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하고도 두살먹은 여잡니다. 글이 깁니다.
결혼에 대해 조언해주실 수 있는 분들은 시간 떼운다 셈치고 한번 읽어봐주시고 조언 좀 주세요.
남친도 동갑이고 거의 5년을 사귀었어요.
저는 대기업에 다니고 남친은 정규직은 아니고 강사일 합니다. 벌이는 먹고 살만하게 적당하고요.
서로 집안 사정 비슷하고..각자 부모님들이 반대하시는 것도 없고, 남친과 저 가진 돈 비슷한데 합치면 2억 정도 됩니다. 사치 안부리고 작은 전셋집 얻어서 소소하게 같이 산다면 결혼 못할 이유 없다고 생각합니다.
남친과는 결혼 얘기만 나오면 결국 싸움이 되곤 해요. 제가 요즘 점점 히스테리를 부려요.
저는 안그럴거라 생각했는데, 여자가 나이를 먹으니..결혼에 있어서는 남자보단 여자가 마음 졸이게 되고 불안감이 생기고 그렇네요.
지금 남친을 많이 좋아하고 다른 사람이 눈에 안들어오고 그럽니다. 이 친구만큼 내 부족한 점 받아주고 이해해줄 사람 있을까 싶고요.
그렇다고 남자친구를 등떠밀어서 결혼하고 싶지는 않아요.
웃긴게 회사 유부남들 보면..마치 여자가 급해서 어쩔 수 없이 결혼했다는 놈들 많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 참..같은 여자로서 와이프가 안됐고 회의감이 많이 들고요.
그래서 그런지.... 남자친구가 정말 결혼하고 싶어 죽겠는 마음으로 프로포즈를 해야 결혼하고 싶은데
ㅎㅎㅎ 과한 욕심인가 봐요. 남친은 저더러 자존심이 너무 세답니다.
대화를 하면 도대체 이것은 가치관의 차이인 것인지, 제가 쓸데없는 오기를 부리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남자친구는 정말로 저만 사랑한답니다.
제가 봐도 저를 좋아하는 것 같긴 해요. 같이 있으면 한결같이 자상하고.. 밥도 항상 내가 먹고 싶은 것으로 먹고.. 제가 사는 자취집 전세금 일부도 보태주고.. 자기 부모님한테 항상 제 얘기를 하고 친척들 모임에 데려가려고 합니다.
물론 저는 여자친구의 신분으로 남의 가족행사에 참여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 안가지만요.
아무튼 결혼 얘기만 나오면 말 싸움이 아래와 같이 됩니다.
나 > 그래서 우리는 결혼을 하긴 하는거야?
남친 > 하지
나 > 나랑 결혼 하고 싶어?
남친 > 응
나 > 언제?
남친 > 글쎄
나 > 넌 왜 계속 몰라.. 몇년 째 몰라?
남친 > 사랑이 중요한거지 결혼이 중요한거냐?
나 > 나 진짜 이제 외롭고 사는게 불안해. 언제까지 내가 너의 여자친구로 늙어갈 수는 없어. 나도 나만의 가정을 원해. 결혼에 대해 내가 이렇게 묻고 있는 것도 솔직히 비참하기도 하고 자존심도 상해.
남친 > 그게 왜 자존심이 상해? 그리고 너 나 못믿어? 넌 내가 무슨 계획인지도 모르잖아.
나 > 넌 5년째 계획만 하냐? 넌 맨날 뭔가 니가 대단한 걸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면서 바뀌는게 없잖아. 구체적인 계획은 차일피일 미루고 다른말로 돌리잖아.
남친 > 준비가 되야 결혼을 하지.. 솔직히 너 내가 당장 내일하자면 할 수 있어? 야 내일 하자. 난 내일할 수 있어. 할꺼지? 자 우리 내일 결혼한다??오키???? 거 봐~ 대답 못하네. 이러니까 너도 준비가 안된거야.
나 > 니가 말하는 준비??? 우리 수준에 돈 모아서 풍족하게 다 갖추고 결혼하려면 나이 환갑넘어야 할 수 있어. 일년 이년 계속 미룬다고 니가 뭐 드라마틱하게 부자 되 있을 것 같아?
남친 > 그럼 너는 니가 프로포즈를 왜 못하는데? 니가 하면 되잖아. 그리고 니가 외롭고 쓸쓸한 마음이 결혼한다고 달라질 것 같애? 계속 내 옆에 있으면 되잖아.
나 > 나더러 프로포즈를 하라고? ....하면 결혼할거야? 넌 그저 회피하고 싶을 뿐이야. 친구들도 다들 미혼이고 결혼이 낯설고.. 생각하기 복잡하니깐. 그런데 계속 이런식으로 나이만 먹는다면 아파도 서로 그만하는게 나은 것 같아.
남친 > 넌 날 진정으로 사랑하는게 아니야. 진짜 날 사랑하면 그 위치가 여자친구이던 와이프이던 무슨 상관이냐고.. 나이가 오십이 되더라도 여자친구로서 자기 곁에 있어줘야지.
나 > 오십살이 되도록 니 여친을 하라고? 장난해? 싫어. 나 이제 혼자 자취하는 거 지겹고 외로워
남친 > 그럼 내 집와서 같이 살면 되잖아.
