 연인 취급 못 받으면서까지 자존심 버리고 달려들지 마세요.

무엇보다도 가치 없는 사람한테 시간 낭비 하지 마세요.

 

제가 5년동안 멍청이 짓 해와서 다 알아요.

그 사람 가치 없는거 알아도 그냥 좋잖아요. 진짜 자신도 이해 안되는데 이상하게 좋잖아요.

스킨십으로 든 정때문이 아니라, 그냥 왠지 좋잖아요. 이 사람 없음 안될것 같고.

 

그런데 그 사람 없이도 살아져요.

그 사람 옆에 있을때 좋은데 동시에 불행하잖아요. 내가 너무 하찮고 가치 없어지잖아요.

나를 가치 없게 만드는 사람 옆에서 애써 그 사람 붙잡고 있지 말아요.

이제 자신을 더 챙겨요.

 

저는 요새 그런 생각을 해요.

내가 나보다 그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는 티가 너무 많이 나서 그 사람이 그랬나보다..

자기가 나보다 더 가치 있고 중요한 사람이라 여겨서 나를 그렇게 막 대했나보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서일 수도 있지만, 결국 그사람 나쁜 면모 드러나게 한건 저였다고. 그래서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노라고 하루에도 몇번이고 다짐해요.

나를 더 소중히 여겨야 겠구나.

이건 자존심을 세우는 차원이 아니에요. 인간적으로 나를 보듬어 줘야겠다는 결심이에요.

내가 그사람 아끼고 이해했듯, 나 자신도 아끼고 이해해야겠다.. 뭐 이런 차원이요.

 

헤어진지 며칠 안됐지만.. 평소와는 좀 달라요. 3주 전에 결심한 것도 있고 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앞으로 연애를 다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자신도 없고, 오랜 기간 연애를 해서 그런지 한동안 쉬고싶은것도 사실이에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누군가 옆에 있어서 불행한 것보다 차라리 혼자서 행복한게 나은것 같아요.

 

어떻게 쓰다보니까 하소연 식의 글이 됐는데.. 말씀드리고 싶은건 이거에요.

사람 봐가면서 자존심 버리세요. 가치 있는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시간을 투자하세요.

죽을것 같죠? 안 죽어요.

지금의 저처럼 좋았던 기억까지 다 잊은채 상처투성이로 남는것보다

재빠르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주는지 판단해서

결정을 내리는게 좋아요. 그리고 결정을 내렸다면, 가슴이 미어져도 그냥 밀고 나가세요.

얼마 안있어 그 결정이 바른 것이었음을 알게될거에요.

저는 29살이나 되어서 깨달은거지만, 모쪼록 빨리 깨달으셔서 좋은 짝 만나셨음 좋겠어요.

 

일찍 자려고 잠자리 마련하고 누웠는데, 잠 안와서 판 와서 글 남겨요.

과거의 저와 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동생들 이 글 보고 하루라도 빨리 마음 단단히 먹었음 좋겠어요.

그야말로 '저와 같은 꼴' 나기 전에요.

 

이별은 누구에게나 힘들어요. 자기만 유독 힘든거 아니에요.

다들 잘 버티고 있으니까.. 기운내요. 잘 버티자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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