나 > 동거를 하자고?
남친 > 어.
나 > 야 그럴거면 결혼을 하고 살면 되지.. 각자 돈 벌고 사는 결혼 적령기 사람들이 무슨 동거를 해. 너 왜 자꾸 사람 꼴 웃기게 만들어? 너 별로 의지도 없고 생각하기 싫은가 본데...그러면 내가 나랑 정말 결혼하고 싶은 남자 만날 수 있게 그만 보내줘.
남친 > 싫어. 넌 나말고 다른 남자랑 결혼하면, 결혼 당시에만 좋겠지.. 근데 알고보면 여자를 때리는 놈이거나 쌓아둔 빚이 있는 놈일껄? 결국 나를 그리워 하고 후회하면서 남은 여생을 보낼거야. 절대 못 보내줘.
나 > 아 그럼 뭐 어쩌라고..나는 금전적으로 안바라니까 니 마음이 진심이면 약혼이라도 해. 다이아몬드 반지도 필요없으니깐 오백원짜리 뽑기반지라도 사와서 프로포즈 하는 모습이라도 보여
남친 > 무슨 뽑기반지...하 놔.. 야 내가 그정도 밖에 못할 놈으로 보여?
나 > 넌 꼭 그렇게 뭔가 대단한 게 있는 것처럼 늘 말하는데.. 결국 그 삼천원도 안하잖아.
남친 > 아 좀 나를 믿으라고!! 넌 일부러 맨날 부정적으로만 생각해... 좀 기다리라니깐!!
나 > 기다린다면 대략적으로라도 넌 언제를 생각하는지 말해봐
남친 > ....글쎄 어...음... 내년 말? 내후년??
나 > 아이고.. 아무 생각도 없었다가 최대한 맥시멈을 일단 말하는 구나. 그럴거면 새로운 사람만나서 1년 넘게 교제하고 결혼을 해도 될만한 시간이겠다. 그냥 관도. 결혼 생각하지말고 살던대로 살아. 이제 결혼 얘기는 더이상 하지 말자.
남친 > 아니 왜 나 못믿냐고.. 왜 자꾸 압박주는데.. 내가 다 생각이 있다는데 왜 자꾸 스트레스를 줘?
나 > 나와의 결혼에 대한 얘기가 자기한텐 압박이고 스트레스인거야.....?
남친 > 너는 왜이렇게 자존심이 쓸데 없이 쎄냐?
그러면 저는 울면서 집에 옵니다. 그럼 남친한테 장난스러운 카카오톡 문자가 와있습니다.
"자기님 저와 결혼해주세요 제발 ㅜ_ㅜ♡"
한바탕 하고 난 뒤에 저런 진정성 없는 문자... 정말 짜증납니다. 저런 식을 프로포즈라고 한다면 이십번은 받은 것 같네요.
이 똑같은 알고리즘의 싸움이 매달 반복이 되면서 또 시간은 흐르고 흐르고 나이를 먹습니다.
화가 나기도 하고 답답해요. 확 헤어져버리고 싶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마음이 있으니 힘드네요.
오늘 처음으로 남친 엄마를 만났습니다. 원래 외국에 사시거든요.... 아니나다를까 결혼얘기를 하십니다. 어찌 계획하고 있냐고..서로 이제는 좀 적극적으로 해야지 않겠냐고.
남자친구가 쑥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저를 내버려두고 그 자리를 피하더군요. 참 당혹스러웠어요.
남친 어머님께
저는 결혼 못할이유는 없다고.. 서로 소박하게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아드님이 정확히 마음을 잡아야 성사가 될 듯합니다. 그렇다고 아드님에게 부담을 주기는 싫네요. 자연스럽게 마음이 생기게 되는게 좋겠죠. 중요한 것은 저는 아드님 많이 좋아한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씀드릴께요. 라고 했어요.
제가 오바하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그런 말씀을 드리게 되는 것 자체가 참 슬프기도 하고 제 꼴이 우습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도 그 어머님은 참 좋은 분 같았어요.
아무튼 잘 아시겠다면서, 어느 한쪽은 적극적이어야 되지 않겠냐며..안되면 부모님들이라도 좀 나서줘야 되지 않을까 하시며, 저희 부모님을 만나시겠다고 합니다.
저는 정말 우리가 진짜로 결혼을 할 사이가 맞는 건지.. 도대체 남자친구가 무슨 생각인건지 모르겠는데...
부모님끼리 뵌다는 것에 정말 어찌해야 되는지 모르겠어요.
남자친구 어머님과의 만남이 끝난 뒤, 결국 남자친구와 전화로 또 싸웠습니다.
도대체 본인이 어쩌겠다는 의도는 없고.. 다큰 성인들이 부모님들에게 결혼 문제를 이끌게 만드는 것은 좀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그 지겨운 싸움 알고리즘이 반복됐습니다.
아니 뭐가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걸까요.....
그냥 제가 자존심을 버리고 리드를 해야되는 걸까요? 부모님들 손에 맡겨야 되는 걸까요?
이런 상황에 저희 부모님은 어떻게 나오셔야 되는 걸까요....
현명한 조언 좀 부탁드립니다. 즐거운 명절되시구요.